沙斤驛(사근역)
(경남 거창에 있었던 역이름)
이경동(李瓊仝:1438~1494)
본관은 전주. 자는 옥여(玉汝), 호는 추탄(楸灘).
조선전기 황해도 관찰사, 동지중추부사, 호조참판등을 역임.
1483년 『강목신증(綱目新增)』을 왕명으로 편찬하였다..
피곤한 나그네 턱을 괴고 누워서
倦客支頤臥 권객지이와
시를 더듬다 보니 해는 벌써 한낮이네
探詩日向中 탐시일향중
물총새 울음소리 한 번 들려와서 보니
一聲聞翡翠 일성문비취
역 동쪽 창에서 우는구나
啼在驛窓東 제재역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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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그 밑바닥을 볼 수 있으나
海枯終見底 해고종견저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알지 못하느리라
人死不知心 인사부지심
마음이여, 참으로 찾기 어렵도다!
心心心難可尋 심심심난가심
옛시를 읽으면서도
화자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시를 찾아 시를 쓰느라고
해가 중천에 떠 있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들려오는 물총새 소리에
그때 잠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시를 쓴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매 한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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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시집『사평역에서』, 창작과 비평사,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