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史-인도史-미국史 등 남의 나라 역사 공부를 두루 했으니 이제 우리 고대사도 한 번 살펴볼까?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대사를 비교해보면 우리 고대국가들의 수명이 훨씬 길었다. 진시황이 건국한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秦)나라는 불과 15년(BC 221~BC 206) 만에 막을 내렸고, 나관중의 대하 역사소설 「심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위‧오‧촉 삼국의 혈투 끝에 어부지리로 수립된 사마염의 진(晉)나라도 겨우 52년(265~317) 동안 유지되었을 뿐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문화제국 송나라는 북송과 남송을 합쳐 319년(960~1279) 동안 명맥을 유지하여 그나마 체면치레는 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고대국가들은 신라 992년(BC 57~AD 935), 고구려 705년(BC 37~AD 668), 백제 678년(BC 18~AD 660) 등 장구한 역사를 지속했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도 474년, 고려를 찬탈한 조선도 518년 동안 존속했다.
신라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오랜 세월 왕조를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전해오는 사서(史書)가 거의 없다. 경주시내의 고분군‧첨성대‧석굴암‧안압지‧포석정‧불국사‧에밀레종‧신라금관 등을 보면 분명 굉장한 역사가 펼쳐졌을 법도 한데 그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애석하기 짝이 없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신라의 역사서는 고려시대에 편찬된 것들뿐이니, 인종 23년(1145)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와 충렬왕 7년(1281) 일연이 쓴 『삼국유사』가 그것이다. 그런데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쓰면서 신라의 사학자 김대문의 『화랑세기』『계림잡전』『고승전』『한산기』『악본』 등을 참고했노라고 출전을 밝혀놓았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집필할 때까지는 그러한 사서들이 남아 있다가 그 이후에 멸실되었다는 얘기다.

1989년 경남 김해에서 『화랑세기』의 필사본이 발견되었다. 재야 사학자 박창화가 왜국의 궁내청 서고에서 필사했다고 주장하던 책이었다. 왜놈들이 『화랑세기』를 빼돌려 지네들 궁내청에 보관하고 있다는 얘기다. 궁내청에는 그 밖에도 무수한 우리의 고대 희귀자료들이 보관되어 있을 터이다. 1995년에는 『화랑세기』의 또 다른 필사본이 발견되었다. 이 책에는 법흥왕 27년(540)부터 문무왕 21년(681)까지 풍월주(화랑의 우두머리) 32명의 일대기가 수록되어 있다. 한 집안의 족보나 개인의 문집도 역사서의 일종이듯이, 『화랑세기』 역시 신라의 풍속을 자세하게 전해주는 중요한 역사서다. 박은몽은 이 두 번째 『화랑세기』 필사본을 토대로 「신라를 뒤흔든 12가지 연애 스캔들」을 집필했다고 밝혀놓았다.
제목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순전히 신라시대 이야기라서 「신라를 뒤흔든 12가지 연애 스캔들」을 사왔다.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은 이유는 ‘신라를 뒤흔든’, ‘12가지’와 같은 통속적인 용어들이 지난 수년 동안 많이 팔린 다른 역사물 제목을 표절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문중 13. 카페에도 「조선을 뒤흔든 16가지…」로 시작되는 책을 여러 권 소개한 적이 있다. 문재인에 의해 교육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전교조 출신 김상곤처럼, 남의 논문 표절한 놈 치고 제대로 된 인간 없다. 게다가 ‘연애 스캔들’이라는 용어에는 영화 《스캔들-조선남녀 상열지사》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내곰이 물씬 풍기고 있다. 이러한 흠결에도 불구하고 신라시대 이야기를 쓴 책이 드물기 때문에 눈 딱 감고 사왔다.

