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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동명천제단입니다.
대한제국 애국가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사
성수무강하사
해옥주를 산같이 쌓으시고
위권이 환영에 떨치사
오천만세에 복록이 일신케 하소서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 2020년 7월 10일 사망.
곧이어,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United States National Security Council, NSC)는 지난 2020년 7월 12일 성명을 발표하며 "대한민국은 1950년대 공산주의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백선엽과 영웅들 덕분에 오늘날 번영한 민주공화국이 됐다"며 "우리는 백 장군이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애도하며 그의 유산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미국 국무부는 추가로 2020년 7월 14일, 모건 오테이거스(Morgan Deann Ortagus) 대변인 명의의 성명에서 "한국 최초의 4성 장군으로서, 6.25 전쟁에서 조국에 대한 그의 봉사는 한미 양국이 오늘날까지 간직해온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한 싸움의 상징이었다"며 최대의 찬사를 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공화국에서 영결식이 있던 2020년 7월 15일, 미국 국방부 데이비드 헬비 인도태평양 차관보 대행(David F. Helvey Acting of Assistant Secretary of Defense for Indo-Pacific Security Affairs)은 미국 백악관(The White House), 국무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 DOS)에 이어서 재차 "백선엽 장군은 동맹의 충실한 친구이자 대한민국에 헌신한 위대한 인물이었다"며 "그의 서거는 위대한 한미 양국군 장병들에게 큰 손실"이라고 말하며 "백 장군의 특성은 그가 만들고자 노력했던 대한민국에 잘 반영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용기와 회복성, 그리고 역경을 극복하는 불굴의 정신"이라는 말을 하며 미국이 서거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는 등, 최대의 찬사를 보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80년의 대한민국 공화국 역사, 그리고 공화국의 전 정부 형태였던 25년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 소급해야 하는 역사의 전환점 백선엽 씨에 대해서 사실 고인에 대한 칭호 문제는 백선엽 씨를 정의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이므로 무엇으로 불러야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박정희 정부하에서 전 교통부 장관을 역임한 경력을 이유로 전 교통부 장관으로 부르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인가 아니면 백선엽 씨가 과거 군 전역하기 전 최종 직책이었던 합동참모의장을 이유로 전 합동참모의장으로 불러야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백선엽 씨를 대한민국 공화국내 과거 공직 역임에 관하여 조금 일방적인 호칭으로 재건회가 임의 지정하기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현재 백선엽 씨에 대해서 대한민국 공화국의 현지 상황은 과거 군인 이력에 관해 호칭하는 경우가 훨씬 더 일반적인 관계이므로, 본 카페(cafe)에서는 전 합동참모의장으로 호칭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2020년 7월 10일에 이어서, 2020년 7월 15일은 그토록 대한민국 공화국내에서 친일 논란 등으로 많은 우여곡절이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은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공화국에서 관례적으로 대통령의 취임식 때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은 바로 다름 아닌 국립 현충원입니다. 바로, 일본통치 시대 36년간 부분적으로 간간이 활동했던 독립 운동가들의 극히 일부와 1950년 6.25 전쟁 등에서 북한군을 상대로 싸우다 희생된 남한군 일부가 모셔져 있는 곳이 바로 국립 현충원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재건회에서 본 카페를 통해 언급하고 있는 대한민국 공화국의 국가 정체성 자체 문제와 더불어, 과거 일본제국의 한국 역사 왜곡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대한민국 공화국의 심각한 한국 역사 왜곡 말살 정책과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화국의 좌우 쇼(show) 정치, 그리고 정확히 출처가 불분명한 자본주의 경제 문제 등, 이러한 더러운 공화국의 정신 상태를 가장 극명하게 현장에서 눈으로 직접 모순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불행하지만, 바로 대한민국 공화국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 현충원이라고 하는 것은 아이러니(irony) 중에서도 대단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존에도 친일파 안장 문제로 항상 시끄러웠던 대한민국 공화국의 국립 현충원이 다시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의 안장으로 더 시끄러운 상황으로 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현재 80년 가까이 더러운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대한민국 공화국 정부의 정신 상태가 여전히 얼마나 엉망이고, 정신병적인 심각한 수준인가를 여실히 드러내는 실제 모습이라고 할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 천황의 종전 선언으로 시작된 대동아 전쟁 종전 처리과정은 사실, 한국에 이익이나 도움이 되는 것과는 하등의 관계없이 일방적인 미국과 소련의 종전 과정속에서 조선 지역은 전후 독일처럼 임의로 자르고 이어붙이는 연합국의 개판 제단 과정이었고, 그러한 과정속에서 미국의 지원하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갑자기 귀국하여, 공화국을 건국하는 과정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공화국의 건국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 그것이 이른바 국군의 존재입니다.
