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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후(이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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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하세요 스크랩 동물 세계의 신세계
토이 추천 0 조회 25 10.03.03 05:2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 유글레나는 박쥐
    동물이면서 식물인 유글레나 이야기
      제1장 유글레나는 박쥐
    생명의 탄생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낳은 어머니는 아름다운 초록별 지구이다.
  지구의 나이는 약 46억 살 정도 된다. 지금으로부터 46억년 전 처음 탄생했을 때, 지구는 상당히 뜨거운 별이었다.
  지구는 태어나자마자 자전을 했다. 그러자 철이나 니켈처럼 무거운 금속은 점차 가운데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바깥쪽으로는 더 가벼운 것이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뜨겁던 지구가 천천히 식어갔다. 그러자 공기 중에 들어 있던 수증기가 물방울로 맺히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물방울이 맺히면서 지구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다. 몇 백 년 동안 계속 비가 내렸던 것이다.
  지구에 내린 비는 땅의 표면에서 서서히 바다를 이루었다. 이 바다가 지구의 거의 모든 부분을 덮었다.
  태고의 바다에는 수많은 섬이 떠 있었다. 그 바다의 어느 한쪽에서는 온천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지축을 울리는 소리를 내며 화산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그 화산에서는 벌겋게 달아오른 용암이 용솟음치며 밖으로 흘러내렸다. 바닷물 위로 폭퐁이 일고 하늘에서는 천둥 번개가 매질을 하고...
  이 요란한 무대에서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탄생이었다.
  생명이 탄생한 것은 지구가 탄생하고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지구가 탄생한 지 10억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생명이 탄생했다. 지구는 생명을 낳기 위해 10억 년에 걸쳐 준비를 했던 것이다.
  최초의 생명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우리가 만일 최초의 생명을 본다면 그것을 가리켜 쉽게 생명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한참 동안 그것을 들여다보고 고민을 한 뒤에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맞아, 생명이야!"
  최초의 생명을 생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그것은 자기와 똑같이 닮은 새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생식을 하기에 생명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렵사리 태어난 생명은 조금씩 복잡한 모양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작은 생명의 단위가 형성되었다. 이 생명의 단위는 수십억 년이 흐른뒤에야 비로소 ‘세포’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었다.
  생명체는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해 갔다. 동그란 모양을 가진 것도 있었고, 길쭉한 모양을 가진 것도 있었다. 그리고 각이 진 모양을 가진 것도 있었고 용수철처럼 비비 꼬인 모양을 가진 것도 있었다.
  어떤 생명체는 하나의 세포만으로도 만족해서 살아갔지만 또 다른 어떤 생명체는 하난의 세포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세포 몇 개가 함께 모여 살면 더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된 세포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여러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생물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어떤 생물은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 햇빛을 이용해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생물을 식물이라고 부른다.
  식물이 갖고 있는 영양분을 만드는 능력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었다. 만일 식물이 없었다면 지구상의 생물은 지금처럼 번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식물과 반대로 동물은 식물이나 다른 동물을 잡아먹어야만 살 수 있다. 이렇게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동물은 언제나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동물은 행동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차차 운동 기관과 감각 기관이 발달되었다.
  운동 기관이란 말 그대로 움직여 다니는 데 사용되는 기관을 말한다. 운동 기관에는 다리와 발, 손, 몸통에 있는 근육이나 새들의 날개 근육, 그리고 볼복스나 야광층의 편모, 짚신벌레나 나팔벌레의 섬모, 아메바의 위족 등이 모두 포함된다.
  감각 기관이란 어떤 자극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기관이다. 우리 사람의 몸에만 해도 많은 감각 기관이 있다. 빛을 느끼는 눈, 소리를 듣는 귀, 냄새를 맡는 코, 맛을 느끼는 혀, 차고 뜨겁고 아픈 감각을 느끼는 피부 등이 모두 감각 기관이다.
  생물이 차츰 어떤 특별한 방향을 발전해 가는 것을 진화라고 한다.
  동물은 감각 기관과 운동 기관을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한편, 식물은 햇빛을 받아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어 살아가기 때문에 감각 기관과 운동 기관을 발달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저 햇빛만 충분히 비추어 주고, 물과 이산화탄소라는 기체만 있으면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그래서 식물은 땅바닥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진화를 해 왔다. 식물의 얇은 잎은 햇빛을 받아들이기에 가장 좋게 발달했으며 뿌리는 물을 빨아들이기에 가장 좋게 발달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정도 이상으로 발달한 생물은 모두 식물과 동물의 어느 한 쪽에 속하는 것으로 나누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생물이 하나 발견되었다.
  식물과 동물의 어느 쪽으로도 볼 수 없는 생물이 발견된 것이다. 그 생물의 이름은 유글레나이다.

    동물과 식물의 특징을 모두 가진 유글레나
  유글레나는 세포 하나로 이루어진 생물이다. 따라서 아주 작아 맨눈으로는 볼 수가 없고 현미경을 사용해야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유글레나를 동물이다, 혹은 식물이라고 딱잘라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제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하자.
  우선 유글레나는 동물의 특징을 갖고 있다. 활발히 움직여 다닌다는 것이다. 유글레나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편모라는 작은 꼬리 때문이다. 유글레나는 편모라는 작은 꼬리를 움직이면서 이리저리 마음대로 쏘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글레나의 몸에는 빛을 느끼는 감각기관까지 갖추어져 있다. 즉, 안점이라고 하는 눈이 있다.
  그런데 유글레나에게는 분명 식물이라고 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녹색 식물처럼 엽록체를 갖고 있어서 영양분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글레나는 다른 생물을 잡아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가 있다.
  유글레나는 자손을 낳는 방법도 독특하다. 마치 곰팡이처럼 포자를 만들어 포자가 발아해서 자손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글레나는 동물과 식물의 어느 쪽으로 분류되는 것일까?
  동물이라고 보면 영낙없는 식물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고, 식물이라고 보면 영낙없는 동물의 특징을 갖고 있어서, 딱 부러지게 무어라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유글레나는 햇빛을 받아 그 에너지로 영양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는 식물의 편모조류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편모를 사용해서 물 속을 헤엄쳐 다닌다는 점에서는 원생동물의 편모충류에 속한다.
  그래서 현재 우리는 유글레나를 편의상 원생동물 식물성 편모충류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식물로 볼 때에는 편모조류에 속하는 것으로 본다.
  여러분 중에는 여기까지 읽어오면서 이솝 우화에 나오는 박쥐 이야기가 떠오른 친구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동물과 식물 양쪽 모두에 속하는 이상한 생물이 생겨난 것일까?
  여러분도 알다시피 아주 오랜 옛날 지구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 뒤로 생명체가 출현하였다. 그런데 현재의 동물과 식물 같은 생명체가 출현하기 이전부터 이미 생물은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동물과 식물 이전의 생명체네서 동물과 식물이 갈라져 나왔다. 다시 말해 동물과 식물은 같은 줄기에서 갈라져 나왔던 것이다.
  딱 부러지게 동물이라거나 식물이라고도 할 수 없고, 그러면서도 동물이라거나 식물이라고 할 수 있는 유글레나는 그렇게 동물과 식물의 두 가지가 갈라져 나오는 갈림길에서 진화를 멈춰 버린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니 완전한 동물도, 또 완전한 식물도 아닌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2. 아빠물고기의 자식사랑
    보다 많은 자식을 남기기위한 물고기들의 지혜

      제2장 아빠 물고기의 자식 사랑
    아리스토텔레스의 발견
  여러분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에서 322년에 걸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이다. 그러니까 그는 지금으로부터 약 2300여 년 전에 살던 사람이다.
  철학자로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동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동물에 대해 연구할 때에는 그 동물의 겉모양뿐만 아니라 내부의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연구해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우선 고래를 예로 들어 보자.
  여러분은 고래가 상어와 말 중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되는가?
  “당연히 상어와 가깝지요.”
  대부분이 언뜻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당시 생물학자들도 물에서 살고, 모양도 물고기처럼 생긴 고래를 당연히 물고기로 생각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생김새를 보나, 사는 곳을 보나, 고래는 분명히 물고기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래가 물을 뿜어내는 것을 보고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고기 중에는 고래처럼 물을 뿜어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궁금증을 느낀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부들이 잡아올린 고래를 보러 갔다. 어부들은 커다란 고래를 잡아 신이 나서 고래의 배를 가르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래의 뱃속에는 아가미 대신 허파처럼 생긴 것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물을 뿜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더욱 놀라운 것을 보았다. 암고래의 뱃속에는 물고기처럼 알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끼가 들어 있었다. 고래는물고기처럼 알을 낳는 동물이 아니라 새끼를 낳는 동물이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흥미를 느끼고 고래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라 소나 말 같은 포유류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고래가 물고기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겉보기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모든 물고기는 알을 낳는다. 그러나 고래는 소나 말처럼 새끼를 낳는다. 그리고 새끼 고래는 어미 고래의 젖을 먹고 자라난다. 따라서 고래는 포유 동물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래 말고도 다른 많은 동식물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다. 그래서 그는 ‘생물학적 시조’라고 불리고 있다.
  어느 날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어부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학자님, 메기는 참 이상합니다. 수컷이 알을 지키거든요.”
  아리스토텔레스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수컷이 알을 지키다니.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랬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어미가 새끼를 키우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부의 말을 금방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물고기에 대해서라면 어부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알을 지키는 메기를 관찰하기로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메기가 알을 지키는 곳을 찾아냈다. 메기 한 마리가 알을 지키고 있었다. 알을 지키는 메기는 알이 작은 새끼로 깨어날 때까지 잠시도 자리를 뜨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알을 보살피는 메기를 잡아 조사를 해 보았다. 겉모습만으로는 그것이 암놈인지 수놈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부를 해 보았다. 놀랍게도 그 메기는 어부의 이야기처럼 수놈이었다. 아빠 메기가 놀라운 부성애를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메기는 놀랍게도 수컷이 알을 지킨다.”
  그러나 사람들은 수컷 메기가 알을 지킨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쉽게 믿으려 들지 않았다.

    포유류와 조류의 새끼 돌보기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겠다. 다음 네 가지 대답 중에서 하나의 정답을 골라 보도록 하자.
  물고기 중에는 수컷이 혼자 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1)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렸다. 수컷 물고기는 절대로 알을 지키지 않는다.
  2) 수컷 물고기가 암컷과 함께 알을 지키는 경우는 있지만, 수컷 혼자서 알을 지키는 경우는 없다.
  3) 물고기는 수컷이 혼자 알을 지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런 물고기는 아주 희귀해서 전세계적으로 50여 종에 불과하다
  4) 물고기는 수컷이 알을 지키는 것이 더 많다.
  여러분 중에는 2)번이나 3)번을 정답으로 꼽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특히 3)번을 정답으로 꼽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정답은 대개 문장이 길더라, 하는 생각에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2)번이나 3)번이 제일 그럴듯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답은 4)번이다. 답이 틀렸다고 해도 너무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관찰한 메기 말고도 물고기 중에는 수컷이 알을 지키는 것이 아주 많다고 한다. 수컷 혼자서 알을 지키는 것도 많고, 암컷과 수컷이 함께 알을 지키는 것도 많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부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람들이 대부분 새끼를 키우는 것은 어미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눈에 흔히 띄는 동물은 대부분 어미가 새끼를 낳고 키우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가 보통 동물, 하면 포유류에 속하는 동물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포유류는 말 그대로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우는 동물의 무리를 뜻한다. 그런데 새끼를 낳는 것도 젖을 내는 것도 모두 암컷이 하는 일이다.
  사람도 동물의 분류에서는 포유류에 속한다. 그리고 사람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은 어머니의 책임이라는 고정된 관념을 갖고 살아왔다. 그러니 물고기의 수컷이 알을 보살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개나 고양이, 말, 토끼, 돼지, 소, 쥐처럼 우리 눈에 흔히 보이는 포유류의 동물에게 있어서 암컷과 수컷이 짝짓기를 한 뒤에 새끼를 키우는 것은 대부분 암컷의 일이다.
  새끼를 한참동안 자궁 속에 품고 있는 일, 그리고 고통을 견디면서 새끼를 낳는 일, 또 갓 태어난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일은 모두 암컷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일들은 몸의 구조로 보았을 때, 수컷으로서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을 비롯하여 아주 적은 수의 포유류만이 수컷도 암컷을 도와 새끼 키우는 일에 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암컷 혼자 도맡아서 새끼를 키우는 것이다.
  여러분은 물론 자식을 키우는 일은 어머니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여러분은 사람이고 또한 새로운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을 키우는 일은 당연히 부모가 함께 협력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자식을 키우는 일은 부모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가장 잘 지키는 동물은 새들이다.
  새는 대부분 수컷 한 마리와 암컷 한 마리가 짝을 지어 살고 있다. 마치 사람처럼 일부 일처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종류가 새끼를 낳으면 서로 협력해서 기른다. 우리는 큰 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을 보면 으레 그 큰 새는 어미새려니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큰 새는 어미새일 수도 있고, 이런 말은 잘 쓰이지 않지만 아비새일 수도 있다. 많은 새는 암컷뿐만 아니라 수컷도 알에서 깬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포유류와 조류의 이런 차이점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즉, 포유류는 어미 혼자 새끼를 키우는 것이 대부분인데, 조류는 암컷과 수컷이 함께 새끼를 키우는 것이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포유류와 조류는 새끼를 키우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포유류는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기 때문에 젖이 나지 않는 수컷은 새끼를 기를 수가 없다.
  이와 반대로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작은 벌레나 열매 등을 먹고 자란다. 이렇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일은 젖을 먹이는 일과는 달리 수컷도 암컷과 똑같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암컷이나 수컷 중 어느 한 쪽에서 먹이를 물어 오는 것보다 암컷과 수컷이 함께 먹이를 물어 나르는 쪽이 훨씬 좋다는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야만 더 많은 먹이를 물어다 줄 수 있고, 더 많은 새끼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자손을 많이 남기는 방향으로 발달해 왔다. 많은 후손을 남길 수 있도록 진화해 온 것이다.
  그리고 조류는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우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물어다 키우기 때문에 암컷과 수컷이 협력해서 새끼를 키우는 쪽으로 진화해 왔을 것이다.
  물고기 중에는 수컷 혼자서 알을 지키는 것이 많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물고기는 포유류처럼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우지 않고, 새처럼 알을 낳는다. 그렇다면 암컷과 수컷이 함께 알을 지키는 것이 많을까?
  앞으로 그 이유를 차근차근 짚어 보기로 하자. 물고기가 수컷 혼자 알을 지키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한 가지를 확인하기로 하자. 물고기는 수컷 혼자 알을 지키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가 사실인가 아닌가 하는 것부터 알아보기로 하자는 것이다.
  물고기의 세계에서는 새끼 키우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물고기 가족이 사는 모습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물고기의 종류
  다시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전세계적으로 물고기는 몇 종이나 있을까?
  1) 2천 5백 종 정도
  2) 5천 종 정도
  3) 2만 종 정도
  4) 1억 종 정도

  정답은 3)번이다. 지구상에는 2만 종 이상의 물고기가 살아가고 있다.
  동물은 전체적으로 등뼈가 있는 척추동물과 등뼈가 없는 무척추동물로 나뉜다.
  물고기는 등뼈가 있는 척추동물이다. 여러분도 고등어나 갈치, 명태에는 오징어와 달리 등뼈가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물고기는 이 척추를 사용해서 물 속을 마음대로 헤엄쳐 다니며 번성해 왔다.
  물고기는 크게 세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원구류와 연골 어류, 경골 어류의 세가지로 나뉘는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원시적인 것이 원구류라고 불리는 물고기이다. 이 원구류는 물고기이기는 하지만 어류라고 보지 않고 따로 분류해 놓는다. 그 이유는 원구류가 연골 어류나 경골 어류같은 보통의 물고기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원구류에는 칠성장어, 먹장어 등이 포함되는데, 모두 70종 이상이 알려져 있다. 원구류의 몸을 보면 뱀자어와 아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어 뱀장어로 착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뱀장어와 원구류는 전혀 다른 종류이다. 뱀장어는 경골어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원구류의 가장 큰 특징은 우선 턱이 없다는 것이다. 단단한 턱은 없고 주둥이만 있다. 따라서 턱이 없다는 뜻으로 무악류라고 불리기도 한다.
  원구류는 턱이 없는 대신 날카로운 이가 나 있다. 그리고 뼈대는 물렁뼈이다. 원구류의 또다른 특징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척색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척색은 몸을 버텨 주는 원시적인 기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구류는 대개 바다에 살고 있다. 그리고 다른 물고기에 붙어 피를 빨아먹고 산다. 원구류는 물고기의 드라큐라인 것이다.
  연골 어류는 상어, 가오리, 홍어, 은상어 등 1500여 종이 있다. 이 연골 어류의 특징은 척추가 부드러운 물렁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홍어나 가오리를 먹을 때에는 뼈까지 씹어 먹었을 것이다. 홍어나 가오리의 뼈는 부드러서 먹기가 쉽다. 연골 어류이기 때문이다. 연골 어류의 또 다른 특징은 부레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경골 어류는 종류가 아주 많아 2만 종 이상이나 된다.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물고기의 대부분은 경골 어류인셈이다.
  경골 어류는 물고기 중에서 가장 발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원구류와 연골 어류, 경골 어류의 세가지 물고기가 새끼를 낳아 키우는 방법을 알아보기로 하자.
    물고기의 새끼 돌보기
  원구류는 대부분 체외 수정을 해서 물 속의 믿바닥에 알을 낳는다. 그리고는 알이나 새끼를 돌보지 않는다. 새끼에 대해서도 가장 원시적인 물고기다운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알이나 새끼를 돌보지 않게 되면 많은 알과 새끼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없다.
  연골 어류는 이와 달리 모두 짝짓기를 해서 새끼를 낳는다. 다시 말해 체내 수정(암컷의 몸 속에서 알과 정자가 만나 수정되는 것)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연골 어류 중에는 수정을 한 뒤에 알을 새처럼 단단한 껍질로 싸서 낳는 것도 있고, 포유류처럼 몸 속에서 알을 키워 새끼 물고기를 낳는 것도 있다.
  수정을 한 다음에 알을 낳으면 난생이라 하고, 새끼 물고기를 낳으면 난태생이라고 한다. 상어에는 난생을 하는 것도 있고 난태생을 하는 것도 있다. 가오리나 홍어는 난생을 한다.
  연골 어류는 난생을 하든, 난태생을 하든 수정 후 어느 정도 이상 동안은 알이나 새끼를 몸 속에 품고 보호하면서 움직여 다닌다. 체내 수정을 하므로 몸 속에 넣고 운반하는 식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몸 속에 알이나 새끼를 넣고 다니면서 보호하는 일을 담당하는 것은 몸의 구조상 당연히 암컷이다. 연골 어류의 암컷은 수정된 알을 몸 속에서 보호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연골 어류가 알이나 새끼를 낳은 뒤에 그 새끼를 계속 보호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치 않다.
  경골 어류는 극히 적은 수만이 체내 수정을 한다.
  경골 어류는 약 5%가 짝짓기를 해서 체내 수정을 하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체내 수정을 하는 경골 어류는 연골 어류와 마찬가지로 암컷이 수정된 알을 품고 다니면서 보호한다.
  나머지 95%는 체외 수정을 한다. 체외 수정을 하는 경골 어류 중에는 알 위에 정자를 뿌려 수정란을 만들고는 그것을 보호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러나 체외 수정을 한 다음에도 그 수정한을 보호하는 것이 더 많다.
  체외 수정을 한 다음에 이루어지는 보호 방법은 몸 밖에 달고 다니면서 보호하는 체외 운반형과 수정란이 있는 장소를 지키는 망보기형의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몸 밖에 수정란을 달고 다니는 체외 운반형 보호를 하는 물고기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해마의 수컷이다.
  여러분도 해마를 직접 보지는 못했더라도 사진이나 그림으로는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해마의 모습은 아주 독특하다. 모양만으로는 해마가 물고기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해마는 분명 경골 어류이다. 경골 어류 중에서도 실고기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이다.
  해마의 몸 길이는 8센티미터 정도이다. 그리고 온몸은 딱딱한 비늘로 덮여 있다. 해마의 이름을 한자로 풀어보면 바다 해자에 말 마자이다. 그러니 바다에 사는 말이라는 뜻이 된다.
  해마에게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은 해마의 머리가 말 머리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해마의 머리는 몸과 직각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해마는 물 속에서 어떻게 헤엄쳐 다닐까? 다른 물고기처럼 몸을 숙이고 다닐까? 꼬리 지느러미가 없고 가는 꼬리가 돌돌 말려 있는 것을 보면, 다른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닐 것 같지는 않다. 사실 해마는 몸을 곧추세운 채로 물 속을 헤엄쳐 다닌다.
  해마는 종종 수컷이 새끼를 낳는 이상한 동물로 오해되곤 한다. 그것은 해마의 수컷이 몸에 아주 특별한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의 수컷은 배의 바깥쪽에 육아낭이라는 것을 갖고 있다. 육아낭, 즉 새끼를 키우는 주머니라는 것이다.
  육아낭이란 어미 캥거루의 배 바깥쪽에 붙어 있는 주머니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도 어미 캥거루가 육아낭 속에 새끼를 품고 다니는 것을 그림이나 사진을 통해 많이 모았을 것이다. 수컷 해마는 마치 어미 캥거루처럼 새끼를 키우는 주머니를 배에 달고 있다.
  해마의 암컷은 알을 물 속에 그냥 떨구는 것이 아니라 수컷의 육아낭 속에 낳는다. 그러면 수컷은 알을 보호하다가 깨나도록 한다.
  아빠 해마의 배 주머니 속에서 새끼들이 꼬물꼬물 기어나오는 모습을 눈앞에 그려 보라.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수컷이 새끼를 낳다니!’하고 놀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해마는 수컷이 알을 낳는 이상한 동물로 자주 오해되는 것이다. 하지만 해마의 경우도 알을 낳는 것은 분명히 암컷이다. 수컷 해마가 하는 일은 몸의 겉에 달린 주머니에 암컷이 낳은 알을 품고 보호하는 것뿐이다.
  체외 운반형 보호를 하는 물고기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해마이다. 이와 달리 수정란을 입에 넣거나 몸 옆에 달고 다니면서 보호하는 것도 있다.
  망보기형 보호는 운반형 보호와는 다르다.
  망보기형 보호는 알을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장소에서 아릉 지키는 것이다.
  망보기형 보호를 하는 물고기는 바위나 바닷말, 혹은 스스로 만든 보금자리 등에 알을 낳고 수정을 한다. 그리고는 수컷이나 암컷이 그 수정한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는 것이다.
  이 때 수정한의 아빠나 엄마는 자기 자식의 주위를 깨끗하게 닦아 주기도 하고, 신선한 물을 보내 주기도 한다. 또 다른 물고기들이 자기 자식을 잡아먹으려고 다가오면 쫓아보내기도 한다.
  지금까지 경골 어류 중에서 약 4분의 1정도가 어떤 방법으로든 새끼를 보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끼를 보호하는 방법은 약 5분의 1이 체내 운반형 보호를 하고 있고, 체외 운반형 보호를 하는 것도 5분의 1정도이다. 그리고 나머지 5분의 3은 망보기형의 보호를 하고 있다. 즉, 절반 이상이 망보기형 보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암컷과 수컷 중 어느 쪽에서 수정한을 보호하는 일을 맡고 있는가를 각각 알아보기로 하자.
  체내 운반형에서는 암컷만이 수정란을 보호할 수 있다.
  체외 운반형에서는 암컷 혼자 수정란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10분의 4가 조금 못 된다. 그리고 암컷과 수컷이 함께 힘을 모아 수정란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10분의 1이 조금 못 된다. 나머지 절반 이상이 해마처럼 수컷 혼자 수정란을 달고 다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망보기형의 경우는 어떨까?
  망보기형에서는 암컷 혼자 수정란을 돌보는 것이 10분의 1을 조금 넘는다. 그리고 암컷과 수컷이 함께 수정란을 돌보는 것은 10분의 2가 조금 넘는다. 나머지 10분의 6이상이 수컷이 혼자 수정란을 돌보는 것이다. 이렇게 망보기형 보호에서는 수컷 혼자 수정란을 돌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면 이번에는 체내 운반형과 체외 운반형, 망보기형의 세 가지 보호 방법을 모두 합쳤을 때에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새끼를 보호하는 경골 어류 전체에서, 암컷 혼자 수정란을 보호하는 경우는 10분의 3이 조금 넘는다. 그리고 암컷과 수컷이 함께 새끼를 보호하는 경우는 10분의 2가 조금 못 된다. 따라서 수컷 혼자 새끼를 돌보는 경우가 나머지 10분의 5, 즉 절반 정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수컷 혼자 수정란을 돌보는 경우가 다른 경우보다 훨씬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경골 어류는 암컷보다는 수컷이 수정란을 많이 돌보고 있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물고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경골 어류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물고기의 경우에는 수컷이 새끼를 돌보는 것이 많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컷이 새끼를 돌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물고기 중에서도 경골 어류, 경골 어류 중에서도 체외 수정을 하는 물고기이다. 그리고 체외 수정을 하는 것 중에서도 망보기형 보호를 하는 물고기가 가장 많다.
  이제부터는 물고기의 수컷이 새끼를 돌보는 경우가 많은 이유를 차근차근 짚어 나가 볼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새끼를 돌보는 수컷이 많은 쪽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체외 수정을 하는 물고기 중에서도 망보기형 보호를 하는 물고기를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 할 것이다.
  망보기형 보호를 하는 물고기의 수컷이 수정란을 보살피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낳고 도망가는 쪽이 이득이라서...
    -도킨스의 ‘낳고 도망가기 이론’

