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적우침주(積羽沈舟, jī yǔ chén zhōu)
쌓을 적, 깃 우, 잠길 침, 배 주
새의 깃이라도 쌓이면 배를 가라앉게 한다는 뜻으로 《사기》 장의열전에 나온다.
“여보, 이것 좀 봐. 곰팡이가 슬었네. 아이고! 소매도 닳아지고 앞 단추 자리 허연 실밥 좀 봐. 20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이제 버립시다.”
“글쎄, 아직 입을 만하지 않나…?”
“당신 출근 안한지가 벌서 몇 년이요? 이제 양복 입을 일도 별로 없는데 서너 개만 남기고…, 여기 와이셔츠나 티셔츠도 버릴 게 천지네. 티끌 모아 쓰레기!”
“아, 그것 맞춰 입느라고 나간 돈이 얼마인데…,”
“당신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티끌 모아 태산’은 이제 버려야 할 때요. 당신 수준에는 소비가 미덕인 거 모르세요? 홈쇼핑 카탈로그 보니까 좋은 게 많더구만. 제발 버릴 건 좀 버리고 신상품으로 바꿔 입어요.”
아내가 변했다. 외식도 돈 아깝다며 집밥을 고수하던 그녀다.
허긴, 앞으로 살날도 길게 잡아 봤자 고작 20년도 안될 텐데, 몸 멀쩡할 때 옷이나 잘 입고 또 잘 먹다가 죽어야지, 재산 많이 남겨봐야 자식들 좋은 일만 시키지 않나?
지난 호에 기고한 앞서 <고침안면>에서 말한 것처럼 장의는 소진이 어렵게 맺어놓은 ‘합종’을 깨고 진을 중심으로 ‘연횡’을 하는 데 앞장섰다. 장의는 여러 계책을 내어 진왕의 신임을 얻어 재상이 된 후, 다른 나라들이 진과 연횡을 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먼저 위로 건너가 위의 재상이 되었다. 위 양왕에게 진을 섬기도록 유세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뒤를 이은 애왕에게 또 유세하였다.
“위는 영토가 작고 군사도 30만에 불과합니다. 사방에 많은 나라가 에워싸고 있고 그들이 합종을 지킬지 의심스럽습니다. 만약 다른 나라들이 위를 치면 단숨에 멸망할 것입니다. 위가 진을 섬긴다면 한과 초가 쳐들어오는 일은 없게 되어 ‘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잘 주무실 수 있고(고침안면)’ 나라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애왕이 옳은 말이라 여기면서도 뭔가 미심쩍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합종이 더 유리할 것 같지 않소?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던데….”
“합종을 말하는 자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큰소리를 치는 자가 많아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제후 한 사람을 잘만 설득하면 봉후(封侯)가 되는 까닭에 천하의 유세가들은 밤낮으로 팔을 걷고 눈을 부릅뜨며 이를 악물고 합종이 이롭다며 군주를 설득하고 다닙니다. 군주가 그 변설을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말에 끌려 현혹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신이 듣기로 쌓아서 겹치면 가벼운 깃털이라도 배를 가라앉게 할 수 있고 지나치게 많이 실으면 수레바퀴의 축을 부러뜨리며, 뭇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이 헐뜯으면 뼈까지도 녹인다고 했습니다(臣聞 積羽沈舟 群輕折軸 衆口鑠金 積毀銷骨 신문 적우침주 군경절축 중구삭금 적훼소골). 대왕께서는 계책을 신중하게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합종론자들의 감언이설에 놀아나지 말라는 이 말에 애왕이 마침내 합종을 깨고 진과 화친하였다. 장의는 이를 시작으로 먼저 초를 설득하고 이어서 한과 제를 설득하여 합종을 깨고 마침내 연횡을 성립시켰다.
