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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 한 명당 봉사단원 세 명이 달라붙어 몸 구석구석을 씻긴다. 어르신들이 속속 목욕탕 안으로 들어왔지만 봉사단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탓에 단 한명도 기다리지 않고 몸을 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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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6일 오전 8시, 천안시 외곽 허름한 집 앞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백발 성성한 할머니를 차에 태우는 과정에서다. 할머니는 약속시간이 채 되기 전부터 집 밖에 나와 있었던 듯 추위에 떨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성급히 달려가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아이고 어르신, 추운데 뭐 하러 밖에서 기다리세요. 저희가 어련히 모시고 나올 텐데요.”
2005년부터 독거노인 대상 두 달에 한 차례 봉사 활동 30여명 단원 자발적 참여 어르신 100여명 목욕 실시
목욕봉사 마무리는 점심공양 얼굴얼굴마다 환한 웃음꽃 “봉사단원 모두가 내가족”
일주일 한 번 도시락 만들어 집집마다 직접 찾아가 배달
안쓰러운 표정의 사람들과 달리 할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아서 이렇게 밖에서 기다렸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이 한 마디에 걱정하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어느새 웃음꽃이 번졌다. 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었지만 각자 얼굴에 가득한 미소가 훈훈한 온기 되어 주변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각원사 불교대학 봉사단이 목욕봉사를 실시하는 날. 천안지역 곳곳의 어르신 100여명은 이날 봉사단의 도움으로 몸은 물론 마음의 묵은 때까지 벗겨낼 수 있었다.
각원사 불교대학은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2003년부터 지역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했다. 각 기수별로 음식 만들기, 포장하기, 배달하기, 설거지 등 협업시스템을 통해 170인분의 도시락을 거뜬히 만들어냈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자비나눔이 지역사회에 알려지면서 각원사 불교대학 입학생도 덩달아 늘어났다.
그러던 중 봉사활동의 외연을 넓혀보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점점 커지는 각원사 불교대학의 규모를 고려해 도시락 배달과 연계한 봉사활동을 신설하자는 의견이었다. 집행부는 목욕봉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자원자를 모집했다. 참여도가 낮을 거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봉사단원 대부분이 목욕봉사에 지원했다. 도시락 배달을 통해 학생들 사이에서 보람과 유대감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였다.
이후 봉사단은 지금까지 두 달에 한 번씩 어르신들을 모시고 목욕탕으로 향해왔다. 2005년부터니 어느덧 10년째. 그 사이 어르신들의 주름살이 더욱 깊어졌고 그나마도 몇몇은 더 이상 참석할 수 없게 됐지만 봉사단원들의 열정과 정성은 10년이 지나도 한결같았다. 이날도 봉사단원 30여명은 새벽부터 천안시를 누비며 각자 자신이 맡은 집을 방문해 어르신들을 태우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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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어르신 집을 찾은 임건태 총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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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3명과 함께 도착한 임건태(60, 도봉) 각원사 불교대학총동문회장은 “단원들이 워낙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줘서 관리·감독이 필요하지 않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어 “다들 부모님 모시는 마음으로 봉사에 임하니 어르신들이 무척이나 좋아한다”며 “불교대학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겠다는 서원을 바탕으로 모두가 즐겁게 참여해온 결과 10년 동안 이어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황천순(59, 수경문) 봉사본부장도 “조실스님과 주지스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지역의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도시락 배달은 물론 목욕봉사까지 진행해올 수 있었다”며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어려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 어르신들에게는 큰 의미라는 것을 알기에 단원 모두가 열심히 봉사에 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서로를 대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묻는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그렇게 한동안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오전 9시가 되자 한두 명씩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봉사단원들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옷을 벗겨 옷장에 넣었으며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지지 않도록 정성스럽게 부축했다. 자리에 앉은 뒤에는 어르신 한 명당 봉사단원 세 명이 달라붙어 몸 구석구석을 씻겼다. 임 총동문회장의 말처럼 물을 뿌리고 비누칠 하고, 때를 벗기는 모든 동작이 일사불란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한편에서는 어르신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봉사단원들의 빠른 손놀림과 협동 덕분에 단 한 사람도 기다리는 시간 없이 몸을 씻을 수 있었다.
목욕이 끝나면 몸을 닦고 옷을 입히는 것까지 봉사단의 몫이다. 수증기 자욱한 목욕탕에서 한 시간 넘게 쉬지도 않고 일을 했던 탓에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정작 자신의 몸은 제대로 씻지도 못했지만 누구하나 불만스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신이 나는 듯 싱글벙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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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욕을 마친 어르신과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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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마치고 일행을 기다리던 최동국(75)씨는 “5년 전부터 도시락과 함께 목욕봉사를 받았다. 매번 집에 찾아와줄 때마다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며 “긴 시간을 함께 해온 덕에 이젠 가족같이 느껴지는데 만약 봉사단원들이 없었다면 몹시 적적했을 것”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김현경(79)씨도 “1주일에 한 번씩 맛깔스런 반찬과 꾹꾹 눌러 담은 밥만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도 선물 받는다”며 “이렇게 목욕탕에 오면 신발을 벗는 것부터 씻고 닦고 다시 옷을 입는 것까지 다 도와주니 너무나 고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관절통증으로 혼자서는 잘 움직이지 못한다는 정상준(86)씨는 “방광신경증이 심해 자주 화장실에 가야하지만 걷는 게 쉽지 않아 힘들다. 이로 인해 평소 마음이 울적할 때가 많다”며 “이렇게 한 번씩 목욕탕에 들르면 기분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사람들과 길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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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사단원과 어르신들이 모여 포즈를 취했다. 저마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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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가 될 무렵 하나 둘씩 목욕탕을 빠져나왔다. 어르신들은 봉사단이 미리 준비해온 내복과 양말을 입은 채였다. 외로움과 소외감 등 마음의 그늘까지 말끔히 씻어버린 얼굴 얼굴마다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봉사를 한다’는 마음도 ‘봉사를 받는다’는 마음도 사라지고 모두 하나의 마음이 되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도착했을 때보다 더욱 즐거운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던 봉사단원과 어르신들은 다시 차를 타고 인근의 음식점으로 이동했다. 목욕봉사는 언제나 점심공양으로 일정이 마무리된다. 오늘은 특별히 떡도 한가득 준비됐다.
봉사단 관계자는 “목욕봉사와 도시락 배달에 매번 적지 않은 금액이 들어간다”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10년 넘게 봉사활동을 펼쳐올 수 있었던 것은 동문들의 자체적인 모금 외에도 각원사의 금전적 지원 등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지 대원 스님은 “불교대학 동문들이 지역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부처님 자비를 실천하는 것을 앞으로도 적극 독려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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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욕봉사는 언제나 점심공양으로 일정이 마무리된다. |
1시간에 걸친 공양이 끝나고 봉사단은 다시 차에 탔다. 아침에 온 길을 거슬러 어르신들을 다시 집으로 모시기 위해서다. 헤어지는 얼굴에 아쉬움 가득했지만 1주일 후에는 다시 만나 정이 듬뿍 담긴 도시락을 주고받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두 달 뒤에는 저마다 마음의 묶은 때를 벗기며 결코 세상에서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각원사와 불교대학 봉사팀의 원력이 한겨울 강추위를 녹일 따뜻한 기운을 곳곳으로 퍼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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