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래붓꽃, 살어리랏다.
신상숙
날씨가 따듯해지면서 아침나절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농수로를 따라 걷다보면 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수로가 쩌렁쩌렁 얼음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봄소식을 알려올 때에는 신비롭기 그지없다. 눈을 꼭 감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긴 겨울을 버티던 수양버들 가지가 연둣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논두렁에서 실눈을 뜨고 이제나 저제나 봄소식을 기다리던 새싹들도 기지개를 켠다.
황금빛 햇살이 들판 가득 내려오는 날에는 하늘 거리는 옷차림에 예쁜 모자를 쓰고 들길을 걷는다. 꼭꼭 숨어있던 꾀꼬리가 인기척을 알아 듣고 고운 노래 부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오고, 조용하던 숲속은 새들의 사랑 놀이로 부산스럽다. 풀 향기 싱그러운 길가에는 겨울을 이겨낸 꽃들이 얼굴을 내밀며 앙증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다보면 운동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 수다.
꽃반지 만들어 새끼 손가락에 끼었던 반지꽃도 예쁜 모습 그대로이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애기 똥 풀은 여전히 예쁘다. 주전부리가 귀하던 시절에 즐겨먹던 삘기와 싱아, 밭일 마치고 돌아오시는 엄마 손에 들려져 있던 찔레도 가시덤불 속에서 쑥쑥 올라오고 있다. 예전에 무심히 지나쳤던 꽃들이 예뻐서 한두 포기씩 떠다가 텃밭 주변에 심어놓았다. 산이나 들에서 자라야 할 꽃들이 마당가에서도 잘 자랄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는데, 우리 집 환경이 자라던 곳과 비슷했는지 낯가림도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기울은 민통선 마을이라는 특성 때문에 비교적 많은 종류의 자생 꽃들이 자라고 있다. 그러나 이기울의 자연 환경이 외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산과 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들꽃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각처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온 마을이 술렁거리기도 한다. 하여, 우리 마을 사람들도 ‘들꽃 지킴이’ 가되었으면 오죽이나 좋을까 싶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우리 집 마당가에서 들꽃들이 자라고 있으니 우리 동네에서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어느 날 산을 오르다가 흙을 잔뜩 뒤집어 쓴 각시붓꽃을 만났다. 누군가가 붓꽃을 망가뜨린 것을 생각하고 속상해 하며 가까이 가보니,다행하게도 몇 가닥 남겨진 붓꽃에서 자연을 아끼는 그의 마음이 담겨있을 알았다. 들꽃을 캐면서 꼭 지켜야 할 일은 한 가닥이라도 남겨놓음으로써 멸종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흔한 꽃이라도 함부로 손을 대어서도 안 된다. 그런 줄 알고 있는 나 자신조차도 산책을 할 때는 예쁜 꽃을 찾아 길섶을 기웃 거린다.
산책길 논두렁에 청초하게 피어 있는 또 다른 붓꽃을 보게 되었다. 잎은 줄기처럼 생겼고, 꽃자루 끝에 달려 있는 꽃망울이 아주 작지도 않고 그렇다고 크지도 않은 것이 맵시가 좋은 새색시처럼 그랬다. 한 포기 떠다가 마당가에 심어놓고 들꽃사전을 찾아보았더니 타래붓꽃이다. 가느다란 잎 줄기가 실타래처럼 엉켜있다고 해서 타래붓꽃이라 부른다 하는데, 며칠 전부터 연보라 빛 꽃들이 수줍은 듯 얼굴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느 붓꽃보다 색깔도 연하고 꽃잎도 가느다란 것이 수줍은 자태에다 은은한 향기마저 있다.
지금쯤 논두렁에도 붓꽃이 만발해서 얼마나 아름다울까, 논두렁을 뒤덮은 붓꽃생각에 좀이 쑤시고 마음은 벌써 농수로를 달리는 게 아닌가. 꽃구경도 하고 여분이 있으면 한쪽을 떼어올까 해서, 이웃 집 박 여사와 함께 붓꽃이 자라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가도 붓꽃이 보이지 않을 때쯤, ‘아뿔싸!’ 사람들의 발길이 그곳을 거쳐 간 것을 알게 되었다. 지각 없는 이들의 손길을 피하지 못하고 이곳 저곳으로 찢겨나갔을 붓꽃을 생각하니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다. 한참을 더 걸어가서야 한 무더기만 남겨진 것을 만날 수 있었다. 언젠가 tv에서 본 강원도 동강 사람들의 ‘동강할미꽃’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이 떠 올랐다. 할미꽃을 떼어 가기위해서 바위까지 절단을 하는 몰지각한 행동을 막아보려고, 그들은 밤잠을 설쳐가며 할미꽃을 지키고 있다 하지 않던가.
타래붓꽃은 다른 붓꽃보다 한 달 가량 앞서 꽃망울이 터지고 ,키도 작달막한 것이 잎줄기 속에 숨어서 조심스레 얼굴을 내민다. 향기를 더해가며 피어나는 꽃 이파리가 수정처럼 맑아서 살짝만 건들려도 청아한 소리가 날 것 같다. 과연 그들이 용강리를 떠나 어느 부잣집 정원에서도 그 청초한 자태를 뽐낼 수 있을지 안쓰럽다. 눈에 띄는 대로 캐 가지만 말고 논두렁에서 아름다움을 꽃피울 때 꽃구경도 하시고 농부들이 땀 흘리며 농사짓는 모습도 구경하신다면, 우리 농산물의 소중함도 알게 될 터인데, 인간들의 욕심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다행하게도 마당가에서 풍성하게 퍼져나가는 그들이 있고, 논두렁에 뿌려놓은 씨앗들도 싹을 틔우고 있기에,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우리나라 들꽃은 씨앗으로도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뿌리 째 뽑지 않아도 된다. 타래 붓꽃도 씨앗을 땅에 뿌려놓고 삼년정도 기다리면 꽃구경이 가능하다. 이제 부터라도 들꽃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함부로 하던 행동을 자제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들에게 예쁜 봄꽃 선물을 아름 가득 넘치게 받을 것이다.
첫댓글 상숙샘 올만에 글 올리셨네요 반갑습니다
난초과죠?
평온하시고 평안하세요
햇살타고 마리아님
~.^
찬미예수님!
마리아님
봄 기지게 켜셨네요
자연 지킴이로 추대합니다.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