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못 지킨 약속
행촌수필문학회 정석곤
2월 8일 오후, L교장과 같이 장례문화원 유현상 교육장님의 빈소 영정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놓았다. 평상복 차림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며 머리 숙여 묵념을 했다.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에게 위로의 인사를 드렸다. 세 손주는 그저 좋아서 재롱을 부리며 놀고 있었다. 대학교 5년 후배이지만 세 살 뒤라 올해 집 나이로 일흔 살이다. 지금은 100세 시대가 넘는다고 하는데, 뭐가 그리 바빠서 서둘러 하늘나라에 먼저 갔을까? 가슴이 찡하며 답답했다.
교육장님과는 전북문인협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미리 전화나 문자로 약속을 하고나서 참석하곤 했다. 재작년 늦봄인가? 우리 한 번씩 더 만나게 교원문학회에 가입하라고 서너 번 권유했다. 자기도 이제야 회원이 됐다며 … 맘이 내키지 않아 두어 달 망설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가입을 했다. 누구보다 진실하신 분인데, 세 번인가 교원문학회 모임에 같이 참석하고서 ‘우리 한 번씩 더 만나자.’는 약속을 끝까지 못 지키고 훌쩍 하늘나라로 떠나다니 마음이 울컥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나와 만남은 깊었다. 30여 년 전 10일간 국어과 하계연수 때였다. 교육장님은 강사로 와 많은 자료를 나누어주며 열성적으로 강의를 해 첫인상이 믿음직스러웠다. 그 뒤로 2002년 여름방학 때 전라북도교원연수원에서 교감자격연수를 같이 받았다. 익산시내에서 근무하니까 가끔 만났고, 토요일 퇴근길에 점심도 몇 번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교육장님은 교감자격연수 성적이 우수하여 승진발령 서열이 앞섰다. 난 그 다음다음이라 희망 지역을 상의해서 임실군으로 내신했다. 그런데 두 자리뿐이라고 전라북도교육청의 연락이 와서 또 둘이 진안군으로 내신했다. 바람대로 다음해 3월 1일자 승진발령을 받았다. 나중에 교육장님의 이야길 듣고 맘이 아팠다. 교육장님이 가고 싶은 M학교를 내가 갔기 때문이다. 자격연수와 발령 동기라 자주 만나고 정보를 교환해 근무가 재미있었다. 그런데 여섯 달이 지나자 K교육지원청 전문직으로 영전을 한 게 아닌가? 한 쪽 날개가 부러진 것 같았으나 축하박수를 보냈다.
내가 임실군에 교장 승진 발령을 받았을 때 그 교육지원청에 근무했다. 만남을 도탑게 하다 익산시 관내 교장 승진발령으로 헤어졌다. 인격과 실력을 골고루 갖추어 학교경영이 탁월하였다. 많은 이에게 인정을 받으니까 교육감은 그 소문을 듣고 순창교육지원청 교육장으로 임명한 게다. 처가에 가다 교육장실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 지역특색을 살린 교육행정을 펼치고 있는 흔적이 역력해 뿌듯했다.
교육장님은 전라북도과학교육원 원장으로 정년퇴임하고는 자주 소식을 주었다. 내가 전북문인협회 회원이 되자 만나는 횟수도 늘어났다. 4년 전인가 목포로 문학기행을 가 해안도로를 걸으며 바닷가에서 기념사진도 남겼다. 작년 가을, 선유도에서 열린 전북새만금문학제도 참석했다. 차를 타는 것부터 그림자처럼 같이 했다. 선유도해수욕장을 걸었다. 둘이서 망주봉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마지막 추억이 될 줄이야 ….
지난 6월말, 전북문인협회 대동제 때도 만나기로 약속했다. 내가 30분 늦게 간 사이 교육장님은 일찍 가서 기다리다 먼저 와서 못 만난 게다. 그 때 만남이 이루어져야하는 데 정말 후회가 막심했다. 그 뒤로 쭉 전화나 문자 교신이 차단됐다. 하도 답답해 지인한테 교육장님의 소식을 물어보니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문병을 가 얼굴 좀 보려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었다. 그럴지라도 세 번째 수필집도 보내고, 문자로 가끔 내 맘을 전하곤 했다.
교육장님은 본디 명랑하고 겸손한데다 대학 선배라고 날 만날 때마다 깍듯이 대해주어 미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답신할 땐 꼭 "내가 좋아하는 정석곤 선생님“이라고 시작했다. 그 문자를 받으면 가슴이 뭉클해지며 교육장님을 더 가까이 하고 싶었다. 서로 속맘을 열어 놓고 교제의 끈을 이어갔다. 교육장님은 신실信實한교육자로서 성품이 둘째가라 하면 서운할 정도로 늘 미소 지으며 쾌활하고 겸손하신 분이었다. 게다가 일찍부터 어린 아이 맘을 소유한 아동문학가로서 어린이를 사랑하며 작품 활동에 정진했다.
존경하는 유현상 교육장님! 시인 나태주 시 〈바로 말해요〉가 생각납니다. 지금이라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말하렵니다.
“사랑한다고 말해요, 좋았다고 말해요, 보고 싶었다고 말해요.”
거기다 ‘정말’을 덧붙여서요. 교원문학회 행사 때는 교육장님과의 약속, ‘한 번 더 만나자.’를 되뇌면서 참석할게요.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어린이들이 꿈을 키우는 글을 많이 쓰는 천사가 되길 소원해요.
(2021.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