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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축구가 눈과 귀에 들어오지 않는 주말이었습니다. 시즌 막바지의 치열한 우승 경쟁도, 슈퍼 스타들의 화려한 골 세리머니도, 축구를 그 자체로 맘껏 즐기기엔 가슴 한켠이 뻑뻑한 시간들. '세월호'의 참혹한 사건 틈으로 흘러나오는 씁쓸한 사연들의 쓴 맛도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합니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지만, 그래도 세상은 또 서로 떨어져 있는 섬과도 같습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울고 있는 동안에도, 어딘가엔 또 공이 구르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아픈 날에도 축구 이야기를 멈출 수 없는 직업적 소명에, 머지않아 기적이 벌어지기를 기원하는 심정을 묶어 컬럼을 냅니다. 축구계에 벌어진 이 크고 작은 기적같은 이야기 위에, 기적을 자꾸 되뇌이면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진도의 그 바다로 띄워 보냅니다. <뷰티풀게임=서형욱>
영화로도 제작된 '베른의 기적' - 개봉 당시 영화 포스터 |
#1. 베른의 기적 |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서독 대표팀
'베른의 기적'은 2003년에 개봉한 독일 영화의 제목이다. 이 영화는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 이상이던 전후 독일(서독)의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엮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이 큰 호응을 얻은 것은 무엇보다 실화에 근거한 스토리 덕분이다. 무대는 대한민국의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이기도 했던(한국은 터키와 헝가리에 0-9, 0-7로 각각 패하며 탈락)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이다. 이 대회에서 서독은 당시 4년간 무패 행진을 달리며 세계 최강팀으로 불리던 '위대한 마자르족' 헝가리를 결승전에서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서독은 조별 예선에선 헝가리에 무려 3-8로 패했고 베른에서 열린 결승에서도 헝가리에게 먼저 2골을 내주며 끌려갔지만 헤르베르거 감독의 빼어난 전술과 선수 전원의 투지를 합쳐 대역전승을 거둔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경제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던 서독 국민들에게 큰 힘을 불어넣은 이 성과는 이후 '베른의 기적'이라 불리며 전후 서독의 재건에 큰 영향을 주었다.
#2. 기적의 심장 | 은완코 카누, 나이지리아 국가대표 선수
2년 전에 은퇴했지만 국내에도 여전히 많은 축구팬들이 기억하는 선수, 은완코 카누. 2m에 육박하는 큰 키에 흐느적거리는 듯한 자세가 인상적인 카누는 아약스, 아스널 등에서 전성기를 보낸 아프리카 대표 골잡이다. 하지만 올드 축구팬들은 카누를 볼 때마다 한 가지 불가능한 상상을 한다. 만일, 카누의 심장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더 뛰어난 성적을 거두지 않았을까,하는. 1976년생인 카누는 만 스무 살이 되기 전 두 번이나 세계를 제패한 선수였다. 1993년 17세 월드컵과 1996년 아틀랜타 올림픽에서 카누를 앞세운 나이지리아는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올림픽 금메달은 축구 역사에서 아프리카가 처음으로 성인 무대 정상에 오른 쾌거였다. 당시 아약스에서 뛰던 카누는 올림픽이 끝난 뒤 이탈리아 명문 인터밀란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인터밀란에서 머문 3년 동안 카누는 리그 12경기 출전에 1골을 넣는 데에 그친다. 심장 판막에 이상이 생겨 이를 교체하는 대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이 재능 넘치는 어린 공격수의 선수 생활도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카누는 6개월만에 팀에 돌아왔고 아스널로 이적한 뒤인 1999년부터는 매 시즌 주전으로 뛰며 많은 골을 터뜨릴 정도의 몸을 만들었다. 심장에 인공 판막을 달고 그라운드를 누빈 카누의 선수 생활은, 그래서 그 자체로 기적으로 불린다. 한편, 카누는 수술 이후 심장 재단을 만들어 심장 이상을 안고 태어난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3. 도하의 기적 | 1993년 가을, 카타르 도하. 미국월드컵 최종예선, 대한민국 대표팀
대한민국 월드컵 사상 가장 힘겨운 본선행이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은 지금처럼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이 아닌, 모든 팀들이 카타르 도하에 모여 한 번씩 맞대결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아시아에 주어진 본선 티켓은 단 2장이었고, 최종 예선에 진출한 팀은 모두 6개팀. 1/3의 확률을 놓고 대한민국, 일본, 북한, 이란, 이라크, 사우디 아라비아가 경합했다. 본선으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대한민국은 첫 경기 이란전 승리 이후 이라크-사우디와 연달아 비겼고, 네 번째로 만난 일본전에는 미우라 가츠요시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패했다.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승점 5점의 일본(2승1무1패)에 승점 1점 차로 뒤진 상황. (당시 승점제는 승리가 2점, 무승부가 1점이었다.) 최종전에서 북한을 무조건 꺾고, 일본이 이라크를 꺾지 못하기만을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마지막 경기에서 온 힘을 기울인 대한민국은 이미 탈락이 확정된 북한을 상대로 황선홍-고정운-하석주가 연속골을 넣으며 3-0 승리했다. 하지만 그 시점에 일본은 이라크에 2-1로 앞서 있었고 이대로면 탈락이 확정인 한국 선수들은 모두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라운드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이라크의 살만이 경기 종료 직전에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린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일본과 승점이 같아졌고, 골득실에서 앞서 본선행이 확정되었다. 한국에게는 기적, 일본에게는 악몽과도 찰나의 순간이었다.
