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전설 #26] 선 행 - written by mast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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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단순하기만한 삶에서 벗어나고픈 일탈을 한번쯤
꿈꾸게 된다.
어젯밤 꿈 속에~ 나는나는 날개달고~
구름보다 더 높이 올라올라 갔지요~
무지개 동산에서 놀고 있을 때~
이리저리 나를 찾는 아빠의 얼굴
무지~개 동산에서 놀고 있을 때~
이리저리 나를 찾는 아빠의 얼굴
그 날 느즈막하게 등교한 아름다운 쓰레기 왈구는 심각한 얼굴로 '아빠의
얼굴'이라는 동요를 구슬프게 부르고 있었다.
"나 가출했어"
노래를 끝까지 부른 후, 놈은 슬픈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 놈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사실 왈구에 대한 연구와 여러 실험결과는 많이 부족한 실정이지만,
나름대로 그를 많이 겪고 관찰한 나로서는 그런 경우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개념이 어느정도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혀를 코에 붙이고 '아부지비오니장독닫아요'라고 세 번 말해봐"
"아부비비보비~ (멋모르고 따라한다)"
"쓰윽~ (놈이 내놓은 혀를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쿠워워워워~~~~~~ 어제빰 꿈소게에에에~~~~~"
... 삶의 철학 ... 바보의 말은 무시하라.
그가 가출을 하게 된 이유는 아래와 같았다.
1.청바지를 샀다.
2.텔레비젼을 보니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연예인들이 나온다.
3.따라 하고 싶다 ... 하고 싶다 ... 싶다 ...
4.청바지를 갈기갈기 찢었다.
5.현장을 아버지에게 들켰다.
6.심하게 꾸중을 듣고나서 청바지를 압수당했다.
7.반항심이 생겼다.
8.다음날 어머니 지갑에서 돈을 샤부쟉~하여 압수당한 것과 똑같은 청바지
5벌을 더 샀다.
9.보란듯이 5벌 모두 찢었다. -_-;
10.교복 넥타이를 자신의 목에 걸고, 방 문고리에 연결시켜 놓았다.
11.아버지가 방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아 당기는 순간 자신은 목이 졸려
죽을거라고 생각한다. -_-;;;;;
12.아버지는 그 후 평생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살아가시리라.
13.한참 후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14.목이 졸리기는 하지만 당연히 죽지는 않는다.
15.맞아죽기 싫어서 집에서 도망 나온다.
...... 음 -_-;
... 놈의 멘탈리티 연구는 다가오는 21세기의 과제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놈은 수업이 끝나고나서도 내가 다니던 독서실까지 졸졸 따라왔다.
"왜 자꾸 따라와?"
"앞으로 독서실에서 먹고 자고 할거야, 누헤헤~"
칼빈은 '예정에 대한 자기확신을 위해 투쟁적으로 살아야한다'고 했다.
해맑게 웃는 왈구의 얼굴을 보며, 난 내 인생을 위해 될 수 있는 한
빨리 놈을 집에 들여보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
달래도 보고 협박도 해보았지만 ...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
놈은 좀처럼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근데 '아부지 비오니 장독 닫아요'가 뭔 말이냐?"
"'아부지 비오니 장 담궈요'란 비슷한 말이야"
"누헤헤헤~ 적어놨다가 써먹어야지~"
... 사면발이만도 못한 놈 ...
* 주) 사면발이 : 다른 이에 비해 약간 둥근 타원형의 형태를 지니며
주로 사람의 사타구니에 기생하고 성행위를 통해 감염된다.
우려한대로 놈은 불안감이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만큼 무척이나 느긋했고
심하게 여유로웠다.
... 구조조정 실패만큼이나 곤란했다.
그날 밤 ...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심령현상을 이용해 왈구에게 각성을 유도해보았다.
(고교전설 12편 참고)
"이 독서실에 비관 자살한 얘가 하나 있다더라."
