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
'술과 그림의 나날'.장욱진은 그렇게 살았다.
그림은 살아가는 이유였고 술은 그림의
노동을 달래주는 달콤한 휴식,또는 삶의
충전소 같은 것. 한번 붓을 잡으면,
한번 술잔을 잡으면 죽기를
작정한 듯 빠져들었다.
1918년 충남 연기 태생. 양정고보를 나와
1939년 도쿄로 유학,제국미술학교를 다닌다.
해방뒤 고국에 돌아와 국립중앙박물관
학예관 으로 근무한 뒤 54년부터 60년까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한 것이 직장생활의
전부.이후 죽는 날까지 그림만 그렸다.
1947년 김환기 유영국 등과 신사실파 동인을
결성했던 그는 '앙가주망''2.9동인
'전과 뉴욕의 '한국현대회화'전 등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주로 개인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였다.
64년 첫 개인전 이후 유화 외에
먹그림 도자기화 판화 등을 넘나들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쳤고 76년 수상집
'강가의 아틀리에',79년 화집,
83년 판화집을 내놓기도 했다.
이후 창작과 전시,여행으로 그림의
폭과 깊이를 더하던
그는 90년 12월 눈을 감았다.
약력
1917-1세 음력11월26일(양력 1918년 1월 8일),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송룔리
105번지에서 본관이 結城인 아버지
張基鏞과 어머니 李基在의
둘째 아들로 났다.
1922-6세 일가가 서울 당주동으로 이사했다.
1923-7세 고향에서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1924-8세 경성 사범 부속 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26-10세 보통학교 3학년때 일본 히로시마 고등
사범학교가 주최한 전일본 소학생 미전
에서 일등상을 받았다.
1930-14세 경성 제2고등 보통학교
(지금의 경복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1932-16세 경성 제2고보를 중퇴했다. 성홍열을
앓아 이 후유증을 다스리기위해 만공 선사가
계신 예산 수덕사에 가서 6개월동안 정양했다.
1936-20세 체육특기생으로 양정 고등
보통학교3학년에 편입했다.
1937-21세 조선일보가 주최한 제2회 전조선
학생 미술 전람회에 <공기놀이>등을 출품하여
최고상인 사장상과 중등부 특선상을 받았다.
1939-23세 양정 고등 보통학교 졸업(2회),4월에
일본 동경의 제국미술학교(지금의武藏野美
術大學)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1940-24세 선전에 출품, <소녀>가 입선됐다.
1941-25세 4월 12일 이병도 박사의 맏딸
李舜卿(1920년 9월 3일생)과 결혼했다.
1942-26세 장남 正凉 났다.
1943-27세 9월, 제국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선전에서 <언덕>이 입선됐다.
1945-29세 지난해 겨울에 일제에 끌려
징용에 나갔다. 징용나간지
9개월만에 해방을 맞았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 취직했다.
장녀 暻洙 났다.
1947-31세 국립 중앙 박물관을 사직했다.
덕수 상업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차녀 喜凉 났다.
1948-32세 12월,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등과
1947년 결성한 신사실파 제1회 동인전(화신
백화점)에 출품했다.
1949-33세 11월, 제2회 신사실파 동인전
(동화백화점)에 유화 13점을 출품했다.
1950-34세 내수동 집에서 살다가 6.25동란을 맞았다.
1951-35세 1월초 부산으로 피난했다.
여름, 종군 화가단에 들어 보름동안
그림을 그렸다. 종군 작가상을 받았다.
초가을에 고향 내판으로 갔다. 거기서
물감을 석유레 개어 갱지에다 자화상을
포함 4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
3녀 專洙 났다.
1953-37세 5월말, 국립 중앙 박물관 화랑에서
열린 제3회 신사실파 동인전에 유화 5점을
출품했다.휴전직후 환도해서 유영국의
신당동 집에서 6개월 동안 살았다.
1954-38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대우교수로
일하기 시작했다. 4녀 允美 났다.
1955-39세 백우회 제1회전에 <樹下>라는 제못의
그림을 출품, 독지가의 이름을 딴
'이범래씨상'을 받았다.
1957-41세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동양 미술전에 출품했다.
1958-42세 뉴옥의 월드하우스 갤러리가 주최한
한국 현대 회화전에 <나무와새>(1957)등
유화2점을 출품했다.
국전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국전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것은 모두 세차례
(7,8,17회)였다.
1960-44세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사직하였다.
1961-45세 경성 제2고등 보통학교 출신 화가들이
모여 2.9동인회를 만들었고, 국립도서관
화랑에서 열린 제1회 동인전에 유화
2점을 출품했다.
1963-47세 경기도 덕소의 한강가에 상자모양의
슬리브 양옥을 짓고 그곳게서
생활하기 시작 했다.
1964-48세 11월 2일~8일에 반도화랑에서
유화 20점을 가지고 제1회 개인전을 열었다.
차남 洪淳 났다.
1967-51세 앙가주망 동인전에 5회존부터 참여했다.
1970-54세 정월, 불경들을 공부하던 부인의 모습을
담은 <진진묘>를 제작하였다.
1974-58세 4월 12일~18일에 공간화랑에서 32점의
유화를 걸고 제2회 개인전을열었다.
1975-59세 덕소 생활을 청산하고, 명륜동 양옥뒤의
한옥을 사서, 거기에 화실을 꾸몄다.