훗날 사람들은 ‘가벼운 깃털도 무게가 있다.’는 이 말을 작은 힘도 합하면 큰 힘이 된다는 의미로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티끌 모아 태산’이 된다는 말로도 쓰며, 이 성어를 인용하여 작고 하찮은 것들을 소홀히 하거나 무심코 지나치면 큰 화근이 되고 큰 피해를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어릴 적 즉, 60-70년대에는 누구나 그랬듯이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아 왔다. 그때는 보리밥과 무밥을 먹고 그것도 배불리 먹지 못한 가운데 시래기 국을 먹으며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넣고 저축통장을 만들고 아끼고 사는 것이 절대미덕이었다. 다들 검소하고 질박하게 그렇게 살아 왔다.
하지만 오늘날 물질이 풍요해지면서 우리가 가졌던 검소한 모습은 퇴색되어가고 있다. 우리 세대가 겪은 것을 잘 모르는 요새 젊은 세대들은 묻는다. 왜 그리 초라하고 무능하게 그리고 궁상맞게 살았지? 그리 가난하도록 뭘 하셨나? 더욱이 돈 부유한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가난이니 절박이니 하는 말에 대한 감(感)도 없다.
이제∼ 모으고 아끼기보다는 보다는 소비가 미덕인 사회가 되었다. 부가 대물림되는 것이 고착화되고 빈부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을 본 그들, ‘지금 모아봤자…’ 하는 심리적 공황과 정서적 황폐를 느끼고 있다. 아예 모으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그날그날을 즐기며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에게 아끼고 검소하게 살면 잘 살게 되고, 작은 힘도 합하면 큰 힘이 된다면서, 塵合泰山(진합태산, 티끌 모아 태산), 愚公移山(우공이산, 산을 대를 이어 옮기다), 磨斧作針(마부작침,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다) 水滴穿石(수적천석, 물방울이 바위를 뚫다), 露積成海(노적성해, 이슬이 바다를 이루다)들을 예로 들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네 처음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등 격언들을 들어가며, ’작은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말해본들 과연 그들의 귀에 잘 들어가겠는가?
첫댓글 진리로 생각했던 것이 사대가 변하면서 가치가 변하네요. 나 역시 젊은 시절 근검 절약 내핍만 살 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여유있는 사람들이 돈을 써 주어야 국가경제가 돌아간다고 하니 핑계대고 가끔 돈을 써보기도 하지요. 그러나 기본은 검박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특히 제한된 자원을 낭비하여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이는현실에서 삼천리 쓰레기강산과 미래의 암울을 걱정해 보게 되네요. 나는 수능천석과 마부작침이란 말을 좋아하지요. 물방울이 떨어져 밀양 얼음골 호박소를 만든 것을 보면서 부단한 노력은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요. 생활철학이 될 수 있는 좋은 글을 잘 읽었습니다.
세상 많은 일이 꾸준함으로, 혼자가 아니라 여럿의 힘을 합쳐 이루어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해 주시는군요. 연횡보다는 합종, 진합태산, 우공이산 따위의 말이요.
수적천석아라는 말도 해주셨지만 劫이라는 영원과도 깉은 무한 시간의 길이를 생각해 보게도 됩니다~
티끌은 모아봐야 티끌이라는 말도 있긴 있던데요ㅎㅎ
저축과 소비의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딸들과 자주 부딪히지만 이미 학습된 그들의 신념을 바꾸기 어렵더군요
잘 벌어 잘 쓰자 이건데 어찌보면 잘 벌어도 잘 쓰지 못한 저를 보면 어느 것이 더 현명한 건지 저도 혼란스러울 때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근검절약이 몸에 배여 아직도 소비보다 저축이 더 기분 좋으니 사람 참 안변하나 싶기도 합니다
좋은 말씀 잘 듣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유럽내 30여개국들이 힘을합쳐 NATO를 만든것은 거대 구소련
위협에 대비하는것이었지요
생존을 위해서도 적우침주는
필요합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