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축구연맹 창립 100주년을 맞아 개최되는 코파아메리카 센테나리오에서 연이어 강호들의 고전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10일 오전(한국 시간)에 열린 경기에서 우루과이가 베네수엘라에게 패하고, 멕시코가 자메이카에 승리하면서 우루과이의 8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브라질 역시 에콰도르를 상대한 첫 경기에서 ‘졸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코파아메리카2015 챔피언 칠레의 시작도 좋지 않다. 아르헨티나에게 질 수는 있지만 부진한 경기력이 문제이다. 코파아메리카가 원래 치열한 대회라고는 해도 이번 대회에서 힘을 못쓰는 강호들이 유독 눈에 띈다. 이번 대회를 전술적 측면에서 보면 수비적으로 물러서는 팀이 오히려 강한 공격력을 선보이고 있다. 바로 여기엔 ‘두 줄 수비’에 더해진 ‘역습’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점유율 축구'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두 줄 수비는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점유는 공격의 ‘양’은 확보하지만 ‘질’은 보장할 수 없다. 두 줄 수비는 상대 공격의 ‘질’을 떨어뜨리는 전략이다. 때문에 두 줄 수비는 객관적 열세에 놓인 팀이 경기 주도권과 상관없이 강팀을 괴롭힐 수 있는 전술이다. 두 줄 수비의 핵심인 ‘좁은 간격’은 한 명이 돌파 당해도 이를 커버해줄 동료가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두 줄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수비의 형태를 흩트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 게다가 최종 수비 라인도 깊은 위치까지 끌어내리고 나면 수비의 배후 공간도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공략하는 일은 어느 팀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시즌 가장 뜨거웠던 두 팀, 아틀레티코마드리드와 레스터시티가 바로 두 줄 수비를 펼치며 좋은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수비적으로 내려선 것만으로는 이들의 선전을 설명할 순 없다. 튼튼한 수비는 결국 0:0의 결과를 낼 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수비적인 탄탄함을 바탕으로 상대를 공격 진영까지 끌어들인 후, 잘 조직된 역습으로 상대의 배후 공간을 공략했다. 수비적인 자세로 경기에 나서지만 '역습'을 통해 공격력을 배가시키는 방식으로 '두 줄 수비'가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남미 축구 100년을 기념하는 코파아메리카의 판도가 심상치 않다.
두 줄 수비가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팀들이 수비적인 안정감을 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두 줄 수비의 돌파는 모든 팀들에게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이런 두 줄 수비 공략은 수비 형태를 무너뜨리는 것이 핵심이다. 수비의 형태를 무너뜨리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 특출난 개인 능력으로 수비를 1:1로 돌파한다. FC바르셀로나의 MSN(메시, 수아레즈, 네이마르)이 밀집 수비를 돌파하는 방식이다. 한 명을 돌파하면 이를 커버하기 위해 다른 수비수가 위치를 깨고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부터 수비 형태에 균열이 시작된다. 형태가 무너지면 공간이 나오고 이 공간을 이용하면 찬스를 만들 수 있다.
둘째, 측면 수비수들의 공격 가담이다. 후방에서 의외의 선수의 공격 가담은 수비 형태를 흔드는 데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데, 중앙에 비해 수비 밀도가 낮은 측면에서 효과적이다. 지공 시에 좌우로 넓게 벌려 서있는 날개 공격수, 이를 막는 측면수비수는 모두 정적인 상황에 놓인다. 여기에 역동적인 움직임을 더하며 상대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이 후방에서부터 속력을 붙이고 침투하는 측면 수비수이다. 측면이 무너지면 중앙 수비수들의 형태도 흐트러진다.
셋째,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다. 간결한 패스 연결과 이에 어울리는 빠른 침투로 상대를 흔드는 것이다. 하지만 수비 밀도가 높은 중앙에서 이런 플레이는 애로 사항이 많아 부분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즉 측면에서의 위협적인 공격이 따라 중앙의 수비 밀도를 낮출 수 있을 때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상 언급한 공격 방식은 지공 시의 수비 형태를 무너뜨리는 방법인데, 공통적으로 점유율을 잘 유지할 수 있는 패싱 능력이 필수이다. 주도권을 쥐고 흔들며 상대의 수비 형태를 무너뜨리는 방법이다. 때문에 이런 방식의 공격을 취할 수 있는 팀은 많지 않다. 지난 시즌까지는 FC바르셀로나, 바이에른뮌헨 정도가 가능했던 방식이다. 사실 지난 몇 년간 전술의 화두였던 전방 압박의 목적 역시 전방에서 공을 탈취함으로써 상대가 수비 형태가 갖춰지기 전에 공격하는 것이다. 결국 수비 형태를 무너뜨리고 공간을 만드는 것이 수비 조직이 조밀해진 지금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이티 전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대승을 이끈 쿠티뉴.
