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_아버지
영원의 길 위에서
누구나 한번은 죽는 것이 아니다.
다만 죽어서 바람이 될지, 아니면 외마디로 울고 있는 새가 될지, 모르지만 어쩌면 이 세상에 무엇인가로 다시 태어나 삶을 영위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풀 한 포기나무 한 구루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반석천을 빙 둘러 마라톤 하는 길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뛰니, 정말 구름 위를 걷듯 힘든 줄을 전혀 몰랐다.
결국 추억만이 남겨지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 내일부터 황사가 몰려온다는 뉴스 앵커의 말이 귀에 쏙 들어온다. 오늘은 토요일, 아침운동을 끝내고 들어와, 샤워를 막 마친 후였다. 아내는 전등도 켜지 않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지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티브이 소리와 엉켜 거실에 떠돌고 있다.
나는 주방으로 가서
-오늘 등산이나 갈까?
아내는 짧게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그러던 지요.
-휘세(暉世)는
-물어 보세요?
물어보나 마나한 얘기를 나는 형식적으로 물었고, 아내도 형식적으로 대답한다.
한 번도 같이 등산을 가본 적이 없다. 있다면 초등학교 때 반 강제적으로 온 가족이 산행을 한 적이 있을 뿐이다. 나는 구석에 있는 아들 방을 노크한다. 부정적인 대답을 짐작하면서 문을 연다. 자욱한 담배연기가 금시 성질을 건드렸지만 꾹 누르며 묻는다.
-엄마, 아빠 등산 가는데 같이 갈래?
옆으로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것을 보니 잠은 깬듯하다.
-그래요.
와, 하고 하마터면 탄성을 지를 뻔 했다. 너무 의외의 대답을 들어서 얼마만의 등산인가. 가족이 함께하는 아니, 아들과 함께하는 등산, 딸과는 가끔 등산을 했지만 아들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혹시 꿈이라도 깨질까 주방으로 와서 아내에게 전한다. 그러나 아직은 속단하기 이르다. 언제 생각을 바꿀지 모르기 때문이다.
거실에는 난화분이 하나 놓여있다. 얼마나 향기가 진하던지 안방에다 두고 지내다. 거실에 옮겨놓은 것이다. 나는 몇 번 아내의 손을 끌고 향기를 맡아보라 했지만, 아내는 향기를 맡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향이 짙어 냄새를 맡지 못하는 거라며 웃었었다. 하얀 도화지위에 화분을 올려놓았는데, 꽃잎 몇 개가 마치 새발자국처럼 떨어져 있다. 아직 남아 있는 꽃잎도 향기를 여의었다. 향암회 친구들이 시인이 되었다. 고 선물한 제주한란 화분이다. 제때 분갈이를 하지 않아 잎이 노래지고, 잎을 많이 잘라 주었으나, 회복이 되지 않아 걱정했으나, 봄 되면서 맨 먼저 화신을 전한 꽃이다. 병든 화분너머로 작은 화단이 있는데, 유난히 붉은 카네이션 꽃이 만발해 있다. 작년 어버이날 받은 화분을 옮겨 심은 것, 아니다. 아내가 무슨 마음으로 세 개의 화분을 사왔다는 것을 알았지만 따지지 않았다. 딸이 취직해 분당에 가있기 때문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모래 폭풍이 부는 타클라마칸 사막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듯이 화단 너머가 희미하게 떠오른다.
나는 화단으로 나가 잡초를 뽑는다. 잡초라야 클로버가 전부지만 누군가 세 잎 클로버를 행복이라고 하지만 너무 왕성하게 퍼져 화단을 점령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혹시나 하고, 네 잎 클로버를 찾는다. 나에게는 행운이 없다고 생각해서 일까. 그러고 보니 저 서구 관저동에 살 때 아이들에게 찾아 준적이 있다. 인디언 추장은 말 했다지 침략자인 서양인들에게 “인디언 말에는 잡초란 말조차도 없다고.” 처음부터 잡초는 아니었을 것이다.
