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보 옥한흠 목사님이 이 땅에 사시면서 인생 말년에 느끼셨던 고통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9. 2. 은보의 4주기를 맞이하면서 은보의 고통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은보의 고통을 다양한 사료(史料)를 통해 입증할 수 있다. 은보의 깊은 고통과 고뇌는 그가 남겼던 유명한 말, 후임목회자에게 했던 말, "너의 정체가 정말 무엇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후임 목회자의 '정체'에 대해 은보는 여러 차례 의심했다. 그럼에도 의심이 떠나가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은보는 후임자의 정체가 "정말" 무엇인지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후임자의 정체에 관하여 의구심(疑懼心)을 떨쳐 버리지 못하셨던 솔직한 편지에서 우리는 은보의 뼈속 깊은 탄식과 고통을 읽어야 한다.
은보가 후임자에게 그런 심각한 수준의 고뇌과 의구심을 숨기지 않았던 것은, 후임자에 대한 은보의 사랑 때문이었다.
다시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은보가 인생 말년에 느끼셨던 고통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양무리 안에 적그리스도가 침입할 때의 고통으로서 참 목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고통이다. 사도바울은 그 고통이 주는 부담감을 알았고 날마다 몸소 느끼면서 살았다.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권면한 대목을 인용한다(사도행전 20:29-31).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은 에베소 교회 양무리에 잠재하는 장래의 영적 위기에 대해 알고 있었다. 심각한 신앙의 위기가 다가오고 복음에서 떠나게 하려는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들어올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삼년의 기간 밤낮으로 눈물로 경고하고 가르쳤다. 거짓 가르침으로 초래될 양무리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지 못했다면, 바울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양무리의 생명을 자기의 생명처럼 아끼지 않았다면, 고통과 눈물의 가르침이 에베소에 베풀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참된 목자는 양무리의 고통을 읽고 예견하고 눈물로 훈계한다. 물론 어린아이 같고 행복해 하셨던 기품과 면모도 중요하지만, 은보 옥한흠의 고통과 고뇌는 오늘날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지난 모든 일들과 2014년 오늘 우리의 상황, 앞으로 일어날 사랑의교회의 신앙의 위기와 혼란을 생각할 때 은보는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천국으로 훌쩍 가버린 은보와 오늘을 이 땅에서 사는 우리모두가 서로 생명의 연합이 있을 것이기에 은보는 육신의 장막에서 고통 속에 신음했고,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긴 양무리의 장래를 위해 걱정했다.
은보의 고통은 오늘의 우리모두를 위한 것이었고, 양떼 안에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침입할 것을 직감한 목자의 고통이었다.
나는 먼저 내 자신에게 은보의 고통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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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
혹자는 은보가 고통을 자초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교회에 들어오도록 용납한 장본인이 은보가 아니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 말이 일정 부분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문제의식에 대하여 즉답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후대의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은보를 위한 나의 잠정적 변명은 이렇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음흉하여 발톱을 감추는 데 능숙하고, 처음에는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속성이 있다. 예수님은 밤의 사도인 가룟 유다를 제자로 삼았고, 직분을 맡기셨다. 예수님과 인연을 맺고 예수님 주변을 맴돌던 가룟 유다도 떡조각을 받은 후 비로소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고, 그후에야 예수님께서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하셨던 것을 곰곰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요 13:27]
예수님이 미리 아셨던 가룟유다의 어둠의 정체는 그때 비로소 이 땅 위의 역사안에 "궁극적으로" 구현,확정되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요 13:30]
솔직히 우리가 은보 옥한흠의 인간적 약점을 애써 감추거나 미화(美化)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현 사태에 대하여 사랑의교회 전체 공교회의 연대책임이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도 없다. 우리가 후임자의 정체를 "제대로 알았다면" 왜 은보에게 천둥소리처럼 외치지 못했겠는가? 분명 우리는 분별력이 없었고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은보와 다툴 정도로 교회를 수호하지 못했다. 만약 후임자의 정체를 제대로 알았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은보보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첫댓글 양의 탈을 쓴 이리들을 처단하여 다시금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랑의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저는 요즘 (조심스럽게..) 우리가 그루터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주 죽은 듯이 보여도 하나님은 그 마지막 그루터기를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사 6:13) 아멘!!
그러기에 우리는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깨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거침없이 하이킥 맞는 지적인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면서도 남은 자 칠천을 남겨 두시고 결국에는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재건하신 것은 온 나라를 뒤엎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서 메시야를 주셨습니다. 남은 백성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이미 보여주신 선례를 따라 인내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거침없이 하이킥 제발 기도만 하세요 기도하는 분들 답게 세상 사람들이 비웃어요 허구한 날 신문에 광고나 하고
그런 돈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님의 말씀대로 기도하세요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끼?
"나는 먼저 내 자신에게 은보의 고통을 되새긴다." 너무 아픕니다.목사님의 아픔이 느껴지며 둔감했던 저를 회개합니다.
저도 은보의 살신 성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내가 죽어야 저놈이 정신을 차릴까?" 그래서 죽기로 마음 먹으셨으나 정작 그는 은보가 죽기를 바랐을 것이다. 왜?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악덕 총회법이 목사를 감싸고 있으니 누가 그를 넘어지게 하겠는가? 아쉽다!!!
