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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5:14-30 인생도 결산할 때가 있습니다 24.12.29 주일낮
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 2024년 마지막 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인생도 결산할 때가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길 원합니다.
또 한 해가 지나갑니다. 올해도 이제 2일 남았습니다. 얼마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저보다 훨씬 빠름을 느끼실 것입니다. 올해는 무더운 여름 지나고 비상계엄 터지니 한 해가 다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뉴스를 보면 그야말로 말세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말세란 세상의 마지막을 말합니다. 시작이 있으니 끝도 반드시 있습니다. 성경에 말세라고 번역된 단어가 7번 나오는데 그중에 베드로 사도는 벧전,후서에서 '말세'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쓰고 있습니다. 단순히 인생의 마지막, 어떤 일의 마지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마지막, 그야말로 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벧전 4장 7절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같은 장 17절에서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라고 했습니다. 벧후3장 3,4절에도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벧전1:5에서도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가 될수록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구나, 주님을 뵈올 날이 더 가까이 오는구나, 라고 믿고 확신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이천 년 전 예수님이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을 때는 먼저 엘리야를 보내신다고 했습니다. 그 엘리야가 누구였습니까? 예수님은 마 11:14에서 말씀했습니다.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이 사람이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로써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면서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 때는 누구를 보내실까요? 누구를 보내신다고 약속하셨을까요? 성경에 기록된 예언은 특별히 능력 있는 선지자를 보낸다고 하지 않고 재림 때가 가까우면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며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날 것을 말씀했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이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하면서 성도를 미혹할 것을 예언하셨고 다니엘이 말한 멸망의 가증한 것, 즉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만희, 안상홍, 정명석 등과 같은 거짓선지자가 나타날 것을 예언해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때 예수님은 재림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때 있을 차이는 이처럼 분명합니다. 지금 얼마나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활동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다 그렇습니다. 정말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할 때입니다. 성경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 오늘 본문을 보시면 우리 인생도 결산할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19절입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 새"라고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삶에 대한 결산을 봐야 합니다. 아침이 시작되면 밤이 오고 한 주가 시작되면 주말이 오고 한 달이 시작되면 월말이 오고 한 해가 시작되면 한 해가 끝나듯이 인생도 시작이 있으니 마지막도 반드시 있습니다. 주인이 맡기고 떠났으니 돌아와서 결산하는 날, 끝ㅇ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의 결국, 결말이 있듯이 인생도 '결국, 결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 인생의 결국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전9:3에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고 전12:13에서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인생의 결국을 알지 못하도록, 생각하지 못하도록, 대비하지 못하도록 속입니다. 특히 죄의 결말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여 계속 죄를 범하게 하고 인생의 결산과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잊게 합니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과 재물을 낭비하고 허비하도록 합니다. 마귀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의 낙을 누리게 하다가 결국 허무하다, 허망하다는 결말을 내리도록 유도합니다. 거짓말의 결국, 사기의 결국은 철창신세를 지는 것이고 술의 결국은 몸도, 마음도 다 망가지는 것이고 노름의 결국은 재물을 다 잃게 만들고 바람피우는 결국은 가정을 깨어지게 만드는 것인데, 그런데도 마귀는 계속 죄에 넘어지도록 유혹하고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얽매이게 합니다. 마귀는 회복이 아니라 더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만듭니다. 마귀는 구원이 아니라 파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영생이 아니라 멸망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므로 마귀에게 속지 말고 우리의 결국을 믿음으로 준비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믿음의 결국 영혼이 구원을 얻음이라고 했습니다(벧전1:9). 인생의 결산을 누가 하십니까. 불꽃같은 눈동자로 바라보시고 감찰하시는, 전능하신 우리 주님이 하십니다. 그분 앞에서 조금도 감추거나 숨기지 못하고 모든 것이 정직하게 다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 소유를 맡기셨습니다. '맡긴다'는 말은 주인의 것을 종에게 잠시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인의 소유권이 종에게 이전, 양도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원 소유자인 주인이 따로 있고 잠시 종에게 임대해서 관리하게 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종들은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주인의 뜻을 따라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청지기'라는 단어로도 사용합니다. ‘관리자’라는 말입니다. 원래 집사라는 말은 관리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관리를 맡긴 것입니다. 목사로, 집사로, 교사로 각각 직분을 하나님께서 맡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맡은 사람은 자기가 주인 되어 자신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 되신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뜻에 잘 따라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먼저 착하고 충성된 종이 있습니다. 21,23절을 보면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과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이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남겼을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했습니다. 