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정공 묘갈명(司果鄭公墓碣銘)
공의 휘는 안번(安藩), 자는 영보(寧甫)이고, 고려의 명신인 습명(襲明)의 17대손이다. 명신의 행적은 국사에 실려 있고 상세한 세계(世系)는『오천정씨보(烏川鄭氏譜)』에 있다. 증조부의 휘는 차근(次謹이고, 조부 윤량(允良)은 창릉 참봉(昌陵參奉)이며, 부친( 세아世雅)는 황산도 찰방(黃山道察訪)을 지내고 병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모친 일직 손씨(一直孫氏)는 비안 현감(比安縣監) 치운(致雲)의 딸이다. 만력 갑술년(甲戌年, 1574, 선조 7)에 공은 영천(永川)의 자양동(紫陽洞)에서 태어났다. 공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자품이 있었고, 성장해서는 헌걸차서 작은 예절에 얽매이지 않았다. 당시에 전란이 일어나자 비분강개하여 참전했고, 을사년(乙巳年, 1605, 선조 38) 무과에 뽑혀 잠시 포이포 만호(包伊浦萬戶)에 임명되었으나 곧바로 벼슬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진 덕행이 향당(鄕黨)에 미쳐 사람들이 모두 공경하고 복종하였다. 경오년(庚午年, 1630, 인조 8)에 자택에서 천수를 다하니, 향년 57세이다. 배위 숙인(淑人) 안동 권씨(安東 權氏)는 공조 참판에 증직된 극립(克立)의 딸로 만력 정축년(丁丑年, 1577, 선조 10)에 태어나 숭정 신미년(辛未年, 1631, 인조 9)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55세이다.
숙인이 현숙한 덕성을 지니고 가족을 돌보며 가정을 화목하게 하니 가내가 평온하였다. 2남 2녀를 낳았다. 장남 호인(好仁)은 문과에 급제하여 진주 목사(晉州牧使)를 지냈고, 차남 호문(好問)은 벼슬하지 않았다. 장녀는 하성(夏城) 조진효(曺盡孝)에게 시집가고 차녀는 하성 조완(曺輐)에게 시집갔다.
진주 목사는 충의위(忠義衛) 월성(月城) 손로(孫魯)의 딸에게 장가들어 3남 2녀를 낳았다. 그의 장남 시행(時行)은 3남 2녀를 낳았는데 모두 어리다. 차남 시연(時衍)은 딸 하나를 낳았고, 삼남 시간(時衎)은 아들 하나를 낳았다. 장녀는 순천(順天) 박숭휘(朴崇輝)에게 시집가서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어리다. 차녀는 아직 시집가지 않았다.
호문은 주부(主簿) 윤승선(尹承善)의 딸에게 장가들어 3남 2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시창(時昌)과 시규(時圭)와 시려(時呂)이다. 시창은 아들 하나를 낳았다. 장녀는 시집을 갔으나 후사 없이 일찍 죽었고, 차녀는 아직 시집가지 않았다.
조진효는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하영(夏英)이다. 하영은 2남 4녀를 낳았는데 모두 어리다. 조완은 딸 셋을 낳았는데, 장녀는 성주(星州) 이기래(李箕來)에게 시집가고, 차녀는 밀성(密城) 박정건(朴廷健)에게 시집갔으며, 막내딸은 아직 시집가지 않았다. 덕을 쌓아 복이 넘쳐흘러 자손이 매우 많으니, 이것으로 후손들이 무궁하게 번창할 것을 알 수 있다.
공과 숙인의 묘소는 처음에 영천군(永川郡) 북쪽 산에 터를 잡아 두 곳에 각각 안장했는데 지맥이 좋지 않아서 울산(蔚山) 남쪽 청량리(淸涼里)에 다시 터를 잡았다. 임오년(壬午年, 1642, 인조 20)에 함께 이장하여 한 곳에 합장하니, 이곳은 임좌병향(壬坐丙向)의 언덕이다.
그 후 16년이 지난 정유년(丁酉年, 1657, 효종 8)에 비석을 세우게 되었으므로 명문을 짓는다.
명문은 다음과 같다.
세계가 오천에서 나오고 / 系出烏川
대대로 높은 관직 이어졌네 / 赫世簪纓
은덕 베풀어 복을 내리니 / 種德垂裕
훌륭한 자손들 가득하네 / 鸞鵠滿庭
이 비석에 새겨 / 刊此龜珉
학성에 세우네 / 鎭于鶴城
귀신이 보호하고 사람이 공경하며 / 鬼護人欽
천년토록 길이 보존하리라 / 永保千齡
학성(鶴城) : 울산(蔚山)의 옛 이름이다.
정공(鄭公) : 정안번(鄭安藩, 1574~1630)으로, 자는 영보(寧甫),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1605년 무과에 뽑혀 잠시 포이포 만호(包伊浦
萬戶)에 임명되었으나 벼슬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쌍봉선생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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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司果鄭公墓碣銘.
公諱安藩字寧甫。高麗名臣諱襲明十七世孫。名臣行蹟有國乘。世系之詳。在烏川鄭氏譜。曾祖諱次謹。祖諱允良昌陵參奉。考諱世雅黃山道察訪。贈兵曹參判。妣一直孫氏。比安縣監致雲之女。以萬曆甲戌。公生于永川紫陽洞。幼有異質。及長魁偉不拘小節。時値搶攘。慷慨投筆。擢乙巳武科。暫試包伊浦萬戶。旋卽不仕家居。仁及鄕黨。人皆敬服焉。以庚午歲考終于寢。享年五十七。配淑人花山權氏。贈工 曹參判克立之女。生于萬曆丁丑。卒于崇禎辛未。享年五十五。淑人有賢德。保族宜家。閨門穆穆焉。生二男二女。男長好仁文科晉州牧使。次好問不仕。女長適夏城曺盡孝。次適夏城曺輐。牧使娶忠義衛月城孫魯之女。生三男二女。長時行生三男二女皆幼。仲時衍生一女。季時衎生一男。女長適順天朴崇輝生一男幼。次未笄。好問娶主簿尹承善之女。亦生三男二女。時昌,時圭,時呂其名也。時昌生一男。長女適人無後早死。次未笄。曺盡孝生一男曰夏英。夏英生二男四女皆幼。曺輐生三女。長適星州李箕來。次適密城朴廷健。次未笄。積德流慶。子孫衆多。是知昌後之無竆也。公及淑人墓。初占永川郡北山。兩地各葬。以地道不寧。改卜蔚山南淸凉里。歲在壬午。並遷而同窆焉。此其壬坐丙向之原也。後十六年丁酉立石。因以銘焉。銘曰。
系出烏川。赫世簪纓。種德垂裕。鸞鵠滿庭。刊此龜珉。鎭于鶴城。鬼護人欽。永保千齡。<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