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가을이면 알 수 있다
옛말에 집안에 사람발길이 끊어지면 집안이 기운다고 했다. 그것은 온전히 집안의 안주인의 심덕(心德)에 좌우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 어느 집을 방문하건 그 아내가 정답게 반기면 그 집을 자주 가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싫어하는 기색이 엿보이면 방문하기를 꺼려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아는 친척이 있다. 어릴 때는 방학이면 자주 가서 놀다오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식구가 들어오고서는 가지 않았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기회가 있어 다시 방문했는데 무엇인가 모를 집안이 가라앉는 기운을 느꼈다. 무슨 이유일까?
집에 와서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했다. 가문이 번성하려면 들어오는 새 식구인, 며느리와 사위가 착하고 선한 사람이 들어와야 집안이 일어난다. 착한 마음이 사람을 부른다. 이미 그 집이 부잣집이라면 그 부귀를 수성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재물이나 명예는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이와 반대인 경우는 망해가는 집안이라 보면 틀림없다.
사는 동안 성공적인 인생이 되고자 한다면 우선 명당이 흐르는 곳에서 산다면 큰 은혜이다. 사람은 지(地).수(水) 화(火). 풍(風)으로 빚어진 그릇 같은 육체이기에 한마디로 기(氣) 덩어리이다. 기는 대지의 기운과 상통한다. 피가 잘 돌아야 건강한 육체를 간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땅의 기운이 솟아나는 곳에 살면 에너지를 끝없이 공급받을 수 있다. 명당에는 따스한 기운이 샘솟는다. 그래서 명당에 살면 건강해지고 영성이 크게 자란다. 이것이 명당의 장점이다. 명당에 살면 피곤이 쉽게 사라져, 남보다 두 배로 많은 일을 하게 되니 잘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래서 예부터 선조들도 명당을 중요시 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땅만 명당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땅처럼 착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이 명당 사람이다. 사는 동안 착하게 살 뿐 아니라 적선을 많이 하면 죽어서도 명당에 들어갈 임자이다. 이런 사람이 죽어서 조상이 된다면 후손에게도 아주 좋은 기운을 끝없이 제공해 명문가를 이루는 데 일조를 한다. 그렇다고 그 후손 모두가 명당 기운을 받지는 않는다. 고인(古人)의 유전자와 닮은 후손에게 그 에너지가 가장 많이 간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에너지가 가득 넘쳐 얼굴에 광택이 흐른다.
한 집안에 며느리나 사위가 나쁜 심덕을 가진 사람이 들어오면 그 집안은 서서히 망해 간다. 패가망신의 주요원인은 재물이나 음식이나 옷이 아니다. 사악한 마음과 지나치게 인색한 사람이 집안의 안주인으로 들어오면 그 영향으로 그 집은 서서히 기운다. 제 아무리 밖에 나가서 봉사활동을 해도 나쁜 심성은 바꿀 수 없다.
봄을 지나 여름이 갈 때까지는 그 나무의 종자를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누구나 그 나무의 종자를 쉽게 아는 이치와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가까운 사람도 처음에는 그 속내를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인생가을인 60이 넘어서면 서서히 그 사람의 열매인 자식으로서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그 어머니에 그 딸이 살아온 길이 눈 위에 찍힌 발자국처럼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던가.
삼십 대에 어떤 지인을 만났다. 그분은 44세에 혼자 되셨다. 그녀의 첫인상은 귀부인처럼 정말 평탄하게 산 사람처럼 내게 비쳤다. 그것은 외양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고 마음이 맞아 가깝게 지내다 보니 자신의 속내를 털어내는데,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신 분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고통 속에서 득도한 사람처럼 너그러웠다. 그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내용인즉, 그녀의 남편은 주위 사람에게 모함과 비방을 견뎌내지 못하고 정신적 충격을 받아 회의를 하던 중 사망하셨다.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그렇게 됐을까?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그전보다 더 바르고 정직하게 용서하면서 살았다. 자신의 가족들에게 돌을 던진 사람은 그들이 행한 생각과 행동이 집비둘기가 되어 온다는 사실을 고통 속에서 깨달은 것이다. 원수 같은 그들이었지만, 어쩌다 길거리에서 만나면 90도로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단다.
세월은 선한 사람, 악한 사람에게 물레방아처럼 같은 방향으로 흐르나 보다. 하지만 한 쪽은 곡식이 양식이 되지만, 다른 한 쪽은 그 무서운 힘에 압사 당하나보다.
그녀는 1남 2녀를 아주 반듯하게 잘 키웠다. 아들은 서울대 교수로, 큰딸은 국립대 교수로, 막내딸은 단양 시내 부잣집으로 번듯하게 키워내 지금은 외손자를 돌보고 계신다. 한마디로 잘살고 계신다. 이 모두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했기 때문에 온전한 삶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가게 했던 사람들은 지금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무슨 이유일까? 죄가 익기 전에는 악한 사람도 복을 받지만, 죄가 익으면 악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부처의 깨달음이 참말 같다.
