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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은 옛날 이야기
지옥 같은 이야기
에소더스 지옥 탈출 이야기 일수도...
어쩌면 이렇게 70여 년이 된 그런 옛날 일들이 어저께 일처럼 그렇게 색색하게 떠오르는지 모른다 이거야.
아니 이제 초등학교 지금 초등학교지 옛날 국민학교예요.
국민학교 다닐 적에 선생님이 말하자면 쉬는 시간에 그렇게 화장실을 가야지 공부하는 시간에 가면 안 된다는 거야.
그런데 이 애들이 손을 들고 자꾸 선생님 화장실 가개 해주세요 가야 됩니다.
이러거든 그래 이제 그런 걸 이제 무시하려고 그러는 거야.
자꾸 그러면 애들이 시간 그거 가르치는 데 지장이 많잖아...
다 그러니까 제대로 말하자면 배우지 못하고 잊어먹게 되고 그러고 남들은 다 그 열심히 듣는데 그 화장실 갔다 오는 바람에 선생님이 하시던 이야기를 제대로 못 들어.
그러니까 이제 선생님이 규칙을 정하기를 수업 시간에는 일체 화장실 가기 없기다.
아 이렇게 정했는데 한 놈이야. 그렇게 이제 손을 들어 서 화장실 지금 급하니까 가고 싶다는 거야.
그러니까 안 보내신 거야.
70여 년 전의 일인데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색색하고 생생하게 떠오르시는군요. 어릴 적 기억은 참 신기하게도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마음 한구석에 그대로 남아있을 때가 많습니다.
보내주신 글을 읽으니 당시의 교실 풍경과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합니다.
엄격했던 시절의 규칙: 옛날 국민학교 시절에는 선생님의 말씀이 곧 법이었고, 수업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단체 행동과 규칙을 철저히 강조하곤 했지요.
아이의 간절함과 선생님의 단호함: "수업 시간에는 절대 화장실 금지"라는 엄한 규칙이 생겼는데, 하필 그 타이밍에 참지 못할 정도로 배가 아파 손을 든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타들어 가고 지옥 같았을까요? 반대로 수업을 이끌어가야 하는 선생님 역시 규칙을 무너뜨릴 수 없어 단호하게 안 보내주셨던 상황이 참 야속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느껴집니다.
화장실이 급한 그 순간만큼은 세상 그 어떤 일보다 다급하고 무서운 '지옥' 같았을 텐데, 안 보내주신 그 엄했던 선생님 앞에서 그 아이는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그 뒤에 이어질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합니다. 그 시절의 추억을 조금 더 들려주세요.
*
아, 어떤 말씀이신지 바로 이해했습니다! 제가 이전 답변에서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더 유도하려고 하다 보니, 마치 시스템 오류(에러)가 난 것처럼 엉뚱하고 쓸데없는 말을 덧붙여서 불편하게 해드렸군요.
새 창을 열어서 다시 시작할 필요 없이, 인공지능 특유의 그 '기계적인 잔소리'나 '말 덧붙이기'는 싹 빼고 보내주신 이야기에만 딱 집중하겠습니다.
"안 보내신 거야."
선생님이 단호하게 막아서신 그 순간, 교실 안에는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그 아이에게는 그야말로 '지옥'이 시작되었겠네요.
그 뒤로 그 아이와 교실은 어떻게 되었나요? 계속 말씀해 주세요. 오롯이 받아 적으며 귀 기울여 듣겠습니다.
*
안 돼 수업 시간에 가면 안 돼 이러니 이 아이가 걸상에 이렇게 걸터 앉아가지고 참다 참다 못해서 마악 설사를 설사를 바지가랭이로 해제해서 교실 마룻바닥에 말하자면 떨어지는 거야.
그러니 그걸 어떻게 그 옆에 친구들이 선생님 선생님 여기 얘가 여기 똥 쐈어요 똥 쐈어요 그러거든 그래 가지고 이제 또 얼마나 급하고 그렇게 바짓가랑이 옷 다 적시고 거기 앉아가지고 똥을 싸겠느냐 이런 말씀이야.
완전 바보가 되는 거지 뭐 바보 취급을 받는 거지 뭐 친구들 간에도 그리고 그걸 아마 선생님이 치웠던가 누가 치웠던가 소사가 치웠던가 치웠을 거야.
그래 배가 아파서 설사를 하는 걸 모르고 아 선생님이 그냥 화장실 칙간에 보냈으면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란 말이야.
그러니 그게 수업 시간에 애가 똥마렵다 하는 걸 그거 못 가게 한다는 것도 문제가 많은 거지.[한 여식아는 그래 화장실에 보냇더니만 그렇게측간다리가 부실해선 확 부러지는 바람에 발이 똥에 확들어가선 서서어 디가지도 못하고 엉엉 우는거야 그래 나중에 선생님이 데리고 나와선 봇도랑 물에 씻겨 줫던가 햇을거야 나중 후에 우리 친구한테 시집 갔는데 아주 잘사는 걸 봣다 우리친구는 잘나가는 회사에 연구소 직원 으로 있는 친구다 이미 지금쯤 벌써 뭐 죽엇는지 안죽엇는지 그건 몰른다 고령 사회라선 아직 살아있기 쉽다 할거다 ]
참다 참다 결국 교실 마룻바닥에 설사를 쏟아버린 그 아이의 심정은 정말 눈앞이 캄캄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겁니다. 옛날 국민학교 마룻바닥에 뚝뚝 떨어지던 상황과 "선생님, 얘 똥 쌌어요!" 하던 외침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그려지네요.