양무리 안에 적그리스도가 침입할 때의 고통을 몸소 느끼시면서
"정말" 무엇인지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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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힘드셨으면 식음을 전폐하시고, 치료도 중단하셨을까요!!
죽기로 마음 먹으셨을 때, 얼마나 외로움과 고통에 시달리셨을까요? 생각만 해도 너무 불쌍합니다.
배은망덕 사랑의교회를 이렇게 만든자 당신 두렵지 않나 !
오정현 목사를 향한 "너의 정체가 무엇이나?" 옥목사님 물음에는 목사님 표현 너머의 고통이 보입니다.
목사님의 생전의 고통이 아직도 유가족에게도 전이되어 있어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고통에는 다 뜻이 있다고 목사님과 우리들의 시련들이 조개 속의 진주와 지각 변동 후의 다이아몬드 같이 영롱한 하나님의 보석으로 맺혀질 날을 고대합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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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치노님의 아쉬움에도 저는 깊이 깊이 공감합니다.
해서, P.S.부분을 추가로 써 보았습니다. 늘 카푸치노님의 코멘트를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카푸치노 그 고통은 마지막 남은 생명을 양들을 위해, 교회를 위해, 교인들과 교회만은 해가 되게 할 수 없다는 사랑의 마음이셨겠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리더스 컨퍼런스에서 순서지에 "사랑의교회 11년 역사의 발걸음"이란 영상을 보면서 사랑의교회의 역사를 마음에 담고 있는 교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옥목사님의 사랑의교회 역사 25년을 그렇게 무 짜르듯이 잘라버려도 되는 것인지? 사랑의교회 역사 25년을 잘라버려서 무엇을 하자는 것일까요? 도저히 안 되니 거머리 같은 강남예배당 패거리들을 무 자르듯이 잘라버릴 속셈인가요? 아리송
옥목사님의 고통이 고스란히 베어있는 메일 자체를 조작이라고 일축하며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
정말 불가사의합니다.
결과론적인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결국 은보 옥목사님을 통해 우리교회의 알곡과 가라지를 선별해내는 역사를 하게 하시고, 더 나아가 한국교회 전체의 회복과 갱신의 단초가 되는 역사가 행해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 의의길에서 끝까지 낙오하지 않고 하나님 허락하신 의의 열매를 맺기위해 전진해 나가는 것이리라 믿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옳으신 말씀입니다. 아멘!!!
자신이 평생 섬기던 교회이기 전에 그 교회의 주인이 주님이신줄 아셨기에 인간적인 고통은 당신이 죽음과 함께 감내하시고, 인용하신 말씀 다음 절을 소망으로 받지 않으셨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이 말씀이 옥목사님의 믿음이었고 지금 우리의 믿음이 되길 바랍니다.
그가 사람은 속였겠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겠지요.
옥목사님의 심정을 꿰뚫어 보시는 말씀이라고 생각되네요.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심정으로 교회를 보며 아파하신 목사님의 애통함이 느껴집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올바른 분별력으로 깨어나 진리가 무엇인지 천둥소리처럼 외쳐야 할 때 인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선 우리에게 주의 뜻을 담대하게 선포할 몫을 남기고 가신 듯 합니다. 교회 갱신과 회복을 위해 기도하며 주께서 가신 길 따르겠습니다
사탄의 장난일까? 은보가 폐암에 걸려 심히 낙심하신 것 같다. 거기에 또 대상포진으로 얼굴의 보기 흉한 병변이 일어나니 사람을 보기도 싫고... 이것이 은보의 약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기에는 자기의 쌓아온 과거가 너무 무겁고 컸던 것이다. 자기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제자훈련하면서 “자기를 발가벗기라”는 말을 하셨지만, 자기 자신은 실천하지 못하신 것이다. 왜 호스피스 봉사자가 만나 뵈려고 했을 때, 거절하셨는가? 모든 것을 포기 했다면 그 심정을 누구에게라도 남겨두어야 할 것이었다. 베일에 가려버리면 누가 어떻게 알겠는가? 대학교 영어 교재에 “Black veil"이라는 단편이 있었다.
시골 교회에 목사가 새로 부임했는데, 어느날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나 단서도 잡지 못했다. 그런데 심증이 가는 일들이 일어나 목사를 의심하기 시작 했다. 그러던 어느날 주일 아침 설교를 하러 나오는 목사가 얼굴을 까만 베일로 가리고 나와서 설교를 하고 성도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라졌다. 낮에는 성인, 밤에는 살인자로 살아오다가 의심을 받게 되자 의문의 검은 베일을 얼굴에 드리우고 나타났다가 그곳을 떠난 것이다. 왜 은보는 교인들을 그렇게 사랑한다고 하면서 마지막에 ”검은 베일“을 쓰고 나타난 것일까? 불가사이를 꿈꾸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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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치노 카푸치노님의 절제된 표현에 많은 분들이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고 행복한 토요일 오후 되세요~~
훌륭한 코멘트로 부족한 원글을 보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구석구석 댓글까지 정독해 주시고 귀감되고 공감가는 코멘트로 섬겨주신 petty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