  제일 먼저 도킨스의 ‘낳고 도망가기 이론’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 이론은 수컷이 수정란을 보호하는 이유를 ‘낳고 도망가는 쪽이 이득이다’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 이론은 최근에 발표된 것으로, 물고기의 수컷이 수정란을 보호하는 이유를 둘러싼 많은 토론을 불러왔다.
  도킨스와 칼라일은 1976년 영국의 (자연)이라는 과학 잡지에 논문을 한 편 발표했다. 그 논문은 수컷 물고기가 수정란을 보호하는 이유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우선 어떤 상식이 잘못되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 잘못된 상식이란 암컷은 언제나 수정란을 지키려 한다는 것이다.
  표유류의 경우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울 수 있는 것은 암컷이기 때문에 새끼를 키우는 일은 암컷에게 맡겨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포유류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도 암컷이 새끼를 키우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동물의 암컷은 난자(알)를, 수컷은 정자를 만든다. 암컷이 만드는 알은 영양분을 듬뿍 함유하고 있는 커다란 세포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정자는 영양분이 거의 없는 아주 작은 세포이다. 따라서 암컷과 수컷이 수정란 하나를 만들기 위해 투자한 것은 암컷 쪽이 수컷에 비해 훨씬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수정란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긴다면, 암컷쪽이 훨씬 더 커다란 손실을 본다. 따라서 꼭 포유류가 아니더라도 암컷이 새끼를 키우는 일이 많은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에 의하면 물고기의 수컷이 수정란을 더 자주 보호한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럴듯한 이야기이기는 하나 사실은 아니었던 것이다.
  도킨스와 칼라일은 이 이야기가 전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말하기를,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얼마만한 투자를 했는가가 아니라, 지금부터 이익을 얼마나 많이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동물의 경우, 무엇을 이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자손을 많이 남기는 일이다. 모든 동물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얼마나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누구든지 투자한 만큼의 대가를 받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투자한 것을 조금 잃어버리는 편이 앞으로 더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애초부터 새끼를 키우는 일이란 자기 새끼가 더욱 많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끼를 키우면서 희생해야 할 것도 있다.
  새끼를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새끼 키우는 일에만 시간과 공을 들인다면 그만큼 앞으로 새로운 새끼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적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수컷과 암컷은 새끼를 키우는 문제에 대해서 서로 대립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수컷이나 암컷 어느 쪽의 입장에서 보아도 상대방에게 수정란을 보호하는 일을 맡기는 편이 이익이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새로운 상대를 만나 더 많은 후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혼을 하는 부부가 서로 자기가 자식을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싸우는 내용이 가끔씩 나온다. 이렇게 서로 자식을 키우겠다고 싸우는 것은 역시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도킨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선 육지에서 살아가는 동물처럼 짝짓기와 체내 수정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런 동물은 서로 육아를 떠넘기려 할 때 수컷 쪽이 훨씬 더 유리하다. 수컷이라면 암컷의 몸에 정자를 주고 도망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컷은 정자를 주고 도망가면 수정란 키우는 일을 전적으로 암컷에게 떠넘길 수 있다. 그러나 물고기는 육지에서 사는 동물과는 다르다. 물고기는 알과 정자를 물 속에 내놓고 체외 수정을 하는 것이 많다. 따라서 수컷 물고기는 암컷에게 수정란 키우는 일을 떠넘기기가 쉽지 않다. 암컷이 먼저 알을 낳고 그 다음에 수컷이 정자를 내놓는 순서로 수정란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암컷은 알을 ‘낳고’, 수컷보다 빨리  ‘도망갈’기회를 잡을 수 있다. 빨리 도망을 쳐서 다시 알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물고기의 경우에는 수컷 혼자 남아 수정란을 돌보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다.”
  도킨스의 이야기를 듣고, 수컷 물고기가 수정란을 돌보는 이유를 확실히 알았다는 기분이 든 친구들이 많을 것이다.
  도킨스의 설명은 아주 단순하고도 명쾌한 설명이다. 그렇다면 도킨스의 이론을 의심할 바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도 될까?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물고기가 수정을 하는 방법은 이런 설명을 뒷받침해 주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물고기 중에는 체외 수정을 하는 종류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체외 수정’이라고 하면, 우리는 양어장에서 알을 인공 수정시킬 때처럼 알을 먼저 낳아 두고 그 위에 정자를 뿌리는 식으로 연상하기가 쉽다.
 그러나 체외 수정을 한다고 해서, 암컷이 먼저 알을 낳으면 그 다음에 수컷이 정자를 뿌리는 순서로 수정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암컷이 알을 낳는 일과 수컷이 정자를 뿌리는 일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경우, 암컷과 수컷이 수정에 참여하는 시기가 거의 비슷한 것이다. 따라서 수컷에게도 암컷과 마찬가지로 새끼 키우는 일을 상대방에게 미루고 도망쳐 버릴 기회가 있다.
  이런 지적을 받은 도킨스는 순순히 그 사실을 시인했다. 그리고 깨끗하게 자기 이론을 철회했다. 1978년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도킨스의 이론은 모두 잘못된 것일까? 그렇게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지적한 대로 물고기가 새끼를 돌보는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얼마만큼 투자했는가보다는 앞으로 얼마만큼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도킨스는 그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자기 새끼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트리버스의 ‘부성 신뢰도 이론’

  이번에는 다른 이론을 소개해 보겠다. 이 이론은 트리버스 등이 1972년에 역시 수정하는 방법에 주목하고 내놓은 것으로서, ‘부성 신뢰도 이론’이라고 불린다.
  이 이론을 간단히 이야기하먼 이렇다.
  ‘물고기의 수컷은 수정란이 자기 자손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즉, 자신의 부성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수정란을 돌보는 것이 많다.
  좀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어떤 동물이든 암컷의 입장에서는 알이나 새끼를 낳았을 때 그것이 분명히 자기 자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체내 수정을 했건 체외 수정을 했건, 자기가 낳은 알이나 새끼가 자기 자손이 아닐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수컷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우선 체내 수정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수컷은 자기와 짝짓기한 암컷이 새끼를 낳았다고 해도 그 새끼가 분명히 자기 자손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 상대방 암컷이 자기와 짝짓기하기 전에 다른 수컷과 짝짓기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외 수정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체외 수정의 경우는 거의 동시에 알과 정자가 밖으로 나온다. 따라서 아무리 수컷이라고 해도, 그 수정란이 자기 자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새끼를 키우는 것은 자신의 자손이 더 많이 살아남도록 하려는 행동이다. 따라서 눈 앞의 새끼가 자기 자손인가, 다른 동물의 자손인가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결국 체내 수정에 비해 체외 수정의 경우에 부성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체외 수정을 하는 물고기는 수컷이 수정란을 지키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그렇지만 부성의 신뢰도는 수정하는 방법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동물이 어떤 혼인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사람은 상당히 엄격한 일대일 혼인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아버지는 체내 수정을 했다고 해도 태어난 아기가 자기 자손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부성 신뢰도가 높은 것이다.
  이렇게 체내 수정의 경우라 해도 일대일 혼인 관계가 엄격하게 지켜질 때에는 부성 신뢰도가 높아진다.
  동물의 경우에도 일대일 혼인 관계가 엄격한 경우에는 암컷은 여러 수컷과 짝짓기를 할 수 없다. 따라서, 한 암컷이 낳은 새끼는 모두 상대방 수컷의 새끼가 된다.
  그리고 아무리 체외 수정을 한다고 해도 많은 암컷과 수컷이 한꺼번에 집단을 이루어 알을 낳고 수정을 하는 경우에는 부성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어느 수정란이 자기 자손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수정란을 보살피는 능력이 발달되지 않는다.
  물고기 중에는 수컷이 일정한 세력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수컷은 자기 세력권으로 암컷을 불러들인다. 그리고는 알을 낳게 한다. 그리고 암컷이 떠난 뒤에도 수컷 혼자서 수정란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세력권을 갖고 생활하는 물고기 속에는 아주 얄미운 짓을 하는 수컷이 있다. 다른 수컷과 암컷이 짝을 이루어 체외 수정을 하는 순간에, 살짝 끼어들어 자기 정액을 뿌리는 수컷이 있는 것이다. 이런 수컷은‘좀도둑’이라고 불린다.
  이 경우, 자기 세력권에 있던 순진한 수컷은 좀도둑 수컷의 새끼를 보살피게 된다. 이렇게 부성의 신뢰도가 꼭 완벽하지 않을 때에도 새끼를 보호하는 행동이 발달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한 마리의 수컷과 여러 암컷이 함께 생활하는 물고기도 있다. 이런 물고기 중에는 체외수정을 해서 부성의 신뢰도가 완벽한데도 암컷이 새끼를 돌보는 것도 있다.
  ‘좀도둑’물고기의 경우와 더불어 이런 경우를 보면, 새끼 돌보는 일을 누가 맡을 것인가는 부성의 신뢰독 하나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난자와 정자의 차이점 때문에...
    -베일리스의 ‘배우자 형성 속도 이론’

  일반적으로 수컷이 만드는 정자는 암컷이 만드는 알에 비해 그 크기가 상당히 작다. 그 대신 정자는 아주 많이, 그리고 빨리 만들어진다.
  이 단순한 사실로 물고기의 수컷이 세력권을 지키는 점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알의 수는 정자의 수보다 훨씬 적다. 따라서 암컷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만든 알의 수가 자기 자손의 수와 같다. 그러나 암컷은 몇 마리의 수컷과 짝짓기를 하든 아무런 상관도 없다.
  하지만 수컷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아무리 많은 정자를 만들어 낸다고 해도 그것이 모두 아무런 쓸모 없이 사라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자의 수는 자손의 수와 같지 않다. 많은 정자가 알을 만나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컷의 입장에서 보면 몇 마리의 암컷과 짝을 지어 수정을 할 것인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수컷의 입장에서는 많이 그리고 빨리 정자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 대로 암컷과 짝을 지어 수정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기 자손은 많이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을 낳고 수정을 하기에 좋은 장소는 그리 흔치 않다. 그렇다면 누가 그 장소를 차지하려고 할까?
  당연히 암컷보다는 수컷 쪽에서 그 곳을 자기 세력권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수컷은 암컷을 끌어들이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다른 수컷이 그롯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면, 자기 혼자 여러 마리의 암컷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암컷은 알을 낳고 수정을 하기 좋은 장소를 독점한다고 해도 별도 이득될 것이 없다. 알의 숫자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이렇게 세력권을 정해두고 수정란을 지키는 것이 많다. 그러면 수컷은 한꺼번에 여러 마리의 암컷이 낳은 알을 돌보게 된다. 따라서 짝을 지어 수정을 할 기회를 빼앗기지 않게 된다.
  수컷이 낳는 정자와 암컷이 낳는 난자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 때문에 세력권을 지키는 쪽이 수컷이 되고, 그 때문에 수정란을 돌보기를 주로 수컷이 담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수컷이 수정란을 돌보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베일리스의 ‘배우자 형성 속도 이론’이다. 난자와 정자를 모두 배우자라고 하는데, 이 배우자를 만드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수정란을 돌보는 일을 맡는 쪽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망보기형 보호를 제외한 보호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운반형 보호에서 암컷이 보호를 담당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운반형에서는 수컷도 한 마리의 암컷이 낳은 알밖에 보호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수컷 역시 수정란을 돌보기 위해서는 새로운 암컷을 만날 기회를 희생해야 한다.

    혼인 관계에 따라...

  물고기의 수컷이 새끼를 보살피는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해 보았다. 지금까지 설명한 이론은 모두 어느 정도는 중요한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 가장 본질적인 원인을 지적하는 이론으로는 베일리스의 ‘배우자 형성 속도 이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컷에 있어서 짝짓기를 하는 암컷의 수는 보호방법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어떤 혼인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운반형 보호를 예로 들어 보자.
  만일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과 짝을 지으려고 한다면 수컷은 수정란을 보살피는 일을 어떻게 해서든지 암컷에게 떠넘기려 할 것이다. 그러나 한 마리의 수컷과 암컷이 짝을 이루는 경우, 즉 수컷이 다른 암컷과는 짝을 이루려고 하지 않는다면, 수컷도 새끼 키우는 일을 함께 하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암컷의 부담을 줄여 암컷이 더 많은 알을 낳을 수 있게 해야만 자신의 자손도 더욱 많이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새나 포유류에 비해, 물고기의 경우가 수컷 혼자 알을 보살피는 일이 많은 이유를 알아보았다. 그러고 또한 물고기 중에도 암컷이 혼자 새끼를 돌보거나 암컷과 수컷이 함께 새끼를 돌보는 것도 적지 않음을 알았다.
  수컷, 암컷, 그리고 암수컷 함께로 구별되는 새끼 돌보기의 세 가지 모습은 어떤 혼인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점과 연관해서 설명할 수 있을것이다.
  앞에서는 포유류는 주로 암컷이, 그리고 조류는 암수컷이 함께 새끼를 돌본다고 했다. 그러나 포유류나 새에도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역시 혼인 형태와 관련해서 설명할 수 있다.
  한 마리의 수컷과 암컷만이 짝을 짓는 새 중에는 수컷 혼자 새끼를 도맡아 키우려는 새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우선 이 정도에서 이야기를 끝내려고 한다.
  앞으로도 물고기의 생활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3. 다람쥐는 불효자
    볼주머니 불룩한 어미 다람쥐의 새끼 기르기

      제3장 다람쥐는 불효자
    어미 다람쥐의 볼주머니
  포유류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털 달린 짐승을 가리킨다. 그러면 포유류란 과연 무슨 뜻일까?
  한자를 보면 차례로 먹일 포, 젖 유, 무리 류이다. 즉, 젖을 먹이는 무리라는 뜻이다.
  포유류는 이렇듯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먹여 키우는 동물이다. 새끼가 성장해서 젖을 떼고, 자기 혼자 힘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어미는 새끼에게 아낌없이 젖을 준다.
  여러분은 이유식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유식이란 아기가 젖을 뗄 때 먹는 음식을 말한다. 젖만 먹던 아기는 단단한 음식을 소화시킬 수가 없다. 그래서 아기의 어머니는 젖을 뗀 후에도 소화하기 쉬운 음식을 만들어 조심스럽게 먹인다.
  사람은 이렇게 아기가 젖을 뗀 후에도 음식을 잘 먹고 있는지 어쩐지를 염려스러운 눈길로 계속 지켜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은 어떨까? 동물에게도 이유식이 있을까?
  이제부터 어미 다람쥐가 새끼 다람쥐에게 어떤 일을 해 주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도토리를 들고, 고개를 갸웃갸웃하고 있는 다람쥐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 보라.
  다람쥐는 나무를 잘 타는 작고 귀여운 동물이다. 털은 붉은색을 띤 갈색이고 등에는 검은 줄이 다섯 줄로 나 있다. 그리고 주로 밤, 도토리 같은 나무 열매를 먹고 살아간다.
  여러분 중에도 다람쥐의 볼이 볼록하게 부풀어 있는 것을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다람쥐는 원래 볼이 그렇게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일까?
  볼록하게 튀어나온 다람쥐의 볼을 볼주머니라고 부른다.
  그리고 어미 다람쥐의 볼록한 볼주머니에는 새끼들을 먹일 식량이 가득 들어 있다. 어미 다람쥐는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먹을 것을 보금자리로 실어 나른다. 어미 다람쥐는 그 조그만 몸으로 최선을 다해 새끼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음식 나르기

  다람쥐는 보통 12월에서 3월까지의 추운 기간에는 겨울 잠을 잔다. 그리고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오면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암컷이 겨울잠에서 깨어난 뒤, 4,5월경에는 짝짓기를 한다. 짝짓기를 한 뒤에는 약 30일 동안 새끼를 배고 있다가 5,6월경에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한번에 3--6마리를 낳는데, 땅에 굴을 파고 그 속에서 낳는다.
  새끼를 낳고 약 35일 동안, 어미 다람쥐는 땅 속 보금자리에서 새끼를 데리고 살아간다.
  어미 다람쥐는 매일 해가 뜨자마자 밖으로 일하러 나간다. 그리고 많게는 하루에 5번씩,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보금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나 낮 동안에는 보금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새끼를 11시간 가량 그대로 내버려 두는 어미 다람쥐도 있다.
  어미 다람쥐는 저녁이 되면, 해가 지기 전에 보금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새끼들과 함께 밤을 지낸다.
  어미 다람쥐와 달리 수컷 다람쥐는 새끼를 키우지 않는다. 어미 다람쥐 혼자 새끼를 키우는 짐을 모두 지는 것이다.
  우리들이 새기 다람쥐를 처음 볼 수 있는 것은 생후 약 30일이 지났을 때이다. 땅 속 보금자리에서 눈을 뜬 새끼 다람쥐는 긴 땅굴을 지나, 입구의 작은 구멍을 통해 밖의 세계를 내다보려고 한다. 굴의 입구는 지름이 10센티미터 정도로 작은 편이다.
  밖을 내다본 새끼 다람쥐는 기절을 할 정도로 깜짝 놀란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어두운 땅 속 보금자리에서만 살아 왔기 때문이다. 새끼 다람쥐는 난생 처음으로 밝은 빛을 보았던 것이다.
  새끼 다람쥐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다시 꼬물꼬물 발을 움직여서 보금자리로 숨어 들어간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밖으로 발길을 떼놓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이런 결심도 잠깐, 태어나서 약 35일째가 되면 새끼 다람쥐는 밖으로 첫번째 나들이를 한다.
  이 첫나들이를 하는 날, 새끼 다람쥐들은 밝은 빛을 보고 다시 당황을 한다. 그래서 굴 입구에서 우왕좌왕하면서 다른 새끼 다람쥐의 머리를 밟기도 하고, 다른 새끼 다람쥐의 발에 밟히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면 새끼 다람쥐들은 끝내 바깥 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내지 못할 것만 같다
  그러나 조금 후, 새끼 다람쥐들은 마침내 결심을 했다는 듯이 굴의 입구를 빠져 나온다. 그리고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마침내 보금자리에서 30미터 이상 멀리 떨어진 곳까지 탐험에 나서는 것이다.
  새끼 다람쥐들은 냄새를 맡고 나무 위로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한다. 새끼 다람쥐들은 첫번째 나들이라고는 볼 수 없는 대담한 행동들을 하는 것이다.
  보금자리에 있던 새끼 다람쥐들은 이렇게 차츰 나들이에 익숙해진다. 어미 다람쥐는 처음부터 새끼 다람쥐들의 나들이에 참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새기 다람쥐들은 뿔뿔이 흩어져 행동을 한다. 겁도 없이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이다.
  1시간 정도 시간이 흐르면, 새끼 다람쥐는 풀숲을 누비고 다니다가 다시 돌아와 보금자리로 쏙 들어간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새기 다람쥐들이 집으로 돌아온다. 처음 나선 나들이에서 한 마리도 빠지지 않고 모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누구나 놀라게 된다.
  새끼가 모두 집으로 돌아오면 그 시간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어미 다람쥐가 볼주머니를 볼룩하게 채운 채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 다람쥐들 앞에서 잠깐 사이에 볼주머니를 비워 내고는 다시 어디론가로 횡하니 가 버린다.
  어미가 떠나가고 약 30분쯤이 흐르면, 다시 새끼 다람쥐들이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이번에는 우왕좌왕하지 않고 하나씩 나들이에 나선다.
  이리저리 뿔뿔이 흩어져 나들이를 나간 새끼들은, 다시 여러 갈래의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어미가 돌아와 먹을 것을 주면, 다시 나들이를 나간다.
  해가 질 때까지 이런 일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어미가 음식을 실어 나르는 것은 하루에 2번에서 5번 정도된다.
  새끼 다람쥐의 나들이와 어미 다람쥐의 음식 나르기를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 보면, 앞의 그림처럼 그 두 가지 일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날이 가도 어미 다람쥐가 집으로 돌아오는 횟수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끼 다람쥐들의 나들이 시간은 점차로 늘어난다. 그림에서 검게 칠한 부분은 다람쥐의 나들이 시간을 표시하고 있다. 그 길이가 점차 길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미 다람쥐는 새끼들에게 줄 식량을 모으는 일을 열심히 한다. 나무에 오르기도 하고, 땅을 파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찾아다닌다.
  그러면 어미 다람쥐의 볼주머니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 속에는 주로 개미의 번데기나 누에 같은 동물성 음식이 들어 있다. 그러나 새끼를 돌보지 않을 때에는 풀의 씨앗이나 도토리 같은 나무 열매도 많이 실어 나른다. 하지만 새끼들이 있을 때에는 부드러운 음식만을 실어 온다.
  다람쥐 말고도 새끼에게 음식을 갖다 주는 동물이 또 있을까? 이리나 리카온 같은 육식성 동물도 다람쥐처럼 새끼에게 젖이 아닌 음식을 실어 나른다. 그러나 다른 포유류는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어미가 실어다 준 여러 가지 음식을 먹기 때문에 새끼 다람쥐는 자기 힘으로 음식물을 찾아야 할 때, 어떤 음식을 골라야 할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미 다람쥐는 어떻게 볼주머니에 넣어 온 먹이를 새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일까?
  ‘엄마 손은 저울 손, 나눠 준 걸 대어 보면 똑같지요.’
  이런 노래가 있는 것처럼 어미 다람쥐도 조금씩 똑같이 새끼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았다.
  땅 속의 보금자리를 들여다볼 수 없어서, 인공적으로 보금자리를 만들면 기르면서 어미가 새끼들에게 어떻게 먹이를 나누어 주는가를 관찰해 보았다.
  어미가 밖으로 외출을 나갔다가 보금자리에 들어오자 새끼들은 부리나케 달려들어 어미의 젖을 빨기 시작했다. 새끼 다람쥐들은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후에도, 태어난 후 55일까지는 젖을 먹었다.
  새끼들이 젖을 빨기 시작하고 2,3분이 지나서 어미 다람쥐는 볼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뱉어 냈다. 그러자 새끼들은 일제히 음식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미 다람쥐는 보금자리 밖으로 나갔다.
  새끼들은 앞을 다투어 보금자리 바닥에 있는 음식물을 자기 볼주머니 속에 집어 넣었다.
  이렇게 어미 다람쥐는 음식물을 나누는 일에는 전혀 관여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미가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어느 새끼는 너무 많이 먹고 어느 새끼는 굶는 것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자연 생태의 땅 속 보금자리에서도 인공 보금자리에서 일어난 일과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만일 어미 다람쥐가 나들이 나온 새끼를 밖에서 만나면 어떻게 할까? 반가워서 얼른 달려들어 젖을 줄까?아니면 그대로 못 본 척할까? 이럴 때 어미는 새끼가 달려들어도 젖이나 음식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코끝으로 쿡쿡 찌르면서 저쪽으로 쫓아 버렸다.