왈구는 무심코 던진 그 말에 움찔~하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12시 넘어서 엎어져 자고 있는 애가 있으면 천장에서 책상을
'샤악샤악' 긁으면서 쳐다본다던대~ 으히히히~"
"우워~ 하지맘~마, 무섭잖어~어~"
... 걸렸다 ...
... 근데 너무 뻔한거 아니야, 이거 -_-;
잠시 후, 난 왈구가 엎어져 자는 책상 위로 몰래 기어올라가 있었다. -_-;
귀신은 원래 너무 열심히 공부를 해서 기가 허약해진 놈에게 나타나야 하는
것이었겠지만 ...
급한대로 엎어져 자고 있는 가출 청소년에게 나타나도 무방할 듯 했다.
가출한 친구를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밤 12시가 넘어서 독서실 책상 위로
기어올라가 책상을 긁어대야 했던 한 청소년의 쓰라린 마음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
... 미션 임파서블에서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렸던 탐 크루즈는 이해할라나?
그 순간 나는 나중에 자서전을 쓸 일이 생기면 그 때의 일을 이렇게 회고하
리라 마음 먹었다.
'저는 왈구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제 인생을 조금 더 사랑했을
뿐이었습니다.'
그처럼 거사를 앞둔 내 대뇌는 엄청난 카오스 상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의 냉철한 이성은 이내 그 혼돈을 말끔히 정리했고, 원활한 거사의
진행을 나에게 지긋이 명령했다.
'껌이나 뱉어!'
나의 이성의 신호에 따라 나는 우선 엎어져 자는 왈구를 깨우기 위해
씹고 있던 껌을 놈의 머리 위에 힘껏 뱉었다. -_-;
놈이 몸을 움찔~하며 잠에서 깨는 듯 했다.
순간 난 급한 마음에 책상을 '부욱~부욱~' 긁어댔다.
... 아 ... 원래는 '사악사악~' 긁어야 되는건데 ...
잠결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던 왈구 ...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불쌍한 우리 왈구 ... 잠이 덜 깬 어벙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결국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난 '인상학의 비기'라고 전해지는 '이마에 석삼자 만드는
동시에 미간에 내천자 만들며 눈썹 벌려 입삐뚫기'를 성공시켰고 ...
*주) 독서실의 구조상 위에서 내려다보는 이의 얼굴은 형광등의 반사에
의하여 흉칙하게 변합니다.
... 그 순간 '왈구 가출 사건'의 엔딩 타이틀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억~~~~~~ 억~~~~~~ 억~~~~~~~~"
왈구는 어설픈 샤우트 창법의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쓰러지면서
바레증후군 환자처럼 마비 증세를 보이며 열람실을 뛰쳐나갔다.
*주) 바레증후군 : 몸 속의 항체가 운동세포와 감각세포를 바이러스로
오인해 생기는 병으로 면역체계에 문제가 있을시 생기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어정쩡한 자세로 도약을 시도하던 왈구 ...
결국 신고 있던 쓰레빠 한쪽이 벗겨져 날라갔고 ...
한 손을 쭈욱~ 뻗은 체로 코와 입술 사이를 부들부들 떨며 ...
... 엎어졌다.
... 그리고 울었다. -_-;
태권브이가 비상하는 자세로 독서실 바닥에 한쪽 쓰레빠만을 착용한
상태로 서럽게 울고 있던 그 사나이.
... 결국 너무 심하게 억억~ 거리고 울다가 바닥에 조금 토한다. -_-;
성공적인 작전의 수행으로 왈구는 귀가했고 ...
훗날, 왈구는 그날 밤 머리에 붙은 껌을 떼어내기 위해 어머니의 아세톤 한 통을
다 썼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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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전설 #27] 오 욕 - written by mast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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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경주가 아닌 느긋하게 즐기다가 가는 여행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분명 왈구의 인생은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번뇌로 가득한 고행이었음이 분명했다.
내가 보기에 놈의 '불행 연간 섭취량'은 타인에 비해 100배 정도 높았고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 수치는 거의 치사량에 가까웠다.