이들은 주인이 맡기고 떠났을 때 주인의 뜻을 따라 열심히 일했습니다. 16절을 보면 “바로 가서”라고 했고, 17절을 보면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 같이 하여”라고 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이것저것 생각만하다, 계획만 세우다 시간 다 놓치고, 망설이다가 기회를 다 놓치지 않고, ‘내일부터, 다음달부터, 내년부터’라고 하지 않고 달란트를 받자마자 즉시 일하러 나갔던 것입니다. 맡기고 떠난 주인의 의도를 알고 그대로 순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종들이 이렇게 한 것은 주인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고 주인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주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고 또한 주인이 돌아올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잘 되는 것을 정말 기뻐하고 바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착한 마음이고 충성된 마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처음과 끝이 다르지 않습니다. 주인이 볼 때와 보지 않을 때가 다르지 않습니다. 주인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다르지 않고 일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한결 같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일하니 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힘써 일한 것에 좋은 결과, 좋은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함경도 어촌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운영하던 40척의 고기잡이배가 한 척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폭풍에 모두 침몰된 것입니다. 소년의 가족은 나머지 재산을 정리해서 피해자들에게 다 나눠주고 빈손으로 동네를 떠났습니다. 부유한 가정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자란 소년은 하루아침에 캐나다 선교사 가정에 머슴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년은 온갖 궂은일을 감당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일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고 가족들이 보고 싶고 옛 생각이 나서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도 힘든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선교사는 종종 소년이 알 만한 곳에 돈을 놓아두었습니다. 소년의 정직성을 테스트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소년은 한 번도 그 돈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주인의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소년은 선교사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선교사는 이 소년을 서울에 데려가 교육시켰고 이후에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어 뒷바라지해주었습니다. 이 소년이 고국으로 돌아와서 신학교를 세웠는데 백석대학교의 전신인 대한신학교입니다. 이 소년이 김치선 박사입니다. 하나님은 착하고 충성된 자를 통해 언제나 일하십니다.
3.그러나 악하고 게으른 종도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입니다. 26절을 보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고 했습니다. 24절을 보시면 악하고 게으른 종은 주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한마디로 주인을 구두쇠, 수전노로 생각했습니다.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긍정적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엔 여러 사람과 불화를 만들게 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교회에 덕을 끼치는가, 유익한가를 생각해야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은 또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25절을 보면 “두려워하여” 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작은 일에도 실패할까봐 두려웠다는 것이고 실패한 후에는 문책 당할까봐 두려워하는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은 일을 만들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사람은 자기가 안할 뿐만 아니라 남이 하는 것도 시기하고 방해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핑계를 대고 자기를 합리화시킵니다.
그러나 착하고 충성된 사람은 핑계가 없습니다. 소극적이지 않고 적극적입니다.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할 수 없다', '해도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면 된다.', '한 번 해 보자'는 사람입니다. 고 정주영회장의 일화 중에 "해 보긴 해 봤어?"라는 말이 유명합니다. 직원들이 '이래서 안 됩니다. 저래서 안 됩니다. 불가능합니다.'라고 하면 "이봐, 해 봤어? 한 번 해보고 하는 말이야?"라고 했습니다. 그는 안 되면 되게 하려고 어떡하든 방법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모세가 보낸 정탐군이 모두 '안 됩니다. 못합니다. 우린 이제 다 죽었습니다', 라고 할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저들은 우리의 밥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저 산지를 취하라고 허락하셨으니 우리가 올라가서 취하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의 편이셨습니까? 이 두 사람의 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두 사람의 편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하나님의 편에 선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착하고 충성된 종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일을 하면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지 말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길 축복합니다.
4.마지막으로 결산할 때 주인의 칭찬과 책망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반드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종들을 불러 결산을 하는데 악하고 게으른 종은 책망을 받습니다. 한 달란트도 빼앗기고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납니다. 악하고 게으른 것을 하나님이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착하고 충성된 종은 칭찬을 받습니다. 25절에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여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합니다. 주인은 더 많은 것을 그에게 맡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충성된 자가 되길 소원합니다.
영국의 문학가 칼 라일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대가 하는 일이 미천하다고 낙심치 말라. 그대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그대에게만 맡기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열심을 품고 주님을 사랑하며 섬겨야 합니다. 마지막 결산의 날이 우리에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 때 우리 모두는 주님께 잘했다고 칭찬 받는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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