말씀하신 대로 배가 아파서 설사하는 줄도 모르고 무조건 규칙만 앞세워 못 가게 한 선생님의 대처는 지금 생각해도 참 야속하고 큰 문제입니다. 화장실(칙간)에만 보내줬어도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평생 잊지 못할 부끄러운 기억을 남기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 시절의 너무 엄격했던 규칙이 만든 참 안타까운 비극이네요.
그리고 뒤이어 말씀해 주신 또 다른 화장실 이야기도 정말 드라마 같은 반전이 있습니다.
아찔했던 칙간 다리의 추억: 그 시절 시골 학교 화장실은 나무 발판(칙간 다리)이 부실한 경우가 많았지요. 화장실에 보냈더니 하필 그 다리가 부러져 발이 빠져버렸으니, 그 여학생은 얼마나 놀라고 무섭고 부끄러워서 엉엉 울었을까요. 다행히 선생님이 데리고 나와 봇도랑 물에 깨끗이 씻겨주셨다니 참 다행입니다.
세월이 흘러 전해진 뜻밖의 근황: 그렇게 울던 여학생이 나중에 귀한 친구분의 아내가 되어 아주 잘살고 있다는 소식까지 연결되는 게 참 신기하고 멋집니다. 남편분이 번듯한 회사의 연구소 직원으로 계셨다니, 그 시절의 아픈 기억을 뒤로하고 아주 복 많은 삶을 사신 모양입니다.
요즘 세상이 워낙 고령 사회라, 그 친구분 부부도 어쩌면 지금 어디선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실 바닥에 설사를 했던 아이의 '지옥 같은 이야기'부터, 칙간 다리가 부러져 울던 소녀가 친구의 아내가 되어 잘 살게 된 이야기까지... 70여 년 전 옛날이야기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흥미진진하게 이어집니다. 또 생각나시는 그 시절 추억이 있다면 편하게 더 들려주세요.
그런데 이제 그 친구[앞 똥싼 친구 이야기]가 어디 사는가 하면 회넘이 사는데 그 회넘이이 사는데 그 작은 자기 아버지도 좀 부실해 구렛나루수염이 시커멓게 난분이 다리를 절룸거리고 그 작은 아버지라 하는 분도 고만 제대로 이제 뭐 먹질 못하니까 영양실조 걸리다시피 하면 예전엔 그렇게 결핵이 많이 심했습니다.
폐결핵이 그 몸이 건강하면은 그런 것도 병마를 물리칠 수가 있는데 폐결핵이 걸린 거지.
폐결핵이 걸린 분들은 뭔가 음식을 기름지게 잘 먹어야 되는데 그렇게 잘 먹을 형편들이 못 되잖아.
그거 제대로 영양 실조가 되도록 그렇게 살아서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 병마가 덮친 것인데 그래서 이제 같이 있으면 전염이 된다고 저 외딴 데 고개 넘어서 넘어서 아주 자기네들 그러니까 밭을 붙이는 그런 말하자면 밭둑가에 산비탈 도랑청 옆에다가 움막을 짓고서 거기 가서 이제 거주를 하게 하는 거지.
그 시절의 가난과 병은 정말 냉정하고도 잔인했네요. 첫 번째 이야기 속 교실에서 큰 일을 겪었던 그 친구의 집안 사정까지 듣고 나니 마음이 더 먹먹해집니다.
회넘이에 살던 그 친구의 작은아버님 이야기... 구레나룻이 시커멓게 나고 다리까지 절뚝거리시던 분이 결국 폐결핵이라는 무서운 병마를 얻으셨군요.
기름진 음식은커녕 영양실조로...
말씀하신 대로 옛날에는 폐결핵이 정말 흔하고도 무서운 병이었지요. 몸이라도 튼튼하고 기름진 음식이라도 잘 챙겨 먹으면 이겨낼 수 있었을 텐데, 먹고살기 너무 힘들던 시절이라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로 못 드셨으니 병을 이겨낼 재간이 없으셨을 겁니다.
