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03일 (일)
제목 : 동행하시는 예수님
오늘의 말씀 : 누가복음 24:13-27 찬송가: 161장(구 159장)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중심 단어: 이야기, 예수, 속량
주제별 목록 작성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13절: 고향으로 돌아감
16절: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함
24절: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함
27절: 예수님의 설명을 들음
도움말
1. 이십오 리(13절): 약 11km다.
2. 엠마오(13절): ‘온천’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북쪽 11km 지점의 ‘엘 쿠베이베’로 추정된다.
3. 속량(21절): 돈이나 물건 등 몸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석방시킨다는 뜻이다. 영적으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신 주님의 구원 사역을 말한다.
말씀묵상
동행하시는 예수님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자신들의 고향인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13절). 자신들이 따르던 예수님의 죽음으로 그들의 마음속에는 절망감과 허무함이 가득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약의 말씀을 제시하십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동안 예수님은 그리스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후 부활하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26절). 이렇듯 말씀은 영적인 눈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추수감사주일 겸 새생명축제의 날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지 알고 그 사랑에 감사하는 날로 정했다. 하지만 언제나 이 표현력이 부족해서 주님과 성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좀 더 감성적이고, 섬세하고, 예술적이고, 감동을 줄 수 있는 마음의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을까?
주님과의 관계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날마다. 달마나, 해마다 새로움을 입으면서 깊어질 수는 없을까?
오늘 새생명축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 되는 축제의 예배가 되길 소망해 본다.
주님은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연단과 고난’이라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롬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믿지 못했을까?
‘눅18: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제자들은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말씀보다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라는 말씀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했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책망을 들었던 것이다.
부활은 죽어야 부활의 영광이 있는 것인데 고난, 연단, 죽음이 두렵고 그 과정속에 부활의 소망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의 대화 주제는 예수님에게 일어난 것이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과 동행하셨지만, 눈이 가리어져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
참 재미있는 장면이 아닌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열한 제자들을 찾아가셨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예수님은 무덤에 찾아왔던 막달라 마리아를 제일 먼저 만나주셨고, 다음에는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고 낙심한 채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과 동행하신다.
‘그들과 동행하시나’ 오늘 ‘동행’이란 단어가 왜 이렇게 사모가 되는 것일까?
제자들이 눈이 가리어지게 된 것은 여전히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구원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예수님이 이미 제자들에게 부활하실 것을 수차례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여전히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눈이 가리어져 동행하고 계신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시고 그리고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예수님에 관해 쓴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심으로 부활의 산 소망을 주신다.
도마에게 말씀하시듯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야 이놈들아 아직도 믿지 못하느냐? 내가 바로 부활한 예수다!’라고 책망하시지 않으셨다.
빠져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과 동행하시며 성경을 통해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신다.
왜 우리는 이 과정을 놓치는 것일까?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마치 주님은 ‘표현력이 좀 부족해도 괜찮다! 모든 성경 말씀이 나의 이야기고 이렇게 내가 살아서 너와 동행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오늘 복음을 전할 때 듣는 모든 분들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속 마음이 뜨거워져 예수님을 영접하길 소망해 본다. 주님이 계획하신대로 새생명이 탄생하므로 천국잔치가 벌어지길 소망해 본다.
사랑의 주님. 오늘도 말씀을 통해 만나주시고 동행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더 깊어지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추수감사주일이자 새생명축제일에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하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세상을 살다가 절망에 빠진 영혼, 믿음을 가지고 살다가 좌절한 영혼들을 찾아와 주셔서 만나주시고 동행하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좌절과 절망속에 빠져있지 않게 하옵시고,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며 환난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연단이 소망을 이루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말씀 속에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을 깨달아 믿게 하심으로 주님과 다시 동행하는 들꽃가족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날마다 감사하며 더 깊어지는 관계가 되게 하옵소서.
보내주시는 모는 영혼들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새생명축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