당시 결승전에는 10만 여 칼레 시민 중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직접 현장 응원에 나섰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4. 칼레의 기적 | 2000년, 프랑스컵, 4부 리그 클럽
축구계에서 '약자의 이변'의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 '기적'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은 반복된 이변이 단순한 우연의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1999/2000 시즌 프랑스 컵. 프랑스의 1~5부 리그 팀들이 모두 출전하는 이 대회에서 칼레는 이 중 최하위급으로 사실상 '프로'라 부르기 어려운 4부 리그 클럽 소속임에도 결승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다. 결승전에서는 종료 직전 석연찮은 PK 판정에 밀려 낭뜨에 1-2로 패해 아쉽게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결승으로 가는 동안 1부 리그 명문팀들에 연전연승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이들의 승리가 '기적'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소속 선수들이 사실상 직업 선수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진) 겸업 선수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칼레의 주전 선수들은 정원사, 교사, 가게 점원, 대학생, 무역상 등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칼레 시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계속된 승리로 7만 명의 넘는 대관중이 운집한 (월드컵 결승전 장소이기도 한) 생드니 경기장에서 결승전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로 선수들에게는 이미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5. 3분의 기적 | 1999년 5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맨유-바이에른
1998/1999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바르셀로나의 캄노우에서 열린 이 경기는 애초부터 바이에른 뮌헨의 우세가 점쳐졌다. 악전고투 끝에 결승에 오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안그래도 막강한 바이에른을 상대로 중원의 핵 로이 킨과 공격형 미드필더 폴 스콜스가 나란히 경고 누적으로 빠진 채 경기에 나서야 했다. 경기는 예상했던대로 흘렀다. 수비수 사무엘 쿠포르를 제외하면 전원이 독일 선수들로 구성된 바이에른의 전차 군단은 탄탄한 조직력으로 상대를 옭아맸고 전반 초반 마리오 바슬러가 뽑아낸 선제골을 잘 지켜냈다. 그리고 전광판의 시계가 완전히 멈췄을 때까지도 바이에른은 1-0으로 앞서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코너킥에서 맨유 팬들에게 기적이 열렸다. 추가 시간에 돌입하자마자 얻어낸 코너킥 상황. 맨유는 슈마이켈 골키퍼까지 상대팀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투입시킨다. 그리고 베컴의 발을 떠난 공은 혼전 끝에 교체멤버 테디 세링엄의 오른발에 맞고 골문 안쪽으로 들어간다. 1-1 동점!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바이에른 선수들이 황망한 마음으로 킥오프를 통해 경기를 재개한 순간, 베컴이 다시 차 올린 공은 이번엔 세링엄을 거쳐 또다른 교체 멤버 솔샤르의 발 앞에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골. 2-1 역전! 추가 시간 3분에 이뤄진 이 놀라운 역전극은, 그것이 유럽 챔피언을 결정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지금도 많은 축구팬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6. 기적의 승부 | 1950년 브라질 월드컵, 미국 대표팀
축구와는 거리가 멀던 미국이 축구 종가를 자처하던 잉글랜드를 1-0으로 꺾었다. 지금이라면 이게 무슨 뉴스라도 되겠거니 싶지만, 64년 전에는 얘기가 달랐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세계 최강 중 하나로 여겨지던 이 대회가 첫 월드컵 출전이었기에 기대가 컸지만 미국은 대회 직전 열린 7경기에서 2득점 45실점의 처참한 성적으로 전패를 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 경기를 승리로 이끈 미국 대표팀의 이야기는 이후 '그들 생애 최고의 경기(The Game of Their Lives)'라는 책으로 출간될 정도로 큰 관심을 얻었고, 2005년에는 헐리웃에서 동명의 영화(제라드 버틀러 주연)로 제작되기도 했다. 영미권에서 이 날의 시합은 지금도 'Miracle Match(기적의 승부)'로 회자된다.