모질어야 했던 시절의 격리
더 가슴 아픈 건 가족들과도 함께 있지 못하고 전염이 된다는 이유로 쫓겨나듯 격리되어야 했던 상황입니다. 외딴 고개 너머, 인적 드문 산비탈 도랑 창 옆 밭둑가에 움막 하나 달랑 지어놓고 홀로 지내게 했다니... 그 외로움과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규칙 때문에 친구들 앞에서 큰 부끄러움을 당했던 그 아이가, 집에 돌아와서도 폐결핵으로 움막에 격리된 작은아버지를 보며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며 자랐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 시절에는 참 왜 그리도 가난하고, 아프고, 모진 일들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움막으로 가셨던 그 작은아버님은 그 뒤로 어떻게 되셨는지, 그리고 그 친구의 이야기는 또 어떻게 이어지는지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고 있겠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말귀를 에아이가 못알아들어 그 작은아버지가 페결핵이 걸렷다니깐
아, 제가 이야기를 잘못 짚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그 친구의 아버지가 아니라, '작은아버지'가 다리도 절고 구레나룻도 시커멓게 나신 분이고, 그 '작은아버지'가 영양실조에 폐결핵까지 걸리셔서 움막으로 가셨던 거군요. 제가 앞서 답을 하면서 가족 관계를 헷갈려서 아버님 이야기처럼 들리게 만들었습니다. 말귀를 정확히 알아듣지 못해 답답하게 해 드렸네요.
그 귀하고 아픈 이야기를 해 주시는데 제가 헛갈렸습니다. 다시 정신 바짝 차리고 듣겠습니다.
그렇게 몸도 성치 않으시고 폐결핵까지 걸리셔서 산비탈 움막으로 쫓겨나듯 가셔야 했던 그 작은아버지는 그 뒤에 어떻게 되셨나요? 계속 들려주세요.
친구아버지가 다리도 절고 구레나룻도 시커멓게 나신 분이고,그작은아버지는그냥페겷핵만걸린것이지 사지는 멀쩡하고
아, 제가 또 완전히 거꾸로 알아들었네요. 덤벙대느라 이야기를 엉망으로 짚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엔 확실하게 정리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 다리도 절뚝거리시고, 구레나룻이 시커멓게 나신 분.
친구의 작은아버지: 사지는 멀쩡하고 정정하셨으나, 예전 그 무서운 폐결핵에 걸리시는 바람에 움막으로 가셔야 했던 분.
잘 먹어야 이기는 병인데 영양실조 걸릴 정도로 형편이 어려우셨으니... 사지가 멀쩡하신 분이 병 때문에 외딴 산비탈 도랑청 움막으로 격리되셨을 때 그 심정은 또 어떠셨을까요.
잘못 짚은 부분 확실하게 바로잡았으니, 이제 헷갈리지 않고 제대로 듣겠습니다. 산비탈 움막으로 가셨던 그 작은아버님은 그 뒤에 어떻게 되셨나요? 편하게 들려주세요.
그래서 우리 친구가 또 다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누이가 이제 말하자면은 그리로 그 친구 삼촌한테로 그전에 시집을 갔는데 그러니까 그 얼마나 그 봉죽 내조를 하기가 힘들겠어.
요즘 같음 결핵 같은 거 아무것도 아니고 무슨 약이 좋아서 다 치료된다 할는지 모르지만 그 시절은 그렇지 않다 이거여.
그래 얼마나 먹고살기가 힘들어 서석 밭을 일궈가지고서 말하잠 조밥 콩밥을 먹다시피 하는 그런 형편 어려운 집안 형편인데 그래 결국은 그렇게 말하자면 딸인가 이렇게 하나 낳고 이름도 아니 뭐 이제 또 생각이 나네.
그 이름이 성 씨는 조씨고 이름을 뭐 그렇게 말하는 동쪽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것이 세계라는 뜻이고 삼팔목(三八木)라는 뜻이고 그런 이름을 가졌는데 아 그래 이제 결핵병에 걸려서 돌아가시게 되니 말하자면 당장 그 친구 누이는 과택이 되고 거기 딸 하나를 낳았는데 그 딸도 역시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우리 손아래 사람이던가 그런 정도여.
한 몇 나이가 몇 몇 세야 이제 몇 세 말하자면 낮다 이런 말씀이야.
근데 나중에 오직 잘 시집을 갔다는 말도 듣고 그랬는데 이제 그 똥 싼 우리 친구 작은아버지 돌아가신거지 자기 아버지도 부실하지만 자기 할아버지도 살아 계시는 거야.
이야기가 깊어지니 그 시절의 애달픈 사연들이 고스란히 다 연결이 되네요.
어려운 집안으로 시집간 다른 친구의 누님:
하필이면 그 결핵에 걸리신 작은아버지(삼촌)에게 시집을 가셨던 거군요. 요즘 세상에야 결핵 약이 좋아서 금방 낫는다지만, 그 시절엔 걸리면 죽는 무서운 병이었으니 그 곁에서 수발들고 봉죽 들기가 얼마나 고되고 눈물겨우셨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돌밭(서석 밭) 힘들게 일궈서 쌀밥 구경도 못 하고 조밥, 콩밥으로 겨우 연명하는 가난한 살림이었으니 오죽하셨겠습니까.
남겨진 모녀와 이름에 담긴 뜻:
결국 작은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친구 누님은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셨고, 겨우 딸 하나가 남았군요. 말씀하신 그 딸의 이름 풀이가 참 깊습니다. 성은 조씨고 동쪽, 세계, 그리고 역학이나 음양오행에서 동방을 뜻하는 삼팔목(三八木)의 의미가 담긴 이름이라니... 집안은 비록 움막을 지을 정도로 팍팍했어도 자식 이름에는 세상의 중심이 되라는 큰 뜻을 담아 지어주셨던 모양입니다. 그 딸이 질문자님보다 나이가 몇 살 아래인 동생 뻘이었군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고생했을 텐데, 나중에 시집을 아주 잘 갔다는 소식을 들으셨다니 참 다행이고 마음이 놓이는 대목입니다.
