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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6. 9. 2. 수요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흐리고 비가 내린다.
날씨가 흐리면 등허리뼈 약한 나는 더욱 우울해진다.
일전 문학카페에 오른 글을 읽고는 나는 충격을 받았다.
구한말 / 일제시대 / 해방 직후 / 자유당 시절 ..... 당시의 혼린헸던 시절의 산골 실상을 더듬은 글이다.
내 고교 여자친구의 카페에서 퍼온다.
'다카키 마사오'.... 등을 포함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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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강자가 고쳐 쓴다
1.
'역사는 강자가 고쳐 쓴다'
이 말이 주는 뜻은 무엇일까?
역사책은 강자가 늘 고쳐 쓴다는 논리가 역사 이래로 이어져 내려온다.
어제는 2017. 8. 15. 화요일.
제72주년 8.15 광복절.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 처음 맞는 광복절 기념축사가 있었다.
축사 서두에서 '촛불집회', '국민주권'이 언급되고, '국가안보'에 대한 자신감과 독립투사 후손에 대한 국가지원 약속도 이어졌다.
이 가운데 '임청각' 복원사업도 언급했다.
경북 안동시 법흥동 20-3번지에 위치한 개인 대저택이다.
500년 전에 지은 99칸의 대저택이다.
상해 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을 역임한 석주 이상룡선생의 본가이다.
이 집 내력을 조사해야겠다.
1519년에 99칸 저택을 지었고.
노비는 언제 해방시켰을까?
1911. 1.5일 노비를 해방시킨 선생은 가족 50여 명을 데리고 만주 서간도 삼원포로 망명했단다.
집 판 돈으로 독립자금을 썼다. 가족 여러 명이 독립운동을 했으며, 이 선생은 1925년 초대 국무령이 되었다.
1942년 일제는 보복으로 이집 반을 헐어서 중앙선 철도부지로 철도를 놨다고 한다.
주민이 반대하는데도 일제가 이 집의 반을 헐어서 철도를 깔 정도로 보복했단다.
2010년 고성이씨 종친회는 이 고택을 구입했다.
2017년 8월 5일 문 대통령은 이 고택을 복원하겠다고 광복절 기념사에서 밝혔다.
나로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편으로는 의심스러워서 고개 가우뚱했다.
이상룡 선생과 친척들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의문도 덩달아 이어진다.
o 1910년에 99칸의 대저택을 누구한테 팔았는가? 산 사람은 엄청난 재력가일 터.
o 대저택을 산 사람이 일본인가? 우리나라 사람인가?
o 중앙선 철도를 깔 때 일본 총독부가 독립운동가가 예전에 살았던 집이라고 해서 '보복'으로 이 집 반인 행랑채, 보속채를 헐어서 철도를 놨겠는가? 어떤 근거로 그렇게 해석하는가?
o 이 집을 반토막 내려고, 중앙선 철도선을 고의적으로 비상적으로 에둘러서 개설했을까?
o 조선총독부가 그렇게 허약했나? 보복하려고 했다면 깡그리 부셨어야 이치가 맞다.
보복설 운운은 사실은 아닐 것으로 추정한다.
o 임청각 주변의 지도로 확인해 보자. 임청각은 낙동강변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다.
중앙선 철도는 낙동강을 따라서 직선으로 내뻩쳤다. 내륙의 땅을 덜 덜어가게끔 강변쪽으로 철로를 냈다.
그런데도 임청각의 옛 소유자가 미워서, 보복하려고 철도부지 용으로 99칸 고택(옛집)의 반쯤 헐었다는 주장은 무척이나 황당하고 억지로 여기지는 지도상의 위치이다.
최근에 지어낸 말, 과장된 말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o 누군가가 1910년에 샀고, 23년 뒤인1942년 철도를 부설할 때 낙동강을 바라보는 하단(행랑채, 부속채 등)만을 헐었을까? 일제가 보복하려고 했다면 이 집 매매 당시부터 깡그리 부셔버려야 이치가 맞다.
그런데도 1942년에는 본채는 건드리지 않고, 철도선이 직선으로 지나가는 하단만을 부수어서 철로를 놨다. 왜? 혹시 소유주가 일본이었기에?
