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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벼슬을 다 가지면 양손에 떡든자는 얘긴데 (부작용 생깁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돈도 있고 벼슬도 또 다 같고 한쪽을 선택해야지 권력을 잡으면 아무래도 재물에 대해서는 좀 청렴하게 해야 되고 돈을 가지고 있을려면은 사회에 후원사업을 해야지 그걸 자기가 다가가지고 그 돈 가지고 내가 벼슬하고 아 그것을 바꾸겠다 아 이런 건 이건 지혜가 없는 행동이 될 수가 있어요.
제가 그 경주 최고 부잣집 얘기를 제가 그 저 신문에다 많이 썼습니다.
제가 한 10년 전부터 그 노블레스 오블리주 얘기를 제가 뭐 하여간. 계속 반복해서 얘기를 했어요
얘기를 좀 반복해서 헐 필요가 있겠다 그렇게 제가 생각을 했습니다.
그 경주 최고 부잣집이 남인 집안이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만약에 그 집이 벼슬도 고위 벼슬을 했다. 그리고 인제 진상이상 하지 말자는 게 가훈인데 진사 이상까지 하면 아마이 노론한테 돈 다 뺏겼을 겁니다.
뭐 역적 뭐 역모 뭐 무슨 쿠데타 혐의도 너 혐의가 있다 해 가지고 아마 재산 몰수 해외고 뭘 했을 거예요. 이걸 아니까 경주 채무비잣집도 우리 재산을 지키자 이런 것으로 해서 짐 사 이상은 하지 말자 아마 이랬을 겁니다.
제가 이 부자들을 쭉 보니까 한국 사회에서 300억 이상은 자기 돈 아니에요. 자기가 마음대로 쓸 수 없는 돈이고 그 돈은 사회적으로 다 엮여있어 그리고 돈을 가지고 있으면 옆에서 가만 놔두질 않습니다.
뭐 사업하자 투자자 뭐 해야지 그다음에 집안 형제가 친척들이 왜 너는 돈 많은데 나 돈 안 주냐 너만 잘 먹고 잘 사느냐 아마 그래 가지고 막 제가 간만에 이사 오고 그다음에 제가 한국 사회에서 천억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들 더러 보니까이 밤에 50 %는 수면제 먹고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천억 이상 갖게까지는 순탄치가 않습니다.
그 타이틀을 방어하는 게 그게 쉽지가 않아요
천억을 방어한다는 게 이게 다 차원적으로 문제가 오는 거거든 응 다 차원적으로 아무 여러 가지 면에서 댓글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뭐 자기는 또 뭐 또 이거 투자해라 뭐 저거 하자 뭐 해 가지고 소송으로 한 두세 개씩 다 얽혀 있고 그러니까이 사람이 50 중반까지는 자기 타고난 빠때리로 이걸 버티지만 50 중반이 넘어서 계속 이런 문제에 시달리면 수면제 먹어야 됩니다.
그래서 한국사회 천억 이상 가지고 있는 건 천 벌를 받는 겁니다.
그냥 아파트 하나 가지고 있고 자식들 뭐 대학 보내고 그냥 해서 남한테 돈만 안 빌려가면 됐지 주민들한테 안 먹는 게 낫지. 이 수면제까지 먹으면서 꼭 살아야 되느냐 이게 300억 이상은 자기 돈 아니고 천억 이상은 50 프로가 수면제 먹고 이게 그런 겁니다.
제가 팔자를 연구해 보니까 재단 신약이라 재물이 많으면 반드시 몸은 약해집니다.
우리 뭐 저 삼성 집안도 뭐 몸 안 좋은 사람 많습니다. 그 집안도 저게 그리고 우한이 끓일 날이 없어요. 우한이이 돈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이 없다고 또 장땡도 아니고 돈이 없어야 행복하냐 이건 또 그건 아니지에 이게 돈과 돌 자 받침 하나 차이인데 그 저 그 여수에 가니까 그 저 공소당이라는 집이 있어요.