「신라를 뒤흔든 12가지 연애 스캔들」은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신라인들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과 행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원효가 요석공주와 배를 맞춰 설총을 낳았듯이 신라시대에는 요즘보다 性문화가 헐썩 개방적이었다. 밤늦게까지 놀다가 들어와 침대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 있는데, 둘은 아내 것이고 둘은 외간남자의 것이라며 태연하게 춤을 추었다는 <처용가>가 공연히 나온 게 아니다. 『고려사』에 수록되어 있는 가사(歌辭) <쌍화점>에도 회회아비에게 몸을 바치는 아녀자들의 性생활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태생적으로 그런 DNA를 가지고 있는 민족인데 조선조에 접어들자마자 느닷없이 남녀칠세부동석을 부르짖었으니 어디 잘 먹혀들었겠는가. 그것도 왕족이나 사대부들은 있는 대로 바람을 피면서 끗발 없는 백성들에게만 부처님 가운데 토막처럼 금욕을 하라고 강요했으니 말이다.
신라는 여자도 왕이 된 열린 나라였다. 여왕은 제27대 선덕여왕(재위 632~647), 제28대 진덕여왕(재위 647~654), 제51대 진성여왕(재위 887~897) 등 모두 세 분이었다. 선덕여왕은 서양 최초의 여왕인 영국의 메리 1세(1553년 즉위)보다 무려 921년 먼저 보위에 올랐다. 신라에서는 왕후가 화랑과 사랑에 빠져 도망친 사례도 몇 번 있었는데, 조선시대 같았으면 삼대구족을 멸할 일이었지만 신라왕은 굳이 그들을 잡아들이지 않았다. 왕에게는 왕후 외에도 대대로 性을 제공하는 귀족집안의 여인들이 따로 있었으니 별로 아쉬울 것도 없었다. 물론 세 분 여왕님들도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때나 불러다 성희를 즐겼다. 친남매 간에도 결혼이 가능했으며,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사는 게 법도였다. 신라는 왜국은 물론 현대의 덴마크나 스웨덴보다 앞선 性진국이었던 것이다.

신라인들은 신라를 ‘神國’이라고 부르면서 ‘신국에는 신국의 법도가 있다’고 하여 자유분방한 性문화에 상당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화랑세기』는 남편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는 보미를 침전으로 불러다 살침으로 위로해준 눌지왕과, 진흥왕이 몸져눕자 왕후에게 자신의 남편을 보내 며칠 간 동침하도록 배려해준 미실※을 극구 칭송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캔들’이라는 제목도 어울리지 않는다. 당시에는 자유로운 性생활이 일탈이 아니라 일상이었으니, 그 정도 외도는 ‘스캔들’ 축에도 못 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2가지 연애 스캔들’ 가운데 재미있는 몇 가지만 추려서 소개한다. 性적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역사공부로 여기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 미실(546~612)은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남녀를 통틀어 가장 능동적인 인물이다. 가계도에서 보듯이 그녀는 왕실 혈통이며, 당시 왕족들은 대부분 이 정도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었다. 2009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고현정이 미실 역을 맡아 감칠맛 나는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해 말 <MBC 연기대상> 시상식 때의 일이다.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쳤던지라 《선덕여왕》 출연자 가운데서 연기대상 수상자가 나오리라는 것은 인수분해보다 간단한 공식이었다. 그때 김칫국을 너무 많이 마셔서 지금껏 대접을 못 받는 탤런트가 있다. 바로 타이틀롤인 선덕여왕 역의 이요원이다. 당연히 자신에게 대상이 돌아올 줄 알고 잔뜩 차려입고 방송사로 오는 도중, 친한 PD로부터 고현정이 대상 수상자로 정해졌다는 얘기를 듣고는 삐져서 차를 돌려 집으로 가버렸다. 이요원이 발연기를 한다는 사실은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

첫댓글 모르던 재미있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되는 기쁨 재미가 쏠쏠하네
천년전 여왕을 세분이나 나왔다는게 과연 어떻게 해설할까?
다음이 궁금하네
미리 고맙다고 해놓을게.
그 읽을 재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