    보금자리를 찾지 않는 새끼 다람쥐

  새끼 다람쥐들이 나들이를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과 어미가 먹이를 구해서 돌아오는 시간과 어미가 먹이를 구해서 돌아오는 시간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대략 생후 47일까지의 일이다. 그 뒤에는 이 시간이 일치하지 않는다.
  앞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새끼들은 어미를 기다리지 않고 이른 아침부터 나들이를 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외출하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새끼도 있다. 따라서 새끼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들쑥날쑥하다.
  그러나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새기의 수가 줄어도 어미는 하루에 4번에서 7번 정도는 집으로 돌아온다.
  때로는 집 안에 새끼가 한 마리도 없을 때도 있다. 보통 7번에 1번꼴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런 때면 어미는 30분정도 새끼를 기다린다. 그래도 새끼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미는 음식물을 집 안에 놓아두고 다시 밖으로 나간다.
  이렇게 점차 어미와 새끼가 집 안에서 만나지 못 할 때가 많아진다. 그러다가 새끼가 태어난 지 대략 60일째가 되면, 어미는 새기에게 먹이를 갖다 주는 일을 그만두게 된다.
  집 안에서 새기 다람쥐를 만나지 못하게 되면, 어미는 먹이를 날라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날이 흐르면 새끼 다람쥐들은 어미를 집 안에서 기다리지 않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새끼 다람쥐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날이 가면서 새끼 다람쥐는 점점 자란다. 그리고 활동량도 많아진다. 따라서 더욱 많은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
  그러나 새끼 다람쥐가 성장한다고 어미의 볼주머니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젖을 더 많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새끼 다람쥐는 충분한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된다. 또 몸이 점점 커지면서 집도 좁게 느껴진다. 새끼들 사이에서는 더 많은 음식을 먹으려는 경쟁도 치열해진다.
  그래서 스스로 음식을 찾아 먹을 수 있게 된 새기들은 어미가 음식을 갖다 주기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음식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새끼들은 독립한 후에도 집을 찾아오는 등, 어미의 행동권 안에 한동안 머무르려 한다. 이처럼 어미에게 의존하는 것은 암컷이냐 수컷이냐에 따라 다르다.
  새끼들이 외출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시간이 일치하는 생후 35일부터 47일가지는 보금자리 속에서 어미와 새끼가 만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 때까지는 암컷과 수컷 새끼가 어미를 만나는 비율의 차이가 거의 없다. 암컷과 수컷 새끼는 집에 올때마다 대개 어미를 만난다.
  그러나 새끼 다람쥐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에서 차이를 보이기 시작하는 48일부터 59일 사이에는 암컷 새끼와 수컷 새끼가 어미를 만나는 비율이 상당히 달라진다. 암컷은 10번에 6번 이상은 어미를 만나지만 수컷은 10번에 4번도 만나지 못한다.
  이처럼 어미를 만나는 비율이 다르다는 것은 어미에 대해 의존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암컷이 수컷보다 의존률이 높다는 것이다.
  더구나 암컷 중 몇 마리는 어미의 행동권에서 가가운 곳에 자기 집을 꾸리고 이듬해 봄에는 그곳에서 새끼를 낳는다. 이와 반대로 수컷은 초가을이 올 때까지는 대개 먼 곳으로 흩어져 간다.

    다람쥐의 이사

  어미 다람쥐는 새기들을 위해 음식 모으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새끼가 나들이를 시작하면 어미는 그 즉시 이사를 시작한다. 새끼들을 데리고 그 때까지 쓰고 있던 땅 속 보금자리로부터 다른 땅 속 보금자리나 나무 동굴로 이사를 가는 것이다.
  어미 다람쥐는 이사하기 전에 새로운 보금자리에 몇 번이고 낙엽을 채워 넣는다. 새로 살 집을 단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람쥐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이사를 한다.
  첫번째 방법은 어미 다람쥐가 새끼 다람쥐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는 집에 들어가서는 젖을 주지도, 볼주머니 속의 음식을 내놓지도 않은 채 곧바로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배고 고픈 새끼들은 마치 유치원 아이들이 선생님 뒤를 졸졸 쫓아가는 것처럼 어미 뒤에 한 줄로 서서 따라가게 된다. 어떤 때에는 77미터나 되는 먼 곳까지 이런 행진이 계속된다.
  두 번째 방법은 밖으로 나들이를 나온 새끼를 한 마리씩 꾀어 새로운 보금자리로 데려가는 것이다. 이런 경우 다람쥐의 집 앞에서 다람쥐의 이사를 관찰하려고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어리둥절해지고 만다.
  그렇다면 어미 다람쥐는 이사를 하며 새끼들을 데려갈때, 새끼의 수를 셀 수 있는 것일까? 다람쥐는 물론 새끼들의 수를 셀 수 없다.
  그래서 어미 다람쥐는 이사한 뒤에도 몇 번씩 예전에 살던 집을 둘러본다. 새끼가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사한 바로 그 날과 다음날에는 외출을 나가 있는 새끼들을 새집으로 데려온다. 이렇게 하면 혼자 떨어져 남는 새끼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이사는 몇 번이나 계속되는 것일까? 어미 다람쥐는 새끼들이 모두 독립해 나가기까지 3일에서 8일에 한번 꼴로 이사를 한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지만 다람쥐에게도 이사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다람쥐들은 왜 이렇게 자주 이사를 하는 것일까?
  이유는 두 가지이다. 우선 다람쥐를 잡아먹는 육식 동물에게 보금자리를 눈치채이지 않도록 하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그리고 다음은 새끼들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다람쥐는 불효자?
  여러 새끼를 함께 키우는 경우에는 새끼가 나들이를 나가기 시작한 뒤에도 보금자리 속에서 어미와 새끼를 모두 함께 만나는 것이 좋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이렇게 한꺼번에 만나야만 모든 새끼가 젖을 빨고, 음식을 받아 먹을 수 있기 때문인다.
  새끼 다람쥐들은 여러 방향에서 거의 동시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새끼들이 모두 돌아온 뒤에 어미가 집으로 와서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이런 행동을 보면 마치 새끼 다람쥐와 어미 다람쥐 사이에 무슨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새끼들이 외출해서 돌아오는 시간은 수컷이 평균 1시간 15분, 암컷이 평균 1시간 33분이었다. 물론 생후 37일부터 47일까지 함께 돌아올 때의 평균이다.
  그런데 어미가 집으로 돌아오는 간격은 평규 2시간 6분이었다. 어미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간격에 비해서 새끼들의 외출 시간이 짧았던 것이다. 따라서 새끼들이 집 안에서 어미를 기다릴 수 있었다.
  어미 다람쥐는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새끼를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새끼들은 독립할 준비가 되면 냉정하게 어미를 버린다. 다람쥐는 불효자인 것이다. 하지만 다른 포유류에서도 이런 식으로 새끼가 어미를 버리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4. 박쥐의 비밀
    날아다니느 포유동물, 박쥐의 참모습은?
      제4장 박쥐의 비밀
    밤의 귀신으로 불리는 박쥐
  폐어 가운데 외따로 서 있는 오래 된 성, 묵은 먼지와 거미줄만 무성한 성 안으로 주인공이 들어서자 어둑컴컴한 저편 구석에서 갑자기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푸드득 날아드는 시커먼 형체가...
  무서운 괴기 영화나 전설 속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배역이 박쥐이다. 야행성 동물인 박쥐는 밤과 어둠을 연상시키고, 황폐한 폐가나 동굴에 살기 때문에 음울한ㅁ과 괴기의 상징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악마는 때로 날개가 달린 박쥐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또한 박쥐는 이솝 우화에서처럼 새와 짐승의 중간 모습을 하고 있어 불성실하고 위선적이며 교활한 생물로 취급되기도 한다.
  박쥐는 프랑스 말로는 ‘대머리 생쥐’라는 뜻이고 독일어로는 ‘날아다니는 생쥐’라는 뜻이 된다. 이처럼 동양이나 서양 모두 생쥐가 박쥐의 이름과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박쥐의 선조는 생쥐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땃쥐과의 식충류이다.
  밤의 귀신으로 불리기도 하는 박쥐는 사실 그 모양이 기괴하다. 분명히 네발 달린 포유 동물인데도 날개가 달렸으니 이상할 수밖에 없고 시커먼 날개에 몸을 파묻고 천정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징그럽기조차 하다. 그러나 과연 박쥐는 이렇게 무섭고 징그럽기만 한 것일까? 박쥐의 참모습은 어떠할까?

    박쥐는 드라큐라? -박쥐의 먹이

  박쥐는 아주 오래 된 동물로 그 종류도 많다. 먹이 또한 다양한데, 원래 박쥐는 곤충을 먹는 식충류였으나 지금은 과일이나 꽃가루, 꿀을 먹이로 하는 것도 있다.
  ‘어, 박쥐는 피를 빨아먹고 산다고 하던데?’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물론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 박쥐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이고 대부분은 곤충을 비롯한 동물을 먹이로 한다.
  동물을 먹이로 하는 박쥐류의 대부분은 어둠 속을 날아다니며 초음파를 사용하여 잡은 곤충을 주식으로 한다. 곤충의 종류는 다양한데 보통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3분의 1 정도에 해당되는 양을 잡아먹는다.
  언청이박쥐류는 곤충도 먹지만 작은 물고기를 주로 먹는다. 이때 박쥐는 최첨단 무기를 사용한다. 즉, 수면 가까이로 낮게 날면서 주파수가 25--64킬로헤르츠인 초음파를 물속으로 발사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수면 부근의 작은 물고기나 새우에 부딪쳐 나오는 반대 음파를 감지하여 뒷발의 날카로운 발톱을 물 속에 집어 넣어 먹이를 잡아낸다. 이러한 동작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져 약 1000분의 1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먹이가 작은 경우에는 발에서 입으로 옮겨 물고 날아가면서 먹고, 먹이가 큰 경우에는 보금자리로 운반하여 천천히 먹어 치운다.
  잘 알려진 흡혈 박쥐인 데스모다스 흡혈 박쥐는 사람에서 개구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척추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 희생물을 만나면 습격하기 전에 최면 효과가 있는 분비물을 내면서 날개로 훼를 친 다음 동물의 몸 위에 내려 앉는다. 그런 다음 두 개의 예리한 윗앞니로 피부에 상처를 낸 후 20-25CC의 피를 약 20분 동안 빨아먹는다. 쉽게 날수 없을 정도로 많이 피를 빨면 흡혈 박쥐는 종종걸음으로 뛰어 희생 동물로부터 멀어진다.
  과일이나 과즙, 꽃가루, 꿀을 먹는 박쥐로는 큰박쥐류와 창비엽박쥐류가 있다. 이들 박쥐는 작은 것이 대부분이며 꽃가루나 꿀을 얻기에 적합하도록 입이나 혀가 발달되어 있다. 또 이들은 밤에 피는 꽃의 수분에 큰 도움을 준다.

    포유 동물이 어떻게 날 수 있나? - 앞다리를 날개로

  하늘을 나는 인간의 꿈은 라이트 형제가 시도한 비행기의 발명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람은 기계의 힘을 빌지 않고는 슈퍼맨이나 배트맨(배트는 영어로 박쥐임)처럼 하늘을 날 수가 없다. 그런데 사람과 같은 포유류인 박쥐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박쥐는 어떻게 날 수 있을까?
  박쥐의 앞다리는 날개로 변해 있다. 날개는 전막, 체측막, 수막, 미막이라고 하는 4개의 비막으로 되어 있다. 뒷다리와 꼬리를 연결하는 미막은 움직일 수 있어 비행기에서의 방향타와 같은 역할을 하며 브레이크로도 작용한다.
  훌륭한 날개가 있다 하더라도 공기의 저항을 이겨 내며 방향을 잡을 수 없으면 소용이 없다. 거의 모든 박쥐들은 어깨 관절이 이중으로 되어 있어 날개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한 비행을 담당하는 박쥐의 근육인 흉근은 우리의 심근과도 같아서 밤새도록 날아도 지치지 않으며 많은 산소를 포함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초음파의 수수께끼

  온갖 종류의 소리로 가득찬 이 지구 위에서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솔는 아주 한정되어 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주파수가 약 16--20000헤르츠인데, 그 이상의 음파를 초음파라고 한다. 박쥐들은 자신이 만들어 낸 음파가 되돌아오는 것을 알아들어 자신이나 먹이가 되는 곤충의 위치를 정하고 주위 환경을 살피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를 어려운 말로 ‘에코로케이션’이라 부른다.
  그런데 왜 박쥐는 눈이 아닌 소리로 물체를 알아내게 되었을까? 첫번째 이유는 여러분도 짐작했겠지만 박쥐가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는 볼 수 없는 눈 대신 청각이 발달된 것이다. 실제로 몇몇 야행성 동물 중에서는 초음파를 내는 것도 있으며, 빛이 대부분 흡수되어 버리는 바닷속에서 사는 돌고래 종류의 에코로케이션도 유명하다.
  박쥐나 돌고래 종류가 에코로케이션 능력을 갖게 된 또다른 이유는 이들 모두가 넓은 공간을 날아다니거나 헤엄치면서 움직이는 먹이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작은 박쥐들은 모두 야행성으로 초음파를 내며 레이더 비행을 한다. 그럼, 박쥐가 발사하는 초음파는 어떤 성질을 가졌을까?
  우리는 맨눈으로는 직접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기 위해 현미경이나 망원경을 이용하는 지혜를 보여 왔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귀에 들리지 않는 음도 우리는 들을 수 있다. 초음파의 주파수를 감지하는 특수한 마이크로폰으로 박쥐의 초음파를 자기 테이프에 빠른 속도로 녹음하였다가 감속하여 천천히 돌리면 주파수도 낮아져 우리의 귀에 들리게 된다. 또 주파수의 변화를 기록하는 장치로 소니어그램을 나타내면 초음파의 성질을 눈으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박쥐가 발사하는 초음파를 조사해 보면, 주파수가 일정한 형(CF형)과 주파수가 바뀌는 주파수 변조형(FM형)의 두 가지가 있다. 주파수 일정형은 주파수 변조형에 비해 단순하므로 얻을 수 있는 정보량이 적다. 일정한 주파수의 초음파를 내는 종류를 CF형 박쥐라고 한다.
  이들 박쥐는 곤총의 위치를 알아낼 때 주파수 70킬로헤르츠의 초음파를 콧구멍을 통해 낸다. 이를 감속하여 들어보면 ‘삐-삐-’하는 음으로 들린다. FM형 박쥐는 초음파를 입에서 발사하므로 감속시켜 들어 보면 ‘쫑-쫑-’하는 소리로 들린다.
  이처럼 우리는 기계의 도움으로 직접 보고 들을 수 없는 자연의 모습들을 알아낼 수가 있다.

    박쥐도 겨울잠을 자는가? -박쥐의 동면

  박쥐가 겨울잠을 자는가라고 물으면 똑똑한 여러분들은 아마 열심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척추동물 중에서 어류나 양서류, 파충류는 변온 동물이고 조류와 포유류는 항온 동물(정온 동물)이다. 겨울잠을 자는 것은 주로 변온 동물이 춥고 먹이가 없는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것이라 했겠다. 그리고 박쥐는 포유류라고 했으니까... , 그래 맞아. 정온 동물인 박쥐가 겨울잠을 잘 턱이 없지 가만 있자 그런데 다람쥐나 고슴도치도 겨울잠을 잔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혹시 박쥐도... 에라 모르겠다. 자든지 말든지 둘 중 하나겠지 뭐.’
  사실 항온 동물이면서도 박쥐류와 고슴도치, 다람쥐의 일부는 동면을 한다. 왜일까?
  몸을 항상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그런데 몸의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클수록 열을 더 많이 빼앗긴다. 아마 여러분은 추운 극지방에 사는 동물들이 북극곰처럼 둥글둥글 통통한 이유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살을 찌워 몸의 체적이 커지면 상대적으로 표면적은 적어져 열의 발산도 줄어든다. 따라서 추운 곳에서 견디려면 몸을 키워 몸의 부피에 대한 표면적의 비율이 최소가 되게 해야 한다. 그런데 박쥐를 비롯한 이들 작은 포유류들은 열을 많이 빼앗기므로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겨울에는 먹이도 부족하므로 이러한 사황을 극복하기 위해 동면이라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초가을에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면 박쥐는 서서히 겨울잠을 잘 준비를 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바깥 기온보다 약1도C 높은 정도로 체온을 내린다. 체온을 낮게 유지하면 몸에 쓰이는 에너지 소비도 억제되므로 남은 에너지를 지방으로 축적하여 동면 준비를 한다.
  동면 준비가 끝나면 동굴 속 등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온도의 장소를 택하여 겨울잠에 들어간다. 겨울잠을 자는 박쥐를 만져보면 차감게 느껴지고 1분 이상 동안 호흡을 하지 않기 때문에 죽은 것같이 보인다. 평상시보다 호흡수는 약 50분의 1, 심장 박동수는 약 20분의 1정도로 줄여들어 산소 소비량도 10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수업시 많은 동물들이 지구상에 나타났다가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져 갔는데, 만일 박쥐도 이처럼 겨울 잠을 통해 겨울을 나는 방법을 발달시키지 못했다면 멸종하고 말았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생물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식으로 환경에 적응해 왔는지에 대해 또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5. 동물도 카인의 후예?
    생존을 위해선 형제도 죽이는 비정한 동물의 세계

      제5장 동물도 카인의 후예?
    초초의 살인자 카인

  구약 성서에서는 인류 최초의 인간을 아담으로 그리고 있다.
  ‘야훼 신은 에덴 동산이라는 낙원을 지어 놓고 아담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따서 하와라는 여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에덴 동산에서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하게 살라고 했다.’
  야훼 신은 이들에게 다른 과일은 다 따 먹어도 좋으나 한가지만은 따 먹지 말라고 했다. 그 한 가지 과일이라 바로 선악과였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선악을 판단할 수 있게 되고. 신에게 도전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었다(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호기심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벌로 에덴 동산이라는 낙원에서 쫓겨났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아들을 둘 낳았다. 위의 아이가 카인이고 밑의 아이는 아벨이었다.
  카인과 아벨이 자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야훼 신은 아벨만을 아꼈다. 그래서 카인과 아벨이 함께 제물을 바쳤는데, 카인의 것은 받지 않고 아벨의 것만 받았다.
  그러자 카인은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여 동생 아벨을 돌로쳐 죽였다.
  이래서 카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다. 그것도 자신의 친동생을 죽인 살인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기 형제를 죽이는 일은 성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옛날에는 왕의 아들 사이에서 서로 왕이 되려고 자기 형제를 해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우리 나라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수양대군과 조카 단종의 이야기이다. 수양대군은 조카의 왕위를 빼앗아 조선 제7대 왕, 세조가 되었다. 그런데 그는 어린 단종을 강원도 영월에 귀양 보낸 후에도 마음이 안 놓여 어린 조카를 죽였다고 한다.
  외국에서도 서로 왕이 되기 위해 형제 사이에 죽고 죽이는 일이 많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동물의 세계에서는 어떨까?
  놀라운 것은 새의 세계에서도 이렇게 형제를 죽이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형제를 죽이는 새