근데 그 기와집인데 그 집이 한 5000평 되는 집인데 그 가문의 영광에 그 나온 그 세트로 나온 집인데이 집이 뭐 구한 말 때부터 뭐 굉장히 영광지 그 만석은 부자 집이었습니다.
그 집 여수에서 아주 부자인데 어떻게 그 안 죽었느냐 여수 발란사건 때이 집이 최고 부잔데 저는 명문 지방 가면은 625 때 뭐 동학 때 그런 사회적 격변기 때 안 죽었느냐 그것부터 질문합니다.
매우 하기 힘든 질문인데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죠 안 죽었느냐 그때 대개 변수를 겪어도 그때 부자들이 그때 난리 나면 지금 아마 뭐 중동 이지프트나 뭐 이런 데 막 경평기 리비아 뭐 이런 데 지금 막 내부적으로 막 약간이나 난리가 났을 겁니다.
저는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그래 관람 사건이 나니까 임시 그 레프트 혁명 전. 안 해가지고 또 지금은 그냥 죽창으로 가서 찔러 죽이는 거야. 그런데 자기 집이 가장 만성군 부자니까 만석꾼이라면 지금 조 단위입니다.
옛날에 천석군이 지금 천억 대고 오천 석군은 5000억이고 만석군은 조단위 부자예요 지금 자기 집이 만석꾼 조단위 부자인데 재벌이지요 만석꾼은 재벌입니다.
옛날로 치면은 어 1번 타자로 딱 불려나갔지 여천군청 2층에 자기 아버지가. 쫙 풀려나갔는데 그 혁명군 그 반란군 대장이 딱이 팀으로 자기 아버지를 딱 뒤져요 올라오라고 그래가지고 인자 너 너는 인민을 착취했으니까 넌 사형 그러면 이제 가서 죽고 찔러 죽이는 겁니다.
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럼 이제 죽으러 간 거지 딱 2층에 가니까 그 반란군 대장이 자기 옆에 있던 보초 2명을 호위병 2명을 너희들은 네 그러더니 아래로 내려가 딱 고위병을 내려가라고 해놓고 자기가 직접 이렇게 딱 붙으면 자기 아버지가 올라왔는데 반란군 대장이 아무 말도 않고 신문만 이렇게 탁탁. 신문을 보고 의자를 이렇게 돌려가지고 이렇게 뒤를 딱 봤다는 거 아니에요. 10분이 지나도 아무 말도 않고 20분이 지나도 아무 말도 않고 아무 말도 안 해요 20분째까지는 왜 나를 불러놓고 아무 말도 안 치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죠
그러다가 유레카 알았다 나보다 튀라는 거구나 20분이 넘어가면서 아 이건 나보다 도망가라는 얘기구나 하고 2층인데 옆에 창문 열고 물 홍통 타고 끓고 내려가서 도망갔대요
그때 자기 아버지가 한 40 정도 됐는데 도망갔다면 그래야지 살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반란군 대장이 그 집 소작인이었어요. 소작집 아들이었는데. 그즘에 그 소작이 인제 자식들이 뭐 한 10명 가까이 되니까 소작료를 못 냈다는 거예요. 자식들이 많으니까 그걸 매겨야지 학교도 좀 뭐 아껴가지고 학교도 보내야지 해니까 소작료를 못 내니까이이이 지주. 소장료 안 받고 나는 받느냐 이래야 되니까 그 여수적 근처에서 그 추수대가 되면 쌀을 수백 가만이씩 실어 가지고이 시내로 옮겨야 되는데 데로 옮겼다고 그랬거든 그러니까 그 수백 가마를 배에다 싣고 내리는 그 하얍 작업 그 굉장히 고된 일인데 수액 가만이니까 그걸 딱 실어 가지고 노조와 가지고 한나절을 넣어줘가지고 오고 푸고 뭐 이걸 시켰다는 거예요?