여기서 잠시, 소위 만들어지는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의 옹호하는 우파 측 주장을 보면, 대한민국 공화국의 국군은 과거 일본제국 군인 출신들이 해방 이후, 공화국의 건국과 국군의 창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협조한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 공화국이 탄생되고 국군이 창군되었다고 말하며, 따라서 그러한 공은 당연히 공화국과 국민이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하에 지금의 국립 현충원 안장을 실현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화국내 좌파나 우파의 입장, 또 견해를 떠나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지금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이 과거 일본제국 통치시대 당시인 1941년 12월 30일, 스스로 자원 입대한 만주제국 봉천군관학교를 제9기로 졸업하고 견습군관을 거쳐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고, 또 1942년 초에는 헤이룽장(黑龍江) 자무쓰(佳木斯) 지역의 만주군 신병학교 교관에 1년 정도 배속되어 역임한 뒤, 1943년 2월경에는 드디어 논란의 중심, 마지막 일본제국군에 의해 배치받았던 곳, 간도특설대로 들어갑니다. 사실,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은 자신의 회고록에도 증언을 하였습니다만 간도특설대로 전근된 이후, 약 3년 동안 복무하며 철저하게 일본군 하수인으로의 삶을 충성스럽게 살았던 것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1993년 3월 1일 일본에서 출간한 '대 게릴라전- 미국은 왜 졌는가(Tai gerira-sen: Amerika wa naze maketa ka = Anti-guerrilla warfare)'라는 책의 한 장인 '간도특설대의 비밀' 본문에서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은 일본군 입대를 "장래를 위한 군사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라고 자각하고, 유일한 한국인 무장집단에 근무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라고 쓰면서 "소규모이면서도 군기가 잡혀 있는 부대였기에 게릴라(guerrilla)를 상대로 커다란 전과를 올렸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도의 변명 입장은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전형적인 친일파들의 논리 아닐까?
결국,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은 일본제국 통치시대 당시인 1944년 봄, 중국 팔로군 토벌 작전에 참가해 정보수집에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여단장 상을 받기도 할 정도로 일본군으로서의 활동에는 적극성을 보입니다. 이러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6.25 전쟁에서 북한군과 실제 전투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된 것은 아닐까?
단순히, 우파측 옹호 주장들을 살펴보면, 주로 6.25 전쟁에서의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의 혁혁한 전공들을 언급하는 예들은 많지만, 정작 백선업 전 합동참모의장이 어떻게 전투에서 공을 세울 수 있었는가에 대한 배경 설명은 철저히 은폐하며, 냉철한 평가조차 고의로 왜곡하는 악의적인 오류와 우를 범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일례로 일본제국 해방 이후인 1946년 2월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이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한 이후 곧바로 1946년 2월 26일에 국방경비대 부위, 지금의 중위 계급으로 임관하여 보병 제5연대 중대장을 맡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사례는 과거 일본군으로서의 군 계급 및 직책을 인정하면서 그대로 국군에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의 군 경력을 보면, 1946년 2월에 중대장에서 1946년 9월 경에는 대대장으로, 1947년 1월 1일에는 중령을 거쳐, 1947년 12월 1일에는 제3여단 참모장, 1948년 4월 11일에는 통위부(統衛部) 정보국장 겸 국방경비대 총사령부 정보처장으로 이미, 대한민국 공화국의 건국 이전에 군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2년 사이의 짧은 기간안에 이루는 성과들을 보면, 단순히 당시 미군정(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USAMGIK) 시절의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 군경력만으로는 미국 측이 한 인위적 진급에 대한 설명이 안되며, 당연히 일본군으로서 간도특설대에서의 활동 내역이 미군측에도 굉장히 크게 영향을 미쳤음을 인간의 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미군측에게도 인정될 만큼, 일본군으로서의 과거 야전 경험이 그만큼 실제 많았다는 간접의 뜻 아닐까?