#7. 이스탄불의 기적 | 2005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리버풀-밀란.
아마도 지금 세대들에게는 가장 극적인 승부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전반전을 0-3으로 뒤진 채 끝냈던 리버풀이, 후반전에만 3골을 뽑아내며 3-3 동점을 만들었고 그 뒤 승부차기에서 우승을 거머쥔 기적적인 승부. 당시 리버풀의 상대 AC밀란은 막강한 전력을 과시했다. 셰브첸코와 크레스포의 투톱, 카카-셰도르프-가투소-피를로가 전성기를 누리던 다이아몬드 미드필드진, 그리고 말디니-네스타-스탐-카푸로 이어지는 철의 포백까지. 반면에 리버풀은 유럽 정상에 도전할 전력은 아니었다는게 당시 평가였다. 자국 리그에서도 5위에 그쳤던 리버풀이 우승을 노리려면 실력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던 경기인 셈이다. 출발은 예상대로였다. 전반전을 내내 지배한 AC밀란은 말디니가 1골, 크레스포가 2골을 집어넣으며 3-0까지 달아났다. 분위기만 놓고 보면 세 골 이상 차이가 났다하더라도 이상할게 없을 정도로 밀란이 우세한 경기였다. 하지만 하프타임 15분이 모든걸 바꿔놓았다. 리버풀의 베니테즈 감독은 라이트백 피넌을 빼고 중앙 미드필더 하만을 투입하면서 4-4-1-1에서 3-5-2로 포맷을 바꿨다. 중원 싸움에서 밀린 것을 만회하고 공격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변화였는데 이것은 그대로 적중했다. (경기 후 증언에 따르면) 하프타임에 라커룸에서 이미 우승을 확신했던 밀란 선수들은 리버풀의 끈기있는 공격에 당황했고 결국 연속골이 터진다. 리버풀은 후반 9분 제라드의 골을 시작으로 11분 스미체르, 15분 알론소가 연속골을 넣으며 순식간에 3-3 동점을 만든다. 이후 연장전을 거친 승부는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리버풀은 이른바 '스파게티 댄스'를 추며 선방한 예지 두덱 골키퍼의 선방을 앞세워 우승컵을 거머쥐게 된다. 정신력과 전술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스탄불의 기적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원래 6까지 했다가 리플에 이스탄불의 기적이 많이 달려서 서 위원님이 이스탄불도 넣으심.
아래는 덧붙이며 쓴 댓글.
안녕하십니까, 글을 쓴 서형욱입니다. 독자 여러분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여, 기존의 BEST6를 BEST7로 바꾸고 이스탄불의 기적을 추가하였습니다. 모든 조언과 의견 감사드립니다. 축구에서 '기적'이라 부를만한 승부들은 이 외에도 부지기수일 겁니다. 각자가 느끼는 기적과 감동의 정도도 다를 것이고요. 다만, 오늘 이 글을 통해 말씀드리려는 것은 어떤 축구 경기가 더 기적에 가까운지를 따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작은 이야기를 되뇌이는 것이, 지금 여기 우리들에게 그보다 훨씬 더 큰 기적을 불러내주기를, 간절히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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