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안도여 소안도여! [2]
소년의 깨복쟁이 친구 종국 씨의 아버님은 소안에서 약국을 하고 계셨다. 소년은 조 선생한테 부탁하여 청호시장에서 홍어를 한 상자 선물로 준비했다. 일행은 모두 약국에 들어서서 종국 씨 춘부장님한테 인사를 올렸다. 팔순이나 되셨을까. 그 춘부장님은 그 시대의 좀생이 한국인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껑충한 키로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은 허허로운 웃음으로 자식의 친구가 몰고 온 손님들을 환영했다. 손님 대접으로 시원한 음료수를 내놓는데 조 선생은 자기가 좋아하는 박카스로 바꿔주시라 했다. 뻔뻔스럽기는, 아무것이나 주는 대로 마실 일이제. 그래도 신선의 풍모가 역력한 그 춘부장님은 흔연스럽게 박카스로 바꾸어주셨다. 종국 씨의 자당님도 만면에 가득 자비로운 웃음을 흘리셨다. 아아! 소안도가 왜 편안한 곳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약국에 들러 신선처럼 곱게 늙어 가시는 종국 씨 부모님을 꼭 뵈오시라.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이 들어맞을 때가 많다. 일행이 소안에 당도했을 때는 바야흐로 ‘개막이 체험’이 한창이었다. 기다란 그물이 부잣집 담장보다 높게 쳐진 물 빠진 갯벌에 줄잡아 몇 백 명으로 보이는 관광객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밀물 따라 해변으로 놀러왔던 고기들이 썰물 때 그물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고 잡히는 것이 개막이였다. 그렇지만 요즘 어디 그리 철없는 고기들이 많간디, 하는 수 없이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는 손님들을 꾀려고 우럭이나 숭어를 대량으로 사다가 삶의 체험 현장에 풀어놓는다. 그런 줄도 모르고 육지에서 달려온 관광객들은 팔뚝만큼씩 굵은 숭어가 주먹 안에서 팔딱거리면 참을 수 없는 희열로 비명을 지르기 일쑤다. 아아, 배우 고기들을 사다가 풀어놓은 사실을 알건 모르건, 기쁨에 들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나그네들에게 축복 있을진저, 소안도여 영원하라, 미라리여 영원하라.
외로움은 사람을 시들게 하는 가장 큰 적이다.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고 서로 격려하고 칭찬해주어야 비로소 제대로 살맛이 난다. 그래서 사람 인(人)자는 지게 작대기를 받친 모양이라고 하던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좋아하는 사람하고 가는 것이라던가. ‘더불어 함께, 더불어 함께.’ 아무튼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 일이다. 함께 어울림만이 짧은 인생을 위로해주고 구원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손에 손 마주잡고.’
이태 전에 종국 씨의 초대를 처음 받고 소안도 열다섯 명이 왔을 때는 정말 요란시끌하고 뻑적지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섯 명만 출전해서 이태 전보다는 활기가 부족하다. 그래도 좋은 점도 있다. 차를 한 대만 움직이니 돌아다니기도 간편하고 밥 먹는 일이나 술 마시는 일도 속도를 낼 수 있다. 조 선생 일행은 개막이 체험을 마친 뒤 별호사가 운전하는 고급 승용차에 탑승하여 비좁은 섬 도로를 한 바퀴 빙 돌며 군데군데 서려 있는 소년 시절의 꿈과 추억을 알알이 귀에 새긴다.
-그 때 그 동무들 다 어디로 갔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로 돌아가자 돌아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지 마라.
소안도는 가운데가 개미허리처럼 잘록하게 가늘어져서 두 개의 섬이 붙어 있는 형국이다. 들고 나고 비뚤배뚤 산길을 돌면서 별호사의 차는 두 개의 섬 구경을 모두 마쳤다. 다음으로 간 곳이 우리 별호사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깨복쟁이 친구 종국 씨가 경영하는 전복 양식장이었다. 요즘 소안도와 노화도는 전복 양식이 주요 수입원이라 한다. 조그만 배를 타고 전복 양식장을 찾아나서는 마음이 가만히 설렌다. 고기도 묵어본 놈이 잘 묵더라고 이태 전에 먹어본 추억을 되살리며 살짝 입맛을 다신다. 이번에도 조 선생 일행뿐 아니라 또 양식장에서 직접 전복을 먹어보고 싶어 하는 나그네들이 동행했다. 한국은 참 좁은 나라다. 함께 배를 탄 나그네들 중에 벌써 유 선생이 아는 사람을 만나 서로 악수를 주고받고 떠들썩하다.
