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산의 골짜기
칠보산의 물 이야기입니다.
칠보산의 북쪽부터 동쪽의 골짜기는 당수동의 오룡골, 금곡동의 노샛골, 광현골, 악수골 그리고 호매실동의 수리골, 절골, 된박골, 집우골, 능골이 있다. 그 골짜기의 물이 모여 당수천, 오룡천, 금곡천, 호매실천으로 흐르다가 황구지천에 유입된다. 중간에 금곡소류지와 호매실소류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칠보산 줄기의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시화호를 흘러간다.
1947년 개교한 칠보초교의 교가에 [칠보산 줄기줄기 높이 솟으고 제비천 굽이굽이 얕게 흐르니...]로 되어있다. 황구지천을 예전에 이곳에서는 제비천으로 불렀고 지금도 예전처럼 깊지 않고 얕게 흐른다. 제비천 주변은 논이거나 습지였기에 잠자리가 많았을 것이고 잠자리를 잡아먹는 제비가 많이 날아다녀서 제비천으로 불렀을 것이다. 황구지천보단 제비천이 정감있고 부르기 좋은 이름.
수원에는 크고 높은 산이 없고 큰 강도 없다. 다만 여러 개의 소하천이 수원을 이리저리로 관통해 흘러가며, 이중 상당수는 저수지로 흘러가 그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다. 작은 물줄기와 저수지,그리고 나지막한 언덕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수원이라는 지명을 낳게 하였을 것이다. 수원으로 흐르는 거의 모든 하천은 황구지천으로 모이는데, 당수동 금곡동 호매실동에는 이 황구지천의 본류가 지나며 농업용 수원으로써의 기능을 하고 있다. 황구지천은 전구간에 걸쳐 제방이 축조외어 범람의 위험이 거의 없어졌으나,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주변에 유기물이 많이 포함된 비옥한 충적지를 만들어 놓아 과거 이십여년 전까지 모두 논으로 이용되었다.
칠보산은 침식에 약한 복운모 화강암지질로 물이 땅속으로 잘 스며든다. 그래서 비내리는 몇일 동안만 골짜기에 물이 흐른다. 암석으로 되어 있는 골짜기의 일부구간엔 꽤 오랫동안 물이 흐르지만,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물은 땅속으로 스며들어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마을 부근의 논에서 물이 솟아나와 삼년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수렁논을 만들기도 한다. 지금은 농기계로 농사짓고 농수로와 관정을 파서 수렁논이 불편하였지만, 옛날 가뭄에 농사짓기 어려울 땐 수렁논을 농부들이 선호했다고 한다. 지금은 다양한 생명들이 살던 수렁논이 거의다 사라졌다.
칠보산 골짜기를 지나온 물은 흐르고 흘러 아산만까지 가서 서해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그 물줄기를 따라 참게와 장어가 올라왔었다고 한다. 불과 몇십년전까지도...
아직까지 그 물줄기를 따라 여름철새와 겨울철새들이 찾아온다. 우리동네까지
광현골
현재 경기도 건설본부와 잠업연구원이 있는 골짜기이다.
노새골
금곡동 상촌초교 앞의 골짜기이다. 이 골짜기 부근의 논에는 수렁이 많았다. 그 수렁이 깊어 한번 빠지면 나오기 힘들었다. 옛날 지나가던 노새가 그 수렁에 빠져 죽었다고 하여 노새골이라 불렀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곳에 노새 모양의 바위가 있었는데 어느날 저녁 노스님이 바위를 맴돌다가 바위에 올라앉아 승천하였다고 한다. 이 때 바위가 없어진 자리에 계곡이 생겼는데 이곳을 노새골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 노새골의 전설은 KBS '전설의 고향'에서도 방영되었다고 한다.
능골
현재 능실마을 있는 곳을 말한다. 정조 대왕께서 아버지 사도 세자의 능 자리를 고를 때 당시 지관이 호매실동 능골에 터를 잡았다. 그런데 마침 새 한 마리가 날아가며 '십오리, 십오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곳에서 십오리를 더 갔더니 지금의 화산능 자리였다고 한다. 이렇게 능 자리를 잡게 해 준 골짜기라 하여 능골이라고 부른다고 전한다.
수리골.술이골
칠보산 정상 아래의 골짜기를 말한다. 옛날 이 골짜기에서 연자매 (돌로 만든 방아)를 만든 후 큰 술자리를 벌였다고 한다. 술을 마신 골짜기라 수리골 또는 술이골이라 하였다.
