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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상되는 논쟁
2012년 총선과 대선을 1-2년 앞둔 시점인, 지난 20일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이 만찬회동에서 ‘석패율 제도’ 도입을 논의하고 대통령자문 사회통합위, 중앙선관위 등도 석패율제 도입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석패율제 도입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석패율제 도입의 명분은 ‘지역주의 완화’다. 호남에서도 한나라당 의원이, 영남에서도 민주당 등 야당 의원이 당선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여야에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향후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석패율제 도입 논의가 급진전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정말 이 석패율 제도가 지역주의 완화와 한국정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그 제도의 효과는 긍정적일까? 이것에 대해 필자의 의견은 부정적이며, 회의적이다.
2. 석패율 제도는 왜, 어떻게 작동되는가?
석패율 제도는 유일하게 일본에서 1966년부터 실시해 오고 있으며, 그 제도의 취지는 지역구선거에서 가장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구제해주자는 것이다. 석패율(惜敗率) 제도의 운영원리는 다음과 같다.
각 당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후보를 발표할 때 홀수 번호(1,3,5번 등)는 직능/전문성 대표대로, 짝수번호(2,4,6번 등)는 지역구와 동시 출마한 중복 입후보자로 명단을 작성하되 짝수번호에는 1명 또는 복수의 후보를 동시에 내세워 이 중 가장 높은 득표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뽑는다.
석패율이란 당선자와 낙선자의 득표비율 말하는 것으로서, 낙선자의 득표수를 당선자의 득표수로 나누어 100을 곱해 계산한다. 예컨대. A 후보가 5만 표로 당선되고 B 후보가 4만 표로 낙선했다면 B 후보의 석패율은 80%(4만÷5만)이다.
다시 말해서 정당의 비례대표명부 중 특정번호에 지역구 후보 3-4명을 올려놓고 같이 등록된 중복출마자들 중에서 일단 지역구에서 당선된 자를 제외한 뒤 남은 사람들 중 석패율이 가장 높은 사람이 비례대표로 당선되게 하는 것이다. 비례대표 가운데 석패율제도를 이용할 순번은 각 당 마음대로 정할 수 있으며 특정 유력인사를 반드시 당선시킬 생각이라면 한 명만 등록해도 무방하다.
3.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는 지역주의인가? 아니면 그 이상으로 심각한가?
아마도 여야가 석패율 제도 도입에 공감을 하는 배경에는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지역주의’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영호남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의 하나로써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서진을, 민주당은 영남에서 동진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으로 ‘지역주의’를 보는 것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양당 구도하에서 두 당 모두 전국적인 정당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 기반하고 있으면서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배타적인 지역정당이라는 한계를 개선할 수 있는 석패율 제도나 중대선거구제도가 하나의 방법이라는 점에서 일리가 있고 타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영남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호남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투표행태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는 가정이 깔려 있다. 매우 이기적인 관점에서 이익을 따지는 유권자 즉, 유권자는 자신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는 정당과 후보에게 투표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러한 가정에서 출발하는 합리적 선택이론의 시각에서 보면, 유권자의 영남당과 호남당 지지행태는 매우 합리적이며 정당하기까지 하다.
오히려 이것을 비정상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 더 비정상적이다. 왜냐하면, 따지고 보면 지역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 유인책를 동원한 것은 유권자들이 아니라 3김씨와 그 후계를 중심으로 한 지역주의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0년 시점에서 보면, 그 문제가 되고 있는 지역주의 투표행태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점진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추세인 것도 사실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호남지역과 영남지역에서 민노당이 선전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특히,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를 지역주의로 한계 지우려는 이러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시각은 일찍부터 지역주의 정당과 투표행태를 탈피하고 계급정당, 이념정당을 추구하고자 했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시각에서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보면 좀 다르게 보인다. 즉, 적어도 민노당과 진보신당에게 있어서 한국 정치의 문제점은 지역주의 그 이상이다.