인생나이 60이 넘으면 누구나 삶의 가을을 좋으나 싫으나 필연적으로 맞게 된다. 그 동안 잘 살았는지, 잘못 살았는지 인생성적표가 가감 없이 주어진다. 자신이 뿌리고 가꾼 대로 고스란히 열매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동안 잘살았다면 가족이나 친척에게서 기쁨과 보람의 열매가 되어 가을의 전령인 코스모스 미소가 얼굴 가득 번질 것이다. 그렇지 않고 가족이나 친척과 이웃에게 악의 씨앗을 뿌렸다면, 사는 게 고통이고 시련의 연속일 것이다. 가장 힘들고 참을 수 없는 지옥은 뭐니뭐니해도 자식이 주는 고통일 것이다. 또한, 내 집에 들어온 사람이 자신이 한 대로 행동을 할 때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시어머니에게 잘못한 일, 시동생과 시누이들에게 잘못한 행동들을 내 며느리가 똑같이 하다면 그때의 심정은 과연 어떠할까. 소름이 끼친다. 아마 그것은 자신의 죄가 익어서 터져 주워 담기 버거울 것이다. 무서운 삶의 이치다.
조선시대 최고의 선비였던 정약용 선생이 말하지 않았던가. “재물을 오래 보존하는 길은 남에게 시혜(施惠)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 남에게 도적맞을 일도 불이 나도 타버릴 걱정 없고, 소나 말로 운반할 필요도 없다. 또한 자기가 죽은 후 꽃다운 이름을 천년 뒤까지 남길 수도 있다. 이것은 자기 몸에 늘 재화를 지니고 다니는 방법에 그러한 수가 있으니 세상에 그처럼 유리한 게 어디 있겠느냐? 꼭 쥐면 쥘수록 더욱 미끄러운 게 재물이니, 재물이야말로 매기 같은 물고기라고나 할까?”라고 하셨다. 군자는 이처럼 허망한 재물을 쫓지 말고 학문과 평생을 착하게 선하게 사는 데 힘써야한다고 두 아들에게『유배지에서 보내는 편지』속에서 구구절절 신신당부 하지 않았던가. 아버지의 편지 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얘기가 들어 있다. 그래서 그 말이 고귀하고 참되다. 아들을 아끼는 사랑하는 마음이 삶의 보약처럼 엑기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동안 이처럼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재물이란 욕심에 유혹당해 삶의 본성을 이간질 당해서야 되겠는가. 생각 한 번 잘못 하면 천길 낭떠러지에 빠지게 하는 것도 물욕이 아니던가. 모든 게 마음 씀씀이 하나에 달려 있다. 천당과 지옥도 내 마음에 들어 있다. 살아서 천당이면 죽어서도 천당에 간다. 하지만 살아서 악한 마음을 품으면 죽어서도 지옥 길을 면할 방법이 없다.
들판에 펼쳐진 나무와 풀과 짐승들을 보라! 그들이 내일 먹고도 남을 것을 위해 살생을 하던가. 그날그날 필요한 만큼만 사냥하고 여유롭게 광야를 달리지 않던가. 유독 인간만은 살아서 먹을 걱정뿐 아니라 사후 세계까지 시름하다 정작 한 번밖에 없는 귀중한 이 시간을 놓치고 만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정답 같다.
내 아이들도 대학을 가니 본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아무리 대궐 같은 집도 자신의 거주하는 비좁은 방보다 편하지 않단다. 둥지를 떠난 새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 본성이다. 그들에게 희망과 격려를 보낼 뿐이다. 자식에게는 부모보다 이제는 자신의 꿈이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시기가 아니던가. 모두가 한 때인데 부모의 욕심으로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면 좋은 부모는 분명 아닐 것이다.
우주의 흐름과 순환에 순응하는 지혜가 지자(智者)의 자세가 아닐까. 다만 걱정하고 시름해야할 것은 덕행 하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나 반성하는 일이다. 인생은 늘 살얼음판을 걷는 일과 같다. 판단한 번 잘못하면 천길 낭떠러지를 만나기 십상이다. 살아보니 선한 사람은 신이 고통으로 깨우치게는 하되, 절대로 죽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한 끝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세월 속에서 체득한다. 다만 내 행동이 사람과 신도 감동할 수 있는 삶을 산다면 인생가을을 마음껏 날갯짓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지금의 내 화두이다.
- 박찬란 -
첫댓글 고승대덕인가 했더니 충북쪽 저명 여류수필가네요..모두 대강은 맞는말 같지만 단언하는 듯한 글투가 아쉬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