그래서 너희들은 소작료 이걸로 돈이다 면제다
너희들은이 노동을 하니까 그럼 다른 사람도 아 그건 납득하고 이렇게 해서 봐줬는데 그 집 큰아들이 바로 학교 다녀가지고 반란군 대장이 된 거야. 이게 그러니까? 자기는 어? 우익 저 부자들을 잡은. 정부가이 착취 개혁을 처단해야 되는 임무인데 반란군대장님 아이고 자기도 학교 다닐 때 다 들었지 자기 아버지한테 왜 지금 응 지주 집에서 봐줘가지고 우리 둘이 이렇게 다닌다는 얘기를 다 들었는데 아니 자기가 직책을 맡아서 했는데 어떻게 죽이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살리겠다는 얘기도 못하는 거지. 너 도망가라는 얘기는 못 하는 거지. 사람이 자기도 책임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보초를 내려보낸 거지 너희들 피해 나가 있어. 딱 그래놓고 그 사람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냐 나 알아서 도망가라는 얘기지 그래 가지고 살았대요
자기 집이. 왜 난리 날 때 알아보는 거야 평상시에는 모릅니다.
난리 날 때 그 평소에 쌓인 개인 감정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척 짓고 살지 말라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제이 지금 그 봉사당 지금 후손1942년생인데 48년에 그게 여순사건이 났으니까 이게 저 만으로 6살 우리 나이로 7살이죠 뭘 알겠어요?
어린애가 왜 인자 이렇게 있는데 자기는 한 번은이 밤을 먹고 있을 때 밤을 그때 여순 사건 때 그래가지고 이렇게 손에다 이렇게 밤을 쥐고 있는데 그 머슴 아들이 18세인가 열이( 먹으면 머슴 아들이 이렇게 완장을 차고 왔죠.)(이렇게 뻙은 완장을 차고 와가지고 이렇게 왔는데 자기는 그 머슴 아들)( 그걸 보고 평소에 앞면이 있었으니까 형이 밥 먹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밥을 줬대요.
이 손에다 자기가 먹던 걸이 자기가 뭘분푼수처럼 주기를 좋아하는 습관이 있었대 그래서 그냥 먹다가 형을 보니까 머슴 아들이지만 이제 형이라고 했던 거예요?
먹어하면서 주닢. 이거 주겠다며 맘때문에 자기가 살았다고 아 지금 이제 회고를 하기를 자기는 그때 몰랐대요
그게 무슨 뭐 난리가 뭔지 알겠습니까 7살짜리가 아무것도 모르지 근데 밤을 죽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이 떡밥은 뿌리고 볼 일이에요.
이게 어느 코의 야간이 될지 모르니까 (어느 구름에 비들였는지 모른다는 속담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게 좀 그래서 그 집안이 그렇게 부잣집인데 아무 피해가 없었습니다.
그 집이 그 별명이 28평 집안입니다.
28평. 에 그 집 학렬이뭐 뭐 이렇게 됩니다. 평으로 다 나가지 평자로 평으로 항렬이 평잔데 28평이라는 건이 평짜 항렬 28명이 일본 유학을 갔다 왔어요.
최지만에 아니 뭐 다 28명이 일본 당시 유학을 갔다 왔으면 얼마나 돈이 많았겠어요?
그래서 28평 집안이라고 그랬어요.
다 뭐 다 기가승 같은 당시 그때 뭐 와세다 동경대 뭐 구대 구조제대 다 나왔으니까 다 다 다 핸 거 아니에요 전부 다 명문 그 집안이 되려면 평소에 많이 이걸 뭘 (풀어놔야 됩니다.)
불나지 그래서 이분이 제가 이제 여수에 지금도 학교를 뭐 3개인가 가지고 있을 전문대학도 가지고 있고 고등학교도 있고 중학교도 있고 지금도 부잡니다.
그래서 사람이 후한데에 네 이제 한 번은 그 여수 시장 내에 그 시장 내에 그 여 용서대라고 서대인데 서대 중에 큰 걸 용서대라고 그래요. 큰 걸 그걸 이렇게 복금을 잘하는 집이 있어요.
저는 프랑스 요리 중에 서재 요리를 소홀이라고 그러던데 그전에 저 교보 위층 나부리에서 소를 잘했는데 그 프랑스 요리 중에는. 그걸 제가 이제 서대 그거 용서대를 좋아하는데 한번 그 양반을 만나가지고 저희가 시장통에 있는.
