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아침,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 그리고 따뜻한 햇살을 온 마음으로 느끼며 떠나는 설립자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
온수역에서 버스에 탑승 9시 20분 시작기도와 함께 오늘에 여정을 시작합니다.
9시 25분에 출발한 버스는 ①항동저수지(푸른 수목원)-②구두인하우스(성공회대학교)-③소사모원터에 도착, 낮기도와 삼종기도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④예산성당-⑤덕산새감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고이고이 접어 잘 데려온 우산이 섭섭하지 않게 살짝 비와도 만나게 해줍니다.
윤을수 신부님이 운영하던 사회사업 시설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시설인 덕산 새감마을, 비바람에 매섭게 변한 날씨로 잔뜩 몸을 움츠리게 됩니다.
문득 쓸쓸함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햇살, 비, 바람, 설립자 신부님의 삶의 여정처럼 느껴지는 탓인가 봅니다.
특별한 오늘을 계획하고 준비해주신 전미숙 소화데레사 수녀님, 누구보다 요한회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대표봉사자 언니들의 따뜻한 봉사로 행복한 여정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온수역에서~
항동저수지(푸른수목원)~
소사에 수도회가 있을 당시 수녀님들이 대신학교에서 가져온 빨랫감을 들고 와서 빨래를 하던 곳이다.
지금은 아름답게 단장하여 푸른수목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구두인하우스(성공회대학교)~
1951년 3월 미 제1군단 군목에 부임하신 윤신부님은
6.25로 인한 전쟁고아를 1951년 무렵부터 지금의 유한양행 자리인 성공회 건물에서 임시로 어린이들을 모으고 돌보았다.
윤신부님은 고아원이라 하지 않고 어린이집이라 하였다. 이것이 골롬바 어린이집의 시작이다.
소사 모원터~
1956년 11월 19일 구산후생학교를 설립하고, 이듬해인 1957년 3월 1일 사회반과 수도반을 나누면서
사회반은 구산후생학교로 운영하고 수도반은 인보성체수도회의 수녀로 본격적인 양성을 시작했다.
한국의 6.25 전쟁이후에 전쟁고아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들을 돌봄을 목적으로 수도회는 설립되었다.
수녀원의 발상지는 당시 주소로 경기도 소사읍 벌응절리 산4번지였고,
지하1층, 지상2층의 건물을 지었고 그곳에서 요구호자들을 도울 수 있는 수도회를 시작하였다.
예산성당~
-예산본당의 기반이 된 오리동 집-
윤신부님이 신학교 재학 중 가족들이 아모골에서 오리동으로 이사.
1927년 구합덕 본당의 보좌로 있던 구천우 신부를 오리동 집에 모셔서 교우들을 지도해 주도록 주선,
이때부터 오리동 집이 예산공소가 되었다.
부친인 윤창규씨가 기증한 집과 또 많은 산과 땅을 성당부지로 기증하여 성당 건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고,
신부님 모친은 이곳에 성당을 세우고 싶어 하여 그 뜻에 따라 이 산기슭에 성당이 세워지게 된 것이다.
1933년 예산성당 기공식을 하여 이듬해에 완공하였으며, 1935년 9월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예산성당 본건물과 사제관은 지금까지도 건립 당시의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