다른 생각으론 정상 아래의 호랑바위에 맹금류(수리나 부엉이)가 와서 살았거나 쉬면서 산아래 골짜기를 노려보았기에 수리골이라 불렀을 수도 있다.
악수골
칠보산 학술림 안쪽의 골짜기이다. 이곳에 도기터와 자기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옛날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생각된다.
오룡골
당수동 마을이 있는 곳, 주변의 골짜기가 다섯 마리의 용처럼 흐른다고 오룡골
절골. 미륵골
칠보산 용화사 주변의 골짜기를 말한다. 아마도 용화사의 미륵불이 있던 곳이라 절골. 미륵골이라 불렀을 것이다.
집우골
호매실동 쪽 골짜기이다. 옛날 이곳에 있던 마을이 폭우로 인해 마을 전체가 묻혔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집우골이라고 한다.
황구지천
황구지천은 경기도 의왕시 오봉산에서 발원하는 하천이다. 상류의 의왕시 초평동의 왕송저수지부터 지방하천이 시작한다. 수원시 권선구를 관통하며 일월저수지의 소하천,금곡동과 호매실동의 소하천, 서호를 거쳐서 오는 서호천, 수원시 권선구 대황교동에서 수원천과 원천리천이 합류한다.
상류가 수원이라는 큰 도시인지라 폐수가 흐른다. 황구지천 전체로 보아 가장 더러운 물이 흐르는 곳이 수원구간이고 아마도 하수관거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주택들이 들어섰기 때문일 것이다. 화성시 황교동의 수원시 하수처리장에서 수원시의 하수관거라인으로 들어오는 폐수가 처리된다. 오산시 양산동 양산교에서는 삼미천이 합류하며 보통리저수리,서랑저수지에서 흐르는 소하천이 합류하며 갈천이 합류한다. 평택시에 들어서면서 황구지리에서 진위천으로 합류한다. 다시 안성천과 합류하여 평택호를 흘러간다. 도심을 지나며 오염된 물이 농촌지역을 지나며 모래와 수초를 지나며 미생물들에 의해 정화되고 산과 논에서 흘러오는 물과 합류하면서 오염도가 낮아져 흐를 것이다. 숲에서 흘러 온 물이 갯벌과 바다의 생물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평택호의 물은 아산만으로 흘러가야 하나 막혀있다.
칠보산 골짜기의 슬픈 사연
6.25전쟁 때 중공군이 칠보산 골짜기에 주둔하고, 미군이 폭격을 하여 산능선과 골짜기에 많은 주검이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두려워하였으나, 산에 올라가서 주검을 모아 묻어주었다고 한다.
어쨌든 죽은자에 대한 애도와 식수원으로써의 칠보산 물줄기를 보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가재가 살고 반딧불이가 살던 칠보산의 물줄기는 이제 넘쳐가는 생활폐수로 물에 손을 담그기는 커녕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더러운 상태로 흐른다. 멀리 팔당에서 오는 수돗물을 사용하면서 내지역의 하천엔 오염된 물이 흐르게 하면 곤란, 어떻게 해야 맑은 물이 흐르게 할 수 있을까? 그나마 논이 물을 정화시켜주었으나, 논도 사라지고 있으니...쩝, 밀가루 대신 밥을 많이 먹읍시다. 쌀 소비량을 늘려야 함.
참조 : 금호동지(2006년), 지역주민의 제보
금곡천...십여년만에 맑은 물이 흐릅니다. 주변환경은 변했어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맑은물 흘러야 함.
오룡골
노새골
왼쪽부터 절골 미륵골 수리골 악수골
첫댓글 그러니까 두꺼비논은 노새골과 오룡골에 있네요.^^
제 고향마을이 생각납니다.
청석골, 짐다골, 딱박골, 불못골...
골짝마다 이름이 있고 추억이 있는 산골마을이지요.
이 글을 읽으니 칠보산자락들이 더욱 정겹습니다.
저 멀리 집에서 저녁밥 짓는 연기라도 금새 피어오를 듯하고
삽짝에는 노는 아이를 부르는 엄마들 목소리가 들리는듯하네요.
"아무개야~! 저녁 먹어라아~!"
마을의 이야기를 알리는 이런 글 참 좋아요.
칠보산 개울에서 가재 잡고 놀았다고 하면 어느 골인지 알 수가 없는데
노새골 개울물에서 놀았다고 하면 딱! 알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