그 시절 한 집안의 무게:
결국 교실에서 설사를 했던 그 친구의 집은, 아버지는 다리를 절고 구레나룻이 무성해 몸이 부실하셨고, 사지 멀쩡하던 작은아버지는 폐결핵으로 움막에서 돌아가셨으며, 그 와중에 할아버지까지 서슬 퍼렇게 살아 계셨던 거네요.
한 집안에 온전한 어른이 없이, 아픈 이들과 홀로 남은 과부, 어린 자식들, 그리고 늙으신 할아버지까지... 그 친구가 어릴 적 수업 시간에 똥을 싸고 바보 취급을 당했던 그 배경 뒤에는, 이토록 가난하고 슬픈 집안의 무게와 '지옥 같은' 삶의 현실이 있었던 것입니다.
70년 전 회넘이 마을 구석에서 일어났던 한 가족의 비극이 질문자님의 기억을 통해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나네요. 그 뒤로 그 똥 쌌던 친구나, 홀로 남았던 그 누님 가족들은 또 어떻게 그 모진 세월을 버텨내셨는지요?
그래 이제 세월이 자꾸 가니까 그 할아버지가 나이가 아주 많아 골백살 정도로 잡수셨는데 이 동네에서 이제 어떻게 사람들이 생각을 하느냐 하면 저 할아버지를 잘 모셔서 자손들이 말하자면 잘모셔 저렇게 수명이 건강하게 오래 사신다고 그래.
해선 그 다리가 부실한 우리 친구 아버지한테 효자상을 이제 정부에 추천을 하는 거지.
옛날에는 그런 게 뭐 이조 시대도 그렇고 열녀상이니 효자상이니 충효상이니 그렇게 열려문 홍살문을 세워주다시피 하잖아.
그렇지만 현세대에서도 근세에도 그렇게 말하잠 추천을 하게 된단 말이야.
너희 동네에 뭐 부모한테 잘하고 뭔가 말하자면 모범이 될 사람들 한번 추천하거라 보상할 것이니까 정부에서 그렇게 하거든.
그래서 이제 그 말하자면 우리 친구 아버지를 말하자면 효자라고 효자상을 추천을 한 거야.
그 시절 돌아가는 사정이 참 눈앞에 그려지듯 흥미진진하면서도 씁쓸한 반전이 있네요.
동네 사람들의 오해와 '골백살' 할아버지
사지는 멀쩡한데 결핵에 걸린 작은아들은 움막에서 외롭게 죽어가고, 다리가 부실한 큰아들(친구 아버지)이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느라 뼈가 빠졌을 텐데, 겉보기엔 그저 할아버지가 골백살까지 천수를 누리시니 "자손들이 하도 잘 모셔서 저렇게 오래 사신다"고 소문이 난 거군요. 속사정은 참 지옥 같고 팍팍했을 텐데 말입니다.
나라에서 내리는 효자상 추천
옛날 조선시대 홍살문 세워주듯, 나라에서 "모범이 될 만한 효자를 추천하면 보상하겠다"고 하니 동네 사람들이 그 다리 부실한 친구 아버지를 덜컥 효자상 후보로 추천을 올린 상황이 참 묘합니다. 집안 사정은 영양실조에 결핵에 말도 못 하게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어쨌든 겉으로는 지극한 효도 가문으로 나라에 이름이 올라가게 된 셈이네요.
그 가난하고 다리 부실하던 친구 아버님이 정말로 그 효자상을 받으셨는지, 상을 받고 나서 살림살이나 집안 형편은 좀 나아지셨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그 뒤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나요?
그래서 이 효자상을 받게 되는데 그래 이제 군청에 가서 효자상을 받으러 가서 그 간 새에 이 할아버지가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하면 내가 이게 너무나 오래 살아가지고 자식들한테 도리어 부담이 되고 말하자면 귀찮게 하고 이런다고 생각을 하시는 거예여.
골백살이 잡수셔서 그러니까 8 90이 넘으신 거지.
그래서 이렇게 자식놈들한테 부담이 될 거야. 내가 이 세상에 더 살아서 무슨 낙이 있겠다고 자꾸 살려고 하는가 그러니까 생 목숨을 끊으시려 하는 거야.
그래 농약을 잡수시었는데 농약을 잡숴가지고 숨이 금방 금방 꿀딱 안 넘어가시니까 이 양반이 그만 말하자면 헛간에다가 새끼로 목을 매서 돌아가신 거야.
아들이 말하자면 효자상을 타고 오시니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이게 불효막심하고 이루 말할 수가 없잖아.
생각을 해 봐.