  이렇게 자기 형제를 죽이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새의 무리는 수릿과에 속하는 사나운 새들이다.
  흰죽지참수리나 흰꼬리수리 등의 수릿과에 속하는 사나운 새를 예로 들어 보자. 이런 새의 암컷은 한 번에 보통 알을 2개씩 낳는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알은 모두 깨어난다. 그러나 무사히 보금자리를 떠나 독립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마리뿐이다.
  그건 어째서일까? 나머지 한 마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놀랍게도 먼저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수리는 나중에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수리를 공격해서 죽인다.
  흰꼬리수리의 경우를 자세하게 조사해 보았다. 그랬더니 200개의 보금자리 중에서, 두 마리의 새끼 수리가 모두 보금자리를 떠나 독립하는 것은 겨우 한 곳뿐이었다. 나머지 보금자리에서는 형이 동생을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수리는 카인의 후예인 셈이다.
  수릿과에 속하는 사나운 새 중에는 이렇게 동생을 죽이는 것들이 아주 많다. 대부분 두 마리의 새끼 수리 사이에 죽고 죽이는 싸움이 아주 격렬하게 일어나서, 그 중 한 마리가 죽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먼저 태어난 것이 나중에 태어난 것을 죽인다.
  수리는 원래 사나운 새로 알려져 있으니 형제를 죽인다고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수리만이 이런 무서운 일을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들녘을 날아가는 아름다운 하얀 새, 해오라기가 형제 사이에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해오라기의 경우에는 형제를 죽이는 일이 그리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 형제가 서로 싸움을 벌이지 않고 한 보금자리에서 모두 독립해 나갈 때도 많다.
  그러나 해오라기도 한 보금자리에 알이 너무 많을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수리처럼 형제 사이에 죽고 죽이는 무서운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해오라기는 보통 4월에서 8월 사이에 이틀 간격으로 3개에서 6개의 알을 낳는다. 이렇게 이틀 간격으로 알을 낳으니, 어떤 새끼는 일찍 깨어나고 어떤 새끼는 늦게 깨어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것은 몸집이 크고 어떤 것은 몸집이 작아 고르지 않다.
  새끼가 몇 마리 안 될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새끼가 너무 많아 비좁을 때에는 몸집이 큰 새끼가 작은 새끼를 괴롭히고 결국은 죽이기까지 한다. 형제 사이에 죽고 죽이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이겨 살아 남는 것은 언제나 먼저 깨어난 새끼이다.
  이렇게 새끼의 몸집이 서로 다른 이유는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새끼 해오라기들이 한꺼번에 깨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해오라기의 암컷이 이틀 간격으로 알을 낳는다고 해도, 알을 다 낳을 때까지 기다려서 한꺼번에 품는다면 새들은 한꺼번에 깰 것이다. 그러나 해오라기의 암컷은 알을 다 낳기도 전에 알을 품기 시작한다.
  한 개의 알을 낳으면 그것을 품고, 다시 한 개의 알을 낳으면 그것도 품고, 알을 다 낳을 때까지 계속 이런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러니 먼저 낳은 알은 먼저 깨고 나중에 낳은 알은 나중에 깨서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해오라기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새도 이렇게 한다.
  그러나 작은 새들은 하나의 알을 낳고 다음 번 알을 낳을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따라서 제일 먼저 깨는 것과 제일 늦게 깨는 것의 차이는 겨우 하루나 이틀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만일 해오라기가 여섯 개의 알을 이틀 간격으로 낳았을 경우, 처음 깨어난 것과 마지막에 깨어난 것 사이에는 12일이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알이 여러 개일때에는 새끼의 몸집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다섯 마리의 해오라기 새끼가 깬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이 다섯 마리의 새끼 중에서 세 번째로 깬 새끼 해오라기까지는 무사히 자랄 수 있다. 그러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새끼는 살아 남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깨어나는 시기가 달라서 늦게 태어난 작은 새끼가 죽는 새는 해오라기 말고도 상당히 많다. 극락조, 검은지빠귀를 비롯해서 가마우지, 갈매기 등이 그런 새들이다.

    어미새는 어떻게 할까?

  그러면 어미새는 이렇게 큰 새가 작은 새를 죽이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할까? 어미는 자기 새끼가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까? 아니면, 형제 간의 싸움을 말릴까?
  놀랍게도 형제를 죽이는 새에서는, 어미새가 새끼들 사이에 일어나는 싸움을 거의 말리지 않는다고 한다. 비록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어미새가 새끼들 사이의 싸움을 보고도 못 본 척한다는 것이다.
  형이 동생을 죽이는 일이 일어나면, 새끼의 수가 줄어든다. 따라서 싸우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도 자기 새끼가 죽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미새는 어째서 형제 간의 싸움을 말리지 않는 것일까? 만일 형제 간의 싸움을 말릴 수 없고, 원래부터 한마리밖에 자랄 수 없는 것이라면 어째서 두 개의 알을 낳는 것일까?
  이렇게 어미가 형제간의 싸움을 말리지 않고, 한 마리만 살아남는 데도 두 개의 알을 낳는 사실, 그리고 알에서 새끼가 깨어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고, 간격을 두고 일어나는 사실에 대해서는 몇 가지로 설명이 되고 있다.
  우선 첫번째로 흰꼬리수리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흰꼬리수리는 알이 하나만 있는 보금자리보다 두 개의 알이 있는 보금자리 쪽에서 새끼가 자라나 독립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물론 두 개의 알에서 깬 새끼가 모두 성장한다는 것이 아니라, 두 마리 중에서 최소한 한 마리라도 끝까지 살아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비새의 경우에도 보금자리에 단 한 개의 알만 있을 때에는 대부분 그 알에서 깬 새끼가 죽어 버린다. 5분의 1의 꼴밖에 끝까지 살아 남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 개의 알이 있는 보금자리에서는 전체를 다섯으로 했을 때 셋 이상의 보금자리에서 새끼가 끝까지 살아 남는다.
  알이 한 개에서 두 개가 되면 새끼가 끝까지 살아 남아 독립을 할 가능성이 3배 이상 커지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한 개에서 두 개가 되었으니 2배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3배 이상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어미새가 알을 하나씩 낳는 것보다는 두 개씩 낳는 것이, 알이 살아 남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흰죽지참수리의 보금자리를 조사해 보았다. 그랬더니 22개의 보금자리 중에서 늦게 태어난 새끼가 살아 남은 곳은 다섯 곳이었다. 이렇게 늦게 태어난 새끼가 살아 남은 것은 먼저 태어난 새끼가 죽었기 때문이다. 이는 다섯 곳에서 모두 그랬다.
  따라서 두 개의 알을 낳는 것은 첫번째 알에서 깨어난 새끼가 죽었을 경우를 대비해서 한 개의 알을 덤으로 낳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한 마리의 새끼를 위해서 두 개의 알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와는 다른 설명도 있다. 두 번째 설명이다.
  시간 간격을 두고 하나씩 깨어나는 새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수리와 해오라기 말고도 가마우지라는 새가 있다.
  그런데 수리는 주로 들쥐, 토끼 같은 작은 동물이나 작은 새, 물고기, 뱀 등을 잡아먹고 살아간다. 그리고 가마우지는 주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또 해오라기는 물고기, 새우, 개구리, 곤충 등을 잡아먹고 살아간다. 수리와 가마우지, 해오라기가 모두 동물성인 것이다.
  이렇게 동물을 먹는 새는 언제나 풍부한 사냥감을 만날수가 없다. 따라서 새로 태어난 새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지 없을지를 미리 알 수가 없다. 때로는 사냥감이 풍부해서 배불리 먹을 수 있기도 하지만, 사냥감이 없어서 거의 아무것도 못 먹게 될 때도 있다.
  이런 육식성 새들이 알을 많이 낳고 한꺼번에 깨어난다고 하자. 만일 먹을 것이 풍부하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먹을 것이 부족할 때에는 어떻게 될까?
  이때 새끼들이 한꺼번에 알에서 깨어났다면 몸집도 같고 힘도 비등비등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서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기 위해서 싸우다가 모두 다 죽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러 마리의 새끼가 한꺼번에 깨어나면 형편이 좋지 않을 때에는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모두 죽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식량 사정이 좋을 때에는 여러 마리의 새끼를 키우고, 식량 사정이 나쁠때에는 한 마리의 새기라도 남기는 게 더 좋을 것이다.
  다른 설명도 있다. 시간 간격을 두고 하나씩 깨어나는 이유로 늦게 깨어난 새끼가 있으면, 먼저 태어난 새끼가 더 활발하게 먹이를 먹고 성장도 촉진되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다.
  먼저 깬 새끼가 나중에 깬 새끼를 잡아먹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일을 보고 나중에 깬 새끼는 먼저 깬 새끼의 먹이라고까지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설명 중에서 가장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은, 첫번째 새끼가 죽었을 때를 대비해서 두 번째 새끼를 낳는다는 설명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쁘다’는 말이 있다.
  모든 어미는 제 새끼들이 잘 살아 주기를 바란다. 그러니 수리나 해오라기, 가마우지도 자기 새기들이 사이좋게 자라는 것을 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새 전체를 위해서는 어미새의 이런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함께 낳은 새끼 중 어떤 것은 힘이 세고 어떤 것은 힘이 약해서 늦게 태어난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죽기까지 하는 것이 더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더 많은 자손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자손을 남기려는 새의 종족에서는,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비정한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6. 동물계의 사냥꾼들
    육식 동물들이 먹이를 구하는 다양한 사냥 방법

      제6장 동물계의 사냥꾼들
    무리지어 사냥하는 동물들

  자연계에는 수많은 생물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생물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를 갖고 있다. 먹고 먹히는 관계의 가장 뒤에 있는 것은 사나운 맹수들이다.
  맹수들 중에는 반드시 혼자서 사냥을 하는 것도 있고, 둘씩 짝을 지어 사냥을 하는 것도 있다. 그리고 많은 수가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는 것도 있다. 이제부터 우리가 살펴 볼 동물은 이렇게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는 동물들이다.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사람들은 보통 그 이유를 훨씬 더 커다란 동물을 잡아먹으려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도는 사냥을 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동물계에는 아주 많은 종류의 동물이 있다.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짚신벌레도, 커다란 몸집의 코끼리도 모두 동물이다. 이런 여러 동물 중 가장 발달한 것은 포유류이다. 포유류에는 식육목이라는 갈래가 있는데, 식육이란 고기를 먹는다는 뜻이다. 다른 동물의 고기를 먹는 포유류를 식육목이라고 하는 것이다. 식육목에 속하는 동물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래서 다시 개과, 고양이과, 족제비과,곰과, 하이에나과, 판다과, 사향고양이과 등으로 나뉜다.
  식육목의 동물은 고기를 찢어 먹는 동물답게 날카로운 송곳니가 잘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주로 다른 포유류의 동물을 잡아먹고 살아간다.
  물론 그 중에는 곰이나 판다처럼 과일이나 나뭇잎을 주식으로 하는 것도 있고 너구리처럼 과일에서부터 곤충, 지렁이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잡식성 동물도 있다. 또 사향고양이과의 몽구스 중에는 곤충만 먹고 사는 것도 있다. 이헐게 같은 식육목의 동물이라고 해도 여러 가지를 먹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식육목 동물의 대표격이라고 하면 무리를 이루어 살면서 커다란 초식 동물을 사냥하는 사자와 이리일 것이다. 사자는 고양이과에 속하고 이리는 개과에 속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헐게 여러 마리가 함께 사냥을 하는 동물에 대한 두 가지 상식에 대해 자세히 조사를 할 것이다.
  우선 첫번째로는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면 훨씬 효과적으로 사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랬겠지만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이두 이야기를 상식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1972년에 몇몇 과학자들이 탄자니아의 국립공원에서 사자와 얼룩 점박이하이에나에 대해 연구를 하고, 그 내용을 책으로 발표하자 사람들은 두 이야기를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무리를 이루어 사냥하는 육식 동물로 가장 유명한 것은 고양이과의 사자, 개과의 이리, 그리고 하이에나과의 얼룩점박이하이에나이다.
  사람들이 흔히 믿고 있는 두 가지 상식을 검토하기 전에 우선 이들 사냥꾼들의 사는 모습부터 이야기해 보자.

    사냥꾼의 사는 모습 (1) - 사자

  사자는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무리에는 암컷과 수컷이 함께 있는데, 보통 수컷보다는 암컷의 수가 더 많다.
  이들은 2마리에서 18마리의 암컷과 2마리에서 7마리의 수컷, 그리고 이들의 새끼들이 함께 살아간다.
  암컷끼리는 서로 혈연 관계가 있고, 수컷끼리도 서로 혈연 관계가 있다. 하지만 암컷과 수컷 사이에는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다.
  혈연 관계에 있는 암컷끼리는 서로 아주 가갑게 지내고, 높고 낮은 지위도 없다. 암컷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새끼를 낳는데, 이때 태어난 새끼는 자기의 어미가 아닌 다른 암컷의 젖도 빨 수 있다.
  집단의 수컷들은 서로 형제간이다. 그리고 역시 높고 낮은 지위는 없다. 따라서 짝짓기를 둘러싸고 싸움을 벌이지도 않는다. 새끼를 밸 수 있도록 된 암컷에게 가장 먼저 다가간 수컷이 그 암컷과 짝짓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무리에서 태어난 새끼 암컷은 성장을 해서도 태어난 무리 속에 그대로 남는다. 하지만 수컷이 성장을 하면 형제들이 함께 무리를 이탈해서 젊은 수컷끼리 살아간다.
  이 젊은 수컷의 무리는 이리저리 다니면서 다른 무리를 넘본다. 물론 원래부터 그 집단에 있던 수컷들은 힘을 모아 젊은 수컷의 무리에 대항한다.
  젊은 수컷의 무리가 어렵사리 다른 무리를 빼앗은 후에는 그 속에 있던 새끼들을 물어 죽인다. 새끼들이 죽는 것을 본 암컷들은 똑같은 시기에 새끼를 밸 수 있게 된다. 그리고는 새로운 젊은 수컷들과 짝짓기를 해서 새로운 수컷의 자손을 낳는다.
  수사자의 몸무게는 대략 150--240킬로그램, 암컷은 122--182킬로그램이어서, 사바나(열대 초원)의 황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체격을 갖고 있다.
  사자들은 사냥을 할 때 풀숲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사냥감을 에워싸면서 살며시 다가간다. 사냥감에게 들키지 않고 10--50미터까지 가까이 다가가서는 갑자기 달려든다.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사냥감이 사자를 눈치채고 도망가기 시작하면 습격을 시작한다.
  사자는 시속 50--60킬로미터의 빠르기로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200미터 정도의 거리뿐이다. 더 멀리 달릴 때에는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없다. 사자는 단거리 선수인 것이다.
  사자는 속도와 몸무게의 이점을 살려 사냥감의 옆구리를 감싸안는 것처럼 하면서 순식간에 죽여 버린다. 그리고 사냥감의 몸집이 클 때에는 주둥이와 코를 감싸는 것처럼 물어서 질식시킨다. 사자의 사냥감은 주로 영양의 한 종류인 누(200킬로그램), 얼룩말(240킬로그램), 또 그보다 작은 영양 톰슨가젤(27킬로그램) 등이다. 하지만 때로는 몸무게가 5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물소나 1톤이나 되는 기린을 잡아먹을 때도 있다.

    사냥꾼의 사는 모습 (2) - 이리, 리카온, 돌, 얼룩점박이 하이에나

  이제는 사자 이외의 무리를 이루어 사는 사냥꾼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우선 이리부터 이야기하겠다. 이리는 10마리 정도가 무리를 지어 살아간다. 이들은 초원뿐만 아니라 울창한 숲 속까지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추운 툰드라 지역에서 생활할 수도 있다.
  이러가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리는 포유류 중에서 가장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이리의 무리는 암컷과 수컷의 한 쌍과 그 새끼들로 이루어진 가족이다. 1대 1의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암컷과 수컷, 그리고 그 새끼들로 이루어진 무리라고 하니 아주 작은 핵가족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리의 암컷은 한 배에 6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그런데 새로 6마리의 새기를 낳았다고 해도 그 전에 낳은 새끼들도 무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한 무리가 꽤 커지는 것이다.
  만일 짝짓기를 해서 새끼를 낳는 암컷이나 수컷 중 어느 한 마리가 죽으면 다른 곳에 있던 암컷이나 수컷이 그 자리를 채워서 새로운 쌍을 이룬다. 이리 새끼들은 새엄마나 새아빠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리는 다리가 긴 편이다. 그리고 키가 커서 달리기를 잘 할 수 있다. 몸무게는 50킬로그램 정도이다. 하지만 수컷은 80킬로그램 가가이까지 나가기도 한다.
  이리는 자기들이 사는 지역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가 냄새를 맡거나, 혹은 우연히 사냥감을 발견한다. 그러나 사냥감을 발견했다고 해서 항상 사냥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관찰에 따르면 이리때가 말코손바닥사슴(엘크)을 131번 발견했을 때, 사냥감 쪽으로 가가이 다가간 것은 96번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실제로 사냥감을 뒤쫓기 시작한 것은 겨우 53번이었다고 한다.
  이리가 사냥감을 추적할 때에는 지도자 이리가 앞장을 선다. 지도자 이리는 시속 40--65킬로미터의 속도를 꽤 긴거리를 추적한다. 때로는 3킬로미터를 넘는 거리를 달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리는 그렇게 긴 거리를 달리면서 사냥감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공격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를 결정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냥감을 실제로 습격하는 경우는 극히 적었다. 53번 중에서 단지 7번뿐이었던 것이다.
  공격은 무리를 지어 사냥감을 에워싸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사냥감을 에워싼 이리떼는 자꾸만 공격을 해서 상대방을 약하게 만든 다음 결국 스러지게 한다.
  이리의 사냥감은 주로 흰꼬리사슴(70킬로그램)이나 순록(91--272킬로그램)등이다. 5번에 4번 이상은 이들 동물을 잡아먹는다. 하지만 이리는 작은 몸집의 토끼나 비버도 잡아먹는다. 가장 몸집이 큰 사냥감은 말코손바닥사슴(엘크)으로서 몸무게는 평균 350킬로그램이나 된다.
  이번에는 리카온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리카온은 이리와 마찬가지로 개과에 속하는 동물이다. 리카온은 아프리카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데, 사바나(열대 초원)에서 무리를 이루어 사냥한다.
  이들은 많을 때에는 26마리가 함께 무리를 이루어 살아간다. 리카온 무리에는 수컷이 대부분이다. 암컷은 한두 마리 밖에 되지 않다. 수컷들은 서로 혈연 관계에 있는데 이들 중 우두머리 수컷만이 암컷과 짝짓기를 한다.
  이렇게 한 무리가 거의 모두 수컷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새로 태어난 새끼 중에서 수컷은 흩어지지 않고 자기가 속해 있던 곳에 그대로 남고, 암컷은 흩어져서 다른 무리로 떠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리카온의 몸무게는 18킬로그램 정도로 개만 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리카온은 이렇게 조그만 몸으로 무서운 맹수들과 함께 사바나(열대초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생활하고 있다.
  리카온의 세력권은 1300제곱킬로미터나 되는 넓은 지역이다. 이들이 주로 잡아먹는 동물은 톰슨가젤이나 커다란 영양인 누의 새끼들(60킬로그램)이다. 4번 중 3번은 이런 동물을 잡아먹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몸무게가 240킬로그램에 달하는 얼룩말을 잡아먹을 때도 있다.
  사냥감을 발견한 리카온은 천천히 사냥감 쪽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사자처럼 몸을 숨기지는 않는다. 맨 앞에서 사냥을 하는 리카온은 가끔씩 교체된다.
  리카온이 사냥감을 추적할 때의 빠르기는 시속 70킬로미터나 되며 추적하는 거리도 평균 2킬로미터나 된다. 때로는 4킬로미터에서 5킬로미터까지 추적할 때도 있다고 한다. 리카온은 지구력이 대단한 장거리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장선 리카온이 사냥감의 궁둥이나 꼬리, 혹은 콧등을 물고 늘어지면서 도망치지 못하게 하면 다른 것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쓰러뜨리는 방법으로 사냥을 한다.
  이제는 돌이라는 들개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돌은 중앙 아시아, 인도,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분포하는 들개이다. 돌은 13--18마리가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돌의 무리에도 리카온처럼 수컷이 많다. 몸무게도 리카온과 비슷하게 18킬로그램 정도인데, 주로 50킬로그램 이하의 사슴을 잡아먹고 산다. 돌이 살아가는 곳은 울창한 수풀이다. 따라서 사냥을 할 때에는 추적과 매복의 두 가지 작전을 모두 사용한다.
  마지막으로 얼룩점박이하이에나에 대해서 알아보자.
  하이에나과의 동물 얼룩점박이하이에나는 사바나(열대초원)의 청소부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다른 맹수들이 먹고 남긴 고기나 죽은 동물의 고기를 깨끗하게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하이에나는 그 생김새가 개와 비슷하지만 사실은 고양이와 더 가까운 동물이다.
  얼룩점박이하이에나는 암컷과 그 새끼를 중심으로 무리를 이룬다. 여러 암컷과 그 새끼들을 중심으로 해서, 여러 수컷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얼룩점박이하이에나의 무리는 50마리를 넘는 커다란 집단이 된다.
  얼룩점박이하이에나의 경우 암컷과 수컷 사이는 그리 탄탄하게 맺어져 있지 않다. 또한 암컷의 무리 쪽이 수컷 쪽보다도 훨씬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여러 수컷과 암컷 사이에서 짝짓기가 일어나면, 여러 암컷이 같은 동굴에서 새끼를 낳는다. 그러나 사자처럼 암컷이 사이좋게 새끼를 함께 키우지는 않는다. 얼룩점박이하이에나의 어미는 자기 새끼한테만 젖을 먹인다.
  얼룩점박이하이에나의 몸무게는 50--60킬로그램 정도이다. 그리고 주로 커다란 몸집을 가진 영양(누)이나 그 새끼를 잡아먹고 살아간다. 또 얼룩말을 잡아먹기도 한다.
  얼룩점박이하이에나는 누를 사냥할 때에는 1마리에서 3마리가 함께 뒤를 쫓는다. 그러나 얼룩말처럼 큰 동물을 사냥할 때에는 4마리에서 20마리까지 함께 뒤를 쫓는다. 그리고는 사냥감이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게 되면 이곳 저곳을 물고 늘어져서 쓰러뜨리는 것이다.

    첫번째 상식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여러분은 떼지어 사냥하는 동물의 특징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흔히 믿어져 온 상식을 하나하나 검토해 보자.
  우선 첫번재 상식에 대해 알아보자. 첫번째 상식이란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면 자기보다 훨씬 큰 동물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 다음의 표를 살펴보기 바란다.