그 날 종례시간, 왈구는 가출로 인한 3일간의 무단결석의 책임을 묻는
부단히 엄숙하고도 위험한 자리에 서있었다.
담임인 배상훈은 평소와 같이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놈의 집안에 가훈이 있었다면 문답무용(問答無用) 정도였을 것이다.
"엎어"
왈구가 아주 익숙한 자세로 '살살 부탁해용~'이라고 말하는 듯 엉덩이를
슬쩍 들이밀자 배상훈은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분필을 집어들고 왈구의
엉덩이에 'X'자를 그렸다.
... 의문의 X
... 지금까지 보지못한 새로운 기술이 행해지려는 순간이었다.
"X-마스 기념 구타인가봐"
"'X같은 놈'이라는 뜻을 각인시키는 행위예술일지도."
"좀 더 정확한 스윙을 위해서 타겟 포인트를 그리는게 아닐까?"
반 아이들 모두가 배상훈의 새로운 기술에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이자
배상훈은 약간 비릿한 웃음을 보이며 조그맣게 지껄였다.
"지워질 때까지 맞아라"
... 음 -_-;
... 의외로 싱거운 대답이었다.
엉덩이에 그린 글자가 굳이 X가 아니고 A나 B가 되었어도 무방한 기술이
아닌가 -_-;
새로운 기술을 기대했던 아이들은 왈구야 죽거나 말거나 실망감을 역력히
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섣부른 예상과는 달리 그것의 집행과정은 상당히 엄숙했고,
어찌보면 종교적인 냄새 또한 깊게 베어 있는 신기술이었다고 회고된다.
배상훈 : X가 지워지면 네 죄가 사하여 지리라~! (퍽~ 퍽~ 퍽~ 퍽~)
왈 구 : 오오오오오오~~~ 쿼바디스~ (신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 아~베~마리~~아~~~
헌법이 규정하는 신체훼손 거부의 권리를 끝내 주장하지 못했던 왈구는
결국 그렇게 분필 지우개 털리듯 몸부림만 칠 뿐이었다.
모든 처벌이 끝나고 책상에 왈구 죽은 듯 엎어져 있던 왈구.
처벌이 너무도 처참했기에 그 누구도 왈구에게 새로운 기술을 느껴본
소감이 어떤지 인터뷰를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주위의 어수선한 침묵을 깨고 왈구에게 처음으로 다가간 것은 의리파 사나이
임재성이었다.
갑자기 이런 유머가 생각이 났다
"유관순 누나가 왜 죽었는지 알아?"
"왜?"
"나대다가 죽었어, 새꺄"
... 언젠가 임재성도 쓸데없이 나대다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깜찍한 생각 -_-;
임재성은 후까시의 화신답게 느긋한 발걸음으로 왈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왈구의 어깨를 짚으며 다정한 미소를 띄우고 이렇게 말했다.
"니 새끼도 참 ... (한숨 한 번 쉬고) 인생 똥이로구만!"
놈은 말을 마치고 방금 자신이 한 말이 '수난이대'라는 문학작품에서 인용한
말이라며 흐믓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미친 놈 -_-;
그와 같은 말을 듣고도 왈구는 한참이나 엎어져서 일어나지 않았다.
왈구는 1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서서히 고개를 들고 이렇게 얘기했다.
"엉덩이가 아파서 공부가 안돼"
"......"
"야간 자율 학습 제끼자"
"......"
"몸도 찌뿌둥할텐데 목욕이나 하러가자"
... 왈구와 정자의 공통점
... 아무리 용을 써도 인간이 될 확률은 일억분의 일도 안된다는 것 -_-;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난 당시 세상 무엇보다 의리를 소중히 했기에 왈구의
뒤를 따라 학교 근처 목욕탕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 그래 ... 뻥이다.
... 나 귀 얇다 -_-;
"초등학교 때, 엄마따라 갔던 목욕탕에서 같은 반 여자아이를 만났적이
있었지, 누후후후~"
목욕탕 의자를 가져다 놓고 다소곳이 앉아있던 왈구는 어느새 해맑은 웃음을
보이며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놈의 대뇌는 이미 X자가 지워지도록 맞았던 과거를 완벽하게 포맷시켜 놓은
상태였다.