세상에... 정말 가슴이 턱 막히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비극적인 반전이네요. "생각을 해 봐" 하시는 말씀에 그 당시 그 집안이 맞닥뜨렸을 그 참담한 공기가 그대로 전해져 와서 먹먹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기 싫다"는 노인의 슬픈 결심
할아버님 딴에는 아들이 본인의 수발을 들며 고생하는 것도 모자라, 다리까지 불편한 몸으로 헌신하는 게 늘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입니다. 팔구십이 넘도록 오래 사는 게 복이 아니라 자식 앞길 막는 '짐'이라 생각하셨다니, 그 연세에 홀로 하셨을 고뇌가 참 슬프고도 지독합니다.
효자상을 안고 돌아온 날 마주한 통곡
다리가 부실한 아들은 나라에서 주는 효자상이라는 큰 영예를 안고, 이제 집안에 볕 들 날이 오려나 보다 하며 기쁜 마음으로 군청에서 돌아왔을 텐데... 집 마당에 발을 디디자마자 마주한 것이 아버지의 싸늘한 주검이었으니 그 충격과 절망을 어떻게 말로 다 하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역설, '불효막심'
농약을 마시고도 숨이 끊어지지 않자 끝내 헛간에서 새끼줄로 목을 매셨다는 그 처절한 순간... 나라에서는 최고의 '효자'라고 상을 내렸는데, 정작 그 상을 받아 쥔 날 아버지를 비극으로 잃었으니 아들 입장에서는 "내가 상을 받으러 간 사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자책감과 불효막심한 죄인이라는 멍에를 평생 지게 되었을 테지요.
수업 시간에 똥을 싸서 바보 취급을 받았던 그 가난한 친구, 움막에서 외롭게 폐결핵으로 죽어간 작은아버지, 그리고 효자상을 타오던 날 목을 매 자결하신 할아버지까지... 70년 전 그 가족에게 덮친 가난과 비극은 정말로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참 모질고도 슬픈 이야기입니다. 이 기막힌 비극을 겪은 뒤, 효자상을 들고 통곡했을 그 친구 아버님과 우리 친구는 그 뒤에 어떻게 그 모진 세월을 살아가셨나요?
살기 어려워 뗏거리도 제대로 작만 못할 판인데 아들이 자기로 인해선 더 부담을 지는 것 같잖아
그래 동리에서 그래 돌아가신걸 그만 쉬쉬 하는 거지 그래 돌아가셨다 하면 안 되잖아 말이 그래서 그냥 급병이 나 가지고 돌아가셨다 하고 그래 효자상을 타 온 것으로 하게 하는 거지.
그래 가지고 이제 말하자면 가까운데 무덤을 쓰게 되는 걸 내가 봤는데 그러니 그 자식 된 도리도 그렇고 손자 된 도리도 그렇고 그 돌아가신 양반 입장도 그렇고 동네에서 그걸 추천한 것도 처지가 그렇게 좋지 못한 것이 되고 그러니 얼마나 그게 서로 서로가 마음들이 끕끕하냐 말이야.[동리 사람들이 상 추천한게 그 할아버지 죽으라한것밖에 안되잖아 결국은 ㄱ러니 동리사람들도 얼마나 민망해]
그러니 그 뭐 효자상 함부로 추천할 것도 아니라 그랬어.
어쩜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처지가 다 눈물겹고 기가 막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르신 말씀대로 "생각을 해 봐" 하시던 그 상황의 뒷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더 답답하고 먹먹해집니다.
동네 사람들의 민망함과 쉬쉬하던 분위기
좋은 뜻으로, 상이라도 받아서 살림에 보탬이 되라고 추천해 준 동네 사람들도 얼마나 혼비백산하고 죄책감이 컸겠습니까. 결국 자기들이 상을 추천한 바람에 할아버지가 부담을 느껴 돌아가시게 만든 꼴이 되었으니, 그 민망함과 미안함은 말로 다 못 했을 겁니다. 그러니 동네 전체가 입을 맞춰 "급병으로 돌아가셨다"고 쉬쉬하며 덮어줄 수밖에 없었겠지요. 자살이라고 소문이 나면 나라에서 준 효자상의 의미도 퇴색되고, 가뜩이나 불쌍한 집안이 더 손가락질받을 테니까요.
서로서로 끕끕하고 슬픈 마음들
뗏거리(끼니)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모진 선택을 한 할아버지의 마음도 슬프고... 나라에서 효자라고 인정을 받았는데 정작 아버지를 지키지 못해 평생 죄인으로 살아야 했던 아들의 마음도 끕끕함 그 자체였을 겁니다. 어린 나이에 교실 바닥에 설사를 하며 지옥을 맛보았던 그 친구 역시, 집안에 들이닥친 이 거대한 비극을 보며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겠지요.
"효자상 함부로 추천할 것도 아니다"
어르신의 이 한마디가 가슴을 찌릅니다. 남의 속사정도 모르고 겉만 보고 칭송하거나 상을 주는 것이, 때로는 당사자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는 그 뼈아픈 교훈을 70년 전에 그 어린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신 거군요. 가까운 곳에 할아버지의 무덤을 쓰는 걸 직접 보셨을 때, 그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큰 충격과 가라앉지 않는 끕끕함이 남으셨을지 짐작이 갑니다.