지도 위치상 반쯤 들어가서 반쯤 헐어낸 것이 무슨 보복 운운하는가?
o 어째서 일제가 1910년에 판 집을 1945년 8월까지 본채를 그대로 놔 두었는가에 대한 해명이 더 있을 것 같다. 상식에 어긋나는 아전인수는 오히려 신뢰를 상실케 하고, 사실을 의심하게 한다.
o 고택을 팔아서 그 돈으로 독립자금으로 썼다고 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라고 썼다.
'노블레스 오빌리주'가 도대체 무슨 뜻이냐?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냐? 우리말에 이런 문구가 있었던가?
요상한 외국말을 쓰면 그게이 독립이며, 그게 해방이며, 그게 자주인가?에 대해서 고개를 가우뚱하게 된다.
그냥 쉬운 우리말로 써야만이 진정한 독립이며, 자주이다. 일제시대의 마치 일본말에서 2017년 독립국가인데도, 서양말로 위치만 변절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없는가?
1910년, 100년 전에 99칸의 대궐같은 집에서 살았다면 일반 서민으로는 입이 떡떡 벌어질만큼 잘 먹고 잘 사는 양반계급이다.
1911년. 1. 5. 노비를 해방시킨 선생이 가족 50여 명, 지지자 200여 명을 데리고 서간도로 떠났다는 문구를 보았다.
- 그럼 일가친척도 재산을 몽땅 정리했는가?
- 지지자 200여 명도 재산정리했는가? 아니면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고, 혼자만 떠나갔나?
'노비해방'단어가 눈에 거슬린다.
언제 해방시켜 주었는가?
1886년(고종 23년)에 노비세습제 폐지가 있었다. 세습을 금지한다는 뜻이다. 노비의 자식은 주인이 매매하거나 상속하였다. 재산이기에. 세습제폐지는 기존의 노비는 그대로 인정하고 새로운 노비는 금지한다는 뜻이다. 오해없기를.
1894년(고종 31년) 노비신분제 폐지가 있었다. 갑오개혁을 통해서 공노비, 사노비 제도를 폐지했다. 이 조치는공문서에 지나지 않았고, 실제로 양반네는 노비를 계속 유지했다.
그런데 위 임청각에는 '1911년 1월 5일 노비를 해방시키고...'라는 문구가 뜬다?
1984년에 노비신분제도가 폐지되었는데도 1911년 1월 5일까지도 위에서는 노비제도를 유지했다는 추론이 나온다.
언제 노비를 해방시켰는지 그 시기가 불명하다.
이 선생네도 양반계급이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1886년 노비세습제 폐지
1894년 노비신분제 폐지
위 단어로 검색하면 노비에 대한 많은 자료가 인터넷에서 뜬다.
나는 다른 각도에서 '노비해방'이란 문구를 재해석한다.
아쉽다.
나는 서해안에서 초가집에서 살았다. 우리집보다 더 가난한 사람은 초가삼칸이었다.
떼(잡초인 떼, 삐비의 뿌리)를 떠서 흙집을 지은 집도 두어 군 데 있었다.
하물며 그보다 50년이나 앞 선 1910년대의 초가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양반네의 집은 아흔아홉 칸이라고?
지금 그거 다시 99칸을 복원해서 빈부의 격차를 여실히 보여주려는 것일까?
왜 경북에만 국비를 들이는가?
오래 전, 홍성 김좌진 장군의 생가도 보았다.
몇 칸의 고택인지는 몰라도...
김좌진의 손녀인 김을동씨. 친일파 후손들이 득실거리는 정당에서 핵심으로 활동했다.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손녀는 ... 역사의 모순이다.
o 나는 1949.1. 생이다.
서해안 중부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초가에서 살았다. 머슴(일꾼아저씨)이 있는 농가였다. 마을의 한 예다. 집성 씨족이 몰려사는 마을이기에 그 부잣집에는 사랑채가 있었다.그 사랑채에는 가난한 가족들이 살았다.
나는 그 사람들을 직접 본 기억은 없다. 어렸적 내 귀에는 '상놈 누구네'라는 소리를 듣었다.
어떤 성씨에 대해서 '상놈'이라는 말은 1950년대 초에도 존재했다.
구한말, 이씨조선 말기인 1886년(대원군 시대) 노비 세습제를 나라에서 금지했고, 1894년에는 노비 신분제도를금지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공사노비 신분제에서 풀렸난 사람들은 당장 먹고 살 수 있는 재산이 없기에, 다른 곳으로 떠나지 못한 채, 양반네 주인집에서 계속 살아야 했다.
