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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어쩔 수 없는 유혹
시가 떠오르면 어쩔 수가 없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하루 종일 2% 부족한 사람으로 살아야 했다. 시는 나를 2% 부족한 사람으로 살게 한다. 아니면 2% 부족한 나였기 때문에 시를 쓰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보니 완벽한 것은 나를 유혹하지 못했다. 2%의 여백, 살랑살랑 여운을 남기며 가는 꼬리를 따라다녔다. 하늘도 어둠의 2%를 열어놓기 위하여 별을 띄웠으리라.
별이 빛나는 한, 지상에는 2%의 갈증을 느끼는 시인들이 노래를 부르리라. 부족하지만 나도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동대문운동장으로 가는 길에 당선통보를 받았다. 전화기를 들고 허둥지둥하는 나를 보고 있는 아내의 눈빛도 요란하게 떨렸다. 한나절이 지났지만 아직도 얼떨떨하다.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준 아내와 아들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시의 스승인 아모르파티님들과 어젯밤에 쓴 시를 오늘 아침에 들어주었던 제자들을 위해 붉은 마음을 펴서 장미꽃 한 송이를 접는 중이다.
이장근 씨
1971년 경북 의성 출생 ▷한남대학교(대전) 국어교육과 졸업
세일중학교(서울) 교사(국어)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서른 분의 작품을 다시 검토해 본 결과 남은 작품은 ‘황소’(서은교), ‘아가리 마을’(이규), ‘가야동 계곡’(김순자), ‘아스팔트 칸트’(기우연), ‘입이 없는 비평’(최문희), ‘나무별똥’(문성록), ‘불안의 거처’(김지고), ‘일획’(정수원), ‘마네킹’(박정수), ‘소금밭의 기억’(김중곤), ‘바늘’(김명희), ‘파문’(이장근), ‘토마토’(하숙욱), ‘등피를 닦으며’(박선영) 등이었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신춘문예의 특성상 새로운 것에 천착한 나머지 일부러 문장을 비틀고 기발한 착상에 몰두해 난삽한 기교의 과잉에 의한 억지가 많았다.
비튼 문장이나 발상이 독특한 감각으로 살아나 신선한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새로운 감수성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표현하기까지의 데생의 기초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냥 시단의 한 흐름을 따르고 있는 난해한 아류의 것들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점에서 새로움도 있고 표현의 신선함을 주는 작품으로 ‘일획’ ‘마네팅’ ‘소금밭의 기억’ ‘바늘’ ‘파문’ ‘등피를 닦으며’ 등을 들 수 있었다. 작품 하나 하나 놓고 볼 때 모두 독특한 포즈을 지니고 있어 오래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투고한 작품이 모두 고르다는 점에서 이장근의 ‘파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파문’은 자칫 통속적으로 떨어질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독특한 시적 비전에 의해 삶의 진지성과 감동을 주는 데 효과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이 시인이 지닌 삶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더 깊은 비전에 천착해 좋은 작품을 생산하길 바란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정호승(시인)
첫댓글 간결하고 진지하고...
신춘문예 당선시들 가운데서 제겐 제일 와 닿는 시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역시..시사랑님들의 안목은 비슷...
2% 부족함의 결과치고는 엄청난 손해(?)를 보셨네요...앞으로 이 먼 길을 홀로 걸으실 시인님 앞길에 무궁한 영광이 있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