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국민참여재판 법률을 만들 때 당시 야당은 법관도 불신받는데 일반인이 재판하면 더욱 승복받지 못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여당은 피고인이 원해도 판사가 국민참여재판을 하지 않을 수 있고 배심원 의견을 따르지 않아도 되게 하자고 절충안을 냈다. 여야는 '시험적'으로 해보고 잘되면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국민이 참여하는 재판은 판사들에게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판사들은 피고인이 참여재판을 신청해도 하고 싶은 재판만 했다. 쟁점이나 증인이 많아 2~3일이 걸리는 사건은 참여재판을 하지 않고 하루에 끝낼 수 있는 사건만 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시민들이 잘 응하지 않아 배심원 선정이 어려웠고 배심원용 법정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반대로 적당한 사건이 있으면 판사가 적극적으로 참여재판으로 유도하고 언론에 홍보하기도 했다. 법원이 국민을 사법 절차에 참여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보니 국민참여재판 수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2008년 첫해 64건이었고, 2010년에는 162건, 작년에는 274건이었다. 작년 전체 1심 형사공판 사건이 7만8157건이었으니 참여재판은 극히 일부 사건이다. 참여재판 수가 너무 적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법원은 작년 7월부터 일부 범죄만 허용하던 국민참여재판 대상을 전체 형사사건으로 넓혔다.
그 과정에서 국민참여재판의 '두 얼굴'이 드러났다. 첫째는 '독립성'이다. 판사와 달리 배심원은 9명이 공동으로 책임을 분담하고 대개 '익명'이 보장되는 데다, 판사처럼 인사 부담도 없다. 최근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성범죄 사건에서 참여재판은 일반 형사사건보다 훨씬 높은 무죄율을 보였다. 2008~2011년 참여재판 성폭행 사건 무죄율은 일반 사건 8.6%보다 높은 14.2%나 됐다. 비난 여론이 비등해도 배심원들은 상관없이 피고인 말을 듣고 판단했다는 결과다. 감성적인 판단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어떤 판사는 언론 인터뷰에 "유·무죄를 소신껏 가리기 어려운 성범죄 사건은 차라리 국민참여재판으로 하고 싶다"고 솔직히 말했다.
둘째는 정반대의 모습인 '편향 가능성'이다. 최근 주진우·김어준 사건이나 안도현 시인 사건에서 배심원들이 무죄 평결을 해 논란을 빚었다. 참여재판 시작 때부터 우리나라는 정파와 지역으로 갈리는 성향이 강해 배심원들이 '오염'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많았는데 실제 그런 사건이 생긴 것이다. 명예훼손 사건에서 판사가 인터넷 게시글 같은 객관적 증거가 있는데도 정치적으로 휘말리기 싫어서 참여재판에 넘기는 문제도 드러났다. 안도현 시인 사건에서는 판사가 배심원 무죄 평결을 뒤집고 일부 무죄 판결해, 직업 법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부각시키기도 했다.
국민참여재판은 사법권력을 견제하는 목적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피고인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다. 미국 배심제처럼 '선량한 이웃'들에 의지해 재판받을 권리인 것이다. 그런데도 법원은 참여재판을 '보여주기식' '생색내기용'으로 운용해온 측면이 강하다. 문제점이 드러났는데도 언제까지나 '시험적'으로만 운용할 수는 없다. 현실 여건 때문에 무턱대고 확대할 수도 없다.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국민참여재판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할지에 대한 철학과 방향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