  표 1) 사냥감의 크기와 사냥꾼 암컷의 평균 몸무게의 비율
  사냥꾼  가장 큰 사냥감의 몸무게의 비율  자주 잡아먹는 사냥감의 몸무게의 비율
  사자  7.45  1.06
  이리  7.00  1.04
  리카온  13.05  1.50
  돌  13.88  2.77
  얼룩점박이하이에나  4.70  3.06
  호랑이  2.78  0.54
  치타  4.13  0.26
  표범  3.98  1.08
  퓨마  6.17  2.44

  표1)은 지금까지 소개한 동물들이 자기 몸집에 비해 얼마나 큰 사냥감을 잡는가를 나타낸 것이다.
  세로로 가운데 줄에 있는 숫자는 가장 커다란 사냥감의 몸무게가 사냥꾼 암컷과 비교해서 몇 배인가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즉, 사냥꾼 암컷의 몸무게를 1이라고 했을 때, 가장 큰 사냥감의 무게를 나타낸 것이다.
  오른쪽 줄의 숫자는 이 사냥꾼들이 자주 잡아먹는 사냥감의 몸무게가 암컷의 몸무게와 비교해서 몇 배인가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표1)을 보면 무리를 이루어 사냥하는 사냥꾼들은 자기 몸보다 훨씬 커다란 동물도 잡아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몸집이 작은 편에 속하는 리카온이나 돌의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그러면 이번에는 표의 아래쪽에 있는 동물과 비교해 보자. 호랑이나 치타, 표범, 퓨마는 모두 혼자서만 사냥을 하는 것들이다.
  잘 비교해 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퓨마나 치타, 표범이 잡아먹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동물은 얼룩점 박이하이에나나 이리, 사자가 잡아먹을 수 있는 것과 비교했을 때, 그리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면 쉽게 사냥에 성공 할 수 있을까? 우선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는 동물들이 사냥을 시도해서 어느 정도나 성공하고 있는지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다음의 표를 잘 살펴보기 바란다.
  표 2) 2마리 이상이 함께 사냥할 때 성공할 확률
    사냥꾼: 사자
  사냥감  사냥의 성공률(%)
  톰슨가젤  31-33
  누,얼룩말  13-43
    사냥꾼: 이리
  사슴  25-63
  말코손바닥사슴(엘크)  5.3-7.8
    사냥꾼: 리카온
  가젤  85
  누  17-50
    사냥꾼: 얼룩점박이하이에나
  새끼 누  73
  누  33-56
  얼룩말  34
    사냥꾼: 치타
  톰슨가젤  37-56
    사냥꾼: 자칼
  톰슨가젤의 새끼  84.6

표2)의 오른쪽 줄에 적혀 있는 숫자는 100번 사냥을 시도했을 때 몇 번 정도 성공하는가를 나타내 주는 것이다. 표를 보면 무리를 이루어 사냥하는 동물이라고 해서 쉽게 사냥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한다고 해서 큰 몸집을 가진 동물도 쉽게 잡아먹을 수 있다고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건, 혼자서 사냥을 하건 어느 때나 자기 몸보다 커다란 동물을 잡아먹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초식 동물이라고 하면 무조건 온순한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사냥꾼이 다가오면 있는 힘껏 도망을 치지만 만일 잡히게 되면 꼼짝없이 사냥꾼의 밥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초식 동물이라고 해서 언제나 그렇게 온순한 것은 아니다. 몸집이 커다란 초식 동물은 맹수의 습격을 받았을 때에는 그 맹수에게 반격을 가한다. 예를 들어 얼룩말의 경우에는 뒤를 쫓아오는 맹수를 튼튼한 뒷다리로 힘껏 뒷발질을 해서 걷어차 버린다. 이렇게 반격을 받아 상처를 입는 맹수는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몸집이 큰 초식 동물 중에서 실제로 맹수들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병이 들거나 늙어서 허약해진 것이 대부분이다.
  무리를 이룬 사냥꾼이라고 해서 커다란 몸집의 동물을 만났을 때 숫자만 믿고 함부로 달려들 수는 없다. 아무리 무리를 이루었다고 해도 커다란 동물을 쉽게 잡아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도 자기 나름대로 사냥하는 방법을 터득하려고 노력을 한다. 수가 만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자의 경우에는 커다란 초식동물을 만나면 목구명과 코를 감싸는 것처럼 물어서 질식시키는 방법을 쓴다. 이 방법은 아주 효과적이다.
  이리, 리카온, 하이에나는 먼 거리를 끝까지 쫓아가면서 사냥감이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공격을 개시한다.
  표1)에서 알 수 있듯이 맹수들이 잡아먹는 동물은 주로 자신과 몸집이 비슷하건 조금 큰 것들이다. 그렇지만 무리를 이루어 사냥하는 것들과 혼자서 사냥하는 것을 비교해 보면, 무리를 이룬 쪽이 조금쯤은 큰 동물을 사냥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무리를 이루어 사냥하면 자기 몸집보다 훨씬 커다란 동물을 사냥할 수 있다’고만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성공하지 못하는 때가 성공하는 때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이제는 두 번째 상식을 살펴보기로 하자.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면 자기보다 훨씬 더 커다란 동물을 사냥할 수 있다’라는 말은 그른 것으로 판명이 났지만 두 번째 상식,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면 사냥의 성공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는 옳을 수도 있다.

    두 번째 상식에 대해서

  사자가 톰슨가젤이나 누, 얼룩말을 사냥할 대 함께 사냥에 나서는 사냥꾼의 숫자가 많아지면 사냥의 성공률은 더 높아질까? 또 얼룩점박이하이에나의 경우에는 어떨까? 사냥의 성공률이 더 높아질까?
  그래서 과학자들이 사냥꾼의 수와 사냥의 성공률에 대해 조사를 해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를 다음의 표로 정리했다.

  표 3) 사자의 경우 사냥꾼의 숫자와 사냥 성공률의 관계
  사자의수  사냥의 성공률(톰슨가젤  누와 얼룩말
  1  15  15
  2  31  35
  3  33  12.5
  4-5  31  37
  5마리이상  33  43

  표 4) 얼룩점박이하이에나의 경우 사냥꾼의 숫자와 사냥 성공률의 관계

  얼룩점박이하이에나의수  사냥 성공률(새끼누)
 1  15
  2  77
  3마리이상  88

표3)과 표4)에 적혀 있는 숫자는 성공률로서, 사냥을 100번 시도했을 때 몇번 성공하는가를 나타낸 것이다.
  표를 잘 살펴보기 바란다. 제일 먼저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마 다음과 같은 사실일 것이다. 사자나 얼룩점박이하이에나 모두가 사냥에 함께 나서는 동물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냥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정도나 사냥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는지 자세히 살펴보기 바란다. 양쪽 모두 갑자기 성공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냥에 나선 동물이 한 마리에서 두 마리로 늘어났을 때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상으로 사냥꾼의 솟자가 늘어나는 경우에는 성공률이 그리 많이 높아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자는 몇 마리가 모여서 사냥을 해야만 가장 효과적으로 사냥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계산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2마리가 모여서 사냥을 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사냥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함께 사냥에 나서는 사자가 많아진다고 해서 무조건 사냥이 효과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책장을 넘겨서 앞의 표2)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표2)에서는 사자, 이리, 리카온, 얼룩점박이하이에나가 무리를 지어 사냥할 때의 성공률을 2마리 이상이 모여 사냥하는 경우 하나로 모아 나타내었다.
  2마리 이상이 모여 사냥을 할 때에는 2마리에서 3마리, 4마리, 5마리로 사냥꾼의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도, 사냥의 성공률에서 커다란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표2)를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기 바란다. 표의 윗부분은 2마리 이상이 함께 사냥을 하는 동물을 표시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래쪽에 있는 치타와 자칼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치타는 혼자서 사냥을 하고, 자칼은 언제나 2마리가 함께 사냥을 하는 동물이다.
  보통 몸집의 동물을 사냥할 때 무리를 이룬 사냥꾼의 성공률은 혼자 사냥을 하는 치타보다는 조금 높다. 하지만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칼의 성공률보다는 높지 않다.
  자칼은 개과에 속하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동물이다. 보통 짝을 이루고 살고 있으며 많은 수의 집단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자칼 한 쌍이 톰슨가젤의 새끼를 사냥하면, 십중팔구 사냥에 성공한다.
  자칼의 사냥 방법으 독특하다.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사냥감의 주의를 끌고 있는 사이, 다른 한 마리가 뒤에서 공격하는 것이다.
  사자의 경우 가장 효율적으로 사냥할 수 있는 경우는 2마리가 함께 사냥할 때였다. 그리고 자칼처럼 언제나 2마리가 함께 사냥에 나서는 동물은 사냥에 성공할 때가 많았다.
  그러니 이제는 사냥을 할 때 그리 많은 사냥꾼이 함께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함께 사냥을 하려면 2마리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는 동물에게는 다른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사냥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도 한 무리 속에 들어 있는 구성원이 너무 많을 때에는 문제가 생긴다. 아무래도 한 마리 앞에 돌아가는 먹을 것의 양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이리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과학자들은 모든 이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얻을 수 있기 위해서는, 한 무리가 어느 정도의 크기면 좋을지 계산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결과는 2만리에서 5마리 정도의 이리가 함께 무리를 이루는 편이 가장 좋다는 것이엇다. 그러나 앞에서 이리의 생활을 살펴보았던 것처럼, 이리는 10마리 정도가 함께 생활을 해 나간다. 그러니 가장 적당한 크기의 2배에서 5배나 되는 커다란 무리를 이루어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자, 이제 정리를 해 보자.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는 여러 동물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흔한 상식이 있다. 하나는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면 자기보다 몸집이 훨씬 커다란 짐승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면 사냥에 성공할 때가 훨씬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을 첫번째 상식도 두 번째 상식도 전혀 틀린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꼭 그렇다고 하는 것은 무리임을 알 수 있다.
  이들 무리를 이루는 사냥꾼들은 애써 함께 사냥에 나선다고 해도, 사냥감의 크기면에서나 사냥의 효율면에서나 그리 커다란 이익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사자나 이리, 리카온, 얼룩점박이하이에나 같은 동물들이 함께 무리지어 살아가는 데에는 반드시 그 나름대로의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냥을 하는 데 있어서 이렇게 별로 이득이 없다면, 이들 무리를 이루는 사냥꾼들은 대체 어떤 이유로 여럿이 함께 모여 사는 것일까? 우리는 이제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풀어 가려는 사람들답게, 그 이유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여럿이 함께 사는 이유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나름대로 그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을 해 왔다. 우선 첫째, 어떤 과학자는 그 이유를 애써 사냥한 먹이를 다른 사냥꾼들이 가로채 가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보았다.
  우선 코요테를 예로 들어 보자. 코요테는 개과의 동물로서 북아메리타 대륙에서 살아가는 동물인데 몸길이는 1미터 정도이다. 모습은 이리와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몸이 작고 주둥이가 뾰족하고 귀가 큰 특징을 갖고 있아.
 이 코요테는 겨울이 되면 여름보다 많은 수가 모여서 무리를 이룬다. 겨울에 이렇게 커다란 무리를 이루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 이유는 여럿이 무리를 이루어 살면 겨울의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은 짐승의 시체를 더 잘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다른 무리로부터 자신들을 더 잘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맹수들, 특히 사자와 리카온, 얼룩점박이하이에나 등은 주로 열대의 초원(사바나)에서 생활하는 것이었다. 사바나에는 여러 종류의 맹수가 살아가고 있다. 자기와 같은 종류도 있고 다른 종류도 있다.
  따라서 만일 수가 적다면 애써 사냥을 하거나 짐승의 시체를 발견해서 얻은 먹이를 다른 맹수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수가 함께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면 식량을 빼앗기지 않는다.
  따라서 사자와 리카온, 얼룩점박이하이에나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는 이유를 달리 설명하는 과학자도 있다. 그것은 한 마리가 커다란 동물을 공격할 때에는 부상을 당할 우려가 있지만 여러 마리가 무리를 이루어 공격을 하면 그런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을 뒷받침해 주는 확실한 자료는 아직 나와 있지 않다.
  또 다른 설명도 있다.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면 가끔씩은 커다란 동물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에 먹이를 구하기가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다시 책장을 넘겨 표1)을 보자.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는 동물은 주된 사냥감의 크기와 가장 큰 사냥감의 크기 사이에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무리를 이루어 사냥을 하면 혼자 사냥하는 동물에 비해 먹이의 사정이 훨씬 여유로워지는 것이다.
  자연계에서 사는 동물들은 환경이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가 없다. 어떤 때는 어느 한 종류의 사냥감이 갑자기 줄어들 수도 있다. 이 때 많은 종류의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다면 훨씬 유리할 것이다.
  이리 같은 경우에는, 이들이 여러 가지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갈 수가 있다고 본다. 주위 환경에 따라 동물의 종류가 달라져도, 잘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넓은 지역에 분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자에 대해 연구를 계속해 온 과학자는 사자가 무리를 이루어 사는 이유를 전혀 다르게 설명하기도 한다. 사자의 경우에는 어미 사자의 모성애 때문에 어느 정도씩 무리를 지어 살아간다는 것이다.
  잠시, 앞에서 이야기한 사자가 사는 모습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사자의 경우 성장한 암사자들은 어미와 함께 살아가지만, 성장한 수사자의 형제는 따로 떨어져 젊은 수사자의 무리를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이 젊은 수사자의 무리는 언제나 다른 사자의 무리를 넘본다고 했다.
  이 때 적당한 수의 구성원을 가진 사자의 무리는 그보다 적거나 많은 구성원을 가진 무리에 비해 덜 공격을 받는다고 한다. 따라서 암사자들은 서로 협조를 해서 무리의 구성원 수를 조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수사자의 무리에 의해 공격을 받으면 자기가 낳은 새끼들이 죽을 것이므로 서로 협동해서 그런 사태를 막는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우선 사자는 비교적 큰 동물을 사냥한다. 그리고 같은 지역에서 꽤 많은 사자가 살고 있다. 또 사자가 살아가는 곳은 열대의 초원이므로 탁 트여 있어 먼 곳 까지 볼 수도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사냥감이 될만한 동물은 다른 많은 맹수의 주목을 끌게 된다. 따라서 어미 사자는 딸 사자를 그대로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 먹이를 나눠 먹는다고 해도 그리 손해를 보지 않게 된다.
  딸 사자의 입장에서 보아도 비록 자기 몫으로 떨어지는 고기는 좀 적어진다고 하지만 어미 사자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편이 더 유리하다. 사바나에서는 같은 지역에서 상당히 많은 수의 사자가 살고 있으므로, 만일 독립을 하면 사냥에 미숙한 딸 사자들은 걸핏하면 굶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미 사자와 딸 사자 사이의 협력 관계가 생겨나게 도고, 사자의 집단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사자가 무리를 이루는 이유를 비교적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리나 리카온은 무리에 남아 있는, 먼저 태어난 새끼들이 어미와 함께 협동해서 나중에 태어난 새끼들을 길러 준다. 이런 점도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리의 경우에는 먼저 태어난 새끼들이 동생들을 그리 열심히 돌보지는 않는다.

    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무리를 이루어 사냥하는 동물에 대해서 두 가지 기본적인 상식을 짚어 보았다. 또한 동물이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여러분도 이 과정을 통해서 무리를 이루어 사냥하는 이유를 딱 두 가지로 제한해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무리를 이루어 사냥하는 이유는 단순히 훨씬 큰 동물을 잡으려는 것이나 사냥감을 더 잘 잡으려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리를 이루어 살고 사냥하는 이유는 각 동물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여러 가지 사실을 골고루 생각한 후에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생각해야 할 것들은 너무도 많았다.
  ‘어떻게 해야 먹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 사냥꾼들은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가? 사냥감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사냥감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또 사냥감은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가?
  이런 여러 조건을 잘 살펴보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동물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꼭 명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모든 동물이 ‘어떻게 해야만 더 많은 자손(혹은 유전자)을 남길 수 있을까?’를 중심에 두고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피를 나눈 자매이거나 모녀 사이인 암사자들이 협력하는 것도, 리카온처럼 먼저 태어난 새끼들이 나중에 태어난 동생들을 함께 키우는 것도 모두 더 많은 자손을 남기려는 본능에서 우러나온 행동인 것이다.
  어쨌든 동물의 생활을 둘러싼 조건은 너무도 다양하다. 따라서 그 생태를 분명히 밝히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적은 자료로부터 일반적인 해답을 찾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다.
  사자와 이리, 리카온, 얼룩점박이하이에나 같은 동물이 무리를 이루어 사냥하는 이유를 더 큰 동물을 더 잘 사냥하려는 것으로 보는 앞의 도 가지 상식은 이렇게 적은 자료를 가지고 일반적인 결론을 내리려고 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앞의 두 가지 상식을 주장한 사람들을 비난할 것까지는 없다. 그런 주장을 했기 때문에 사자 등이 무리를 이루어 사냥하는 이유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고, 따라서 여러 가지 새로운 생각이 제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고 해서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기만 하면 과학의 발전에는 커다란 해를 미치게 된다.
  우리는 언제든 이전에 갖고 있던 낡은 생각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는 동물들도 언제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생활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과학에는 결코 변하지 않는 진실이란 없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에 대해 현재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도 새로운 발견에 의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새로운 사실을 더 많이 밝혀 나가면서 우리는 보다 새로운 눈으로 자연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과학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7. 물 속의 깡패, 악어
    불완전한 성, 온도에 따라 성이 달라진다.

      제7장 물 속의 깡패, 악어
    공룡의 후손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물 중 가장 징그럽고 못생긴 것은 무엇일까? 뱀, 아니면 두꺼비, 쥐 하고 여러분들은 열심히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징그럽고 못생겼을 뿐 아니라 사악하고 음흉하기까지 한 것으로 악어를 당할 만한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악어는 물 속에 몸통을 전부 담그고 가라앉아 마치 육중한 바위덩어리처럼 물결따라 일렁거리다가 가까이 먹이가 나타나면 가늘고 기다란 뱁새 눈을 치뜨고 사정거리까지 슬며시 접근하여 한입에 해치워 버리는 무서운 폭력배이다.
  악어는 지금으로부터 1억 5천만년 전쯤인 중생대에 이 지구 위를 주름잡던 공룡의 후손이다. 그 옛날의 공룡처럼 엄청난 크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몸길이가 10미터에 달하는 바다악어도 있다.
  악어는 공룡의 후손답게 성질 또한 난폭할 뿐 아니라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통나무배를 꼬리로 후려쳐서 두 동강 내거나 뒤집어 버린다. 체구에 비해 훨씬 큰 입을 가지고 있으며 이빨도 톱날같이 날카로워 한번 물렸다 하면 십중팔구는 두동강으로 잘려나간다.
  다른 파충류들처럼 악어도 육지와 물 양쪽에서 다 살 숭 있는 수륙 양생 동물이다. 육지에서는 풀숲에 돌처럼 위장하여 움직이지 않으며 물 속에 있을 때에는 다른 동물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흙탕물을 일으키고는 수심 20--25센티미터의 얕은 곳에 몸통을 담그고 콧구멍만 빠끔히 내놓고 숨을 쉰다. 이중으로 된 눈꺼풀이 있어 흙탕물 속에서도 물 밖을 잘 감시하고 있다가 목마른 동물이 물을 마시러 주둥이를 물에 담그는 순간 잽싸게 달려들어 날카로운 입으로 물어뜯는다. 눈깜짝할 사이에 당하고 만 희생물이 죽을 힘을 다해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면 유연하면서도 강한 악어 꼬리로 360도 회전하며 다리를 후려갈겨 쓰러뜨린 다음 물 속으로 끌고 들어와 빙빙 돌려 정신을 빼놓는다.
  이렇게 하여 사슴과 같은 동물들을 익사시킨 후에 동료들을 초대한다. 물 속의 피냄새를 맡고 달려든 악어떼들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먹이를 깨끗이 먹어치운다. 이때 재미있는 사실은 먹이를 사냥한 악어는 단 한 점의 고기도 먹지않고 다만 다른 악어들이 먹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는 점이다. 부모는 자식이 먹는 것만 보아도 배가 부르다라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일까?
  그렇다고 해도 악어가 비겁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악어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일대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는 법이 없다. 또 같은 악어들 사이에서도 누가 먼저 급소를 기습해서 항복을 받아내느냐에 따라 우열을 가려낸다. 때문에 정답게 모여 사는 것 같지만 실생활에서는 항상 긴장 초조와 전투 태세로 연명해 가는 어리석은 동물인 것이다.

    하마에게 꼼짝 못하는 악어

  하지만 이 악어 깡패에게도 천적이 있다. 즉, 체중이 큰 하마와 사람에게는 꼼짝도 못하는 것이다. 하마도 악어처럼 수륙 양생 동물로 하루에 보통 8--12시간을 수중에서 생활한다.
  더운 한낮에 한 무리의 악어떼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을 때 커다란 덩치의 하마떼가 악어의 무리 속으로 접근해 오면 악어떼는 민첩하게 하마를 유인하며 턱밑이나 다리를 톱니 같은 이빨로 물어 피투성이로 만들어 놓는다. 그러면 약이 오른 하마는 악어를 한입에 물어죽이려는 기세로 덤벼든다. 이때도 악어는 날렵하게 몸통을 움직이며 억센 꼬리를 180도 좌우로 흔들어 하마의 육중한 몸통을 흠씬 두글겨 패주고는 꽁지야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친다.
  이쯤 되면 여러분은 하마가 악어에게 졌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를 이끌고 하마는 악어떼가 놀고 있는 곳 깊숙이 잠수하여 복수하러 간다. 물 속에서 치솟으면서 입을 쩍 벌린 하마가 악어의 허리통을 덥썩 낚아채 사정없이 좌우로 흔들면 힘센 깡패 악어도 힘 한번 못쓰고 그대로 허리가 꺾이며 죽게 된다. 그래서 악어는 늪지대나 물 속에서 자리를 잡고 깡패 노릇을 하다가도 하마떼가 나타나면 슬며시 도망치고 만다.