... 윈도우 98 같은 놈 ...
"너무 창피해서 숨을 곳을 찾았는데, 다행히도 온탕은 사람이 꽉 차있는데
냉탕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거야. 그래서 급한김에 냉탕으로 뛰어들어갔지"
그런데 ... 냉탕에 뭐가 있었는지 알어? 알어? 몰라? 이거 맞추면 내가
1년간 너를 형이라고 부른다!!!!"
"찬 물"
"......"
"......"
"씨바~ 넌 상상의 세계가 궁핍한 놈이야! 냉탕에 찬 물이 있는건 당연한
거잖아.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이유는 누가 그 속에 똥을 싸놨기 때문
이라구! 똥!"
"왈구야?"
"응?"
"조까"
"쿠오오오오~ 똑똑한 새끼! ... 안 속네?"
... 미친 ... 누가 그런 말에 속는단 말인가? -_-;
놈은 거짓말이 들켜서 민망했던 듯 잠시 온탕 속으로 뛰어 들어가 미친년 널뛰듯
뛰어다니다가 이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말했다.
"때 잔뜩 불려놨으니까 등 좀 밀어봐"
난 그가 탕 속에서 첨벙거리며 뛰어다닌 시간이 모두 합하여 1분도 되지 않았
음을 생각하며 코웃음을 쳤다.
그 시간에 때가 불려졌을리가 없다.
"더 불리고 와"
난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아무생각없이 놈의 등을 밀어냈다.
그 소프트한 터치로 놈의 등에서 보들보들한 느낌과 함께 암회색 물질이 쏟아져
내릴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_-;
...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른해지면서 속이 안좋아졌다.
원래는 놈에게 심한 욕을 내뱉고 싶었다.
하지만 잠시 후 내 입에서 본능적으로 튀어 나온 것은 욕이 아니라 가래였다. -_-;
"카악~~~~ 퉤!"
우렁찬 폭발음과 함께 발포된 나의 침이 놈의 풍만한 등선을 따라 낙하했다.
놈이 흠칫~ 하고 잠시 놀라는 모습을 보였지만 난 전혀 개의치 않고 샤워기를
틀어 머리 위에서부터 마구 뿌려댔다.
이상한 물체와 접촉했으므로 깨꿋이 씻어내지 않으면 이상한 병에 걸려서 뒈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_-;
놈도 나의 강력한 거부의사를 인정하는 듯, 내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아 때를 밀기 시작했다.
... 후두둑~후두둑~ 소리가 들렸다. -_-;
... 마치 자신의 몸을 조각하는 조각가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놈은 왼쪽 등을 밀 때에는 턱을 오른쪽으로, 오른쪽 등을 밀때에는 턱을 왼쪽
으로 돌려가며 뇌성마비 비슷한 자세로 자신의 등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내고
나갔다.
... 재주였다.
그렇게 모든 작업을 마친 뒤, 놈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국수(-_-;)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한웅큼을 집어 들었다.
... 약간의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
정신을 차려 바라본 왈구의 손에는 이미 성분을 알 수 없는 구슬 크기만한
암회색의 공이 놓여져 있었다. -_-;
"스타맨~!!!!!"
* 주) 스타맨 - 당시 유행하던 외화 시리즈. 인간의 모양을 한 외계인이
푸른 구슬을 들고 초능력을 사용하던 내용이었다.
놈의 힘찬 구호와 함께 날아 온 그 구슬은 내 정수리에 정확히 꽂혔고 ...
충돌 순간, 구슬은 약 수만개의 파편으로 갈기갈기 흩어져 내렸다.
... 굿바이 역전 만루 홈런.
... 난 ... 눈에 고이는 눈물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_-;
그날 왈구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갔다.
놈이 마무리 샤워를 할 때, 내가 놈의 등에 오줌을 누며 재역전을 시도했을
때조차도 해맑게 웃고 있었다.