하지만 브라질 축구의 부활을 이야기하기엔 아이티가 너무 약했다.
출처: 가디언
하지만 이보다 더 쉽게 상대 수비 형태를 흩트리며 공격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 이는 '언더독'들이 강한 상대의 견고한 수비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바로 두 줄 수비에서 빠르게 연결되는 역습이다. 역습을 당하면 공격적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져 있는 상황이라 수비 형태를 제대로 잡을 수 없다. 게다가 최종 수비 라인의 전진에 따라 배후에도 많은 공간을 노출한다. 후방으로 물러나는 동시에 침투하는 선수들까지 완벽하게 견제할 순 없다. 그래서 공격하는 쪽이 역습 시에 공간을 제대로 배분하며 침투하고 적절한 패스를 할 수 있다면 쉽게 상대 수비를 무너뜨릴 수 있다. 하지만 충분히 연습이 되지 않았거나 선수들끼리 약속된 플레이가 아니라면 간결한 연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빠른 공수 전환 속도를 위해서는 선수 드리블을 통한 개인의 ‘돌격’ 능력도 중요하지만, 적절한 침투와 볼의 흐름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감독에게 달려있다. 팀의 공격 조직력을 높이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감독의 ‘생각’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다. 감독이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 선수들이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역습 상황에서 공간 침투와 패스가 이어질 수 있도록 팀 전체를 관통하는 전술적 약속이 필요하다. 이것이 감독의 손에 달린 것이다.
브라질의 첫 경기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혹평을 내린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는 공격을 펼쳤지만, 에콰도르의 수비 형태를 흩트릴 수 있는 공격 형태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에콰도르가 공을 탈취한 후 역습에는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브라질 역습의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니었다. 아이티를 상대로 7골을 뽑으며 승리를 따냈다고는 해도, 양 팀의 개인 능력 차를 봤을 때 브라질 축구가 살아났다고 하기엔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칠레의 첫 경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칠레는 지난 아르헨티나 전에서 공격 시에 철저히 개인 능력에 의존한 공격을 펼쳤다. 알렉시스 산체스의 경우 몇몇 드리블 돌파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산체스가 연계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역습에 강점을 가졌던 칠레이지만 아직까지는 조직된 역습이 아니라 파편화된 개인적 차원의 역습밖에 보여주고 있지 못했다.
현재 가장 위협적이고 잘 조직된 역습을 보여주고 있는 팀은 콜롬비아와 멕시코이다. 콜롬비아의 경우 수비력에서는 다소 불안함이 있지만, 하메스를 중심으로 역습 상황에서의 공격력이 엄청나다. 개개인의 드리블 능력까지 출중해서 1:1 돌파도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다. 멕시코의 경우는 마르케스를 중심으로 한 수비가 단단하고 역습 상황에서도 패스가 빠르고 간결하다. 특히 이른바 ‘얼리 크로스’ 방식으로 상대가 수비 조직을 갖추기 전에 수비 배후 공간으로 과감한 침투 패스를 넣고 치차리토 등 공격수들이 침투해가는 방식도 매우 위협적이다. 두 팀 모두 역습의 조직력이 매우 훌륭하다. 감독이 잘 조련시킨 결과로 보인다. 이 두 팀은 이미 8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단연코 이번 대회의 우승 후보로 꼽고 싶은 팀이다.
핵심은 수비에서 역습으로의 연결의 자연스러움이다. 수비의 견고함과 역습의 속도·정확도가 이번 대회 강팀들의 희비를 가르고 있는 핵심이다. '수비적 축구'가 '공격력'을 강화하는 '역설'이 대회를 지배하고 있다.
소속팀에서의 부진을 딛고 콜롬비아의 에이스로 활약중인 하메스 로드리게스.
역습 상황에서의 드리블과 패스 능력은 발군이다.
출처: 코파아메리카2016 홈페이지
이번 코파아메리카는 상대적으로 전력 상 열세에 놓인 팀이라도 전술적 조직력이 충분히 높아졌다면 얼마든지 ‘자이언트 킬링’이 가능해진 최근 축구의 흐름을 대변하는 대회라고 생각된다. 지난 몇 년간의 유럽 무대에서 아틀레티코마드리드가 보여주었던 선전을 이번 대회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란 뜻이다. 패션에도 유행이 흘러가듯 이제 '두 줄 수비'의 시대는 '역습'의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이변’은 ‘한 골’의 무게가 깊어지는 토너먼트에서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번 주말 개막하는 유로2016에서도 화려하기보다 단단한 팀들이 역습을 내세워 선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2016년의 여름 ‘수비 축구가 보여주는 화려한 공격'의 역설적 아름다움을 목도할지도 모르겠다.
http://blog.naver.com/hyon_tai
첫댓글 좋은글이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