만약,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이 간도특설대 출신이 아닌, 일반 사병으로 미군정하 군대에 입대했다면 대한민국 공화국의 건국이 있기 전, 2년안에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처럼 통위부 정보국장 겸 국방경비대 총사령부 정보처장이라는 직위를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와 언급없이 단순히 6.25 전쟁 과정에서 북한군을 잘 막았다는 것만으로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전후 사정을 모두 모르고 주장하는 파렴치하고 무식한, 일명 백치 주장이라고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예는 2020년 8월 7일 한겨레 신문이 보도한 서상문 전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의 "백선엽 영웅화, 연구자들 비판없이 받아적었다"고 한 고백 내용을 비롯하여, 2020년 7월 17일 발표한 한겨레21의 "백선엽 부대가 우리 가족 학살했다"는 보도한 내용은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이 얼마나 스스로의 6.25 전쟁의 공적을 스스로 미화하고 왜곡하여 확대 재생산했는가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자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의 일본제국 해방 전의 야전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토벌 작전 즉, 한국과 중국의 연합 항일군인 팔로군, 동북항일연군, 조선의용대라고 하는, 한국과 중국 양국의 애국적 국민이 가장 철천지원수 일본제국의 원수를 갚으려는 충성의 사람들을 상대로 오히려 잔인하게 같은 동족이 일본제국의 토벌하는 작전에 투입되어 일본군의 앞잡이와 주구로서 복무한 사실만으로도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러한 것은 간과되고, 전형적인 친일파를 옹호하고 있는 우파의 정신은, 지금도 버젓이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이 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자신의 양심조차 부정했던 전형적인 천황의 일본 황군, 대동아 전쟁 종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전력이 남아 있는 인물, 이러한 것이 의미하는 것은, 스스로의 자서전에서도 언급하였습니다만, 반성이 히로히토(裕仁) 일본 천황처럼 죽을 때까지 없었다는 것이었으며, 그리고 또 스스로도 말했지만 일본군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던 점 등을 보면, 그것 자체로 모두 매우 충직한 일본군이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해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도대체, 대한민국 공화국내 우파측이 언급하는 친일파는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어쩌면, 대한민국 공화국에서 우파에게 있어서 친일파는 처음부터 없는 존재 아닐까?
즉, 일본군에 스스로 입대한 사람들에 대한 대한민국 공화국 우파측의 옹호 주장들을 보면, 대부분 일본군 입대자들은 일본제국이 대동아 전쟁에서 패전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입대했으므로 일본군 자원 입대 조선인들은 충분히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이 의미하는 것은, 반대로 역설적이지만 영원히 일본제국은 패전하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본 황군이 되어 천황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으로 영원히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며, 동시에 자신과 피를 나눈 형제, 동포들은 철저하게 토벌하고 살육하며 탄압하는 재미와 실력, 그것을 통해 일본인들이 던져주는 먹이나 먹고 사는 개로 살고 싶었다는 뜻 아니었겠습니까? 마치 살기 위해 자신의 형제를 잡아먹고 사는 일부 동물들과 무엇이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이러한 인물을 영웅이라며 국립 현충원에 안장하는 대한민국 공화국은 정상 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전히 2019년 11월 22일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기만적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GSOMIA)의 연장이 금일로 262일을 맞이하고 있음에도 그대로 이의 제기없이 유지되고 있는 현상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상징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바로 대한민국 공화국 자체가 영원히 사라져야 할 일본제국의 조선 지역과 같은 존재라는 뜻이라고 할 것입니다. 웃긴 것은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 본인이 스스로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자원하여 입대하였고, 부대에서 활동하면서 독립군 토벌 작전을 전개하며 일본을 위해 공을 세운 것이 계기가 되어 만주군 헌병 중위로 종전을 맞이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 황군으로서의 활동 내역에 대해서 일부 우파측의 또 다른 옹호 주장을 보면, 당시 일본군 점령지역인 만주지역내 항일 독립군의 활동 자체는 상당수 일본군 측 대규모 토벌 작전으로 이미, 1943년 2월의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이 간도특설대 복무 당시, 동북항일연군은 모두 궤멸된 상태였고 따라서, 북한 김일성 주석을 비롯한 한국인 독립군들 대부분이 소련으로 도피한 뒤라는 논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의 활동은 단지 간도 지역 순찰 활동만 했고 교전은 없었다는 생전의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 발언을 근거로 적극 옹호하는 논리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궤멸의 뜻이 완전한 전멸되었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어떤 뜻입니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은 무엇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자서전에서 자신이 배치되었던 간도특설대에서 전력을 다해 게릴라들을 토벌했다고 토설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러한 모순은, 우파측의 옹호 주장이 매우 설득력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대한민국 공화국 측의 동북항일연군의 궤멸 설명과는 달리, 당시의 중국 만주지역에서의 항일 활동은 여전히 동북항일연군 외에도 중국 팔로군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서 항일 활동하고 있었음은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또 이러한 중국 팔로군을 포함한 동북항일연군 등의 만주지역 독립 운동 세력은 또 부대내 정확하게 중국인, 한국인으로 엄격하게 분리해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기 보다는 마치, 일본제국이 간도특설대라는 한국인 부대를 추가 조직하여 이이제이로 항일 독립 운동 세력의 토벌에 동원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중국군의 만주지역 항일 독립 운동 전력은 중국인과 한국인, 그리고 몽골인(Mongolian)까지 함께 민족 구분없이 연합하여 항일 독립 운동에 이름없이 참여하며 전투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사실에 근접한 역사적 시각일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중국의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일 항전과 국공 내전 등과 같은 건국 과정에서 있었던 수많은 전투 과정에 실제로 한국인들이 이름없이 참여하여 중국인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위해 희생되었던 많은 한국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과거 2005년 8월 8일, EBS의 '도올이 본 한국독립운동사' 등을 통해서도 명확하게 현지 확인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내용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이 1943년에 간도특설대에 배치되어 팔로군 토벌에 직접 참여했다는 것은 결국,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파측 주장과는 달리, 중국 팔로군 역시 한국인이 포함된 항일 연군이므로 여기에는 당연히 소수지만, 한국인도 분명히 포함된다는 것을 스스로 왜곡하거나 또 부정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 확인되는 자료가 없다는 것으로 무조건 한국인은 없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으로 단정할 수 있습니까?
