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와요!'
2007년 16년 여 살던 아파트에서 유성의 한 아파트 단지로 이사했다. 이사 온 곳의 생활정보도 얻을 겸 맛 집을 찾아 종종 외식을 했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이웃주민이 일러준 유성재래시장 안에 있는 손칼국수집을 물어서 찾았다. 칼국수 집은 시장 골목 길 옆에 있는 출입문 2개짜리로 규모가 크지 않았다.
처음 찾아간 집이라 조심해서 출입문을 살며시 열었다. 홀 안은 어두웠고 두 개의 둥근 식탁 주위에는 노인들이 4,5명씩 앉아 국수를 들고 있었다. 잠시 둘러보아서야 구석에 있는 한 식탁이 비어 있는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출입문을 열었을 때도 들어오라는 말 한마디 없이 아래위로 훑어보기만 하고는 서빙을 하던 중년 부인이 쏘아 보듯 하더니 ‘나중에 와요! 손님이 안 보여요?’라며 밀어내듯 말총 한마디.
그 한마디에 아무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성대 수술로 언어장애) 조용히 문을 닫고 그냥 물러나왔다. 그리고 자신의 몰골을 쳐다보았다. 다리는 절지, 지팡이는 짚었지, 말은 제대로 하지 못하지, 옷차림은 집에서 마구 입는 차림이지...이랬으니 ‘나중에 와요!’라며 몰아내듯 말총을 맞았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돌아와 집에서 때늦은 점심을 먹었다.
얼마 전이다. 출입을 거부당한 그 칼국수 집이 있는 골목길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랜만에 그 근처에 새로 생겼다는 칼국수 집을 가느라 그 집 앞을 지나게 되며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피어올랐다. 기억이 피어오르며 얼마 전에 선종한 영문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인 장영희(고 장왕록 교수의 따님) 교수가 1984년 유학중인 미국에서 여름방학에 잠시 돌아와 집에 들렀다가 윈도쇼핑이나 하자는 동생을 따라 명동에 나갔다가 당했다는 일이 떠올랐다.
달리 입을 것이 없었다는 장 교수는 자기가 편한 차림-군데군데 거의 올이 보일 정도의 청바지에 자신의 몸이 둘은 들어갈 정도의 넉넉한 티셔츠를 입었단다. 처음 명동에 간 장 교수는 동생을 따라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를 외계인처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어떤 진열장에 걸려있는 흰색 원피스를 입어보겠다며 들어갔다. 그러나 심한 지체장애의 장 교수는 가게 문턱이 높아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아주 아름다운 중년 여인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동생을 탈의실로 안내했다. 안내 후 무심히 돌아서던 그녀가 문에 기대서서 안을 들여다보고는 놀라더니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면서 내뱉듯이 ‘나중에 와요, 손님이 있는 거 안 보여요?’.영문도 모르는 장 교수가 눈만 멀뚱멀뚱하고 있을 때 그녀는 한 옥타브 더 올려 ‘나중에 오라는 말 안 들려요? 지금은 동전이 없다구요!’
순간 이 소리를 들은 동생이 탈의실 문을 박차고 나오며 ‘뭐라고 그랬어요. 지금 우리 언니를 뭘로 보는 거냐구요!’ ....장 교수는 그제야 주인 여자가 자신을 구걸하는 여자로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인 여자는‘목발을 짚으신 데다 입성까지 그러셔서’하며 아주 공손하고 겸연쩍게 사과했지만 못내 억울한 표정을 지울 수는 없었나 보다.
‘어쨌거나 여름날의 그 경험은 나의 생활패턴을 바꿔 놓았다’는 장 교수. 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바로 다음 날부터 청바지를 벗어버리고 정장을 했다. 로션 하나 바르지 않던 얼굴에 화장도 했다는 본인의 숨김없는 고백이 새로웠다. (2013. 8. 17. )
첫댓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중심을 보라고 하셨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