자본-임노동, 진보-보수 등 사회적 균열구도에 따라 정당구도가 형성되어 국민의 다양한 계급 계층적 이해를 대변해야 하는 데, 한국의 정당정치 구도와 투표행태는 그렇지 못하다. 다시 말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당 중심의 구도가 보여주고 있듯이, 노동자가 1천만 명이 넘어도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의 국회의원이 10명도 안 된다는 차원에서,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는 계급계층적 불비례 대표성이다.
그리고 필자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은 앞에서 상정된 지역주의와 계급계층적 불비례 대표성 그 이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필자가 볼 때, 한국 정당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들의 다성악적인 이해관계를 반영하거나 그것과 상호작용하지 못하면서 자기 정당들끼리 따로 노는 정치의 단성화(독백주의), 즉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정파적 편향성이 강한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
예를 들어 보면, 국민들의 이념성향과 정치권의 이념성향과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따로 놀고 있는 현상이 그것을 반증한다. 하나를 보고 전체를 말할 수 없지만, 최근 추세를 반영하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본인의 주관적 이념성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중도(43.4%)> 진보(31.7%)> 보수(24.9%)”순으로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응답은 한국의 국민들의 의식과 이념적 성향이 보수만 있고, 진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포함하여 중도성향의 국민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다성악적 목소리와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이 같은 중도, 보수, 진보의 다양한 목소리 비율은 한국정치의 복잡성과 이질성과 공존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으며, 그중에서 중도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서강대 현대 정치연구소 이현우 교수팀이 조사하여 주간동아(2009-07-20)에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지도부는 자기 정당의 평균 이념이 국민보다 보수적이라고 인식한 반면, 민주당과 민노당 지도부는 자기 정당이 국민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각 정당의 평균이념이 국민의 성향보다 더 보수 또는 더 진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주류 정당들 모두가 중도 성향의 다수 국민의 이해관계를 배제할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시민들의 의식과 다성악적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사회분위기를, 반영하지 못하고 자기들만의 이념적인 진보-보수의 편가르기(이념의 양극화)로 ‘단성악적 독백주의’에 빠져 있다는 명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기존 정당정치가 진보-보수의 이념적 편향성에 따른 단성악적 독백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에 결국 이것이 국민들의 정당에 대한 불신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적절한 예라 할 것이다.
특히, 기존의 주류정당들이 진보 중도 보수 등으로 다양하게 복잡하게 혼합되어 있는 국민들의 다성악적인 성향과 목소리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자기들만의 이념적 성향인 진보, 보수라는 단성악적인 독백주의를 지킬 경우, 민주 대 반민주 혹은 진보 대 보수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독백주의에 빠져 대화와 토론 및 공론장 정치는 실종되게 된다.
결국, 이것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전후과정에서 그리고 7월 한나라당이 다수의석을 무기로 하여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국회 난투극과 폭력사태 및 야당의 장외투쟁과 헌법재판소 소송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국경색이 보여준 것처럼, ‘대화와 신뢰부족’에 따른 잦은 ‘교착과 파행’ 및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 또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politics by other means)가 판을 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이렇게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어디에 포인트를 주느냐에 따라, 그 해법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그리고 필자가 바라보는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바라보는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그 해법의 우선순위도 다르다.
필자는 지역주의, 사회적 균열구조에 반응하는 선거제도 개혁보다도 더 우선적으로 기존 정당들이 이념적 편향성과 단성악적인 정치에서 벗어나 다성악적인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당구조로 자체 내부개혁을 진행했으면 좋겠다. 그 시작은 의원과 의원, 의원과 시민사회 간 대화와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원내정당화/유권자 정당화를 더욱 촉진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4. 상대적으로 쉬운 정당개혁, 어려운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도
필자의 생각은 어려운 선거제도나 당리당략용 선거제도라는 비판에 부딪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보다는 자당 차원에서 시작할 수 있는 정당개혁을 먼저 시작했으면 좋겠다. 우선 강한 정당기율에 기반한 당론제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집권당인 한나라당의 당론채택방식은 당쇄신특위가 고백한 대로, 청와대와 대통령 그리고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는 원내외당 지도부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원외당 지도부와 청와대 및 대통령에 의해 당론이 주도될 경우, 원내에서 타당 의원들과의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그리고 건설적인 대화와 토론을 제약하거나 어렵게 한다.