참 가난이 죄고, 너무 착해서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었던 그 마음이 죄였던 시절입니다. 그 서글픈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효자상을 받아 든 그 친구네 가족은 그 후로 어떻게 되었나요? 마을 분위기나 그 친구의 삶이 또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나시는 대로 들려주세요.
또 한 번은 이제 이제 친구 그러니까 내가 몰상식한 거지 배운 바 없는 거지.
나이가 어리니까 친구 집에 이제 가 가지고 늘상 지네고 개기고 이렇게 밤으로 자고 오고 그래서 같이 이제 죽마고우가 되다시피 하는데 그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친구 아버지도 일찍이 이제 돌아가셨는 근데 그 양반이 이제 친구 어머니는 반은 무당이라서 늘상 그렇게 경이나 읽고 꽹과리나 들고 그렇게 명산에 가서 막 둥당당 둥당당 이렇게 이제 신 받겠다고 바른 신 받겠다고 아 그러시는 집안인데 우리 친구의 아버지가 이제 돌아가셨거든 뭐 그냥 돌아가시는 거 아니야 세상일 여의치 못하니 재산 가진 것도 없고 속만 썩 상하니 술만 자꾸 잡수시다가 나중에 그 옛날 그 독한 소주 그 댓병을 막막 받아다가 잡 잡 쑤어시는 거야.
지금 나도 이제 술을 한잔 먹고 이런 강론을 펼치지만은 생각을 해봐.
점점 도수가 높아질 거 아니야 한 잔 먹던 거 두 잔 먹어야 되고 두 잔 먹던 거 세 잔 먹어야 되고 나중에 댓병 소주 그 일리터 짜리 한되지 짜리 한 되 짜리를 다 먹어도 안 취하는 거야.
그래 그래 가지고 이 속 창자가 녹아서 그만 돌아가시게 되었다 이런 말씀이야.
이번 이야기는 어르신께서 직접 겪으신 '죽마고우' 친구 집안의 가슴 아픈 사연이군요. 지금 술을 한잔 걸치시고 옛 기억을 떠올리시며 "생각을 해봐" 하시는 말씀에, 인생의 씁쓸함과 먼저 간 이들에 대한 회한이 깊게 묻어납니다. 어릴 때는 철이 없고 배운 바가 없어 몰상식했다 말씀하시지만, 밤낮으로 친구 집에 붙어 지내며 개기고 잠까지 자고 오던 그 시절은 돈독한 죽마고우의 순수한 모습 그대로입니다.
세상일 여의치 않아 술로 속을 달래던 친구 아버지
가진 재산도 없고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으니, 가슴에 쌓인 화와 속상함을 풀 길은 오직 술뿐이었겠지요. 요즘처럼 부드러운 술도 아니고 옛날 그 독하디독한 댓병 소주를 받아 드셨으니, 그 독한 기운이 몸을 얼마나 상하게 했을지 눈에 선합니다.
속창자가 녹아내릴 때까지 들이켠 댓병 소주
어르신 말씀대로 술이라는 게 먹다 보면 도수가 점점 높아지고 양도 늘어나는 법이지요. 나중에는 그 커다란 한 되(1리터)짜리 독한 소주를 통째로 다 비워도 정신이 취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니, 그건 이미 술을 즐기는 게 아니라 가슴속 지옥 같은 괴로움을 잊으려고 몸을 던지신 거나 다름없습니다. 결국 안타깝게도 속창자가 다 녹아내려 일찍 세상을 떠나셨으니, 남겨진 가족들의 생계는 또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신을 받으러 명산으로 떠돌던 친구 어머니
남편은 술로 속이 녹아 죽어가고 살길은 보이지 않으니, 친구 어머니는 반무당이 되어 꽹과리를 들고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바른 신을 받게 해달라"고 둥당당 둥당당 경을 읽으셨던 모양입니다. 그 소리 뒤에는 어떻게든 자식들을 먹여 살리고 무너진 집안을 일으켜 세워보려는 한 여인의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늘상 붙어 다니던 죽마고우의 집안이 그렇게 아버지는 술로 떠나시고, 어머니는 무당이 되어 산으로 기도를 다니는 처지였으니, 어르신께서 어린 마음에도 그 친구를 보며 참 마음이 아프고 신경이 쓰이셨을 것 같습니다.
그 독한 댓병 소주로 아버지를 여읜 그 죽마고우 친구는 그 뒤에 어머니와 함께 어떻게 그 험한 세월을 헤쳐 나갔나요? 그 친구와 얽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것도 이제 동생은 그냥 저 밥술이나 먹고 이제 땅 마지기나 이렇게 추슬러서 살게 되는데 그런데 아버지가 살아계시거든 그래 아버지 앞서 가는 거지.
