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민회관 녹지를 시민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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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상(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황사가 외출을 꺼림칙하게 하는 계절이다. 봄볕이 은근히 사람 피곤하게 한다면 황사는 내일을 두렵게 한다. 자외선 많은 봄볕은 피부암을, 중금속을 함유한 황사는 아이들의 건강을 염려하게 하므로…. 태평양을 넘나드는 황사를 막기 위해 국제사회는 중국 땅에 나무심기가 한창인데, 북경 인근까지 다가온 사막화가 워낙 거세 노력에 비해 효과가 미미하다고 통신원들은 전한다.
황사가 잠잠해지면 오존주의보가 출몰할 것이다. 남의 나라에 나무를 심어 막아내려는 황사와 달리 오존은 발생지역에 나무 심어 해결해야 한다. 정체된 뙤약볕 아래 화학변화한 자동차 배기가스가 인구 밀집 지역에서 오존이 되어 각막과 피부 손상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지방정부는 곳곳에 녹지를 조성해 일산화탄소와 각종 대기를 정화하고 복사열 증가로 발생하는 도시열섬화를 막아야 하는 것이다.
시멘트나 아스팔트 공간에 비해 기온을 4도 정도 낮추는 도심의 녹지는 보기에도 시원한 휴식공간을 시민에게 제공한다. 잔디에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거나 나무 그늘 아래에서 책 읽고, 산책하거나 가볍게 운동하는 시민들이 여유로운 유럽의 많은 도시를 보고 우리는 부러워 한다. 그런 유럽의 공원은 잘 관리한 가로수 녹지축을 통해 외곽의 숲과 효과적으로 연결된 까닭에 새소리가 교교하고 다람쥐도 드물지 않다.
서울은 자동차로 붐볐던 시청광장에 원형 잔디광장을 조성했다. 그러자 녹지에 굶주렸던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잔디가 한때 밟혀 죽었고, 잔디를 교체하느라 수선 떨기도 했다. 민원의 광장으로 때때로 활용되는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은 주변 직장인들의 휴식공간으로 각광받지만 무엇보다 매연을 제거하고 도시를 시원하게 만드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주변에 나무 한 그루 없는 것은 아쉽다.
의제에서 `때 까치가 찾아오는 도심'을 선언한 인천은 어떤가. 시청 앞 아스팔트 광장을 녹지로 조성한 것까지 좋았는데, 참여를 불편하게 하는 시설로 시민들의 의견 수렴 역할이 반감되어 아쉽다. 하지만 문제는 시민 측면에서 녹지답지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 시민들의 휴식공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생태적으로도 문제다. 녹지축과 연결되지 않아 때 까치는 커녕 참새 한 마리 구경하기 어려운 회색 도시의 녹색섬 신세다.
최근 옛 시민회관 녹지에 대한 개발논의가 한창이라고 소식이 들린다. 녹지 역할이 부실한 현 녹지를 헐고 그 자리에 초고층 빌딩을 신축하거나, 이용이 저조한 농구코트에 높은 건물을 지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안이 시와 구에서 제기된다는 것이다. 이러는 가운데 환경단체는 녹지기능을 제대로 살리는 공원으로 개선하자고 제안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하는데, 걱정이다. 그 방면에 관심이 많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 볼때 논의가 없는 것이 어딘가 수상쩍다. 이러다 `합법적 확정' 운운하며 고층빌딩을 강제할까 두렵다.
주안의 옛 시민회관 녹지는 지난 1997년 시민사회의 강력한 요구로 고층빌딩의 멍에를 벗고 태어난 어엿한 시민들의 녹지공간이다. 비록 부실하지만 장차 나무에 둘러싸인 잔디광장을 조성해 주변 직장인과 오가는 시민들의 공원을 승화되어야 할 곳이지 건물 신축을 위한 예비공간일 수 없다. 문화공간을 위한 다면 시민합의에 따라 녹지의 역할을 위축시키지 않는 면적에 한해야지 초고층빌딩은 인천과 같은 회색도시에서 시민과 후손에 대한 무책임한 도발이다.
문화공간은 녹지 파괴한 자리에 부적합하다. 시민 피부에 닿는 작은 문화공간이라면 농구장에 지붕이 녹화된 2층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곳을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활용한다면 행정기관에서 걱정하는 녹지의 심야 우범화도 방지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옛 시민회관 녹지는 녹지에 굶주린 시민들 품에 제대로 돌려주어야 한다. 회색도시에 추가되는 초고층빌딩은 지친 시민들 더욱 짜증나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시 담당자들에게 8년 만에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니, 서글프기 한량없다.
박병상(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2005년 04월 29일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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