아이다 놓 그 뭐 생선 뭐 갈치 비늘 묻고 뭐 이건 딱 앉아있는데 양말은 그래도 이사장이잖아요. 그 그 이게 여수에서 가장 부잔데 거기를 시장통을 통과하는데 한 30분이 걸리는 거예요. 백 메타로 가는데요이 아줌마하고도 악수하고 껴안고 아들 지금 뭐 대학 졸업을 하고 뭐해냐 뭐해냐 이거 일일이 물어보면서 가는 거예요 아주머니들 다 손잡고 뭐고 포옹하고 이러면서 자기 양복 딱 입었으면서 그렇게 하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야 이게 부자도 노하우가 있구나. 야 이게 평소에 자기가 아나 돈 많어 나 잘났어 그러면 쳐다보*도 않고 갈 법한데 이게 뭐 크 아주머니들도 생선 장소 아주머니들 오륙10대 할머니들하고 손 잡고 가는 거야. 이게 그러니까 여순 사건과 6 25를 거쳐 이게 경륜있는 부자가 저렇구나 난리를 겪어본 사람과 안 겪어 본 사람의 저기서 내공 차이가 나는구나 내공이란 무엇이냐 저 생선장사 아주머니들로 막 쏘는 거야. 그게 내공의 차이 나이예요.
그래서 야 이게 참 저런 걸 좀 배워야 되겠구나 제가 그런 걸 느꼈습니다.
그 또 아까 그 저 경주 채무자치 문제가 10몇 년 전에 처음으로 인제 거기를 갔는데 그러니까 이제 뭐 지금은 그게 다 영남대학 전신으로 다 됐죠
그 집 재산이 그래서 지금은 옛날같이 그렇게 부자가 아닙니다. 그 대학에다 다 기부를 했기 때문에 625 이후에 기부를 했기 때문에 어 625 전이구나 625 전에 한 89년도쯤에 인천 지방하고 친했습니다.
경주 채무자가 그래서 인천이 자주 놀러 간다. 근데 가면은 우리도 고대 인수했지 않느냐 우리가 고대를 인천 집안에서 고대를 맨든 게 아니고 저는 이용대 가면 일대 교주고 인천이 아마 삼 대 같을 겁니다.
그걸 인서인 거죠 그러니까 거기도 우리가 호남에 부자도 우리도 유경사업 하니까 영남 그쪽 최부자도 학교 사업을 하시라고 인재를 양성이라고 이렇게 자꾸 어드바이스를 한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거기도 그 학교를 대학을 만드는데 다 그 재산을 또 거기 다 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 흑우가 그 그래서 지금은 그렇게 큰 부자가 아닌데 그냥 밥 먹고 살 정도죠.
그래서 제가 그때 그렇게 가니까 연관이 끝나고 나서 이제 제가 갈려고 그러는데 봉투를 딱 하나 저한테 주는 거예요 촌지를 그래서 아 이거 좀 좀 받기는 좀 제가 석연치가 않더라고요 이거 좀 꺼림칙한 이런 게 좀 마음이 그래서 돈은 보니까 한 30만 원 정도야 30만 원 정도 그래서 저는 촌지도 한 백만 원 미만은 괜찮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걸 가지고 뭐 뇌물이라고 그래버리면 그걸 가지고 너무 사회가 각각은 각박하게 되는 거고 인사로 그래서 이걸 받을까 말까 하다가. 한참 좀 제가 마음먹거리고 있는데 그 그 어른이 그래요.
그 채무잣집 후손이 우리 집에 300년 동안 외부에서 멀리 손님이 왔는데 빈손으로 보낸 적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 집안에서 300년 동안 빈 손으로 보낸 집이 없다는 거예요. 아 그러니까 안 받을 수 없더만 그 300년 전통을 내가 몇 개입니까 어 아이 그래서 인자 갔더만 그 뒤로 한 1년 있다가 또 가니까 또 그때도 꼭 통을 내더만 그 집이 그렇게 지금은 안 그렇게 넉넉한 뭐 그렇다고 해서 궁핍한 집은 아닌데 그렇다고 그렇게 아주 부자도 아니에요.