... 놈은 내가 넘지 못할 커다란 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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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전설 #28] 돈 마 - written by mast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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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0세기의 막바지 자본주의사회를 살아가고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좋거나 싫거나 돈이라는 물질에 대해서 조금씩은 신경을
써야 하는 번거로운 짐을 어깨 위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강돈마는 천민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데에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정신구조를 체득한 인간이었다.
"삼계탕 사 줘!"
모처럼만에 야간 자율 학습에 참석해 있던 강돈마.
내 옆자리로 슬금슬금 기어와서 맥없는 목소리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삼계탕은 그 당시 학교 식당에서 판매하던 '삼'양라면에 '계'란을 푼 음식을
칭하는 속어였다.)
놈이 내가 용돈을 타는 날마다 그와 같은 행동을 반복해 오던 터라, 난 묵묵히
화생방 공격으로 대응할 뿐이었다.
* 화생방 공격
1.속이 그저그런 시점을 기다려 냄새가 몹시 강한 개스를 분출한다.
2.분출 시점과 시간을 맞추어 한쪽 손을 엉덩이에 밀착하여 분출된 개스를
손 안에 밀폐하듯 담는다.
3.상대방의 호흡기 앞에서 그 손을 활짝 편다.
"삼계탕 사줘어~ 사줘어~ (아둥~) 사줘어~ (바둥~) 사줘어~ (파닥파닥~)"
"(물끄러미) ... (활짝~!)"
"꺼어푸~ 으허푸~"
놈은 나의 공격에 잠시 움찔하는듯 하더니 결국 책상에 엎어져 버렸다.
그리고는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산할아버지~ 개구리 밟았네 .................................떡됐네!
산할아버지~ 개구리 밟았네 잘못하여 두마리 밟았네...........떡됐네!
산할아버지~ 개구리 밟았네 잘못하여 세마리 밟았네...........떡됐네!
산할아버지~ 개구라 밟았네 잘못하여 네마리 밟았네...........떡됐네!"
(이 노래를 부를 때 유의 할 점)
1.'산할아버지' 리듬에 맞춰부른다.
2.앞부분은 은은하게, '떡됐네'는 극도의 허무한 톤으로 부른다.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수절하는 과부처럼 몸부림치며 개구리 1000마리
정도를 밟아 떡을 만들고 있는 놈을 계속해서 무시하기란 무척이나 힘겨운
일이었다.
성질 같아서는 놈이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펼쳐놓은 정석책을 빼앗아
아무데나 펴서 나온 페이지수만큼 패버리고 싶었다. -_-;
돈마는 집요했다.
특히 '돈'에 관련된 문제라면, 그것이 '공짜'인 경우에는 더더욱이 집요했다.
문득 왈구가 들려준 돈마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생각났다.
....................................................................
놈이 어린 시절, 놈은 한 판에 50원이나 하는 인베이더를 하며 하루 용돈
100원을 다 탕진하고는 다른 엉아들이 오락하는 것을 한참이나 더 구경하곤
했다고 한다.
"어어? 저 비행접시 500점짜린데! 그냥 보내면 안돼는데!"
"에에~ 방어막 뒤에서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쏴야 쉽게 깨는데!"
그런 생활을 1년간 꾸준히 반복하던 돈마, 결국 낯이 익던 나쁜 형아들에게
조용히 불려가는 일을 경험해야 했다.
"뒤져서 나오면 십원에 한대씩이다"
깡패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조용히 읊조려 봤음직한 명대사를 차분하게
감상하던 돈마는 마음 속으로 조용히 주판알을 튕겨보았다고 한다.
'10원 = 1대, 0원 = 0대 ... 0원 = 0대! ... 0원 = 0대!'
어처구니 없는 산술적 계산으로 가지고 있는 돈이 없으니 한 대도 맞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돈마는 나쁜 형님들에게 씩씩하게 대답을 했으니 ...