양식장에 이르러 통발 그물을 꺼내 올리니 붕장어가 두 마리 들어 있다. 거 참 구워 먹으면 맛나게 생겼다. 뭐니뭐니해도 우리 인류의 조상들은 수렵 생활로 연명했다. 불가에 귀의하신 어머님께서는 조 선생이 낚시질에 열을 올릴 때마다 고기 엔간히 잡으라고 얼굴을 찌푸리셨지만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노릇인지도 모른다.
완도 수협 공판장 횟집에서, 소안도 오는 배에서, 종국 씨네 집 마당에서....... 전복 양식장에 닿기도 전에 술이 꽤 많았다. 양식장에서 처음에 소주에다 가리비조개를 먹고 전복을 통째로 우적거릴 때까지는 그런 대로 디카로 사진도 찍고 그럴 듯했지만 나중에는 술이 얼큰히 달아오르는 통에 사진도 못 찍고 정신도 휘뚜루마뚜루 얼떨떨해서 조 선생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다.
해가 졌다. 바닷가에 자리한 종국 씨의 전복 종패장 마당에서 야외 파티가 벌어졌다. 별호사의 미라리 초등학교 동창생 여남은 명이 마당으로 모였다. 전복을 썰고 숯불을 피워 삼겹살을 굽는데 조 선생은 처음에 인사와 술잔을 나눈 다음 살짝 마당을 빠져나와 길가에 주저앉았다. 묵직하게 치밀어 오르는 취기를 감당하기 어려운 때문이었다. 조금 있다 박 선생이 곁에 와 앉아서 가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정 선생 역시 피곤하다면서 처마 밑 어디메쯤 누워서 쉬었다. 마당의 잔치는 온전히 별호사 동창생들의 옛이야기로 떠들썩하였다.
바다로는 하늘의 별이 금방이라도 쏟아질듯 위태로웠고 살랑바람이 볼을 간질였다. 왜 사냐건 웃지요. 인생의 말미에서 짬짬이 좋은 술벗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얼마나 축제스럽고 잔치스러운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헤아릴 길이 없다. 금방 스러지고야 말 삶이지만 그 기적 같은 삶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이요 기쁨인지 태어나보지 않은 사람은 알 길이 없다.
개구쟁이 말썽쟁이들로 한시도 편할 날 없는 교사들! 이제 방학이 끝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는 것이 인생이었다. 새로 지은 목포 법원 법정 안에서 검사와 변호인이 입에 침을 튀기며 언성을 높이든 말든 삶은 소중하고도 각별한 것이었다. 견우성 직녀성 북극성 사자자리, 전갈자리, 안드로메다, 카시오페아를 사랑하는 별호사에게 축복이 있을진저. 별호사를 따라서 편안한 섬에 등을 기댄 술벗들에게도 축복이 함께할진저. (끝)
첫댓글 맨 아래 사진의 왼편에 서 계시는 '도리구찌' 분이 조명준선생님입니다. 드시는 술만이 아니라 문장도 늘 술술하여 읽노라면 서너 걸음 뒤에 서 있는 듯 내 코에 홍어안주 냄새가 다 납니다. 교육운동과 함께 써내려간 수필집 <문저리 선생>, <잠들지 못하는 나무>로 우리들에게 더욱 친절하지만, 한번 만났다 하면 우리를 저 수필 속 주인공으로 대책없이 취하게 하는 '기적 같은' 분이시죠.^^ 만나보지 않았거나 '태어나보지 않은' 사람은 알 길이 없죠...^^
당신만 읽어보라고 보낸 글 대책없이 올리지 마셔요. 부끄럽기 짝이 없구먼. 이제 글 안 보낼거야.
제가 카페란 걸 하나 앉아서 만날 "해는 져어서 어두운데 찾아 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다알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네~" 꺽꺽 하고있으면 선생님은 잘한다 북장구 치시겠네요! 저도 행복할 권리가 있을 뿐이고 선생님께 욕먹어도 미운 짓 할 수 있다는 거슬 이참에 달 보며 확실히 알았단 말입니다~! ㅋ 계에속 글 보내실거죠?
그런데 선생님.. 아래에서 두번 째 사진의 여자 분들은 저도 잘 아는 두 사람 맞는가요? 갸웃, 궁금...
맞어 맞어 맞당께 그대의 총총한 시력에 축복 있으라
축복하지 마세요! 전 미모(실물은 사진 보다 훨씬 더)인 그녀를 보면 두근거리던데 참말로 앞으로도 '총총한 시력'이 큰일이야욧!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갯벌 체험현장에 득시글?^^ 대는 사람들 속에서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재밌게 표현해 주셨네요..^^
그 날 정말 개막이 체험 현장 장관이었습니다. 구석지 섬까지 웬 사람들이 그리도 많이 몰려들었는지. 섬에서 만난 오지게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같은 시대,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다정한 벗님네들이라고 생각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