그냥 그냥 예 그런데. 아 역시 그 그 가락이 있는 거야. 이게 그래서 자기들 옛날 집에는 그 저. 아니 그냥 쌀도 멧돼지퍼가도 그걸 안채에다 안 두고 사랑채 어디 옆에다가 주인 얼굴 안 마주치는 데다가 쌀티를 놨대요 괜히 그 펀 사람의 자존심도 있는데 주인은 얼굴 마주치면 좀 자존심이 상하잖아요.
그러니까 주인 얼굴 안 마주치는 데에다가 그 쌀뛰를 놨대요. 그렇게 그래서 첨가하실 썼다는 거예요. 그리고 흉년에 저기 저 논사지 말라 흉년에 경매 물건 막 싸게 떨이로 나온 거 사지 말라 그런 얘기지. 그때 10분의 1 가격인데 흉년 들면 인자 굶어 죽는 지 뭐 그냥 논 아주 투매를 허는 거지 그냥 10분의 1 가격으로 한 마지기에 뭐 1억 하던 걸 지금 한 1000만 원에 이렇게 팔면 그거 막 사면 부자 되는 거거든 그때 근데 그거 절대 사지 말라는 거라 투자자들 더 이상 하지 말라는 그 원한이 생기니까
그래서 그 제가 그 명문 집안들 그 종부들 이런 분들 제사 음식 살 때도 절대 시장에 가면은 안 가깝습니다. 물건 값 안 깎습니다. 저는 그래서 어디 혹시나 가서 외국 여행 가서 막 쇼핑 갈 때 같이 가서 옆에 사람들이 평소에는 막 얼굴에 나 교양 이렇게 써 있는데 막 외국 가서 막 쇼핑 갈 때 막 이리도 막 깎더라고 이런 사람들 보면 막 계속 실갱이를 하고 그러면 속으로 아 지금 양반 아닌가 비벼. 아 그 뭐 크게 바가지 쓴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냥 재수용품 살 때도 명문가 집안들 그 안주인들 보니까 물건은 안 깎고 눈이 딱 마주치면 그놈을 집에 갔다.
그러면 막 여러 집이 우리 집은 어서 오세요 어디서 하세요 어서 오세요 다 그럴 거 아니에요. 그러면이 집 저 집 집 돌아가면서 성장 안 해요. 그냥 딱 눈 마주치는 데 가서 거기 딱 사더라고 그냥 안 깎고 그러니까 이게 처음에는 어수로 큰 거 같은데 수십 년 단골이 되면 뻔히 다 알지 뭐 저분은 안 깎는 거다 하면? 그렇게 태기를 심을 수가 없으면 이게 서로 사람이 뻔히 다르기 때문에 그다음에는 퀄리티가 가장 좋은 놈을 그 집에 둘 수 밖에 없어요 크니까 그리고 만약에 뭐 예를 들어서 만 원에 사과가 5개인데 막 하나 막 다 집어오잖아 그러면 막 사과장수가 그 여섯 번째 사과에 막 침을 딱 폈습니다.
저 인간 저거 또 또 또 또 저런 애 막 저 더럽은 인간 이러면 그 욕이 막 보이지 않는 그 저주가 사과에 막 침처럼 딱 붙어. 그 그런 저 집안들이 많죠. 그리고 저쪽에 음 저 충청도에 가면 논산에 그 명제윤증 집안이 있는데 그 집은 명제는 그 저 뭡니까 숙종 때 인물인데 조선족 숙종 때 왕이 뭐 한 뭐 뭐 저 저 20 몇 번인가 불렀어도 안 갔죠 벼슬 준다고 마지막에는 우의정까지 준다고 했는데도 안 갔습니다. 그 양반 초상화를 보면이 코가 막 이렇게 요렇게 딱 서 있습니다.
