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0 하나님의 작품 시 107:1-3, 17-22; 민 21:4-9; 엡 2:1-10; 요 3:14-21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온라인을 타고 전세계로 송출되기에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실명 언급하지 않음을 양해드립니다. 언젠가 ㄱ 집사님은 몸이 좋지 않아서 요양원은 갈 수 있지만, 요양병원은 꺼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요양원과 요양병원, 한글자 차이지만 최근 요양병원을 매일 가게 되면서, ㄱ 집사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생의 마지막 순간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병실 문을 여는 순간, 익숙하지 않은 냄새에 숨이 턱 막힙니다. 100여명의 환자 가운데 80%는 눈을 감고 누워있습니다. 10%는 활동을 하지만 웬지 힘이 없어 보입니다. 그 가운데 나머지는 생기가 있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있고, 눈빛이 초롱합니다. 어떤 분은 90이 넘어 보이는데 안경도 없이 수북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장로님 포스로 성경을 필사하고 있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 같은 그 곳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물론 그곳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도 유사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살아있어서 산 것이 아닌 사람, 죽은 것 같아도 생명력 있는 사람, 이도 저도 아닌 멍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 등등.
몇일 전에는 마가사람상 수상자 최병호 선생님과 닭과 관련해서 잠시 통화를 나누었습니다. 혼자 몸으로 거의 거동이 불편한(루게릭) 이 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 생산적인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주변음에 장닭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생활관에 있지 않고, 농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 최근 동향에는 알 낳는 닭을 키우기보다 관상닭을 키우면 어떻겠냐”며 조언을 합니다. 종종 통화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당신의 현 상황이 상당히 암울하지만, 항상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 어떤 사람보다 생명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죽은 것 같지만 정신적으로 살아있는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조언하는 놀라운 사람입니다.
오늘 민수기 본문은 출애굽 상황의 한 장면을 보도합니다.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자유를 향한 여정에 있습니다. 노예와 자유는 극과 극의 상황입니다. 자기가 없는 노예,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죽지 못해 사는 생활입니다. 어떤 영화에서 노예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않자 사냥개 먹이로 던져버리는 것을 보았는데, 노예가 그렇습니다. 그런 생활에서의 자유,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반갑고 기분이 좋습니까? 꿈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그 꿈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미 노예에서 벗어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유의 몸이기는 하지만 노예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살았기 때문일까요?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없는 상태,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익숙해 버린 것일까요? 백성들의 마음이 점점 조급해 지면서, 급기야 지도자를 원망합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느냐?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느냐? 먹을 것도 없다. 마실 것도 없다. 이 보잘것없는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난다."
원망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백성들의 화가, 분노가 느껴질 만큼 고조된 분위기 같습니다. 마치 돌을 들어 당장이라도 던질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불뱀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을 물어 죽입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잘못했다며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출애굽 직전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를 목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하나님 없이 사는 삶으로 돌아섭니다. 노예가 됩니다. 감정이 없는, 마치 눈앞에 현상만을 의식하는 사람, 당장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삶, 지금 힘들다고 내일을 없이 사는 삶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강력한 불뱀을 보자마자 또 달리합니다. 잘못했다 살려달라며, 새로운 힘을 의지합니다. 더 큰 권력을 찾아 옮깁니다. 여전히 노예근성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쯤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요? 구리뱀을 만들어 높이 세우고는 그것을 보는 사람은 살 것이다. 오늘 민수기 본문의 보도입니다.