    더우면 수컷, 추우면 암컷? -온도에 따라 성이 달라진다

  악어는 8월에서 10월 초 사이에 미리 파 놓은 땅굴 속에 알을 낳는데 그 수는 약 20--30개 정도이다. 낳은 알에 흙을 얇게 덮은 다음 몸으로 품어 부화시키는데 이 기간은 3개월 정도가 걸린다. 알에서 부화된 새끼 악어는 태어난 즉시 사방으로 흩어져 기어간다. 그러나 육상에는 이들 악어 새끼들을 노리는 적들이 많으므로 어미 악어는 식음을 전폐하고 알에서 깬 새끼가 육지 쪽으로 가지 못하게 긴 몸통으로 막아 물 속으로 인도한다.
  땅속에 알을 낳아 흙으로 덮고 그 위에서 알을 보호하는 일은 순전히 암컷의 몫이다. 보통 다른 동물들은 암놈이 알을 품거나 보호하고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수컷이 그 곁에 머물며 먹을 것은 운반해 주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악어는 일단 신혼 여행에서 돌아오면 냉정하게 등을 돌리고 제 앞가림만 하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런데 악어의 알이 부화될 때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부화될 때의 온도가 어떠하냐에 따라 암컷이 나오기도 하고 수컷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악어류는 온도가 높은 곳에서는 수컷이, 온도가 낮은 곳에서는 암컷이 생겨난다. 깡패 악어의 탄생에는 이렇게 깜짝 놀랄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먼저 성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알아보자. 여러분은 왜 여자인가, 아니면 왜 남자인가?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와 조류는 모두 성염색체에 의해 성이 결정된다. 만일 여러분이 남자라면 어머니에게서 받은 성염색체 X와 아버지로부터 온 Y염색체가 합쳐진 XY염색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여자라면 어머니로부터 온 X염색체, 아버지로부터 온 X염색체가 모인 XX염색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합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될 때 이루어지므로 수정란에서는 이미 남녀가 결정되어 버린다. 따라서 그 뒤 환경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파충류의 성 결정은 이와 다르다. 파충류에서는 포유류와 조류처럼 명확한 성염색체를 지닌 종은 드물고, 보통 온도에 따른 성 결정이 많다. 수정시에는 성이 결정되지 않고 수정란이 발생할 때 온도에 따라 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성 결정은 파충류 중에서도 악어류와 거북류에서 많이 확인되고 있다.
  미시시피악어는 풀로 둥우리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 알을 낳는다. 과학자들은 그 풀더미에 온도계를 꽂아 부화 온도를 측정하고, 부화했을 때 암컷인지 수컷인지를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연못과 같이 습한 곳에 위치한 둥우리에서는 암컷이 많이 나왔고, 건조한 땅에 있는 둥우리에서 부화한 알은 대부분이 수컷이었다. 이 사실을 놓고 결론을 이끌어 보자. 습한 곳과 건조한 곳의 차이는 무엇인가? 물론 수분이 많고 적음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없을까? 이들 악어들이 사는 곳이 대부분 더운 열대 지방임을 상기하자. 그렇다면 습한 곳은 시원하고 건조한 곳은 덥다라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결론은 나왔다. 악어는 온도가 낮은 곳에서는 암컷으로, 높은 곳에서는 수컷으로 부화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거북류는 악어와 반대의 결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즉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는 암컷이, 그늘진 곳에서는 수컷이 생기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미국의 붉은바다 거북은 산란지가 따뜻한 남쪽이면 90% 이상이 암컷으로 부화된다.
  여기까지 읽고 한 가지 걱정이 생긴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혼실 효과 때문에 지구의 온도가 께속 올라간다는데..  그렇다면 악어는 수컷이, 거북은 암컷이 훨씬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사실이 그렇다. 많은 학자들이 지구의 온난화로 온도에 따라 성이 결정되는 많은 동물에서 성비(암컷과 수컷의 비율)가 깨어지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
  왜 악어를 비롯한 많은 파충류들이 온도에 따른 성 결정을 하며, 이는 파충류의 생활에 어떤 이익이 되는가? 지구 생태계의 변화가 이들을 멸종시키지는 않을까? 등 많은 문제들이 더 연구되어야 한다. 이 중에는 여러분에 의해 밝혀지는 사실들도 있을 것이다.

      8. 꿀벌은 부지런한가
    부지런한 꿀벌의 감춰진 비밀

      제8장 꿀벌은 부지런한가
    빈둥빈둥 놀고 있는 꿀벌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중에도 꿀벌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만일 누군가의 별명이 ‘꿀벌’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 사람이 아주 부지런히 일하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꽃에서 꿀을 모아들이는 꿀벌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꿀을 따는 꿀벌은 쉬지 않고 붕붕거리면서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고 꿀벌은 쉬지도 않고 부지런히 일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꿀벌’하면 으레 열심히 일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꽃에 찾아간 꿀벌을 보라. 아주 열심히 꿀과 꽃가루를 모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눈을 파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꿀벌은 언제나 열심히 일만 하는 것일까?
  꿀벌이 정말로 부지런한가를 알아보려고 생각한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꿀벌의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벌집 상자를 마련하고 그 곳에 꿀벌을 키웠다. 그리고는 2000시간 이상 꿀벌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꿀벌에 대해 관찰을 한 결과는 우리가 예상한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대부분의 꿀벌은 그리 열심히 일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일하는 꿀벌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대다수의 꿀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있거나, 빈둥빈둥거리면서 이리저리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또한 멍하니 멈춰서 있는 꿀벌도 있었고, 자기 몸의 털을 다듬는 꿀벌도 있었다. 그리고 목수가 대패하는 것처럼 팔을 내밀었다, 당겼다하는 동작만 되풀이하는 꿀벌도 있었다.
  이런 꿀벌의 행동에서는 전체를 위해서 일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꿀벌이 보이는 이런 행동을 일에 포함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꿀벌이 어느 정도의 시간을 일하면서 지내는지 조사해 보기로 했다. 여기서 말하는 일이란 다른 많은 꿀벌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벌집 청소하기, 애벌레에게 먹이 주기, 여왕벌이나 수펄에게 먹이 주기, 벌집 만들기, 꿀 모으기, 꽃가루 모으기, 벌집 수리하기, 꿀 숙성시키기, 애벌레의 방이나 꿀을 저장한 방을 덮어 주기, 보초 서기 등과 같은 일을 말한다.
  과학자들은 꿀벌이 이런 일을 하는 시간이 전체 중에서 몇 %나 되는가를 조사해 보았다.
  그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꿀벌이 하는 행동은 75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일이라고 할만한 행동은 40가지로 절반이 조금 넘었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하는 시간으 절반이 넘지 않았다. 평균해서 27.8%였다. 4분의 1이 조금 넘는 것이다. 결국 꿀벌은 하루 24시간 중 6시간 반 정도를 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꿀벌은 일만 하면서 사는 부지런한 동물이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은 보통 하루에 8시간씩 일을 하고 있다. 따라서 꿀벌은 사람보다도 더 적게 일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람에게는 토요일과 일요일과 공휴일, 그리고 휴가가 있다. 하지만 꿀벌은 휴일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과 꿀벌은 거의 비슷한 시간을 일을 하면서 보낸다고 할 수 있다.
  사람과 꿀벌이 이렇게 거의 비슷한 시간 동안 일한다고 해도, 꿀벌과 사람이 일하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 사람은 정해진 시간 동안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잠도 자고, 놀기도 하고, 쉬기도 한다. 하지만 꿀벌은 전혀 다른 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
  꿀벌이 일하는 모습을, 회사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에 빗대어 나타내 보겠다. 그러면 꿀벌이 어떤 식으로 일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꿀벌의 사무실

  우선 꿀벌의 사무실에 대해 설명을 해야 겠다. 꿀벌의 사무실은 사람들의 사무실과는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꿀벌의 사무실에도 책상 위에는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의 자료와 사무 기기가 죽 늘어놓여 있다. 그런데 사무실의 입구는 한가운데에 있다. 그리고 출구는 사무실의 바깥쪽에 있다.
  꿀벌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원들은 놀랍게도 회사에서 필요한 일은 모두 다 할 수 있는 만능 일꾼이다. 따라서 한 사원이 이 일을 할 수도 있고, 저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꿀벌의 사무실 안에는 어떤 일을 맡겨도 해낼 수 있는 이런 사원이 꼭 필요한 인원의 2배에서 3배나 되는 많은 수로 항상 바글거리고 있다. 게다가 한가운데에 있는 입구에서는 계속 새로운 사원이 투입되고 있다 따라서 바깥쪽의 출구로도 똑같은 수의 사원이 빠져나가고 있다.
  그리고 꿀벌의 사무실에서는 상사나 부하의 높고 낮은 관계는 전혀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명령하고 명령을 받는 관계도 없다.
  또한 사무실에 들어온 사원 중에는 게으름을 피우는 사원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분명히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봉수씨를 택해서 봉수씨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봉수씨는 사무실 중앙에 있는 입구를 통해서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일을 하력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할 일보다 일하려고 하는 사원이 더 많기 때문에 빈자리가 없었다. 봉수씨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디 할 일이 없을까 하고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봉수씨는 옆에 있는 봉철씨를 보았다. 봉철씨는 컴퓨터로 서류를 작성하다가 일손을 놓고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그 보습을 본 봉수씨는 화다닥 컴퓨터를 자기 쪽으로 돌려 놓았다. 그리고는 봉철씨가 일하던 곳을 이어서 서류룰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잠시 후에는 서류가 완성되었다.
  다시 할 일이 없어진 봉수시는 다른 일을 찾아 어슬렁거렸다. 봉수씨 뒤로도 새로운 사원 여러 명이 입구를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봉수씨는 이리저리 마음대로 다니고 싶었지만 한가운데의 입구에서 계속 들어오는 사원들 때문에 조금씩 바깥쪽으로 밀러가게 되었다.
  봉수씨는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면서 책상 주면을 어슬렁 거렸다. 물론 일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어디 할 일이 없나 하고 주위를 살피고는 있었다. 그런데 그런 봉수씨의 눈에 봉숙씨의 모습이 들어왔다. 봉숙씨는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봉수씨는 기회는 이때다, 하고 봉숙씨의 자리로 갔다. 그리고는 봉숙씨가 정리하고 있던 금전 출납부를 가져왔다. 그리고 전자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열심히 계산을 맞추었다. 계산 맞추기를 5분 정도 계속하던 중에, 봉수씨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래서 전화를 받다가 봉만씨에게 자기 일을 빼았겨 버렸다.
  다시 할 일이 없어진 봉수씨는 점점 바깥쪽으로 밀려 복사기 옆으로 다가가게 되었다. 마침 그 때, 복사를 하고 있던 봉희씨가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봉석씨를 불렀다. 봉수씨는 기회는 이 때다 하고 복사하는 일을 시작했다. 복사를 하는 중에 봉수씨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봉수씨는 복사기 가까운 곳에서 일을 찾고 있던 봉순씨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리고는 손님을 맞으러 간다. 손님이 돌아갔다. 다시 할일이 없어진 봉수씨는 소파에 앉아 낮잠을 잤다. 옆의 소파에는 봉화씨가 앉아서 손톱을 깎고 있었다.
  봉수씨는 외쳤다.
  “일은 너무 적어요. 제발 일을 하게 주세요...”
  봉수씨는 계속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의 사회에서는 이런 회사가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꿀벌의 사회에서는 모든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어 간다. 일손이야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필요한 일은 누군가가 하고 있다.
  여러분의 눈에는 꿀벌의 일하는 모습이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분명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는 꿀벌들은 일을 너무 비능률적으로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꿀벌들은 이렇게 빈둥빈둥하면서도 하루 평균 6시간 반씩 일을 하고 있다. 또한 명령을 내리고 명령을 받는 상사와 부하도 없이 평등하게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다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아주 훌륭한 작업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남아도는 일손을 이용해서 평등하게 작업을 하는 방식을 ‘빈둥빈둥 분업’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물론 여기서 빈둥빈둥이라는 말은 꿀벌들이 일부러 게으름을 피운다는 뜻이 아니다.
  분업이란 여럿이 일을 나누어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빈둥빈둥 분업이란 계속 일을 나누어 하는 것이 아니라, 일꾼이 너무 많아 평소에는 빈둥빈둥거리다가 일이 생기면 맡아 한다는 뜻이다.
  이제까지 꿀벌은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차 다른 일을 맡아 하는 것으로만 생각되어 왔다. 즉 ‘날수에 따라 구분되는 분업’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꿀벌이 날수에 따라 구분되는 분업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자칫하다가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날수에 따른 분업’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꿀벌들이 마치 며칠부터 며칠까지는 어떤 일을 하고 다음 며칠부터 며칠까지는 다른 일을 하는 식으로 일한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하지만 꿀벌들은 실은 하루하루 날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일로 옮아가고 있다.
  자, 그렇다면 빈둥빈둥 분업과 날수에 따른 분업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빈둥빈둥 분업이란 꿀벌의 분업이 일의 양에 비해 일꾼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날수에 따른 분업은 꿀벌의 분업이 꿀벌이 성장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은 서로 다른 이유로 꿀벌의 분업이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 아닌가? 어느 쪽이 옳을까? 혹시 어느 한 쪽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모두 꿀벌의 분업을 일으키는 원인인 것은 아닐까?

    ‘날수에 따른 분업’과 ‘빈둥빈둥 분업’

  과학자들은 꿀벌의 분업이 왜 일어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꿀벌의 몸에 있는 내분비선과 분업의 관계를 조사해 보았다.
  내분비선이란 호르몬을 직접 몸 속으로 내는 기관이다. 꿀벌뿐만 아니라 곤충은 모두 내분비선을 갖고 있는데, 목 부근에는 알라타체라는 내분비선이 있고 가슴의 앞쪽에는 전흉선이 있다. 이 두 가지 내분비선이 함께 일을 해서 곤충이 변태(탈바꿈)를 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조사한 결과는 일의 변화에 따라, 꿀벌의 몸에 있는 내분비선도 변화해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하루하루 날이 감에 따라 내분비선이 발달해서 그 결과로 꿀벌이 다른 일을 맡게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날수에 따른 분업’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 의심을 품는 사람도 있었다. 꿀벌의 몸에 있는 일의 변화에 따라 꿀벌의 내분비선이 변화하는 것을 정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하는 일이 변화함에 따라 내분비선이 발달하거나 약해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특별한 일에 종사하면 그 일과 관련된 내분비선이 발달해 간다는 것을 연구한 사람도 있었다.
  앞에서 꿀벌의 사무실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를 이야기했다. 한가운데에 입구가 있고 바깥쪽에 출구가 있는 구조였다. 꿀벌의 집도 꼭 그런 구조를 갖고 있다.
  그림처럼 각이 진 상자에 꿀벌의 벌집을 만들어 보자. 그러면 움직일 수 있는 판이 그 속에 만들어진다. 그리고 상자는 각이 져 있어도 이 판은 둥그런 모양으로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벌집에서도 가운데 부분은 따뜻하다. 온도가 섭씨 35--36도 정도로 유지외는 것이다. 여왕벌은 이렇게 온도가 안정되어 있는 곳에서만 알을 낳는다. 따라서 이 가운데 부분은 애벌레를 키우는 구역이 된다. 그 둘레에는 꽃가루를 저장하는 구역이 있다. 그리고 다시 그 주위로 꿀을 저장하는 구역이 있다.
  이 세 구역의 바깥쪽으로는 벽이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이 바깥 벽에는 출입구가 있다. 새끼를 키우는 구역에 여왕벌이 알을 낳으면 그것이 깨나서 애벌레가 된다. 애벌레는 다시 번데기 상태를 거쳐 날개를 단 젊은 꿀벌이 된다.
  2만 마리가 사는 벌집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수백 마리의 꿀벌이 날개를 달고 새로운 엄지벌레가 되어 나오고 있다. 날개를 달고 나온 젊은 꿀벌은 우선 가까운 곳에서 일거리를 찾는다.
  하지만 계속 새로운 벌이 날개를 달고 나오기 때문에, 전에 나온 벌은 자꾸 바깥쪽으로 밀려나게 된다. 일렇게 밀려가면서 꿀벌은 계속 가까운 곳에서 일거리를 찾는다. 그리고 꿀벌은 앞에서 이야기한 사원들처럼 무슨 일이든지 익숙하게 처리할 수 있다. 따라서 가까운 곳에 있는 일거리는 어느 것이든지 맡아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벌집의 구조에 따라 꿀벌이 하는 일은 점차로 달라져 간다. 결국 하루하루 나이를 먹으면서 일이 달라지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바깥쪽으로 밀려 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에서처럼 꿀벌의 사무실을 묘사했던 것이다. 그때에도 봉수씨는 바깥쪽으로 나감에 따라 다른 일이 놓여 있었기 때문에 점차 바깥쪽으로 밀려 나가면서 다른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봉수씨뿐만 아니라 사무실에 있던 다른 모든 사람들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츰 바깥쪽에 있는 일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날수에 따른 분업’은 꿀벌의 집의 구조에 따라 정해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꿀벌의 분업은 본래 일보다 일꾼이 많기 때문에 생긴 ‘빈둥빈둥 분업’이지만, 벌집의 구조가 특수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날수에 따른 분업’을 하는 것으로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이을 먹어가면서 생기는 생리적인 변화가 먼저 일어나고 그것에 따라 분업이 결정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꿀벌에게 알라타체 호르몬을 투여했더니 행동의 변화가 생겼다는 보고도 있다.

    어느 ‘분업’이 옳은가?

  그렇다면 벌집의 구조에 따른 빈둥빈둥 분업에 의해 꿀벌의 일이 변화해 가는가, 아니면 성장해서 생리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일을 찾아가는가를 정확하게 알아낼 방법은 없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꿀벌의 분업이 일꾼의 수가 많은 것이 주된 이유인가, 아니면 생리적인 변화가 주된 원인인가를 밝히는 실험을 해야 할 것이다.
  만일 간츤 시기에 날개를 달고 엄지벌레가 된 여러 마리의 꿀벌을 갖고 실험을 하면 어떨까? 이렇게 나이가 같은 꿀벌을 한꺼번에 관찰하면 빈둥빈둥 분업이 옳은지, 날수에 따른 분업이 옳은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빈둥빈둥 분업’이 옳다면 새로 날개를 달고 나오는 벌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똑같은 일을 계속할 것이다.
  또 만일 ‘날수에 따른 분업’이 옳다면 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다른 일을 하려고 할 것이다. 생리적 변화에 의해서 하는 일도 변화되기 때문이다.
  실험을 해 보았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결과는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빈둥빈둥 분업’쪽에 유리하게 나왔다. 벌들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저 맡은 일을 묵묵히 계속했던 것이다. 그리고 꿀벌이 보이는 행동에서 ‘날수에 따른 분업’을 한다는 증거는 조금도 없었다. 날이 흐르면서 변하는 점이 한가지 있기는 했다. 그것은 밖에 나가 꿀이나 꽃가로를 모아 오는 일은 대개 시간이 좀 흐른 후에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이제 실험을 정리할 때가 된 것 같다.
  실험 결과를 보면 꿀벌은 주로 ‘빈둥빈둥 분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날수에 따른 분업’은 ‘빈둥빈둥 분업’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꿀벌이 하루하루 나이를 먹음에 따라 알라타체 호르몬에 변화가 일어난다. 따라서 몸의 각 부분에 있는 내분비선이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면 밖에 나가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생리적인 변화라는 것은 어디가지나 덜 중요한 원인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할 일보다 일꾼의 수가 더 많다는 것이다. 결국 꿀벌의 숫자에 의해 행동이 조절되는 ‘빈둥빈둥 분업’방식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곳이다.
  여러분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꿀벌이 부지런한 줄 알았는데, 사실을 게으른 곤충이로군! 매일 빈둥빈둥거리기만 하고 말이야.”
  평소 빈둥거리는 데다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오랫동안 일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분명히 꿀벌은 빈둥빈둥거리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꿀벌을 게으르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꿀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는 빈둥빈둥 분업이 가장 효과적으로 필요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9. 혹등고래의 노래
    동물과의 대화, 과연 가능할 것인가

      제9장 혹등고래의 노레
    동물과 사람의 대화

  산에 올라갔다가 다람쥐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다람쥐는 사람을 보면 깜짝 놀라 재빨리 달아나 버린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산에 가서 다람주를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떨까?
  다람쥐뿐만 아니라, 쥐와 고양이, 개, 토끼, 참새, 사자 등 모든 동물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리고 하늘을 나는 매를 불러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가가을 갖고 있었다.
  동화책을 보면 마법사가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 사실을 보아도 사람들이, 특히 어린이들이 동물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얼마나 바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한데 자기가 동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 때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방은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 말 같은 애완 동물이나 가축들이다. 집에서 오래 기른 동물은 주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다는 뜻인데, 이 때 동물은 사람의 말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인의 말에 익숙해지는 것뿐이다. 또한 동물도 주인에게 말을 할 수는 없다. 그저 주인이 동물의 행동을 보고서 어떤 뜻인지 아는 정도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동물과 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를 한 과학자가 두 사람 있었다. 이 과학자들이 대화를 나눌 대상으로 삼은 동물은 고래와 돌고래였다.
  돌고래와 사람들이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존 릴리였다. 그리고 고래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 내용을 해석하려는 연구를 진행한 사람은 미국의 비교해부학자 윌리엄 시빌이었다.
  이 두 과학자가 돌고래나 고래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돌고래나 고래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애완 동물도 아니요, 가축으로 키우지도 않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연구 대상을 이 동물로 정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겠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플리니우스라는 고대 그리스의 장군이 있었다. 그는 장군인 동시에 박물학자였는데 37권이나 되는 대백과 전서 ‘박물지’를 편찬 하기도 했다.
  그런데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지중해의 바닷가에는 어떤 남자가 살고 있는데, 그는 돌고래를 훈련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그는 시사를 할 때면 돌고래를 자기 옆으로 불러오곤 했다. 그리고 어딘가를 다녀올 때는 돌고래가 배웅을 하기도 하고, 마중을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돌고래의 등을 타고 바다를 건너기도 했다.”
  어떤가? 돌고래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니, 생각만으로도 즐겁지 않은가? 돌고래를 타고 푸른 바다에 하얀 물살을 남기며 건너가는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러고 보니 우리 나라에서 있었던 일도 기억이 난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떤 뱃사람이 배가 난파되어 바다에 빠졌다가 돌고래는 아니지만 거북이 등을 타고 다니다가 구조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의 일인데, 뉴질랜드의 오포노니 마을에서는 돌고래 한 마리가 나타나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었다고 한다. 어느날 오포노니 마을의 바닷가로 돌고래 한 마리가 찾아왔는데, 그 돌고래는 사람들을 잘 따랐다. 사람들이 몸을 쓰다듬어도, 아이들이 올라타도 싫어하지 않았다. 또 사람들에게 공을 가지고 노는 재주도 보여 주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가끔 돌고래 쇼가 열리기도 한다. 돌고래는 다양하고 멋진 쇼를 보여 줄 정도로 사람의 말을 잘 따른다. 그래서 돌고래가 영리한 동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래의 말