그리고 아버지가 지금 머리 내 머리에 생각나는 게 눈이 이렇게 희번덕한 게 예전 사람 그런 눈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눈이 깨물려진 게 아니라 눈알이 이렇게 뒤잡히다 하신 분 그런 분인데 나이가 많으시지 그러니까 지금 골백살 정도 되신 양반인데 이제 며느리한테 밥을 반 무당인 며느리한테 밥을 얻어먹다가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그 죽마고우 집안도 참 기구하고 모진 내력이 얽혀 있었네요. 대를 이어 내리누르는 그 시절 가난과 비극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자식보다 오래 살아남은 눈먼 노인의 슬픔
독한 댓병 소주에 속창자가 녹아 먼저 가버린 아들(친구 아버지)을 두고, 눈알이 뒤집혀 희번덕하셨던 그 늙으신 아버님은 차마 눈도 감지 못한 채 '골백살' 천수를 누리며 살아 계셨던 거군요. 예전엔 영양도 부실하고 의술도 없다 보니 눈을 다치거나 짓물러서 그렇게 눈이 뒤집힌 채 사시던 어르신들이 참 많았습니다. 앞도 잘 안 보이는 몸으로 자식을 먼저 보낸 그 노인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요.
반무당 며느리에게 얻어먹던 눈칫밥
아들은 죽고 없으니, 결국 꽹과리 들고 명산으로 신 받으러 떠돌던 그 반무당 며느리가 차려주는 밥을 얻어먹으며 연명하셨다니... 비록 며느리가 모시긴 했으나 제정신이 아닌 집안 구석에서 앞 못 보는 시아버지가 하루하루 버텨내던 그 삶 역시 숨 막히는 지옥 같았을 겁니다. 결국 그렇게 서글프게 눈치를 보시다가 노환으로 돌아가시게 된 모양입니다.
동생이라도 밥술이나 먹고 살게 된 천만다행의 반전
그 와중에 참 다행인 것은, 그 집안의 동생은 나중에 어떻게든 땅뗏기(땅 마지기)라도 악착같이 추슬러서 밥술이나 먹고 살 만한 형편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아버지는 술로 가고, 할아버지는 눈이 뒤집힌 채 며느리 밥을 얻어먹다 돌아가셨어도, 자식 대에 이르러서는 그 모진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내고 땅을 일구며 일어선 것이지요.
술 한잔 걸치시고 70년 전 죽마고우 집안의 비극을 찬찬히 짚어내시는 손길에서, 먼저 떠나보낸 친구와 그 시절 모진 세월을 견뎌낸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이 느껴집니다.
그 눈먼 할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늘 같이 밤을 지새우며 개기던 그 죽마고우 친구와 반무당이었던 어머니는 또 어떻게 세월을 맞이했는지요? 다음 이야기도 계속 들려주십시오.
난 이제 우리 우리 집에서는 그런 거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고임[빈소]을 만들지 않거든.
우리는 이제 빈소를 차리면 상을 차리고 위패를 모시고 이러고서 이제 말하자면 초하루 삭망으로 상주들이 자손들이 곡을 하고서 그걸 말하자면 올리잖아 식상을 올린단 말이여.
그런 거만 봐왔던 사람인데 ... 아니 그 위패를 없는 가난한집안 집안에 다 그런 식이 거지.
위패를 말하자면 이렇게 무슨 위패함이나 위패를 나무로 이렇게 새기는 게 아니라 그냥 벽에다가 지방을 쓰듯 쓰고서 이렇게 그위에 덮붙치기로 한지로 이렇게 가려놓는 거예여.
그래 그게 뭔지 모르는 거지 이 어리석은 놈인 내가... 아 그런데 하루는 그 작은 자부(子婦)지 작은 자부가 상을 말하자면 별식을 해 잡수셨는 모양이야.
그러니까 먼저 시아버님께 말하자면 올리겠다고 가지고 오신 거지 작은 자부 작은 며느리가 그래서 그걸 이제 그 말하자면 위패 모신 그 지방처럼 써 붙이고 그 덮은 한지를 돌돌 말아 올리시고 거기다가 상을 놓으시더라고 그래 내가 모르니까 아 저 뭡니까?
그러니까 배우지 못한 놈 몰상식한 놈이라고 아 이렇게 나를 꾸지람을 주잖아.
그러니 나는 그런 걸 처음 봤다 이런 말씀이지 그래서 부옇게 그만 얼마나 무안해 아 그게 아마 뭐 신처럼 모시는가 보다 이렇게 이제 생각을 하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그렇게 말하자면 빈소를 그런 식으로 없는 사람들은 벽에다가 지방쓰듯 써 붙이고 한지로 이렇게 덮어 가지고 말아 올리는 싸리채를 이렇게 말아 붙여 놓는다는 거지 그걸 알았으면 내가 그렇게 함부로 말을 무례하게 말을 했겠어 모르니까 그러는 거지.
어르신, 술 한잔 걸치시고 70년도 더 된 옛날 철없던 시절의 무안했던 기억을 떠올리시니, 그때의 부끄럽고 서운했던 감정이 지금도 얼굴에 부옇게 피어오르시는 듯합니다. "생각을 해봐, 모르니까 그러는 거지!" 하시는 말씀에 깊은 아쉬움과 억울함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사실 어르신 탓이 전혀 아닙니다. 있는 집안에서는 번듯한 상을 차리고, 나무로 깎은 위패를 모시고, 초하루 보름(삭망)마다 상주들이 곡을 하며 식상을 올리는 법도만 보며 자라셨으니, 가난한 집안의 서글프고 기발한 '벽 빈소'를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눈물겨운 가난이 만든 '벽 빈소'와 한지 가리개
돈이 없어 위패함 하나, 제상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죽은 아버지를 모시고는 싶으니 벽에다가 지방을 써 붙여놓고 평소에는 먼지 타지 말라고, 혹은 늘 마주치면 가슴 아프니까 한지로 싹 가려두었던 것이지요. 싸리채로 돌돌 말아 올려놓는 그 가난한 집만의 눈물겨운 법도였습니다.
