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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사람 (민 13:25-33)
(사십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
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
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
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
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
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수기 13:25-33)
1.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 같은 위대한 신앙의 사람의 마음에도 우리와 같이 두 마음이 항상 싸웠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두가지 법이 나를 사로잡아 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려는 마음과, 또 다
른 하나는 육신의 법대로 따르려는 마음, 이 두 마음이 항상 자기를 괴롭히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두 사이에 끼어 괴로운 사람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로마서 7:22-24 “내 속으로는 하나님의 법
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다른 한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 잡
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 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법과, 죄의 법이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설교를 들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또 예배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가면 죄의 법 아래로 우리를 이끌어가는 힘
이 있습니다. 이 두 사이에 끼어 한탄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가야 하겠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이란 긍정적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적 행동은 언제나 긍정적인 행위입니
다.
그러나 마귀들은 말씀을 들을 때 사람들로 하여금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말
하고, 부정적으로 행동하도록 유혹하고 이끌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할 때, 마
귀는 집요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도록 유혹합니다.
<긍정>과 <부정>은 항상 우리 마음 속에서 부단히 싸웁니다.
성령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약함을 도우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할 수 있다’고 하면, 마귀는 ‘할 수 없다’고 우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탕자의 생각이 바로 부정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집에서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이 지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에게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였습니다.
결국 아버지를 떠나 나와서 허랑방탕하게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이 지은 우주만물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생각과 달리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자신의 이성적 자유함을 따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즉 무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 없다고 부정하고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2. 하나님은 지금도 긍정적인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볼 수 있었던 일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란광야 <가데스>에 있을 때, 모세에게 하나님은 그 땅을 정탐하도록 지시하였
습니다.
그 땅의 모든 것을 자세히 탐지하고 돌아와 보고토록 하였습니다.
‘그 아름답고 풍성한 땅을 너희가 샅샅이 살펴보라’, ‘내가 그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는 생각에서 잘 보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40일 동안 그 땅을 살펴 본 후 돌아와 보고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보고 온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고,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멜 정도로 비옥한 땅이지만, 이미 원
주민들이 좋은 땅은 다 차지하고 있어 우리가 들어가 살만한 곳은 없다는 부정적인 보고이었습니다.
더더욱 그들과 싸우려면 우리는 그들에 비해 메뚜기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살만한 땅도 없고, 그들 원주민
을 물리칠 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12명 중에 10명이 그렇게 보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일대일의 사람을 보지않고, 배후에 함께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불가능 속에서 가능을 보
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려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미 약속했던 땅이고, 또 우리에게 주려고 정
탐하도록 한 것이 아니냐고’...
긍정적으로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사람과 불신앙의 사람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신앙의 사람들을 찾고 그들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다수의 부정적인 의견에 동요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요즘 우리의 현실을 조명해 보았습니다.
요즘 우리 나라의 일부 좌경화된 사람들은 맥아더 때문에 통일전쟁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우리 민족의 통일을
저해한 민족의 원수라고 동상을 헐어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말은 북한 측에서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아니었으면 그야말로 한반도는 김일성이 일으킨 적화통일 전쟁으로 통일이 될 뻔 한 위기였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인천상륙작전을 수립한 장본인입니다. 그가 작전을 수립하여 미국무성
에 보고하였더니 국무성에서는 절대 불가능이라고 하면서 두 사람을 보내 맥아더 장군을 설득하라고 하였습니
다.
인천상륙작전은 1/5000분의 성공률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왜 성공하지 못하는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1. 그 작전은 너무나 낡은 작전이기 때문에 위험하기 때문이다.
2. 인천 앞바다의 지형상 불리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3. 지중해에 있는 항공모함을 이동시키려면 기밀이 다 탄로나기 때문이다.
4. 미국군은 모집군이기 때문에 전쟁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5. 그 작전 D-day가 태풍이 지나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다 불가능하다는 부정적인 통보이었습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이것을 모두 긍정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1. 내 작전은 낡은 작전이 아니고 가장 안전한 작전이다.
2. 바로 인천 앞 바다의 지형상 불리하다는 조건 때문에 가능하다.
3. 미 해군은 2차 대전에서 가장 용감한 군인정신을 이어받은 용사들이다.
4. 1/5000분의 1의 성공확률이 있기 때문에 이 작전은 승리한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모두 바꾸어 버렸습니다.
자기를 설득하라고 보낸 국무성 직원들을 설득하여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보고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신앙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신앙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이렇게 긍정적인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3. 교회를 섬기며 봉사하는 일에도 두 가지 생각이 항상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일반 사회단체들처럼 이해관계에서 모인 단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공동체>입니다.
신앙을 기초로 하여 모여진 <신앙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앙공동체 안에도 긍정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어떤 사건을 볼 때,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하겠습니까?