백성들의 조급함과 원망,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 백성들의 살려달라는 애원, 하나님의 구원, 이러한 순서는 오늘 본문에만 나오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출애굽 40년 세월에 반복적인 것 같습니다. 자유의 땅이 삼일 길이라고 하는데, 40년의 시간을 보낸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클 것입니다. 노예근성을 없애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수천 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이어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조금 지나면 또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조금 지나면 또, 반복을 경험합니다. 노예근성 때문일까요? 혹시 구원이 우리와 멀리 있을까요? 그럼에도 하나님은 또다시 구원해 주실까요?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복음서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은 세상의 심판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부족함, 노예근성의 여전함 등등,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이 우선인 것입니다. 불뱀이라는 무시무시한 심판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사랑에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고백입니다.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스스로 있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에 아들을 보내시고,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살리고, 고치고, 먹이고, 입히고, 고통의 현장에 늘 함께 해 주었습니다. 소외의 현장, 가난의 현장, 차별의 현장, 혐오의 현장에 늘 함께 있었습니다. 먼저 손 내밀고, 먼저 안아주고, 먼저 위로해 주었습니다. 급기야 오해와 시기와 질투, 심지어 위협과 두려움이 되어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결국, 아무 말 없이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사랑입니다. 세상을 향한 오롯한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한 오롯한 사랑입니다.
에베소서 본문은 그런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별 볼 일 없는 도토리 키재기 같은 모습의 서열을 내세우고 있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요양병원에서 오늘내일하는 그런 경우에도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루게릭으로 손가락만 까닥하는 그런 경우도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당신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을 자본주의의 순위로 매길 수는 없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존엄함, 고귀함,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것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은 그렇게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으로, 하나님의 작품답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오롯한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시편 본문을 읽으며 기도합니다.
시 107:1-3, 17-22
1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 주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아, 대적의 손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아, 주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려라.
3 1)동서 남북 사방에서, 주께서 모아들이신 사람들아, 주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려라.
17 어리석은 자들은, 반역의 길을 걷고 죄악을 저지르다가 고난을 받아
18 밥맛까지 잃었으니, 이미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다.
19 그 때에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께서 그들을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다.
20 단 한 마디 말씀으로 그들을 고쳐 주셨고, 그들을 멸망의 구렁에서 끌어내어 주셨다.
21 주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에게 베푸신 주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
22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주님이 이루신 일을 즐거운 노래로 널리 퍼뜨려라.
240310 시 107:1-3, 17-22; 민 21:4-9; 엡 2:1-10; 요 3:14-21
시 107:1-3, 17-22
1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 주님께 구원받은 사람들아, 대적의 손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아, 주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려라.
3 1)동서 남북 사방에서, 주께서 모아들이신 사람들아, 주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려라.
17 어리석은 자들은, 반역의 길을 걷고 죄악을 저지르다가 고난을 받아
18 밥맛까지 잃었으니, 이미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다.
19 그 때에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께서 그들을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다.
20 단 한 마디 말씀으로 그들을 고쳐 주셨고, 그들을 멸망의 구렁에서 끌어내어 주셨다.
21 주의 인자하심을 감사하여라. 사람에게 베푸신 주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여라.
22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주님이 이루신 일을 즐거운 노래로 널리 퍼뜨려라.
민 21:4-9
4 그들은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에서부터 홍해 길을 따라 나아갔다. 길을 걷는 동안에 백성들은 마음이 몹시 조급하였다.
5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다. "어찌하여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왔느냐? 이 광야에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느냐? 먹을 것도 없다. 마실 것도 없다. 이 보잘것없는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난다."
6 그러자 주께서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사람을 무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구하였다. "주님과 어른을 원망함으로써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이 우리에게서 물러가게 해 달라고 주께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세가 백성들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였다.
8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로 뱀을 만들어서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에, 물린 사람은 구리로 만든 그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엡 2:1-10
1 여러분도 전에는 범죄와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2 그 때에 여러분은 범죄와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전에는 그들 가운데서 모두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바라는 대로 행하여,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로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4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범죄로 죽었던 우리를 1)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6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7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푸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려는 것입니다.
8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은, 아무도 그것을 자랑할 수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10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요 3:14-21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6)인자도 들려야 한다.
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7)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17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8)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8)심판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20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보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따르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