당장 먹고 살아야 했기에.
나는 어떤 성씨네를 안다. S성씨 후손을 잘 안다. 그들은 면내로 떠나서 그곳에서 사업을 잘 해서 돈 많이 벌었다. 그들이 과거의 자기네 이력을 밝히고 싶어 할까? 아니다. 100% 숨기고 감추고 었을 게다.
마치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요구를 한 한국사람이 있듯이.
ㅇ 나는 소녀상을 더 많이 만들어서 더 많이 전시되어야 한다고 본다.
소녀상을 보라. 앳된 처녀가 눈을 부릅고, 두 손을 움켜쥐고, 맨발로 금방 일어설 듯한 자세이다. 이 억울하고 분한 표정이다. 이런 것을 보고는 '정액' 운운하면서 수치스럽다고 개인적인 느낌으로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했다.
나는 아니다.
현재에도 친일파 후손들이 일제시대 만행과 친일행적을 애써 감추고, 혹시 밝혀지는 사실에 아니라고 항의하는 작태가 끈질지에 이어지고 있는 오늘이다.
o 일제가 1942년 건설한 중앙선 철도를 문 대통령은 철도를 다른 곳(6km)으로 이전하라고 언급했는가?
일제가 보복하려고 반쯤을 철거한 고택을 새로 완벽하게 복원하려고?
아닐 게다. 한국철도공사에는 예전에 설치했던 철도를 직선으로, 복궤도로 개선하려고 오래 전부터 이전계획을 세웠을 게다. 위 독립유공자가 한 때 살았던 99칸 집이라서 복원하려고 일부러 철도 로선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은 아닐게다.
이전비가 어디 한두 푼이냐? 이전하려면 토지 소유주한테 보상비를 지불해야 되고, 철도 개설비도 엄청나게 많을 게다.
지나친 억지로 애국성향을 새로 만들지 않았으면 싶다.
1942년 전후의 철도개설 기술수준을 판단해 보자.
2017년인 지금처럼 대형중장비가 없다. 순전히 사람(보나마마 근동의 주민을 강제동원)의 근력으로 땅을 파고, 철로 쇠토막을 어깨로 메고(목도하고) 운반했다. 일제 토목기술 수준에는 가장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판단으로 철로를 개설했다고 본다.
'보복' 이런 단어는 전혀 아니라고 본다.
얼마 전, 나는 60대 노인네들이 회원인 사이버 카페에서 글 보았다.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글 쓴 60대 이상의 할머니는 소'녀상을 보면 일본인의 정액'을 떠올려진다면서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반박하는 댓글을 처음으로 올렸다.
'역사는 강자가 새롭게고쳐 쓴다'고. 강자는 더럽고 비겁한 사실을 덮어두고 대신, 잘난 체하는 것만 잔뜩 늘여 놓는다. 일본인은 소녀상을 인정하지도 않고, 없애려고 하는데, 혹시 당신은 친일파 후손인가?'라는 뜻으로 댓글 달았는데 잠시 뒤에는 원문이 사라졌다. 내 댓글도 저절로 없어지고. 도대체 어떤 카페인 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60대 후반인 나는 60대 카페 여러 군데에 가입했기에.
ㅇ 나는 두 달 전, 고향 후배가 쓴 책 한 권을 받았다.
시골 마을의 역사책이다. 마을주민 가운데 대성받이 씨족들이 언제 입향했으며, 인물동정도 썼다. 나는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태평양 전쟁에 나간 군인과 노무자, 6.25전쟁에 관련한 전사자. 이승만 시대의 지방공직자 들의 인물난도 읽었다.
그런데 말이다. 일부는 거짓말이었다. 만행은 감추고 숨기는 대신에, 잘나고 떳떳한 이야기만 썼다.
나는 안다. 내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어도 1920년 1월생인 어머니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기에.
내 어머니는 다섯살인가 일곱살인가, 근동 마을에서 걸어서, 아비의 등에 업혀서 내 고향으로 이사 와서 한 곳에서만 아흔일곱 살까지, 평생을 살았다. 일제 치하에서 면 황 서기와 리장의 이름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해방직후의 리승만 찬양자들, 1950년 625사변 당시에 어떤 씨족들이 공산당 부역자들로 변신했는지, 공산당이 물러난 뒤 이 씨족들은 이승만 찬양자들로 변신했는지에 대해서...