집에 모시고 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1976-60세 백성욱박사와 함께 자주 사찰을 찾았다.
인연으로 부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같은
불교적 그림을 그렸다.
잡지, 신문의 권유로 적었던 글들을 모아
「강가의 아틀리에」라는 수상집을
냈다.
1977-61세 여름에 양산 통도사에 가서 경봉스님을 만났다.
선시와 '非空'이라는 법명을
주셨다.
법당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지에
도화를 그려 현대화랑에서 비공개
전시회를 열었다.
1978-62세 2월 23일~28일에 현대화랑에서
윤광조의 분청사기에 그림을 그린 도화전을
그렸다. 37점 출품.
1979-63세 차남 洪淳 잃었다.
10월 11일~17일에 화집발간 기념 전시회를
현대화랑에서 열었다.
유화 25점, 판화13점, 먹그림 8점을 전시했다.
겨울에 수안보 온천뒤 탑동마을의
농가를 한채샀다.
1980-64세 봄부터 수안보의 농가를 고쳐
화실로 쓰기 시작했다.
1981-65세 10월 11일~17일에 공간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유화 20여점과 먹그림을 에칭판화로
옮긴 그림 5점을 전시했다.
1982-66세 7월 중순, 여류화가들과 함께
미국 여행을 했다.
유화 3점과 실크스크린, 에칭판화,
그리고 먹그림을 가지고 가서 로스엔젤레스의
스코프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1983-67세 3~4월에 유럽여행을 했다.
10월 22일~29일에 淵화랑에서 새로
제작한 석판화 4점과함께 판화집 출판기념
판화전을 열었다.
1985-69세 여름에 수안보 화실을 정리하고
서울로 이주했다.
1986-70세 정월 보름부터 이월말까지 부산
해운대에서 제작한 유화 8점과 먹그림 소묘를
모아 6월 12일~19일에 국제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미대 제자들이 모여서 고희잔치를
열어주었다.
봄부터 경기도 용인군 구성면 마북리에
있는 오래된 한옥을 사서 보수했다. 칠월
초에 입주했다.
가을에 중앙일보가 제정한 예술대상의
수상자로 지명됐다.
1987-71세 2월에 대만과 태국을 여행하였다.
5월 28일~6월 6일에 두손 화랑에서
화집을 내고 개인전을 열었다. 유화 80점을
출품됐다.
여름, KBS TV의 원로 탐방 프로
'뵙고 싶었습니다'에 출연했다.
추석즈음 고향의 아버지 묘소에 비석을 세웠다.
1988-72세 1월에 인도로 여행, 뉴델리 박물관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12월 발리섬으로 여행했다.
1989-73세 7월, 한옥 옆에다 양옥을 완성하고 입주했다.
가을, 미국 뉴저지주의
'버겐 예술-과학박물관'에서 개최된 한국
현대화전에 유화 8점을 출품했다.
1990-74세 가을, 아주 오랜만에 고향의 생가를
방문했다. 미국의 '한정판 출판사(Limite Editions Club)'에서
선정한 한국 관련 책에 그림을 맡기로 위촉되었다.
12월 27일, 갑자기 발병, 오후4시에
한국병원에 선종했다.
12월 29일 오후 1시, 수원 시립장제장에서
제자및 미술계 인사들이 모여
영결식을 가졌다.
-김영사 『그사람 장욱진』<김형국 지음> 에서 발췌-
<새와 아이 Bird and a Child> 1990. 96X63cm.
<강변 풍경 Riverside Landscape> 1990. 28.5X20.5cm.
<無爲自然 Living an Idle Life in the Nature> 1990. 28.5X20.5cm.
<대나무집 Bamboo House> 방자부채에 먹. 1985. 31X36cm.
<나무 Tree> 1979. 65X42cm.
<물고기와 새 Fish and a Bird> 1979. 93X57cm
<臥遊江山 Traveling the Countryside While Lying Down> 1981. 36X 24cm.
<天下天下唯我獨尊 I am my own Lord throughout Heaven and Earth> 연도 미상. 36X24cm
<난초와 여치 Oriental Orchid and a Grasshopper> 연도 미상. 38.5X27.5cm.
<雙喜圖 Twin Birds> 연도 미상. 28X19cm.
<거북이 Turtle> 1979. 26X26cm.
<농촌풍경 Landscape of Rural Town> 1982. 68X35cm.
<도인의 나들이 Strolling of a Spiritual leader> 1981. 26X19.5cm.
<나무가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a Tree> 1982. 67X35cm.
<부부 Couple > 연도 미상. 41X90cm.
<두 여인 Two Women> 연도 미상. 37X2cm.
<두 아이 Two Children> 1982. 33X31cm. 어린이날에 그린 것.
<아이 The Child> 1979, 65X43cm.
<새와 아이 Bird and a Child> 1979. 67X43cm
<나무 풍경 Landscape with a Tree> 1979. 91X61cm
<학과 아이 Crane with a Child> 1981. 66X34cm.
<호랑이와 아이 Tiger with a Child> 1979. 98X3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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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천연님 소개하신 장욱진의 그림 잘 보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안그래도 오늘 부채에 그려진 장욱진님의 그림을 봤는데~~제목보고 으이""' 유심히 잘 보구 가네요~~
잘 감상했습니다.
그림이 좋아서 스크랩 해 갑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가져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