두말 할 것 없이 긍정적인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십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원수 마귀는 매사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도록 합니다.
본래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도록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을 품도록 합니다.
마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게 하고, 영적인 가나안땅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안 된다는 것만 보게 합니다.
가장 현실적인 상황만 보게 합니다.
무엇을 볼 때 가능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만 봅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내 귀에 들려준 대로 내가 행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너희의 말대로 불가능하다고 하니 너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고, 싸우면 우리 어린 것들은 다 죽
을 것이라고 했으니, 너희 자녀들만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그리고 너희가 탐지한 날 수 대로 광야에서 죽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원리는 교회 안에서도 동일한 원리입니다.
교회 안에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 그들이 없어질 때 까지 교회는 부흥되지 못하고 지
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 우리의 진실 된 반성점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라고 봅니까?
매사에 부정적인 편입니까? 아니면 긍정적인 편입니까?
여호수아와 갈렙도 그들이 현실적으로 볼 때는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른 열사람들과 달랐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면....’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탐하도록 시킨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미 약속한 땅이 아니냐?’
‘그러므로 우리는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어떤 모임에서든 부정적인 사람들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보다 현실의 벽을 더 크게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는 아무런 기적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안된다고 하니, 언제나 안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못한다고 하니, 언제나 못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런 사람은 쓰지 않습니다.
안된다는 사람을 어떻게 쓰겠습니까?
못한다는 사람에게 어떻게 일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직분자들에게 특히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이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하나님은 그 직분을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
이 함께 하면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다고 하는 긍정적인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김이봉 목사)
꿈을 이루는 자! (민 13:25-14:10)
새로운 꿈을 안고 출발한 2012년도 셋째주일을 맞고 있습니다. 어느 분이 말하기를“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그러나 누구나 다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꿈의 성취는 불안과 공포의 보자기로 포장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용기와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만이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덴마크는 1864년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그 결과 기름진 남부의 실레비스히와 홀스타인 두 주를 빼앗기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시련 앞에서 국민전체는 좌절에 빠져 있었습니다. 덴마크는 이제 지도상에서 사라질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희망의 나팔을 불고 나온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룬트비 목사와 달가스 대령이었습니다.
그룬트비 목사는“하나님을 사랑하자, 나라를 사랑하자, 자연을 사랑하자.”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농민학교를 세워 성경을 기초로 한 정신적인 힘을 사람들에게 불어 넣었습니다. 이 운동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용기와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 한사람은 패전하고 돌아온 달가스 대령이었습니다. 그는 국민들 앞에“밖에서 잃은 국토 안에서 찾자.”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는 믿음을 가지고 광활한 늪지대요, 버려진 동토인 유틀란트 반도를 개간하여 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세찬 바람과 찬이슬과 서리 때문에 보통 나무들은 견디지 못했습니다. 달가스 대령은 절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적응력이 강한 새 품종을 개발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마침내 그의 집념어린 연구로 알프스 산의 잣나무를 접붙여 동토에서도 살아남는 우수한 품종을 개발했습니다. 그 나무를 북부 해변에 심자 울창한 숲을 이루어 차가운 비바람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 땅에 들어가서 늪지대의 물을 퍼내고 온갖 어려움과 싸우면서 개척해 나갔습니다. 덴마크는 그 후 10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낙농 국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원을 개발하여 공업국으로도 번영하게 되어 오늘날 세계에서 국만 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꿈을 가지고 고난을 극복하므로 오늘의 역사를 이룬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덴마크인의 신앙 정신이 필요합니다. 강렬한 소망, 포기할 줄 모르는 집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만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려는 꿈을 안고 애굽에서 탈출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다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나안 복지의 행복을 누렸으나 어떤 사람은 그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난안의 꿈을 이루었습니까?
一. 믿음의 눈으로 삶의 환경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험한 광야를 지나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둔 때에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모세는 그 땅을 점령하기 전 먼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 땅을 40일간 탐지하고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이 판이하게 나타났습니다. 두 사람은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보고 했고, 열 명은 도저히 얻을 수 없다는 보고였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생각과 그들이 말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얻을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가나안 땅을 차지했으나 얻을 수 없다고 말한 사람들은 그들의 말대로 꿈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같은 땅을 같은 기간에 탐지하고 돌아 왔는데, 어찌하여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났을까요? 열 명의 정탐꾼들은 자기 자신의 힘과 가나안에 정착하고 있는 적들과 비교했습니다. 자신들은 광야의 긴 여행에 지친 민족인 반면 적들은 성벽을 튼튼히 쌓고 잘 무장을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신장은 장대했습니다. 그들에 비해 자신들의 모습은 연약하기 그지없는 메뚜기와 같았습니다. 본문인 민수기 13장 33절 말씀에 열 정탐꾼의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이렇게 말한 사람들과 이 말을 듣고 믿은 사람들은 모두 낙심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과 불평을 쏟아 냈습니다.