일제시대에 징병되어 태평양 전쟁에 참가했던 마을 사람들의 이름 대부분을 나는 책에서 보았다.
그런데 말이다. 어떤 씨족은 용케도 그 징병자 명단에서 없었다. 왜? 하는 의문은 꼬리는 문다.
구한말에는 이씨왕조를 등에 업었으며, 6.25전쟁 때에는 인민군을 지원했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리승만 정부를 지원핶고, 516군사구테타 주역인 박정희를 지원했고...
화려한 변신을 거듭했다.
변신과 진화를 잘 하는 자들은 과거의 사실을 그대로 적는 역사책을 싫어 한다.
강자는 역사책을 늘 새롭게 고쳐 쓴다는 이치를 잘 알기에.
o 1865년 흥선 이하응.
그의 둘째아들 명선이 고종, 왕이 된 이래로 구한말 정치사는 무능, 혼란, 변신과 배반으로 완전히 볶음밥 수준이었다.
이에 부응하여 자진해서 친일파가 된 사람, 성씨 집단들이 어디 한 둘이랴?
고종왕의 아내 민비(명성황후)가 사는 궁궐에 침입하여 칼로 왕비를 죽인 자들이 일본 낭인들만 구성되었을까? 조선인 낭인은 전혀 없었을까?
우장춘 농업박사의 아버지도 민비를 죽인 조선인 낭인이었다.
조선사람이 조선왕비를 죽이는데 앞장 섰다. 왜? 돈이 되니까.
나는 우장춘 박사를 존경한다.
국가 반역자 아버지를 두었는데도 우박사는 반역자의 아들임을 밝히고, 속죄한다면서 일본국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분이 농업발전에 기여한 것은 논외로 한다. 부끄러운 역사를 밝혔기에... 이런 사람이 진정한 우리나라 사람이다.
ㅇ 일본이 한국을 완전히 집어삼킨 해는 1910년8월 22일이다. 이날 서명했고, 이를 숨기고 있다가 일주일 뒤인 8월 29일에 공표했다.
이 이전에 한국은 벌써부터 일본의 식민지였다.
구한말, 1894년 일본이 청일전쟁 전승국가가 되고, 조선을 억눌렀을 때 이씨왕조는 허수아비가 아니었던가?
1910년 8월 22일부터가 아니다. 한일합방 그 이전부터 식민지였다. 마지막 숨을 허덕거리는 늙은이었다. 무려 519년간 하나의 왕조가 통치했던, 늙은 국가였다.
1905년 을사조약(을사늑약이라고 말을 돌리지만...)에 서명한 대신은 5명이다.
역적은 이들 5명뿐일까? 아니다. 을사조약을 지지한다는 연대서 명한 양반네들이 무려 700명이나 된다. 왜 역사책은 이들의 명단을 숨기는가? 고작 5명만이 역적이던가? 고작 이완용 하나만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축소하려고?
충남 홍성 출신의 김좌진 장군.
이 분을 밀고한 사람인 일본사람이 아닌 조선사람이었다. 이름은 누구일까?
ㅇ 어제는 2017. 8. 15.
1945년 8월 해방된지 72주년이 되는 날이다.
72년이란 세월이 그렇게 긴가? 나한테는 아니다.
나는 1949. 1월 생이다. 내 성씨는 최(崔)씨. 구호적에 있는 증조부, 할아버지, 아버지의 성씨는 崔가 아니다. 山本이다. 일본말로는 야마모또이다.
창씨개명은 아마도 1942년 경에 했을까?
내 증조부는 崔씨 성을 산본(山本)으로 창씨했다. 山을 살려서 최씨의 흔적을 남기려고 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름만큼은 한국이름이었다.
해방 뒤, 구호적에는 내 증조부, 할아버지, 아버지의 성씨 칸에는 X자로 지워지고 다시 최씨로 고쳐 썼다.
나는 해방 이후에 태어났기에 일본성씨 야마모또(山本)는 아니다. 그냥 경주 최씨이다.
