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정확히는 남구 이천동 육삼팔에 십삼번지다. 옛날엔 수도산이라 불리워졌고, 지금은 상수도 사업본부, 그 정문 바로 앞 골목에 집이 세게 있는데 그중에서 복판집이다.
오남매인 우리는 현재 형은 창원에,누나는 가창, 나는 서울, 여동생 둘은 동해와 울산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팔십오세인 모친은 완고해서 딴데 안가고 혼자 산다. 예전보담 한풀꺽였지만, 모친 잔소리는 여전하다. 나도 이제 낫살이 찡긴데다 듣기 싫어서 나돌아 댕긴다.
추석날은 갈대도 없어서 최근에 구입한 디키를 들고 학교로 향했다. 그 옛날에도 나는 학교마치면 집에 가방갖다놓고 또 학교로 갔다. 칭구가 없어도 혼자 빈둥거리며 지냈다. 그 옛날 변소 있던 자리에 작은 공터가 있었는데, 거기는 탁 터여서 앞산, 미군부대, 교대 그리고 느티나무가 다 보였다 .
느티나무 옆에는 목장터가, 그 옆엔 미끄럼터가 있었다. 사학년때, 나는 칭구들하고 놀다가 미끄럼터에서 떨어졌다. 깨 보니 양호실이었던거 같다. 오른팔을 한달동안 기부수하고 다녔다. 비오는 어느 날 박철균이란 친구가 우산을 들고 우리집까지 바래다 줬다. 군에 갔다 온 뒤 몇번 만났는데, 미국간 뒤로는 보지 못했다.
추억의 교문, 느티나무, 새로 지워진 멋있는 학교 건물, 학교앞 문방구 등을 몇장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