그러나 또한 부류의 사람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여 적과 비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가나안과 비교를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7절~9절에 말하기를“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힘을 의지하여 적과 비교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메뚜기라 했는데, 하나님의 힘을 의지한 믿음으로 적을 바라본 사람들은 적을 향하여“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힘을 의지한 사람들은 자신이 적의 밥으로 보였으나, 하나님의 힘을 의지한 사람은 적들이 자기의 밥으로 보였습니다. 결과는 각자의 생각대로 되었습니다.
색안경이 있습니다. 어떠한 색깔이든 안경의 색깔대로 세상은 그렇게 보입니다. 풍파 많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힘만 바라본다면 그는 그 풍파에 위압을 당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삶의 환경을 보는 사람은 그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돕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부모의 사랑보다 더 진한 사랑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49장 15절 말씀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하시기를“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하셨습니다. 우주와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지키십니다. 어떤 마음으로 지키실까요?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편 121편 3절~8절에 기록하시기를“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소중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모든 것은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9장 29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 믿음대로 되라”하셨습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9장에 두 소경에 관해 기록한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소식을 들은 두 소경은 예수님에 대한 희망을 안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 주세요!”예수님은 이들의 외침을 듣고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하셨습니다.“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마태복음 9:28). 소경의 소원은 눈 뜨는 것 외에 무엇이 또 있겠습니까? 누구보다도 그들의 소원을 잘 알고 계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믿음이 있는지를 확인하셨습니다. 다행히도 두 소경은 바위처럼 단단한 믿음으로 대답했습니다.“주님, 그렇습니다. 주님이 저희를 고쳐 주시리라 믿습니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확신합니다. 주님께는 능력이 있습니다. 저희는 주님을 믿고 신뢰합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믿음대로 되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29절~30절에“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하셨습니다. 두 소경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위해 특별한 일을 행하시리라 믿었고, 그 믿음대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보듯이 상황을 바꾼 것은 두 소경의 믿음이었습니다. 믿은 대로 그들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하여 믿어 줄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고, 우리에게 말씀을 읽어 줄 수는 있지만 우리 대신 믿음을 발휘해 줄 수는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가 행복을 주고 고통에서 구해 주기만을 바란다면 우리는 무력감과 절망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믿음의 사람이 되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나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나는 항상 내 인생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본다.”라는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깊은 믿음이 우리의 믿음을 키우기 위한 자극제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 기적을 일으키는 원동력은 남의 믿음이 아닌 자신의 믿음입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태복음 9:29)하신 말씀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자신의 약점만 보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하찮은 존재라고 자책한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끝없이 암울한 미래만 펼쳐질 뿐 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누구나 성공할 가능성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나는 누구보다도 강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꼬리가 아닌 머리로, 패배자가 아닌 승리자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하나님의 시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는 놀라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너희 믿음대로 되라”(마태복음 9:29)하셨기 때문입니다.
二.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이 가나안을 얻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의 혀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혀의 건강상태는 어떻습니까? 혹 내 입안이 병들지 않았으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육신의 혀는 건강할지라도 기능면에서 본다면 모든 사람의 혀는 병들었습니다. 하나님의 기대에 벗어나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한 혀에 대하여 로마서 3장 13절~14절에 말씀하시기를“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눈에 비췬 인간의 혀의 현주소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꿈을 이루는 복을 받으려면 타락된 혀가 말하는 그대로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혀를 길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나의 복된 삶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3장 7절~8절 말씀에“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하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혀의 모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혀가 말하는 대로 내버려두면 나를 실패와 불행의 파멸로 이끌고 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말대로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복된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라면 반드시 암기해야할 성경이 있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 말씀입니다.“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하셨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맹세까지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라”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모든 말을 다 듣고 계시면서 그 말대로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여 살아가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며,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이루시고자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약속을 믿는 믿음의 사람, 그리고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만 들어갔습니다.“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며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민수기 14:36)라고 했습니다.