그런데 말이다.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재산인 토지대장에 보면 어떤 성씨의 이름이 나온다. 일제시대에 논밭을 저당잡혀서 그 돈으로 대전에 나간 흔적이다. 구토지대장의 성씨는 일본 썽씨이며, 이름까지도 100% 일본 이름이다. 세성만 창씨한 것이 아니라 이름까지도 개명했다. 완전히 친일파였다. 이렇게 강자에 빌붙어서 변신을 하는 족속이기에 씨족 전무가 출세하고, 부자가 되고...
성씨는 물론 이름자까지 깡그리 일본식으로 바꿔서 일본으로 변신하려고 했던 사람이 어디 한 두 명일까?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박정희 이름이 뜬다.
高本正雄. 이 이름으로는 박정희라는 것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다카키 마사오. 이름으로 보면 그는 일본장교, 만주군 첩보장교였고, 해방 이후에는 공산당원이었고, 군사구테타를 일으킨 장교였다.
어제 광복절 기념사에서는 문 대통령은 '친일하면 3대가 잘 살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가난하게 산다'는 뜻으로 언급했다.
독립 후손을 지금이라도 정부가 보살피겠다고 한다.
너무나 뒤늦은 국가보훈정책이지만 정말로 훌륭한 정치로 기대한다.
2.
임청각을 복원한다면 그게 제대로 된 복원일까?
옛 사진이라도 남아 있는가?
그거 복원하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복원비는 누가 충당하고?
경북 안동시에만 복원하는 것일까?
생명을 받친 독립투사가 훨씬 많다.
부자라고 해서, 계급이 높다고 해서 차별해서 우대해서는 안 된다.
이름을 모르는 숱한 독립투사는 죽었다.
서울국립현충원 안에는 애국지사의 묘가 제법 많다
아쉽게도 묘가 없는 분도 많다. 무명탑...
위와 같은 논리라면, 애국지사, 독립투사 모두의 집을 복원해 줄 것인가?
신분과 계급에 맞춰서?
어느 특정인만을 위한 복원에는 더 깊이 생각했으면 싶다.
다른 시각으로 보았으면 싶다.
차라리 그 비용으로 친일파 행적을 더듬고, 이를 책으로 남기는 작업이 훨씬 낫겠다.
국가예산을 한 군데로 쓰면, 이것 또한 어떤 진실을 돕는 역작용이 될 것이다. 어떤 건물을 복원하는 것도 애국하는 하나의 방편이 되겠지만, 다른 시각으로 이것은 아니다라고 본다. 어떤 진실을 더 파훼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역사인식이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친일부역잡부터 먼저 색출하는 작업을 확산해야 할 것이다. 친일파가 누구였는가? 고작 이완용 등 몇몇 뿐이었을까? 아니다. 일제시대의 숱한 사람들이 민족에 반역짓을 저질렀다.
하나의 예다.
1919. 3. 1. 기미독립선언서.
선언서를 기초했던 육담 최남선.
서명 33인 가운데 해방 이후 반민특위에 회부된 사람은 최린 등 넷.
육당, 서명 네 명은 해방 뒤에 친일부역자로써 재판정에 섰다.
하물며 다른 친일자들은 오죽이나 했을까?
이 반민특위도 흐지부지했다. 왜? 이승만도 친일파 운운하기에...
또 하나의 예다.
윤치호, 윤보선, 윤치영 등의 이름이 생각난다.
윤치호. 어떤 사람일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기 바란다.
윤보선은 4.19혁명 이후, 5·16군사구테타 이전까지의 대통령이다.
윤치영은 1960년대 공화당 의장서리였고, 외교학(정치학) 교수였다.
윤치영, 윤치호는 사촌간이고, 윤보선 대통령은 이들의 조카이다.
이하... 이쯤에서 접는다.
'역사는 강자가 새로 고쳐 쓴다'는 말은 진리일까?
역사책은 사실 그대로 써야 한다.
강자가 역사를 새로 고쳐 쓰는 짓거리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박근혜 정권은 국사를 새로 고쳐 쓰려고 했다. 뉴라이트 국사...
서울 영등포 어떤 공원, 5.16군사구테타 발생지(군부대 주둔)에 육군소장 박정희 동상이 서 있다.
최근 촛불집회로 시끄러울 때 어떤 분은 박정희 얼굴에 빨간 페인트로 떡칠하는 사건이 있었다.
또 사건이 발생했단다.
이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국민이 낸 세금은 어느 특정한 곳에만 집중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있는 많은 곳에 분산해서 썼으면 싶다.
간략하게 썼다.
2017.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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