원외 지도부와 청와대 및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는 당론의 경우, 원내에서 타당과의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그리고 건설적인 대화와 토론이 어렵기 때문에 결국 이것은 일방적으로 관철되기 시작할 때 국회의 합리적인 절차와 토론 및 합의형성에 하자가 생기게 된다고 생각한다.
의회가 교착과 파행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당이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청와대의 의중을 관철하는 원내외당 지도부에 의하여 당론이 결정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강제적 당론을 금지시키거나 의원들의 합의에 따른 당론투표제를 도입하도록 하거나 무엇보다도 형식화된 의원총회를 실질화하여 원내정당화를 내실화하는 것이다.
또한, 원외당 지도부 중심의 당론 형성을 약화시키고 상임위 중심의 당 운영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즉 관련된 상임위원회가 헌법에 보장된 의원들의 양심에 따른 대화와 토론 및 자유투표 교차투표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민감한 사안과 이슈에 대해서는 의원총회 산하에 패널토론, 전문소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영하면서, 합리적인 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의원들의 당 지도부의 눈치를 보면서 집단행동에 참여하는 이유는 공천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이나 계파 보수 또는 보스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의원들의 자율적인 독립성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의원들이 당 지도부와 보스의 눈치가 아니라 민심에 민감해지도록 공천제도를 ‘완전 개방형국민경선제도’와 같은 상향식공천제도로 실질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굳이 어려운 선거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 현행 <지역구+비례대표>를 병립하는 방식에서 비례대표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가운데, 전체의석 배분을 선거에서 얻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한국은 독일과 같은 연방제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지역분권과 지방자치를 고려하여 의원명부는 권역별 정당명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5. 석패율 제도의 문제점, 비례대표를 축소 무력화하고 지역구를 늘리는 것
원래 석패율제는 2000년 16대 총선 때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이 도입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그땐 한나라당의 반대로 실현이 무산되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200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영남기반을 잠식당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석패율제를 강력히 반대했다. 그런 한나라당이 이번에 석패율제를 들고 나온 이유는 ‘영남당’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에서이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 정당정치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당개혁을 기본으로 하여,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처럼, 획기적으로 비례대표를 늘리는 방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석패율제도는 앞에서 제안한 두 제도 방향과 부합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즉, 석패율제는 지역주의를 완화한다는 명목과 달리 민의에 의해 심판받은 구태 정치인을 다시 회생시키는 것으로 대의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고, 불신을 더욱 촉진할 가능성이 크다. 궁극적으로 신진정치인의 진출을 막고 구태 정치인의 ‘장수만세를 위한 정치보험’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
또한, 영호남지역의 지역구 의원 수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축소하는 효과를 가짐으로써 비례대표를 더욱 늘려야 한다는 규범적 당위성을 깰 위험성이 존재한다. 즉, 석패율제는 지역구 출마자를 비례대표에 이중 등록하게 되어, 낙선한 지역구 의원을 살려주는 효과가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비례대표의 할당량이 줄어들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비례대표 몇 석이 준다는 것을 넘어서 각계각층의 직능 대표성과 정책전문성을 강화하여 지역주의를 타파하자는 정당명부비례대표제의 도입 취지를 전면 무력화하는 효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수준의 지역주의구도 속에서, 사실상 지역구 의원 수를 늘리는 효과가 있는 석패율 제도는 사실상 지역주의를 완화하기보다는 더욱 강화시키는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석패율 제도가 지역주의 완화라는 쪽으로 흘러간다고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비례대표제도를 획기적으로 늘려 놓는다는 대전제 하에서 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채진원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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