올해가 54번째 봄이다. 밖은 이미 봄이 무르익어 도저히 다시 겨울로 되돌려지지 않을 만큼 포근했다. 아파트 후문을 나와서 셋이서 걸었다. 아내는 나오자마자 얇은 점퍼가 덥다고 지퍼를 연다. 아들은 스포티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었다. 왠지 불안해보였지만, 오늘은 따라나선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뒤따르던 아내가 아들의 등에 인쇄된 'QUICK SILVER'가 무슨 뜻이냐고 아들에게 묻는다. 아내도 무슨 뜻인가. 짐작이 가는 듯 가벼운 채팅을 해보는 것 이었다. 그래도 아들은 나도 모른다고 말할 뿐 짜증은 내지 않는다. 해줄 말은 너무 많지만 오늘은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제까지 살면서 한 번도 내말을 듣지 않은 자식이다. 그리 홀로 성인이 되었다.
날씨는 덥지만 아직 꽃은 피지 않았다. 등산로는 아파트를 나와서 1키로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된다. 우산봉 까지는 왕복 4시간 거리 아침에 이미 1시간 30분정도 뜀박질을 한 상태라 무리지만 내색을 안기로 했다. 나 때문에 아내의 운동을 망치기는 실었다. 그 보다도 오늘은 저놈과의 등산이 아닌가. 산은 많은 것을 말해줄 것이다. 동네 산이라 나이든 할아버지나 아주머니들이 많다. 그러나 이 산은 그저 만만한 산은 아니다. 주봉인 우산봉 까지 오르려면 가파른 산길을 2시간 동안 가야 되니 보통 이상의 체력은 돼야한다.
길 입구는 별도로 없다. 반석농장이라는 써있는 문을 밀고 들어가면 길은 시작된다. 아마도 있던 길을 없앤 듯 철망이 좁은 길 한가운데에 세워져 겨우 사람하나 빠져 나갈 수 있는 정도다. 질퍽한 수로다. 그래도 이 길은 법륜사라는 작은 암자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안과 밖의 경계는 없지만 산도처럼 이어진 것이다.
아내는 서울 사람이다. 그러나 아내를 만난 것은 서울이 아닌 대전에서였다. 자그마치 선을 백번쯤 보았다는 아내는 대전까지 나를 만나러 왔었다. 맞선을 보러 왔었다. 그때 나는 안양에 있는 외갓집에서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 하고 있을 때였다. 고향 계모임이 있어 잠시 대전에 들렀다가 생각지도 않은 선을 보게 되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서울에서 온 성의를 생각해서, 형수님의 체면을 생각해서 집을 옆에 두고 천동 큰길 모서리에 있는 다방에서 선을 봤다.
그리고 우린 서둘러 3개월 만에 결혼을 했고 아들이 허니문 선물로 우리에게 왔다. 네가 전생에 살다가 우리에게 왔고 우리 또한 너를 원해서 받아준 것이다. 한 뱃속에서 낳은 자식도 생김새나 성격이 다른 것을 보면 너를 만든 것이 아니라 엄마는 너를 낳았을 뿐이다. 지금 네가 불만에 가득차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유구한 길 위에서 만나 동행하고 있는 거겠지 우리가 살다온 전생이 이승으로 이어지고, 훗승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입은 몸은 그저 잠시 빌린 옷에 불과하겠지 저 인도나 네팔에 가면 그들은 ‘나마스떼’ 라고 인사를 한다지, 그게 내 안에 있는 영혼이 네 안에 있는 영혼에게 안녕하냐고 묻는다는 인사라니, 당연히 행복 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인기척에 놀라 알을 품던 까투리 한 마리 이산에서 저산으로 날아간다. 길을 허공에도 있다.
첫댓글 선배님의 글을 감히 평한다면 선배님의 자서전 같습니다.선배님의 글을 읽고나니 마음이 평온합니다. 선배님의 자서전 아님 수필같네요? 맞아요그리고 선배님 연락처좀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