열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 내용을 민수기 13장 33절에 기록하기를“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말대로 메뚜기처럼 아무 힘없이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꿈은 꿈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누에가 자기 입에서 나오는 실로 고치를 짓듯, 사람은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로 행복의 집도 짓고, 불행의 집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6장 2절 말씀에“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잠언 18장 20절~21절 말씀에도“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케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약하다. 나는 못한다.”는 마음으로 포기하려는 유혹만큼 우리를 쉽게 넘어뜨리는 것은 없습니다. 영국의 정신병 학자인 하드필드가 이러한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사람의 정신 암시가 육체의 힘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세 사람의 남자에게 보통의 상태에서 힘껏 압력계를 쥐게 했을 때 그들의 평균 압력은 101파운드였는데 그들에게“당신은 참으로 약하다.”고 암시를 준 후 다시 재보았더니 겨우 29파운드로 평상시 힘의 1/3이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번에는“당신은 강하다.”는 암시를 준 후 재보았더니 무려 142파운드에 달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 실험은 나는 강하다는 적극적인 정신이 충만해지자 체력이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을 때보다 무려 5배나 증가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말은 행동을 지배하기 전에 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혼돈스럽고 어두울 때, 긍정적이고 복된 말을 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빛나게 되고 나아가 우리의 삶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6장 2절에“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잠언 18장 20절~21절에 말씀하시기를“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케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절~11절에는“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하셨습니다. 좋은 날을 보려면 입술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말은 단순한 소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한 대로 되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 11절~13절에 말씀하시기를“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이솝 우화로 유명한 이솝은 그리스의 노예였습니다. 그 당시 노예에는 전문 지식을 갖춘 학자, 기술자, 장인, 예술가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솝은 철학자 산토스의 요리사였습니다.
어느 날 귀빈이 온다고 가장 비싸고 좋은 재료를 사다가 조리하라는 주인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식탁에 오른 이솝의 요리는 모두 소의 혀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노한 주인이 소리 쳤습니다.“어찌 혀가 가장 좋은 재료냐? 나를 망신 주려는 것이냐!”이솝이 대답했습니다.“혀보다 더 값진 것은 없습니다. 혀는 사람과 사람의 사랑을 맺어 주고, 진리를 전하며, 신을 향한 찬양과 경배의 도구입니다.”주인이 외쳤습니다. 내일은 가장 나쁜 재료를 사다가 너희들 노예들이 먹어라!”
이튿날 노예들의 식탁을 보니 또 소의 혀로 만든 요리들이었습니다.“네가 나를 우롱하느냐? 제일 좋은 재료도 혀고 제일 나쁜 재료도 혀란 말이냐?” “예, 혀보다 나쁜 것은 없습니다. 혀는 질투와 싸움의 원인이고 분열과 전쟁의 뿌리가 되기도 합니다. 혀는 거짓과 실수의 기관으로 인격을 지옥으로 떨어뜨립니다.”
그렇습니다. 혀는 잘 사용한다면 가장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됩니다. 반면 잘 못 사용하면 파멸로 끌고 갑니다. 그러므로 입술을 잘 사용하는 사람에게 임마누엘의 은혜가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날을 바라십니까? 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불가능의 말이 아닌 가능성의 말을 해야 합니다.
절망의 말 대신 소망의 말을 해야 합니다.
헐뜯고 흉보는 말 대신 칭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불평하는 말 대신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미움의 말 대신 사랑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입의 말대로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입술의 열매를 지으시는 분이십니다. 누에가 자기의 입으로 뿜어내는 실로 자기의 집을 짓듯 사람도 자기의 입에서 뿜어내는 말로 집을 짓게 됩니다. 부정적인 언어로 실패의 집을, 소망과 용기의 말로 성공의 집을 짓게 됩니다.
三.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이 가나안을 얻게 됩니다.
본문 민수기 14장 5절 말씀에“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얻지 못하리라는 절망의 말을 들은 백성들이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여 아우성을 칠 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울부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기도가 해결의 열쇠입니다.
비유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갑자기 집에 불이 났습니다. 불안에 떱니다. 통곡을 합니다. 발을 동동 구릅니다. 실수하여 불을 낸 가족을 원망하며 야단을 칩니다. 이러한 일이 화재진압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아무 소용없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입니까? 전화로 119 소방서로 연락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기에 하나님께 도우심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승리의 비결입니다.
2002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 100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설문 내용은“영국 역사상 가잔 위대한 지도자는 누구인가?”하는 조사였습니다. 이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었습니다. 그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는 엉망 이었다고 합니다.“품행이 나쁘고 믿을 수 없는 아이. 희망이 전혀 없으며 다른 아이들과 싸움질만 일삼는 문제아....”성적도 초라했습니다. 지리 점수는 겨우 낙제를 면할 정도였고, 그는 3수 끝에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처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철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처칠은 전쟁터에서나 국회에서 늘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이런 용기 있는 믿음이 그를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이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하는 그에게 큰 능력을 주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은“희망이 없던 소년”을“희망을 주는 지도자”로 변화시켰습니다.
기도는 삶을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속에 흘러들어오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되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쉬지 말고 기도하라.”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가나안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사람이었습니다.
가나안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믿음의 언어로 긍정적인 말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가나안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믿음의 무릎으로 순간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들의 삶을 본받아 가정마다 바라시는 소망이 성취되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