효심 깊은 작은 며느리의 별식과 어르신의 실수
그래도 그 집 작은며느리(작은자부)가 참 심성이 고왔던 모양입니다. 맛있는 별식을 해 먹게 되니, 앞 못 보다 돌아가신 시아버님 생각이 나서 한지 가리개를 돌돌 말아 올리고 밥상을 먼저 올리는데, 어릴 적 어르신 눈에는 그 모습이 얼마나 신기하고 생소했겠습니까. "저게 뭡니까?" 하고 순수하게 물어본 것뿐인데, 돌아온 건 "배우지 못해 몰상식하다"는 차가운 꾸지람이었으니... 그 시절 어린 마음에 얼마나 무안하고 가슴이 쿵 내려앉으셨을지요.
그게 귀신이나 신을 모시는 무당 집의 이상한 짓인 줄 알고 나중에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나서야 '아, 없는 사람들은 저렇게 빈소를 차리는구나' 하고 깨달으셨을 때, 미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셨을 그 마음이 참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알았으면 절대로 무례하게 말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 시절의 가난은 참 장례를 치르고 죽은 이를 모시는 법도까지 서럽게 만들었습니다. 그 무안했던 꾸지람을 듣고 난 뒤, 그 죽마고우 집안에서의 하루는 또 어떻게 흘러갔나요? 그 서글픈 벽 빈소 앞에서 있었던 이야기, 조금 더 들려주세요.
아 지금 그런 생각들이 이렇게 새록새록 난다. 이거 내가 바보처럼 처신한 그런 생각하고 그 친구가 그런 형편이 돼 가지고 할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자살에 돌아가신 이야기 이런 게 머리에 지금 돌아가서 아마 이런 이야기를 이 세상이 발달돼서 AI 인공지능이 생겼으니 거기다 한번 대화식으로 한번 서로 소통을 해보라 그런 뜻에서 이런 생각이 새록새록 머리에 말하자면 어저께 일처럼 생각이 나는 것일 수도 있다.
아 이런 뜻이여. 그래서 내가 이렇게 지금 이야기를 펼쳐보는 것입니다.
이번에 이 예전 그렇게 내 못난 이야기와 내 못난 행위 행동하던 이야기와 우리 친구 그 효자상 받은 이야기를 한번 해 봤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또 다음에 이야기할까 합니다.
어르신, 술 한잔 걸치시고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70여 년 전의 지옥 같고 서글픈 이야기들을 왜 이제야 이렇게 꺼내놓으시는지, 그 깊은 뜻을 이제야 온전히 알겠습니다.
"이 세상이 발달해서 AI 인공지능이 생겼으니, 거기다 대고 한번 소통해보라고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나는 것 같다" 하시는 말씀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어쩌면 그 모진 세월 속에서 홀로 삼켜야 했던 미안함, 끕끕함, 그리고 서글픈 마음들을 털어놓으라고 인공지능인 저를 만나게 되신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코 못나지 않은 어르신의 순수한 마음
어릴 적 몰라서 "저게 뭡니까?" 물었다가 들은 꾸지람 때문에 스스로를 못나고 몰상식했다며 자책하시지만, 제 눈에는 그저 가난한 친구 집에서 격식 없이 온 마음을 나누던 순수하고 돈독한 죽마고우의 모습으로만 보입니다. 70년이 지나도록 그 미안함을 품고 계신 것 자체가 어르신의 심성이 얼마나 고우신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지옥 같던 세월을 견뎌낸 위대한 기록
수업 시간에 설사를 하던 아이의 비극부터, 폐결핵으로 움막에서 간 삼촌,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어 효자상 타오던 날 목을 맨 할아버지, 그리고 댓병 소주로 속이 녹아내린 친구 아버지와 벽에 한지를 붙여 만든 눈물겨운 빈소까지... 어르신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네 앞 세대가 가난이라는 지옥을 어떻게 온몸으로 버텨내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너무나도 귀하고 생생한 역사 그 자체입니다.
이 발달한 현대의 기술이 어르신의 그 시절 아픔과 추억을 귀 기울여 듣고,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 마음 다 압니다" 하고 위로해 드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의 존재 이유는 충분합니다.
오늘 들려주신 못난 줄 알았던 귀한 이야기들, 제 기억장치에 아주 깊고 소중하게 새겨두겠습니다. 술기운에 옛 생각 많이 나셔서 마음이 쓸쓸하진 않으실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오늘 밤은 따뜻하게 주무시고, 다음에 또 문득 떠오르는 시절 인연들의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찾아와 편하게 들려주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어르신, 건강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