  존 릴리와 윌리엄 시빌, 두 사람의 학자는 1949년 가을, 우연한 기회에 서로를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고래들이 갖고 있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특별한 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특별한 점이란 고래의 대뇌 반구에 사람보다 더 많은 주름이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고래 뇌의 크기가 상당히 크다는 것이었다.
  릴리는 고래가 가진 커다란 뇌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사람이 땅에 살고 있는 지적 동물이라면 고래는 바다에 살고 있는 지적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대개 커다란 뇌를 가진 동물은 지능이 높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과 고래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사람과 고래라는 서로 다른 종류의 동물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길을 찾으려는 독창적인 연구 계획을 세운 것이다.
  드디어 1959년, 릴리는 카리브 해의 세인트 토마스 섬에 연구소를 차렸다. 그리고 연구 활동에 들어갔다.
  1965년 출판된 ‘인간과 돌고래’라는 책에서, 릴리는 그때까지 연구한 것을 한데 모아 발표했다. 그의 과학적인 상상력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연구가 성공으로 끝나기를 바랐다.
  릴리는 ‘고래는 인간보다 우수한 지능을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 연구소를 창설할 때에는 ‘10년 정도만 연구하면 인간과 돌고래 사이의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런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그 뒤로 릴리의 연구는 별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급기야 연구소 문을 닫게 되었다. 결국 릴리의 꿈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시빌의 계획은 릴리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는 고래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래서 고래의 발성 기관을 비교해부학적인 방법과 생리학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연구에 들어갔다. 그는 이 연구를 기초로 해서, 바다라는 자연적인 조건에서 고래의 행동을 연구하고, ‘고래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해석하는 일’에 중점을 둔 연구를 추진해 왔다.
  시빌의 목표는 고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고래와 고래 사이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이었다. 이는 릴리의 목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시빌의 연구는 고래의 말을 해석하는 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70년에 ‘혹등고래의 노래’라는 레코드 판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돌고래를 연구하던 미국의 과학자들은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과학자들은 한 개의 수족관에서 두 마리의 돌고래를 함께 길렀다. 그리고 이 구 마리의 돌고래에게 두 장의 그림을 보여 주면서 그림을 구별하도록 가르쳤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었다. 돌고래에게 물고기의 그림과 돌멩이의 그림을 보여 준다. 그리고는 물고기의 그림을 보았을 때에는 왼쪽 단추를 누르도록 하고, 돌멩이 그림을 보았을 때에는 오른쪽 단추를 누르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두 마리의 돌고래는 훈련 과정을 마친 후 두 장의 그림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과학자들은 돌고래가 사는 수족관을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과학자들은 수족관의 한 쪽에 각 한 마리씩의 돌고래가 들어가도록 했다. 그리고는 한 쪽 돌고래에게만 그림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그림을 보여 준 돌고래가 있는 곳에는 단추를 만들어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림을 보여 주지 않은 돌고래가 있는 쪽에 단추를 달아 놓았다.
  자, 이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림을 보지 못한 돌고래가 단추를 눌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돌고래는 단추가 없는 곳에 있는 돌고래에게 보여 준 그림에 맞추어 단추를 눌렀던 것이다.
  단추가 없는 곳의 돌고래에게 물고기의 그림을 보여 주면, 그림을 보지 못한 돌고래가 왼쪽 단추를 누르고, 돌멩이의 그림을 보여 주면 오른쪽 단추를 눌렀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그림을 본 돌고래가 단추를 누른 돌고래에게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어떤 그림을 보았는지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이 때, 돌고래들이 사용한 것은 목소리 신호였다. 다시 말해 돌고래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돌고래 사이의 말을 녹음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전해지는지는 아직 모르고 있다.
  그렇다면 돌고래는 필요할 때에는 언제나 자기 동료에게 말을 전할 수 있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돌고래는 사람과 비슷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한다고 보아야 한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사람과 고래의 대화’, 그리고 ‘고래 사이의 대화’는 자칫하면 혼동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과 고래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고래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지금까지 고래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나누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착실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사람과 고래라는 서로 다른 종류 사이에 대화를 나누려는 시도는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고래의 언어를 해서했다고 해도, 아직은 사람이 일방적으로 고래들이 이야기하는 데 끼어들어 독단적으로 분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시빌이 말하는 ‘혹등고래의 노래’역시 혹등고래가 부른 노래(울음소리)를 듣고, 그 노래가 어떤 뜻의 이야기일 거라고 사람들이 마음대로 상상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동물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그것을 재생하고, 그것을 분석하려고 하는 관련 기술이 나날이 놀라운 발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새로운 연구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따라서 동물의 대화에 대한 연구도 한 걸음씩 차근히 진전되고 있다. 이제 멀지 않아 ‘사람과 고래의 대화’까지 실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현대는 컴퓨터나 인공 두뇌가 응용되면서 고도의 정보화 사회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과 동물 사이에 음성으로 된 정보를 교환하는 일도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돌고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저 꿈 같은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런데 고도 정보화 사회가 되면 언젠가 사람의 사회에서는 어느 한 사람의 생각을 다른 사람이 자유롭게 내다 볼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학 소설에서 많이 등장하는 장면인데,  사람의 머리에 헬멧 같은 것을 씌우고 복잡한 기계에 연결하면 화면에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나타난다는 식이다.
  만일 이렇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사회에서라면 인간의 존엄성이 부정되지는 않을까?
  과학의 발전이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인간성은 상실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사회에는 커다란 위기가 닥칠 것이다. 그런 희생을 치르고서 고래나 돌고래와 대화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고래와의 대화는 차라리 동화의 세계에서 등장하는 꿈으로만 놓아 두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동물계에서 인간만큼 머리가 좋은 것은 고래와 돌고래이다’라든다, ‘사람과 고래의 대화’, ‘고래의 말을 해석한다’라는 식의 생각이 나타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해 보았다.
  그렇다면 고래와 돌고래는 정말 그렇게 영리한 동물일까? ‘영리하다’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눈치가 빠르고 지능이 뛰어나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돌고래나 고래를 가리켜서 ‘영리하다’고 말할 때, 그 말의 뜻은 그리 간단하게 보이지 않는다.
  세계 곳곳의 수족관에서 자라는 돌고래를 관찰해 보면, 여러 가지 놀랄만한 재주를 보여 준다. 그래서 금방 영리한 동물이라고 생각하고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가리켜 ‘영리하다’고 하는 것일까?
  보통 사람의 뇌보다 주름이 훨씬 더 많은 돌고래의 뇌의 구조를 통해서 ‘영리하다’라는 이야기를 음미해 보자.

    고래의 지능은 사람보다 높은가?

  고래의 뇌를 살펴보면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첫째로 고래의 뇌가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고래의 뇌는 클 뿐만 아니라 무겁기도 하다.
  둘째로 고래는 대뇌의 반구에 아주 복잡한 주름이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척추동물의 대뇌는 모두 두 개의 반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고래의 대뇌 반구에는 주름이 많이 있다.
  이 두 가지 점은 다른 동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지금까지 고래 중에서 가장 무거운 뇌를 가지고 있던 것은 몸길이가 15미터나 되는 향유고래이 수컷이었다. 그 뇌는 무게가 9.2킬로그램이나 되었다. 이는 고래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지구상에 있었던 모든 동물을 통틀어 가장 무거운 뇌였다.
  사람의 뇌의 무게는 1.4킬로그램 정도이다. 그러니 수컷향유고래의 뇌는 사람에 비해 6배 이상 무거운 것이다.
  하지만 몸집이 커다란 동물은 일반적으로 몸의 크기에 비례해서 커다란 뇌를 갖고 있다. 따라서 단순하게 뇌의 무게만을 비교하는 것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여러 가지 종류의 동물이 가진 뇌의 무게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음의 표는 몸집이 커다란 동물부터 쥐까지, 각종 동물의 뇌의 크기와 몸무게를 비교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비교한 결과를 뇌의 무게가 전체 몸무게의 어느 정도나 차지하고 있는가를 계산한 것이다.
동물  뇌의무게  몸무게  뇌의 무게:몸무게
향유고래  9200그램  50톤  1:5435
인도코끼리  6000그램  5톤  1:833
사람  1400그램  60킬로그램  1:43
돌고래  1200그램  150킬로그램  1:125
바다코끼리  900그램  2톤  1:2222
고릴라  500그램  160킬로그램  1:320
듀공  250그램 262킬로그램  1:1048
붉은털원숭이  76그램  13킬로그램  1:171
다람쥐원숭이  40그램  1킬로그램  1:25
생쥐  2그램  25그램  1:13
  이 표의 맨 오른쪽에 있는 숫자는 몸무게가 뇌의 무게의 몇 배인가를 나타내 주는 것이다. 그러니 숫자가 작으면 작을수록 몸집에 비해 뇌가 크다는 뜻이 된다.
  표를 보면 뇌의 무게만을 볼 때에는 세계 제일인 향유고래가 몸무게와 비교했을 때에는 포유류 전체에서 가장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돌고래는 뇌의 무게를 보아도 사람과 비슷하고, 몸무게와 비교했을 때에도 고릴라와 붉은털원숭이 같은 영장류를 제치고 사람과 비슷한 점을 보이고 있다.
  릴리 박사가 ‘고래가 인간보다도 우수한 지능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 것은 이런 계산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몸집이 커다란 고래는 그렇지 않지만 작은 고래, 즉 돌고래의 뇌는 크기나 무게만으로 생각하면 사람처럼 훌륭한 뇌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돌고래 중에서도 뇌의 무게가 다른 것의 절반도 안 되는 돌고래가 있다. 이 돌고래는 강돌고래이다. 강돌고래는 돌고래의 조상형 동물오 생각되어진다.
  돌고래라고 하면 흔히 끝도 없이 넓은 바다를 마음대로 헤엄쳐 다니는 바다 동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강돌고래는 민물에서 사는 돌고래로서, 아주 커다란 강에서 살아가고 바다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강돌고래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강돌고래도 오랜 옛날에는 바다를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며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다에서의 생존 경쟁에 패배하여, 강으로 숨어들어 겨우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이 오늘날 볼 수 있는 강돌고래이다.
  강돌고래는 지금까지 다섯 종류가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 3종류가 아시아에서 살고 있으며, 남아메리카 대륙에 2종류가 살고 있다. 아시아의 강돌고래는 모두 중국의 양쯔강(흔히 양자강이라고 함)에서 살고 있으며, 남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아마존 강과 라플라타 강에서 살고 있다.
  양쯔 강은 중국의 중앙부를 흐르는 커다란 강이다. 아마존 강은 남아메리타 북부를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 대서양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강을 말하는데, 그 강의 유역은 브라질, 페루, 볼리비아,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기아나등의 여러 나라에 걸쳐 있다. 라플라타 강은 아르헨티나와 우로과이 사이를 흐르는 강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강돌고래는 돌고래의 조상형 동물이다. 이는 강돌고래가 원시 돌고래의 화석에서 보이는 성질을 많이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강돌고래처럼 오래 전에 살고 있던 생물의 화석과 비슷한 성질을 많이 가진 생물을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부른다. ‘살아 있는 화석’은 생물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알려 주는 귀중한 생물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5종의 강돌고래가 보이는 뇌의 발달 상태는 바다에 사는 돌고래와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몸길이가 2.5미터까지 자라는 양쯔 강의 강돌고래는 다 자란 것의 뇌의 무게가 500그램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나 같은 크기의 바다 돌고래는 뇌의 무게가 1000그램 정도이다.
  그러니 몸집이 엇비슷하고, 몸무게도 비슷한 것을 골랐을 때, 강돌고래의 뇌의 무게는 바다 돌고래의 뇌의 무게에 비해 절반밖에 안 되는 것이다.
  과거 강돌고래의 무리는 뇌가 잘 발달해 있지 않았으므로 바다에서의 생존 경쟁에서 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주름인 많이 잡혀 있는 돌고래의 뇌

  지금까지는 고래가 가진 첫번째 특징, 즉 뇌가 크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고래의 두 번째 특징인 뇌에 주름이 많이 잡혀 있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돌고래의 대뇌 반구에는 주름이 상당히 복잡하게 발달해 있다.
  여기서 잠시 침팬지라는 동물 이야기를 하겠다. 여러분은 침팬지의 모습을 텔레비젼 화면을 통해 자주 보았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영화 타잔에서 나오는 치타라는 이름의 침팬지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이 치타는 아주 영리해서 타잔, 제인과 함께 밀림을 파괴하는 문명인을 응징하고 있다.
  영장류의 동물 중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것은 이 침팬지이다. 이들이 사는 곳은 열대 아프리카 지방이다.
  수컷 침팬지의 키는 약 1.5미터로 사람보다 조금 작고, 몸무게는 약 80킬로그램으로 사람보다 조금 더 나간다. 그리고 침팬지의 털 색깔을 검정색 또는 어두운 갈색이고, 얼굴 모습의 특징은 귀가 크다는 점이다.
  침팬지는 지능이 아주 높고 성격도 명랑하다. 울창한 숲이나 열대의 초원 사바나에서 떼를 지어 사는데, 아무것이나 잘 먹는다.
  침팬지가 다른 원숭이에 비해 유명한 이유는 사람을 잘 따르고, 사람이 가르친 재주를 부릴 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침팬지의 뇌는 사람의 뇌와 아주 비슷한 모양을 갖고 있다. 침팬지의 뇌를 그대로 조금만 확대하면 사람의 뇌와 거의 같은 모습이 된다.
  그러면 이제 침팬지의 뇌와 돌고래의 뇌를 비교해 보기로 하자.
  침팬지의 뇌와 돌고래의 뇌를 비교해 보면, 우선 침팬지의 뇌는 세로 방향이 긴 계란 모양이고 무게는 400그램 정도이다. 그리고 돌고래의 뇌는 가로로 긴 모양이도, 무게는 1000그램 정도이다.
  이제는 대뇌 반구에 있는 주름의 모양을 비교해 보자. 우선 침팬지의 뇌 주름도 상당히 복잡하게 잘 발달해 있다느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고래의 뇌는 훨씬 더 복잡한 주름이 미로처럼 꼬불거리고 있다.
  주름이 많고 적은 것이 과연 동물의 지능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만일 지능과 뇌의 주름 사이에 관계가 있다면 왜 그런 것일까?
  주름이 많으면 대뇌의 표면적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 곳에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대뇌의 구조를 알아야 하겠다. 대뇌를 잘라 그 자른 면을 살펴보면 대뇌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두 부분이란 겉껍질에 해당하는 피층과 속이다.
  대뇌의 피층은 대뇌 치질이라고 불리는데, 이 부분은 연한 회색으로 보이고, 신경 세포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리고 대뇌의 속 부분은 대뇌 수질이라고 불린다. 이 부분은 흰색인데, 신경 섬유가 모여 있는 곳이다.
  색깔 때문에 대뇌 피질은 회백질이라고, 대뇌 수질은 백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뇌 피질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신경 세포가 여섯층으로 겹겹이 모여 있다. 그리고 대뇌 수질에서는 신경 세포가 아니라 신경 세포에서 나와 있는 기다란 신경 섬유의 다발이 보인다.
  그러므로 대뇌의 표면적이 커지면 커질수록 신경 세포의 수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대뇌의 주름과 동물의 지능이 서로 상당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신경 세포 하나가 하나의 정보를 처리하고 있다는 식으로 가정해 보자. 그러면 신경 세포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뇌에서 보다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가정이 사실이라면 대뇌에 있는 주름이 많이 발달해 있으면 있을수록, 대뇌의 표면적이 커지고, 따라서 뇌가 정보를 더 잘 처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주름이 많아 대뇌의 표면적인 커진다고 해도, 만일 신경 세포가 조밀하게 모여 있지 않으면 주름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런 뜻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돌고래의 대뇌 피질에는 신경 세포가 얼마나 조밀하게 모여 있는가를 조사해 보았다. 그랬더니, 결과는 돌고래의 뇌에 있는 신경 세포도 사람이나 침팬지 같은 영장류의 대뇌 피질과 같은 정도로 조밀하게 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리지웨이는 돌고래처럼 물에서 사는 포유류에 대해 연구하는 미국의 과학자이다. 그는 돌고래의 대뇌 피질의 표면적을 계산했다.
  그는 수족관에서 멋진 묘기를 부리는 돌고래의 경우를 예로 들어 계산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이 돌고래의 뇌의 무게는 사람과 거의 비슷했지만 표면적은 돌고래쪽이 1.5배나 더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신경 세포의 수도 돌고래쪽이 그만큼 더 많았다.
  그렇다면 돌고래는 이토록 많은 신경 세포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 돌고래의 뇌에 숨어 있는 수수께끼를 푸는 길은 뇌의 주름에 들어 있는 신비를 푸는 길일 것이다.
  고래의 조상은 육지에서 사는 포유류에서 진화해 나온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들 고래의 조상은 물 속에서도 살아 갈 수 있도록 적응을 해 왔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 돌고래의 뇌에 잘 발달해 있는 주름이, 물 속에서 살아가는 일과 어떤 관련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나온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물속에서 사는 다른 포유류와 비교해 보는 편이 가장 좋을 것이다.
  고래를 제외한 현재의 포유류 중에서, 평생을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계속 물 속에서 살아가는 것으로는 바다소 무리의 동물이 있다.
  바다소 무리에 속하는 동물은 바다소와 듀공이 있다. 바다소는 뒷다리가 퇴화해서 없어졌고, 꼬리지느러미가 있는 온순한 포유류로서 겁이 많고 동작이 둔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듀공은 바다소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얕은 바다에서 살아간다. 이 듀공은 새기를 가슴에 안고 젖을 먹이는데, 그 모습을 멀리서 본 사람들이 듀공을 인어로 착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듀공은 인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바다소와 듀공이 진화한 과정은 고래와 비슷하다. 즉 아주 오래 전에, 육지에서 살던 포유류가 물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다소나 듀공에 대해 조사를 해 보면, 고래의 대뇌 피질에 주름이 많은 것이 물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끔 진화한 일과 연관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바다소나 듀공의 뇌에서 고래의 뇌와 같은 공통점이 발견된다면, 돌고래의 뇌에 주름이 많은 것은 포유류가 물속 생활에 적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바다소의 뇌는 아주 작았다. 몸길이가 4미터, 몸무게가 500킬로그램이나 되는 다 자란 바다소의 뇌가 고작 500그램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대뇌의 표면에는 주름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바다소의 대뇌는 마치 감자처럼 보였다. 때문에 대뇌의 표면적도 아주 작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물 속에서 살아가도록 진화한 일과 대뇌의 주름사이에는 직접적으로 아무 관련도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른 동물과의 대화

  릴리 박사가 ‘사람과 돌고래의 대화’를, 그리고 시빌이 ‘고래 언어의 해석’에 대한 연구를 제창한 지 4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는데도 불구하고, 릴리 박사와 시빌이 애초에 세운 목표에는 아직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나아갈 길이 순탄하지는 않은 것이다.
  최근에는 침팬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한 연구도 많이 진전되어 오고 있다. 따라서 돌고래와의 대화보다는 침팬지와의 대화 쪽이 다른 동물과의 대화에 더 빨리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포유류 중에서 새처럼 하늘을 자유로이 날 수 있는 박쥐에 대한 연구도 진전되고 있다. 이 박쥐는 바다에 사는 고래나 돌고래처럼 특별한 초음파를 쏘아서 그것의 메아리를 통해 물체의 위치를 파악한다. 그리고 이 초음파로 다른 박쥐들과 신호를 주고받기도 한다.
  돌고래와 박쥐에게 공통된 이 신호를 주고받는 수단을 보다 정확하게 알명, 돌고래와 대화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어찌 되었든 21세기 초에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가 판명될 것이다.