또한, 무엇보다 중국인과 한국인의 구별과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조국을 멸망시킨 원수 국가에 대해 대항하고 싸우고 있는 같은 중국인 동지들과 동료들을 상대로 일본제국의 주구인 황군의 입장에서 토벌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파측에서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북한 인권 문제와 비교해도 전혀 앞뒤가 안맞는 모순의 극치라고 할 것입니다.
즉,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 본인이 말하고 있음에도 대한민국 공화국의 우파들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무엇보다 대한민국 공화국의 국군이 백선엽 전 합동참모의장의 예처럼 대부분 과거 일본 황군 출신들로 채워서 조직되었고, 또 후에 6.25 전쟁 과정에서 북한군을 상대하는데 사병들을 지휘하는 지휘자의 자리에서 활동했다는 점, 그리고 문제제기 없이 그대로 공화국내에서 사망 후, 국립 현충원에 안장되는 특권을 누리는 것 자체가 불행하고 더러운 오명의 대한민국 공화국의 실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연옥 육군사관학교 교수가 출간한 '간도출병사'를 보면, 처참하고 잔인한 일본 황군들의 살육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내용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총산(ChongSan). 교회 겸 학교 및 가옥 수채가 소각되고 30명 살해됨. 그중 23명은 사살되고 나머지 7명은 각자 집에서 타 죽음. 운통자. 교회 겸 학교가 불타고 80명이 사살됨. ... 칸창암(KanChangAm) 마을의 젊은이들과 한 조선인 가옥 앞에서 무리를 이루어 줄지어 심문하는 형식도 취하지 않고 사살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해당 가족 중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2명, 다른 가족 중에서는 2명의 형제와 그 자녀였고, 처형된 이는 모두 25명이었고, 사살 후 시체는 2곳에 포개져 잡초를 덮고 소각했다고 합니다. 연료를 시체 위에 둘 때 어떤 부상자가 일어서려고 시도했으나 곧바로 총검으로 지상에서 찔러 화염 속에서 타 죽게 했다고 합니다."
바로, W.R.푸트 장로파 수석 선교사가 일본 도쿄(東京)의 올만 박사에게 보낸 1920년 작성 서신의 내용입니다.
이른바 간도 참변이라고 하는 현재 대한민국 공화국 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학살 사건들에 대해서 김연옥 교수는 우리 국민에게 저서를 통해 진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희생된 사람들 모두 우리의 가족이었며 동포였고, 동료들이었습니다. 일본 황군의 만행과 잔인한 살육이 단지, 80년이 지난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하여 공화국 국민 스스로 부정하고 국가가 외면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공화국이 건국된 이유 자체를 소멸시키고 사라지게 하는 명분이 될 것입니다.
쇼만 일삼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 공화국내 국립 현충원이 독립 운동가들과 친일파들이 서로 뒤섞여 짬뽕(champon) 현충원을 만드는 작태는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할 것이며, 그런 업무는 공화국이 아닌 제국 정부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파만도 못한 좌파 독재로 나아가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 공화국 정부하에서 더 무엇을 기대하고 또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대한제국의 재건을 통해 새로운 한국의 역사와 미래를 창조하는 일에 국민 모두가 함께 동참하고, 적극적으로 국가 재건하는데 많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대한제국 만세! 존왕양이 만세!
감사합니다.
대한제국 재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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