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를 반대하는 글이 신문이나 카페 글에서 자주 나옵니다. 난 그들이 보수인지 진보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글을 보면 성경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성경을 왜곡하거나 일부만 보고 자신들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십일조는 율법적이라고 말은 합니다.
과연 율법적일까요? 모세가 받은 율법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신에게 예물을 바칠 것을 명하는데 그중에 십일조란 말이 나온다. 십일조란 용어가 모세의 율법속에 나오는 예물의 한 이름이라 하여 오늘 현대교회에서 십일조를 드리는 일을 율법적 행위를 하는 것이라 비평을 한다. 십일조 드리는 것이 율법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십일조를 비판하는 무리들이 가장 잘 사용하는 말이 십일조란 율법적 행위를 하면 예수님이 주시는 믿음에서 얻는 구원이 해방을 받게 되며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돌아가게 되는 이단 행위로 몰고 간다.
그러면 십일조는 어느 시대 때부터 존재해왔는가 성경을 살펴보면 십일조는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아브라함이 살렘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일로부터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다. 할례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모세의 율법 역시 언약이다. 그러나 십일조는 언약이 아니다. 좀 더 깊게 보면 아브라함은 모든 자의 조상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자에게는 믿음의 조상이고. 할례를 통해서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을 얻는 자에게는 할례자의 조상인 것이다.
이 말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아브라함이 행한 일을 믿음의 후사인 우리가 그 자취를 따라서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 자취란 멜기세덱에게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리듯이 우리 역시 믿음으로 모든 만물은 하나님 것이므로 인정하여 믿음으로 드리는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영적 유대인이다. 즉 아브라함의 후손인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사요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를 따라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드리는 것이 무엇이 율법에 속한것이며 무엇이 예수님이 주신 믿음의 법을 부인하는 행위인가? 위에 쓴 글은 성경적 근거로 쓴 것이다. 십일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경적 사실을 성경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생각으로 또는 추상적으로 전개를 하면서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14장20에 나오는 멜기세덱에게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치는 것을 십일조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그 후 야곱도 십일조를 드릴 것을 하나님에게 약속한다. 이와 같은 십일조 드리는 일을 살펴 보면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행할 십일조 이전에도 하나님께 자기 소견대로 예물을 드렸다는 구절이 신12장 8절에 나온다. 이것을 살펴보면 아브라함 이전에도, 노아의 홍수 이전에도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께 예물로 자기 소산의 십일조를 안 드렸다고 간주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자기 조상들로부터 십일조에 관해서 듣고 알고 있었다. 라는 논리를 누가 거부 할 수가 있겠는가? 야곱이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누가 볼 수 있겠는가? 야곱이 십일조를 드린 기록이 없다고 야곱이 헛 맹서를 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또한 멜기세덱에게 아브라함은 자신의 노략물로 십일조를 드린 것을 본받아 우리가 노략물이 아닌 다른 물질로 드린다고 해서 흠이 되겠는가? 이 모든 것들이 십일조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트집 일뿐입니다.
여기서의 결론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취를 따라 우리도 십일조란 예물을 하나님에게 드렸다고 해서 그것이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할례란 언약에도 구약의 율법에도 걸리지 않는 믿음의 행위일 뿐이다.
신약의 헌금행위는 믿음으로 마음에 감동에 따라서 마음에 정한대로 드린다고 한다. 이런데 이 말은 언듯 듣기에는 맞는 말 같으나 신약에서 가르치는 헌금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마음에 정함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즉 어렵다는 내용이다.
신약의 헌금행위는 즉 헌금관은 구약에서 드리는 십일조와 여러가지 다른 예물보다도 더 엄격하다.
제자들이 주님께 배운 대로 가르친 결과가 행전 2장에서 나온다. 참으로 어려운 헌금관이다.
부자 청년에게 네 모든 소유를 이웃에게 주라고 했을 때 제자들이 보고 과연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 하고 물었고 주님께서 사람은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도 시대 때 자신을 포기한 헌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헌금을 드리는 일도 봉사의 직무로 성령의 은사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가능 한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에서 가르치는 헌금내용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마 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눅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눅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우리 주님께서 이웃을 구제 할 수 있도록 가진 것을 전부 요구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행할 수 있을까요? 신약 속에 나오는 교회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고전9장 12절에서 말하고 있듯이 봉사의 직무를 은사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봉사직무를 은사로 받았나요? 받지 못했다면 신약시대 초대교회 교인처럼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연보 즉 헌금에 관해서 윗글에서 말한 대로 가르쳤을 것이다. 성도가 드리는 것이 연보답게 드릴 수 있도록 가르치는 내용이 고후8장과 9장에서 나온다.
연보답게 드리는 것은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인색하지 않고, 억지로 드리는 것이 아니고. 자원해서, 마음에 정하여,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물질의 청지기로서 얻은 수익을 가지고 하나님 사업에 기쁘게 드려야 할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면 우리는 얼마를 드려야 하나 생각하게 될 것이다. 과연 얼마를 드려야 할까요?.
고후8장12절에서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이 말은 연보에 정함이 없다는 것이다. 액수는 정함이 없이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연보한다면 예수님이 과부가 연보궤에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넣는 것을 보고 칭찬 한 것같이 우리도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소득의 십일조를 하던 소득의 반을 하던 얼마를 하던 자기의 형편에 따라서 하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인데 왜 십일조란 헌금에 관해서만 공격을 하는 것일까요? 현재의 교회가 십일조가 가장 큰 재정이고 십일조가 가장 보편적인 헌금 방식이기 때문에 가장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의 재정에 가장 큰 핵심인 십일조 헌금이 없다면 많은 타격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방해하는 일은 성도가 성도를 섬기는 일을 훼방하는 일이며, 고후9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성도가 받는 축복을 훼방하는 일이다. 더 많이 있지만 생략합니다. 십일조가 구약적이다. 미신적인 축복을 추구하는 행위다 라는 말로 훼방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신약 고후9장에서 말하는 의의 열매를 맺게 하는 일과 심을 것을 주신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훼방하는 자들이다.
이런 일들은 성경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로부터 잘못 배워서 그렇게 하는 것도 있지만, 한국 교회를 훼방하는 이단세력도 있을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우리의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물의 주인인 것을 시인하는 믿음 속에 감사를 표현하는 일이다. 성도가 성도를 사랑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교회의 확장과.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주는 일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던 것을 신약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여 행위의 법에서 믿음의 법으로 구원을 완성한 것처럼, 구약의 불완전한 예물드리는 법을 완전한 신약의 헌금관으로 완성하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온 것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신약에 십일조란 언어가 없는 것은 신약의 헌금속에 그것이 포함되여 있기 때문이다. 십일조가 소금이고 신약시대에 헌금관이 물이 라면 그 소금은 신약의 헌금관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맛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반대를 하는 것이다. 십일조가 잘못 쓰인다고 해서 성경을 부인하면서까지 폐하려는 자들을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주님의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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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글은 십일조를 반대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쓴 여러 글중 하나입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맘으로 올려 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