      10. 어려서는 수컷, 자라서는 암컷
    성 전환하는 물고기의 신비로운 생활상

      제10장 어려서는 수컷, 자라서는 암컷
    물고기의 성전환

  물고기 가운데는 살아가면서 암컷이었다가 수컷으로, 수컷이었다가 암컷으로 변하는 것이 있다. 즉, 성을 바꾸는 것이다. 이를 어려운 말로 성 전환이라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아니 물고기가 성 전환을 하다니, 세상에 그럴 수가?’하고 무척 놀라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렁이도 암수 한몸이라고 하던데, 뭐 물고기 정도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고기가 어떻게 그런 일을...’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사람의 성 전환을 연상한 것이겠지만 사람의 성 전환과 다른 동물들의 성 전환은 근본적으로 아주 다르다. 사람의 경우에서 난소와 정소 등의 생식기 전체를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외과 수술로 성기를 바꾸고 호르몬을 투여하여 2차 성징의 일부를 변화시킨다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성 전환이라고 해도 외견상의 변화일 뿐 번식 기능은 변화시밀수 없다. 남자가 여자처럼 아이를 낳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편 동물의 성 전환은 사람의 경우와는 상당히 다르다. 동물은 번식 기능을 강화시키기 위해 성 전환을 하고 있다. 사람은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 성 전환을 하지만 일부 동물의 세계에서는 자연적으로 일어난다. 또 사람의 경우 성 전환은 매우 드문 일이지만, 성전환을 하는 동물에서는 병이든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종의 개체를 대다수에서 일어난다. 다시 말해 사람은 성전환을 하는 유전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지만, 동물의 경우 성 전환을 지시하는 유전 프로그램이 있어 거기에 따라 성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물고기 정도라면...’하는 견해는 타당한 것인가? 이러한 사실은 소위 하등한 생물은 고등한 생물처럼 성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 간단하게 성을 바꿀 수 있다는 데서 나왔을 것이다.
  실제로 물고기 이외의 척추동물에서 성 전환은 함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하등한’동물일수록 암수 한몸(자웅동체)인 경우가 많고 성 전환이 잘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또 육상 척추동물에 비하여 물고기는 암컷이나 수컷의 기능을 위한 행동이나 형태가 덜 분화되어 물고기가 쉽게 성 전환 할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따라서 물고기가 하등하기 때문에 성 전환을 한다는 생각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떠한 물고기에서 성전환이 일어나는가를 자세히 조사해 보면 이 의견도 꼭 맞다고는 할 수 없다.
  전세계에는 민물고기(담수어)와 바닷물고기(해수어)를 합쳐 약 20,000종 가량의 물고기가 있다. 이 가운데에서 성전환하는 것으로 알려진 물고기는 약 400종 정도이다. 아직 조사되지 않은 물고기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이 숫자는 앞으로 계속 증가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체의 5-10% 수준을 초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성 전환하는 물고기는 소수라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성 전환하는 수백 종의 물고기가 세계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이 중에는 도미나 놀래기과의 물고기처럼 거의 모든 개체가 성 전환하는 무리도 있지만, 대부분의 다른 종류 물고기들은 일부만이 성 전환을 한다. 이것은 어류의 성 전환이 어떤 특정한 무리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여러 부리에 골고루, 독립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즉, 원래 어류는 암컷과 수컷이 확실히 구별되는 암수 딴몸(자웅 이체)이었으나 살아가는 과정에서 일부러 성 전환하게끔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물고기의 성 전환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물고기는 실제로 어떤 식으로 성 전환을 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청소부 물고기의 성 전환 -암컷에서 수컷으로

  물고기의 성 전환에는 암컷에서 수컷으로 변하는 경우과 수컷에서 암컷으로 되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다. 암컷에서 수컷이 되는 경우는 놀래기, 붉돔(꽃도미) 등에서 수없이 보여진다.
  놀래기는 경골어류의 농어목 놀래기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사람들처럼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바다밑 모래 속에서 잠을 자는 특성이 있다. 겨울철 수온이 내려가면 동면하며 우리 나라의 다도해나 일본, 동지나 해, 남지나 해, 필리핀 연해에 분포한다. 여기서는 잘 조사되어 있는 청소놀래기의 에를 들어 보자.
  청소놀래기는 길이 10센티미터 정도의 날씬한 물고기로 머리에서 꼬리까지 흑, 백, 청의 줄이 나 있다. 이 물고기는 큰 물고기의 비늘이나 아가미에 붙어 사는 기생충뿐 아니라 이빨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를 먹어치워 깨끗이 청소해 주므로 ‘청소부 물고기’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이 청소를 해줄 때면 큰 물고기들도 좋아 아가미를 활짝 편 채 가만히 있는다. 그러다가 잡아먹히면 어쩌냐구? 글쎄, 큰 물고기가 자신을 청소해 주는 청소놀래기를 잡아먹는 일이란 절대 없다.
  그런데 청소놀래기와 비슷하게 생긴 한줄베도라치는 아주 못된 짓을 한다. 청소해 주는 척 큰 물고기에게 접근하여 아가미나 피부를 뜯어 먹는 것이다.
  열대 태평양에 광범위하게 서식하는 청소놀래기는 여러 마리가 모여 한 무리를 이루고 정해진 장소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한 장소에 그다지 오래 머물지 않고 다른 장소를 찾아 이동하는데, 청소놀래기들이 살다 간 곳의 물고기들은 이들에 의해서 깨끗이 청소되므로 이 장소는 ‘청소 정거장’이라 불린다.
  한번 무리에 들어온 물고기는 어린 물고기를 제외하고는 나가는 일 없이 안정되어 있다. 각 무리에서는 몸이 가장 큰 한 마리만이 수컷이고 나머지는 전부 암컷이다. 암컷이라해도 우열 관계가 몸의 크기에 따라 엄격히 정해져 있다. 암컷의 수가 많아지면 행동권이 다른 두 개 이상의 작은 무리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이 경우에 한 마리의 수컷이 암컷으로만 이루어진 작은 무리의 행동권을 오가며 군림한다.
  이처럼 청소놀래기의 사회는 일부 다처제로 한 마리의 수컷이 여러 마리의 암컷을 무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수컷을 제거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대답은 간단하다. 무리에서 가장 몸집이 큰 암컷이 수컷으로 성 전환을 한다. 왜일까? 그것음 암컷으로 있는 것보다 수컷이 되었을 때 더 많은 후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수컷은 매일 암컷들이 사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차례로 구애를 해서 알을 낳는 것이 가능하다. 암컷은 자신이 낳은 알의 어미만 되지만 수컷은 거주지 전체의 암컷이 낳은 모든 알의 아비가 된다. 즉, 수컷은 암컷에 비교하여 몇 배나 많은 자식을 남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청소놀래기 이외의 다른 놀래기들도 대부분 이렇게 한 마리나 극히 적은 수의 큰 수컷이 많은 수의 작은 암컷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러면 수컷에서 암컷으로 변하는 물고기는 어떻게 살아갈까? 그 대표적인 흰동가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바닷속의 연인, 흰동가리와 말미잘

  우리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바닷속 생물들도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서로 도우며 정답게 살아가는 경우도 많지만 남에게 빌붙어 간신히 살아가는 얌체들도 있다. 또 남에게 해를 입히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파렴치한도 있다.
  다른 종류의 두 동물이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것을 공생이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한다면 서로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는 상리 공생이다. 어느 한쪽만이 이익을 얻고 다른 한쪽은 이익도 손해도 없을 경우는 편리 공생이라 한다. 이들과는 달리 한쪽이 이익을 취함으로써 다른 한쪽이 일방적으로 해를 입는 관계는 기생이라고 한다. 회충, 십이지장충, 요충 등이 좋은 이름이 있음에도 기생충, 기생충하고 불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즉 이들 기생충들은 사람이나 동물의 몸속에 살면서 음식물이 소화되어 몸 속으로 보내지는 양분을 가로채서 자란다. 그 자신은 아무런 노력이나 대가도 치르지 않고 따뜻한 몸 속에서 남의 양분을 낼름낼름 받아먹는 그야말로 기생충인 것이다. 그러나 기생하는 것은 벌레(충)만은 아니다. 기생 동물들도 있다. 심지어 사람들도 그런 부류에 드는 경우도 있는데, 기생충 같은 인간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피난처를 얻는 데 성공!

  서로 돕고 살아가는 관계 중 재미있는 것으로 흰동가리와 말미잘의 공생을 들 수 있다. 여러분 중에서 흰동가리를 본 사람이 있는가? 아마 보았다 하더라도 그 이름은 잘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몸길이가 15센티미터 정도인 흰동가리는 납작한 타원형으로,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옆구리에 흰색의 가로띠가 몇 줄로 나 있다. 우리 나라 남해안에서도 볼 수 있는 이 흰동가리는 일본, 필리핀, 동인도 제도, 아프리카 동쪽 연안 등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
  흰동가리는 자신을 방어하는 아주 흥미로운 방법을 개발한 천재이다. 사실 흰동가리보다 훨씬 크고 힘센 물고기들이 먹이거리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는 바닷속은 무수히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결코 안전한 장소가 못 된다. 그래서 작고 힘없는 물고기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기발한 방법들을 개발해 낸다. 여기서 흰동가리는 말미잘과 손잡고 공동 전선을 구축하는 방법을 택했다.
  바닷속 밑바닥에 붙어 사는 강장동물 말미잘은 화려한 색깔의 그 촉수에는 무서운 독이 든 많은 자포가 있어 지나가는 먹이를 죽이기도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물고기는 감히 무서워 말미잘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명, 접근했다 하더라도 놀라 도망가버린다. 흰동가리는 바로 이 점을 이용했다. 만일 말미잘의 촉수가 내는 독에 견딜 수만 있다면 말미잘은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방패막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흰동가리는 하나의 말미잘을 자신의 피난처로 선택한 다음 그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말미잘의 촉수가 내는 독에 찔리고 도망갔다가 다시 찔리고 하는 힘든 과정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마침내 자신을 면역시킨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은 이렇게 며칠씩이나 걸리는 노력 끝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흰동가리와 말미잘의 천생연분

  한번 이렇게 흰동가리와 말미잘이 인연을 맺으면 흰동가리는 그 말미잘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다. 말미잘은 흰동가리를 먹이로 알고 접근하는 적들로부터 보호해 주고, 흰동가리는 말미잘의 촉수 사이를 누비며 자신이 먹다남긴 먹이를 떨어뜨려 주기도 하며 사이좋게 지낸다. 흰동가리가 말미잘 주위를 벗어나는 일은 좀처럼 없어 억지로 말미잘 밖으로 쫓아내어도 다시 되돌아온다.
  이처럼 촉수의 독에 면역되어 말미잘과 공생하는 것에는 갑갑류와 흰동가리를 포함한 어류의 일부가 있다. 어떤 열대산 대형 말미잘에서는 작은 물고기가 말미잘의 입에서 위장까지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도 있다.
  말미잘은 집게와도 아주 좋은 사이이다. 어떤 게는 작은 말미잘을 집게발로 집어 적으로부터 막아주고, 어떤 조개치레의 일종은 아예 말미잘을 껍질 위에 이고 다닌다.
  이처럼 말미잘과의 공생으로 잘 알려져 있는 흰동가리는 우리 나라를 비롯한 세계에 걸쳐 약 30종 가까이가 있다. 열대 태평양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 흰동가리는 살아가는 양식이 얼핏 보면 청소놀래기와 비슷하다. 즉 하나의 말미잘 내에 여러 마리의 흰동가리가 무리를 이루고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청소놀래기와 반대로, 가장 큰 물고기가 암컷이고 다음이 수컷, 그리고 그보다 작은 것들은 아직 성숙되지 않은 물고기이다. 생활공간이 말미잘과 그 주변으로 좁게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 말미잘 내에 사는 흰동가리 성어의 수는 두 마리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큰 것이 언제나 암컷이다. 이 암컷을 제거하면 수컷이 암컷이 되고 가장 큰 미성숙어가 수컷이 된다. 성 전환이 끝나고 다시 번식을 시작하기가지 걸리는 시간은 청소놀래기보다 길어서 2개월 이상이 걸린다.
  그렇다면 이 경우처럼 암컷이 없어졌을 때 수컷이 암컷으로 성을 전환하면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 다른 쉬운 방법으로 수컷은 그대로 있고 가장 큰 미성숙어가 암컷이 되어도 괜찮지 않은가?
  그러나 암컷이 낳은 알의 수는 개체의 크기에 비례하기 때문에 미성숙어가 암컷이 된다면 수컷이 암컷이 되는 경우보다 적은 수의 알을 얻게 된다. 결국 흔동가리도 청소놀래기와 마찬가지로 성 전환을 함으로써 자손의 수를 늘리는 것이다.
  이처럼 수컷에서 암컷으로 성 전환하는 흰동가리는 암컷과 수컷의 크기가 서로 다른 일부 일처제의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수컷에서 암컷으로 되는 다른 물고기들은 넓은 범위를 헤엄쳐 다니며 아무렇게나 짝을 짓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한 곳에 머무는 물고기들보다 조사하기 힘들기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성 전환에 관해서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과연 큰 것이 번식에 유리한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물고기는 자기 자손들을 더 많이 남기기 위해 성 전환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몸의 크기가 클수록 번식에서 유리하다는 가설, 즉‘몸길이 유리성’을 받아들여 체계화시킨 것이다.
  몸길이 유리성이라고 하는 것은 암컷에서는 몸의 길이와 산란 수가 비례한다는 것이고, 수컷에서는 몸길이와 만드는 자손 수의 관계가 사회 형태에 의해 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부 다처제의 사회에서는 큰 수컷이 많은 수의 암컷을 거느릴 수 있기 때문에 작은 수컷은 번식 집단에서 밀려나 자손을 남기는 일이 무척 어렵게 된다. 따라서 이 경우에서는 몸이 작은 것은 확실하게 알을 낳는 암컷으로 생활하다가 크게 된 후 수컷으로 성 전환하는 것이 유리하게 된다.
  이러한 가설은 꽤 유명한 이론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성 전환의 예들은 이것으로 설명되어진다. 그래도 의문점음 몇가지가 남는다. 우선 첫째로, 이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물고기들이 더 많다는 점이다. 이렇게 편리한 번식 방법이 있다면 왜 자연계에서 그다지 많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 전환에 따른 대가와 관계가 있다. 성 전환을 하게되면 거기에는 번식을 위한 시간이나 에너지의 낭비가 수반된다. 따라서 이러한 손실이 크다면 성 전환을 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둘째로, 몸길이 유리성이라는 가설에 명백하게 반대되는 경우는 없는 것인가?
  달마제라는 과학자는 물고리를 키우면서 실험을 하여 한 종류의 물고기가 암컷에서 수컷으로, 그리고 놀랍게도 수컷에서 암컷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와 같이 어류의 성 전환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직도 많이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얼핏 기묘하고 특수하다고 생각되는 물고기의 성 전환 현상이 암컷과 수컷의 관계나 성과 사회 관계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11. 물속의 곡예사, 히드라
    히드라의 놀라운 재생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제11장 물속의 곡예사, 히드라
    히드라의 재주넘기

  아득한 옛날, 생물이 처음 태어난 곳은 바다였다. 그 때 지구는 거의 모든 곳이 바다였다. 처음 태어난 생물은 세포의 모양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차츰 세포라는 복잡한 구조를 이루어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나의 세포가 하나의 생물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몇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생물이 생겨나게 되었다.
  태고의 바다에서 생물은 어떤 모습을 띠어야 가장 잘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시도를 해 보았다.
  식물은 차차 바닷말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같은 바닷말이라고 해도 그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겨우 한개의 세포로 되어 이“ㅆ는 작은 바닷말에서 길이가 20미터가 넘는 다시마도 있는 것이다.
  동물도 여러 가지 모습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동물 중에서 가장 간단한 것은 해변동물이있다. 그 다음으로 간단한 것이 강장동물이었다.
  강장동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을 꼽으라면 뭐니뭐니해도 히드라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히드라는 민물에서 사는 것으로, 물 속 바닥에 붙어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몸의 길이는 1센티미터 정도 된다.
  히드라는 바닥에 몸을 붙이고 실 같은 촉수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먹이를 찾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닥에 딱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히드라가 이동을 한다는 것이다.
  히드라가 이동을 하는 방법은 상당히 재미있다. 이동을 할 때에는 촉수를 아래로 뻗어 재주넘기를 하는 것이다. 여러분도 연못의 바닥이나 연못 속의 돌에 붙어 살아가는 히드라를 직접 관찰할 수도 있다. 만일 운이 좋아서 곡예사처럼 재주넘기를 해 이리저리 움직여 다니는 히드라를 볼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히드라는 아주 간단한 동물이지만 암컷과 수컷이 따로따로 있다. 암컷과 수컷이 따로 있어 유성 생식을 하는 히드라는 무성 생식도 하고 있다.
  무성 생식을 할 때에는 마치 식물처럼 몸의표면에 작은 싸기 돋아나서 그 싹이 새로운 히드라가 된다. 싹이 점점 자라나다가 입과 가는 실 같은 촉수가 생기고 결국은 따로 독립해 나가는 것이다.

    ‘히드라’라는 이름의 유래

  생물의 이름 중에는 이상하게 느꺼지는 것이 많지만, ‘히드라’라는 이름도 어딘지 조금 이상하게 들린다. 사람에 따라서는 히드라라는 이름을 듣고 기괴한 느낌을 받기도 할 것이다. 이 재미있는 동물에게 히드라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그 나름의 유래가 있다.
  여러분 중에도 히드라라는 이름이 어딘지 모르게 기괴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아주 뛰어난 직감을 갖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왜냐하면 히드라는 원래 괴물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괴물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듯이 현실에서 살고 있었던 괴물이 아니고, 상상 속의 괴물이었다. 히드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뱀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여러분 중에는 그리스 신화를 읽어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 신화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이 누구인지 쉽게 항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가장 위대한 인물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헤라클레스이다.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신화 최고의 신인 제우스와 알크레네라는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제우스에게는 헤라라는 이름을 가진 최고의 여신인 아내가 있었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미워했다. 그래서 헤라는 헤라클레스에게 많은 시련을 주었다.
  헤라클레스는 사촌 동생의 노예가 되었는데, 그는 10년 동안이나 온갖 고생을 했다. 한데 헤라클레스는 태어날 때부터 힘이 장사였다. 그래서 노예로 고생을 하는 동안,.12가지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이 12가지의 어려운 일에는 사자를 사냥한 일도, 괴물을 퇴치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이 일들 중의 하나가 바로 히드라라는 괴물을 퇴치한 것이었다.
  히드라는 머리가 100개라고도 하고, 50개라고도 하고, 9개라고도 하는 뱀이었다. 헤라클레스는 히드라라는 이름의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 뱀을 무찔렀던 것이다.
  히드라의 모양을 보면 정말로 머리가 많이 달린 뱀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촉수 하나가 뱀 머리 하나에 해당한다고 보면 좋다. 이런 이상한 모양 때문에 히드라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한 마리가 여러 마리로

  그런데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히드라는 헤라클레스가 여러 개의 머리 중 하나를 자르며, 다시 머리 두 개가 생겨 났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실제의 히드라도 신화에 나오는 히드라와 비슷한 재주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히드라가 갖고 있는 첫번째 재주가 재주넘기였다면, 두 번째 재주는 바로 재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물론 신화 속에 나오는 괴물처럼 하나가 잘려나가면 두개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히드라는 몸의 어떤 부분이 잘려나가면 그 부분이 재생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양만 풍부하다면 잘려 나간 작은 부분이 새로운 히드라가 되는 일도 많다.
  도마뱀이 적에게 꼬리를 잡히면 그 꼬리를 떼어 버리고 도망을 간다는 것은 여러분도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도마뱀은 두 달 정도면 완전한 꼬리가 새로 생겨나기 때문에 꼬리를 떼어 내고 적을 속여 도망을 치는 것이다.
  그런데 히드라의 재생 능력은 이 정도가 아니다. 히드라는 도마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주 강력한 재생 능력을 갖고 있다.
  히드라가 얼마나 강력한 재생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실험을 해 보았다. 우선 히드라를 잘게 썰었다. 그리고는 잘게 썬 히드라를 천으로 싸서 쥐어 짰다. 히드라의 몸은 질척질척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 덩어리를 가만히 놓아 두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 질척질척한 덩어리에서 완벽한 히드라 한마리가 살아났다.
  한 마리의 히드라가 살아나는 경우도 있었고, 두 마리 이상의 히드라가 살아나는 경우도 있었다. 여러분 중에서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았던 사람은 히드라가 터미네이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다른 동물의 경우에는 재생하는 능력이 갖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 잘게 잘라 쥐어 짜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없다. 그러나 히드라는 온전한 곳이 없어도 이렇게 다시 새로운 히드라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히드라의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는 영화 속의 터미네이터처럼 자기 자리를 잘 알고 있는 걸까? 그래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렇게 잘게 잘랐을 때, 한 마리의 히드라만 생겨난 것이 아니라, 두 마리 이상이 살아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어떤 뜻일까? 이는 히드라의 세포는 한 장소에서 특별한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다른 장소로 가게 되면 다른 일을 맡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그림과 같이 히드라를 가로 방향으로 잘라 보자.
  이렇게 히드라를 자르면 잘린 것 중 위의 것에서는 바닥쪽으로 달라붙을 수 있는 단단한 부분이 생겨난다. 그리고 아래쪽 것에서는 촉수와 입이 새로 생겨난다.
  이런 뛰어난 재생 능력은 한 가지 일을 하고 있던 세포가 다른 일을 자유롭게 맡아 할 수 있을 때에만 발휘되는 것이다.

    여러 마리가 한 마리로

  히드라 한 마리를 잘라서 여러 마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이제 잘 알았을 것이다. 히드라는 재생 능력이 아주 강력해서 몸의 일부분만 가지고도 완전히 새로운 히드라 한 마리를 얻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일도 가능할까?
  한 마리의 히드라를 여러 마리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여러 마리의 히드라를 한 마리로 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실험을 해 보았다.
  우선 히드라 두 마리를 준비했다. 이 두 마리의 히드라를 각각 둘로 잘랐다. 그리고 한 마리에서는 촉수가 있는 부분을 다른 한 마리에서는 발판이 있는 부분을 떼어 내 그 두 부분을 붙이기로 했다. 이렇게 다른 히드라에서 나온 몸의 두 조각을 붙이기 위해서는 두 조각을 유리 바늘로 꼬치 요리처럼 꿰어 하루 이상 놓아 두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루 이상 놓아 두었더니 다른 히드라의 몸에서 나온 두 조각이 하나로 합쳐져서 한마리의 히드라가 되었다.
  그런데 각각의 몸 조각이 절반보다 조금 길었을 때에는 정상적인 히드라보다 조금 긴 히드라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길이가 정상보다 긴 히드라는 그대로 한마리의 히드라로 있지 않았다.
  두 개의 몸 조각을 붙인 부분에서 새로운 촉수와 발판이 나오면서 두 마리로 갈라져 정상적인 길이의 두 마리 히드라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조각을 합친 것이 정상적인 히드라의 길이 정도일 때나 그보다 짧았을 때에는 그대로 한 마리의 히드라로 살아갔다.
  이번에는 조금 이상한 괴물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아래와 위 양쪽으로 촉수가 나 있는 괴물 히드라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 괴물 히드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 마리의 히드라가 필요했다. 제일 먼저 세 마리의 히드라를 준비한 다음 두 마리의 히드라에서 촉수가 있는 윗 부분을 조금씩 잘라냈다. 르기고 나머지 한 마리의 히드라에서는 몸의 중간 부분을 잘라냈다.
  그리고는 촉수가 있는 윗 부분 두 조각과 중간 부분 한 조각을 그림처럼 이어 붙이기로 했다.
  역시 방법은 유리 바늘로 꼬치 요리처럼 꿰는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우선 촉수가 있는 부분을 밑으로 해서 하나를 끼우고, 다음에는 몸의 중간 부분을 끼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촉수가 있는 부분을 위로 해서 끼웠다.
  그리고는 이번에도 24시간 이상 그대로 놓아두었다. 그러자 아래 위로 촉수가 달린 묘한 모양의 괴물 히드라가 생겨났다. 머리가 두 개 달린 괴물 히드라가 탄생했던 것이다.
  이렇게 몸의 일부분만으로도 완전한 히드라가 태어난다든가, 한 마리를 몇 마리로 나눌 수 있다든가, 또 몇 마리의 히드라를 붙여서 한 마리의 히드라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이는 히드라의 몸에 있는 세포가 여러 가지 일로 분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분화된 정도가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람의 몸을 반으로 나누어 그 반이 각각 한 사람의 완전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 몸의 각 부분은 상당히 복잡하게 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특별한 기능을 맡고 있는 세포는 다른 자리로 간다고 해도, 결코 그 자리에서 요구되는 일을 할 수 없다.
  신경 세포가 피부로 나온다고 해서 피부 세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피 속에서 산소를 나르는 일을 담당하는 적혈구가 뇌로 들어간다고 해서 신경 세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른 부분으로 간다고 해서 세포가 달라질 수도 없고, 달라져서도 안 된다.
  우리 사람처럼 고도로 발달한 동물은 각 부ㅜㄴ의 세포도 상당히 전문적으로 분화되어 있다. 모든 세포가 특별한 방향으로 발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히드라처럼 모든 세포가 특별한 방향으로 발달되어 있지 않은 동물의 경우는 하나의 세포가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일을 맡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히드라의 세포의 자리가 바뀐 것을 어떻게 깨닫는가 하는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촉수 부분이 없어져 버렸을 때, 잘린 곳의 세포가 어떻게 해서 촉수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촉수를 만드는가 하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물학이 나아갈 길에는 여러분이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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