"헤헤~ 안맞아도 되겠는데요? 헤헤헤~"
대사와 동시에 즉시 돈마의 두눈에 파란 코스모스가 피었음을 물론이다.
한참을 맞다가 더 이상 맞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돈마는
부랴부랴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고 ...
주머니 속에서 뭔가를 발견한 돈마.
"저 ... 돈이 있긴 있는데요."
"있으면 빨리 토해내야지, 이 색햐!"
"이거 아버지가 아무한테도 주지 말라고 한건데 ..."
"어쭈? 요노무쉑히 봐라? 게기냐?(퍽~) 엥기냐?(짝~)"
"(냉큼) 여기요"
돈마가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한 큐에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그 돈.
상품 교환의 매개물이자 가치척도의 수단이 됨을 물론 이와 같은 유사시
신체를 보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가적 기능이 있던 그 돈.
그 돈은 ...
'10샌트'였다. -_-;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서~ 그대 숨소리 살아있는 듯~ 느껴지면~"
그날 돈마는 형님들 앞에서 1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노래를 불러야 했다. -_-;
그 사건 이후로 생겨난 별명이 바로 '돈마'였다
'돈'과 그 당시 유행하던 '전자키트'라는 상품에서 힌트를 얻은 '마'그네틱
스피커의 어색한 합성어였다.
*주) 마그네틱 스피커 : 영구자석을 이용하여 음성 전류를 소리로 바꾸는 확성기
그 당시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놈은 뭔가를 요구할 때, 가끔 음도 뜻도 모를
노래를 지껄이곤 했다.
때문에 돈'마'의 '마'는 '마키아벨리즘(Machiavelism)'으로 변형되어도 무방할
듯 했다.
*주) 마키아벨리즘 : 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모와 술수를
부리는 행동양식.
결국 난 자리에서 일어나 놈과 함께 식당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놈의 이성에 호소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피었습니다!
채송화는 짓밟고 봉숭아는 따먹자! 누헤, 누헤, 누헤헤헤~!"
라면을 먹으러 가는 돈마의 체내에서는 이미 타오린 1000mg이 생산 중
이었다.
그 누구도 막지 못하리라, 그의 앞길을.
그 누가 있어 배가 고파 라면을 얻어 먹으러 가는 그의 앞길을 막을것인가.
삼라만상을 두루살피고 보듬어 안아줄 신선과 같은 범상함을 지닌 미친개변태
싸이코를. -_-;
"난 나중에 커서 고등학교 식당 주인이 될거야. 이건 불황이 없는 장사라니까.
초등학교나 대학교는 방학이 길어서 그동안 못팔아먹지만, 고등학교는 보충
수업 때문에 방학도 없고, 부모들이 자식새끼가 배고파서 라면 사먹겠다는데
돈 안 줄 부모도 없다고."
... 라면을 먹으며 지껄여대는 놈의 포부 또한 대단하기만 했다.
그 날 흐믓하게 라면을 얻어 먹은 돈마는 그 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땡땡이를
쳤다.
..........................................................................
졸업 후, 돈마는 고딩 때의 꿈을 현실로 옮기려 한남동에 포장마차를 하나 냈다.
시간을 내어 찾아간 그 포장마차에는 이런 간판이 걸려 있었다.
"놈"
... 놈?
난 한참을 추리해 보고서야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 오늘 쉽니다 = 오늘 놉니다
... 쉼 = 놈
-_-;;;;
"가열차게 논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냐? 크하하하~"
놈은 언제나 그렇듯 즐거웠다.
... 물론 놈의 가게는 1달만에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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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방
#고교전설 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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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느므느므 재밌어요~ㅋㅋ
진짜 오랫만에 제대로 웃네여. 계속 올려주세요~
ㅋㅋㅋ 좀 길긴하지만.. 진짜 잼있다.. ㅋㅋㅋㅋ
대박이예요 ㅋㅋㅋㅋㅋ 글 정말 잘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ㅠㅠ 진짜 웃긴다;;앞으로도 많이 올려주세요.ㅋㅋㅋㅋㅋ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