코가 아 용코지 용코 용비라 그러죠 용비 코가 이렇게 막 콱 서 있는데 그래서 저는 그때 코가 그렇게 막 우뚝하고 자존심이 강한 분들은 쫌 사업에는 안 맞다. 저렇게 생각하는데 너무 자존심이 강하면 이게 쫌 사업이나 비즈니스는 약간 좀 굽신거려야 되는데 근데 그 양반이 초상화를 보면 막 코가 용부로 막 딱 됐지 그러니까
숙종이 숙청할 때 숙제 아닙니까 숙청 전문가였거든. 그 밑에 가서 그냥 벼슬한다. 멀쩡거리다가 또 그냥 욕조에 안에서 몰면 죽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명제는 그걸 아주 꿰뚫어 보고 있었지 내가 저 속초 밑에 갔다가 여차하면 죽는단 말이야 그러니까 뭐 우정까지 준다고 해도 내가 무슨 그런 감언이설에 속지 않든다. 해가지고 안 갔던 거 같애이 양반이 그런데에 이게 이제 충청도 3대 명문 에이 쁘라스 급 양반 지만이 그 저 노성리 명제 윤씨 집안 하고 그다음 해덕의 송시진 회덕 송씨 그 송시열 그 후손들 집안 하고 그다음에 저 뭡니까 사계 김장생이 연산에 사계 김장생 호가 사계죠 모래 사자의 그 계곡개짱과 신의 계자에. 장생이 그래서 사계 김장생 후손 집안 하고 송 씨의 집안 윤정 집안이 23대 말하자면 귀족 집안입니다.
충청도에서 그래서 옛날에는 혼사를 헐 때도 에이 쁘라스는 에이 쁘라스끼리하고 비 마이너스는 비 마이너스 길이 뭐 무디스 평가가 다 그때도 있었습니다. 이게 전부 다 그런데이 저이 윤중 같은 경우에는 음 그 우리 집은 똥나무 이런 거 양잠 하지 말라 그랬죠.
그때 그 고소득 작물인데 너도나도 달을 허니까 이걸 우리 윤씨 양반들이 이거 하면 서민들 못 먹고 산다. 우리까지 이거 가세하면 그래서. 절대 못 하겠어요 명제가 이거 절대 윤씨는 하지 마라 어 이거 지금 저는 그런 거 뭐 SSM인가 대형 슈퍼마켓 이런 거 그런 것이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양관들 같으면 이걸 자제해야 됩니다.
어 이거 자제해야지 이게 너무 과음하은 이거 이거 어떻게 될지 몰라요 이거 날라가는 겁니다. 이게 사람이 오바하면 날아가는 거야 이거 가서 그러니까 그렇게 그 명제집이 절대 폭나무 못 하겠거든 그러면 돈 남지만 우리 집은 그거 하지 말라 이거예요.
양반 집안이니까 아 이래야 양반이지와 그건 뭐 대박 난다 해가지고 그냥 너도나 다 해버리면 어떻게 됐냐 625 때 박살나버렸어요. 그 집. 왜 그러냐면 그 인민군 본부로 썼거든 집이 크니까 625 때 큰 집이 있대 그러니까 그때 그 미군들 쌕쌕이 폭격했기 그게 그게 그게 그 저 김해 쪽인가 어디에 그쪽에 있었대요 그래가지고 매일 오늘은 폭격 어디였나 작전회의를 했대 오늘은 어디 폭격한다.
어디 폭격 미국 쌕쌕이라 그러죠 그 조종사 근데 그 동네 출신 한국인 조종사가 있어요. 박희동이라고 박기동이라고 그때이 양반이 일본군 저기 저 원래는 가미가제로 갔다가 버마전투에서도 막 미군기를 막 열몇 대 격추시킨 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동네 출신이 일본군 원래는 조종사였는데 이제 해방되고 이후에는 625 때는 미군 편으로 들어갔지 자기가 해방제는 미군을 격추시켰는데 귀국해 가지고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제 또 미군하고 같은 편이 된 거야. 그래가지고 매일 아침에 어디를 폭격을 했건가 조종 회의를 했대요 전략 회의를 그런데 오늘은 여기 노선 및 윤증 집안 한다 여기 인민군 부대가 있으니까 근데 자기가 이건 절대 안 된다. 미군들한테 이건 한국의 귀족 집안이고 대단히 존경받는 집안인데이 집은 폭격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