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최용규
지난해 가을 나는 오랜 추억으로 남을 특별한 여행을 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해외 연수를 위해 중국의 내륙 지방인 후난성에 가볼 수 있었고, 그곳의 명문학교인 후난 사범대학교를 방문하는 공식 일정을 끝낸 후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장가계 산림공원을 관광하게 되었다. 그 곳은 한나라 개국공신 장량이 토사구팽의 화를 모면하기 위해 낙향한 후, 자손대대로 은거한 곳이라 하여 장가계란 이름이 전해 온다고 한다. 장가계는 뛰어난 자연경관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명승지여서 중국인 이라면 평생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고 한다. 사진을 통해 보게 된 장가계의 경관 중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하늘을 떠받치는 돌기둥 같은 거대한 기암괴석들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이국적 경관을 마주한 순간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떠올랐다. 그때까지는 몽유도원도의 기암괴석과 같은 산세가 중국인들의 과장이고 허풍일 것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그림 속의 기암괴석은 분명 진경에 가까운 풍경이고, 3억 8천년전엔 바다였던 곳이 지각운동으로 융기한 후, 수억년동안의 침식과 풍화에 의해 ‘탑 카르스트’라는 돌봉우리들이 형성되었다는 지질학적 설명의 사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찬 흥분을 느꼈다. 마침 비가 내린 뒤끝이어서 골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다. 기암괴석들은 안개 너머 흐릿한 윤곽으로 온전한 정체를 숨기고 있었으나 분명 몽유도원도에서 본 기이한 돌봉우리들과 닮았다. 그것들 가운데 한 봉우리 정상을 우리 일행이 등반하게 되다니, 내 앞에 기다리는 신기로운 체험을 생각하니 소풍길에 나선 초등학생처럼 가슴이 뛰었다.
흐릿한 안개 너머의 거인들을 조금이라도 자세히 보려고 안간힘을 쏟아 보았지만 저시력증 상태의 나에겐 흐릿함만이 감지될 뿐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곁에 있는 일행에게 어떻게 보이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안개 때문에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내 시력의 흐릿함에 안개의 흐릿함이 겹쳤으니 이 답답한 심정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안개 속의 그 봉우리 앞까지 다가간 우리 일행은 수직으로 상승하는 괘도열차를 타고 몇 분 만에 봉우리 정상에 올랐다. 정상의 면적은 의외로 넓었지만 한달음에 봉우리 끝으로 나아가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골안개로 뒤덮인 하계는 잘 보이지 않았다. 높은 곳 선계에서 신선들이 지상을 내려다보면 인간들이 별것도 아닌 일 때문에 희노애락의 정을 쏟고, 욕정과 탐심을 이기지 못해 서로 뺏고 빼앗기며 상처를 주고받는 모습이 그저 가엽게 보이지 않았을까? 하계에 사는 인간중의 한 사람인 나의 모습을 잠시 선계의 눈을 빌어 내려다보는 일이 자못 도가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선계의 꿈속에서 그리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가이드의 재촉을 받은 우리 일행은 이내 산봉우리를 둘러 만들어진 돌계단을 밟고 내려가 반대편 지점에 만들어진 케이블카의 승차장까지 이동해야만했다. 걸어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중국정부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엄청난 인력을 동원해서 만들어 내었을 돌계단 길은 비교적 안전한 편이었으나, 녹내장으로 시야가 확보되지 못하는 나에겐 분명 위험이 도사린 힘든 내리막길이었다. 자칫 발걸음을 잘못 떼면 추락사로 이어질 터 계단은 얼마쯤 내려가다 또 올라가기도 하고 좌로 돌고 우로 굽은 불규칙한 길이었다.
보폭을 좁게 내밀며 한발 한발 조심스레 내려가는 내 옆에는 나의 안전한 보행을 돕기 위해 두 학생이 교대로 거들어 주었다. 내리막길에서 나의 신경줄은 팽팽해졌고, 온 몸이 땀으로 젖어갔다. 오른쪽 발목과 관절이 특히 긴장하면서 종아리 근육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내려가는 돌계단이 왜 이다지도 많은지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내내 이번 여행을 결심한 것은 실수이고 욕심이었다는 후회의 마음과 나를 돕기 위해 역시 힘들어 하는 두 학생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뒤엉켜 발걸음을 무겁게 하였다. 사정이 그러다보니 계단길의 중간 중간에 관망대와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으나 마음 편히 산 아래 풍경을 즐길 여유를 갖지 못했다. 오로지 계단길이 끝나는 순간만이 기다려 질 뿐이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지친 나는 드디어 케이블카를 타긴 했으나 내려오는 동안 차라리 눈을 감고 말았다. 돌봉우리 사이를 가로질러 내려가는 창밖의 풍경에 넋을 잃은 일행들의 탄성 소리가 커질수록 내 마음은 자기 연민의 심연속으로 더욱 깊이 가라앉아만 갔다.
계단길의 힘든 여정은 장가계 산림공원에서 맛볼 만큼 맛본 셈이다. 이후로는 어디인가 갈 곳이 있으면 계단길을 걷느냐, 그 계단길이 나처럼 시야가 좁은 사람이 걷기에 불편함이 없는가를 먼저 묻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중국 장가계의 힘든 계단길에 대해 안 좋은 추억을 갖게 된 나는 우리나라 산사의 백팔번뇌를 상징한다는 그 길고 높은 계단길에도 예전같은 편안한 마음을 갖을 수 없었다. 건강한 사람에게도 백팔계단을 오르는 일은 쉽지 않은데 하물며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계단은 그 자체로 장애이고 장벽일 것이다. 아마도 백팔계단은 산사를 찾는 중생들에게 이승의 삶이 고행길 임을 깨우쳐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은데 이미 육신으로 고행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긴 계단길의 장애는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고행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잡아주는 동행이 있어 그 길의 풍경이 아름답게 보이고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하니 아마도 그것이 부처의 자비가 아닐는지...
집을 나설 때 마다 내 눈이 되어주고, 내 손을 이끌어 주는 아내의 존재가 더욱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지고, 학교에 나오면 나의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배려해주는 동료들과 제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며 살고 있다. 이들이 내미는 손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계단을 오르내리며 내리막의 인생 여정에서 동행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금 당장은 육신이 온전하고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혹은 예기치 않은 사고가 있을 때면 좀 더 빠르게 내리막길을 걷지 않을 수 없다. 내리막의 계단길에서 발을 잘못 짚어 넘어지지 않으려면 조심스럽게 걸어야 한다. 스스로 조심하고 경계하는 자세를 지니려면 겸손해야 할 것이다. 겸손한 마음은 나의 이웃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또 손을 내밀어주는 사랑이 없으면 구 할 수 없다. 힘찬 발걸음으로 계단을 오른 사람도 계단을 내려갈 때는 머리를 숙인 자세로 자신의 발을 내려 보며 조심스레 걸어야만 한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에 만나는 작은 깨달음, 그 속에 삶의 진실이 있음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첫댓글 남다른 계단길의 의미를 저도 깨달아 봅니다. 그리고 노동력이 많이 남아서 그런지 중국에 있는 왠만한 산길은 모두 계단으로 만든다고 하더군요.
아름다운 경관!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글!....... 가슴이 뭉클하네요. 건강하세요.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오시는 모습을 상상하며, 안타가운 마음으로 글을 천천히 읽었습니다. 저는 아직 장가계를 못가 보았습니다. 한번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