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법은 실로 참되며
당신의 집에는 거룩함이 어울립니다.
주님,길이길이 그러하리이다
(시편93,5).
“당신의 법”은 주님의 가르침으로 이해되며 시편19,8의 ‘주님의 법’과 유사하다.“당신의 집”은 주님의 성전을 가리키며 주님의 현존을 나타낸다.성전은 주님의 “어좌”(93,2) 및 “높은 데”(93,4)와 연관이 있다.“거룩함”은 주님의 존재 자체를 가리키며 하느님의 본질을 나타내는 말이다.성전이 거룩한 것은 주님이 현존 때문이다(Murphy 1993,118).주님의 거룩함은 주님을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으로부터 성별하는 자질인 존엄과 엄위다(Goldingay).솔로몬이 성전 건축 계획을 마쳤을 때 주님께서는 그에게“네가 세운 이 집을 성별하여 이곳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두리니,내 눈과 내 마음이 언제나 이곳에 있을 것이다”(1열왕9,3)라고 말씀하셨다.성전의 거룩함에 대한 찬양은,성전에 들어오는 자들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해야 함을 요구한다(시편15편;24,3-4참조).“길이길이 그러하이다”는 주님의 어좌가 영원한 것처럼 주님의 집도 영원할 것임을 뜻한다.
시편 93편의 전체적 의미:93편은 짧고 간결하지만 창조주 하느님의 위대한 힘을 증거하는 많은 시각적 표상으로 가득한,대단히 힘있는 노래다. 이 시편은 혼돈과 세상의 기초에 대한 하느님의 승리를 경축하며 왕권에 관한 주제를 다룬다.시인은 주님이 만물의 주인으로서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자임을 힘 있게 선포한다.창조주요 임금이신 주님이 땅을 세우고 흔들리지 않게 하셨다.태초의 이 승리는 종말론적인 예표가 된다.주님은 자연의 그 어떤 세력보다 힘이 세시어 세상이 혼돈의 세력에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준다.이 시편으로 기도하는 자는 바다의 파도보다 더 큰 주님의 능력을 믿도록 초대된다.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시며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신다.이 시편은 주님이 세상을 다스리심을 확신하게 해주고 주님이 다르심을 확고하게 믿도록 인도한다.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힘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자신을 다스리시도록 맡길 때 참된 그리스도인의 가치를 실현하게 될 것이다.신앙인은 이 세상과 나 자신의 진정한 통치자는 인간이 아니라 성령이심을 믿는다.이 시편에서 땅을 흔들리지 않게 굳게 하시고 큰물을 제압하시는 주님의 모습은“잠잠해져라,조용히 하여라!”(마르4,39)명령하시면서 풍랑을 가라앉히시는 예수님을 상기시킨다.세상의 풍란 속에서 헤매는 우리 마음을 예수님이 다스리시도록 내어 맡길 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3-3 시편90-150편/전봉순 著/바오로딸)
1.“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마태5,12).예수님께서는 당신 때문에 박해받거나 모욕당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주님께서는 우리의 전부를 요구하시며 그 보상으로 우리에게 참생명을,우리가 창조된 이유인 행복을 주십니다.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러저러한 평범한 존재로 안주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실제로,성덕의 소명은 성경 첫 장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주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를 성덕으로 부르십니다.“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창세17,1).
2.이 교황 권고는 성덕에 관한 일종의 논문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이 중요한 주제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정의들과 그 차이점들을 설명하거나 다양한 성화 수단들에 대하여 논하려는 것도 아닙니다.저의 소박한 바람은 많은 위험과 도전과 기회를 안고 있는 우리 시대에 맞갖게 실천적 방식으로 성덕의 소명이 다시 한번 울려 퍼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주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뽑으시어,“사랑으로”우리가“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기”(에페1,4) 때문입니다.
제1장 성덕의 소명
우리에게 힘을 북돋워 주고 우리가 함께 나아가는 성인들
3.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시간은“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가도록”(히브12,1) 우리의 힘을 북돋우는 많은 증인들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사라,모세,기드온,그 밖의 여러 인물들에 대하여 말합니다(히브11,1-12,3참조).이로써 우리는 무엇보다도,‘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는 많은 증인들’(히브12,1참조)이 우리가 목적지를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도록 독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초대받습니다. 이러한 증인들 가운데에 우리 어머니,할머니,또는 그 밖에 사랑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2티모1,5참조).아마 그들의 삶이 늘 완벽한 것은 아니겠지만,그들이 자신의 잘못과 실패 가운데에서도 계속 주님을 향하여 나아갔고 주님 마음에 든 이들입니다.
4. 성인들은 이미 하느님 계신 곳에 있지만 계속해서 우리와 사랑과 친교의 끈으로 이어져 있습니다.묵시록은 순교자들의 간구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를 증언합니다.“나는 하느님의 말씀과 자기들이 한 증언 때문에 살해된 이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그런데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거룩하시고 참되신 주님, ....심판하시는 것을 어제나 미루시렵니가?”(묵시6,9-10)우리도 각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저는 하느님의 벗들에 둘러싸여 안내를 받고 있습니다.
.....사실 저 혼자서 결코 짊어질 수 없는 것을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됩니다.하느님의 모든 성인이 저를 보호하고 돌보시고 저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5. 시복 시성의 절차에서는,영웅적 덕행의 징표들,목숨을 바친 순교,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른 이를 위하여 끊임없이 자기 삶을 내어 주는 사례들을 확인합니다.이는 그리스도를 모범적으로 닮았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신자들의 공경을 받을 만합니다.예를 들면,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하여 자신의 삶을 봉헌한 마리아 가브리엘라 사게두 복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옆집’의 성인들
6. 이미 복자나 성인이 된 이들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성령께서는 거룩하고 충실한 하느님 백성들 가운데에 성덕을 풍성하게 베풀어 주십니다.“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거나 구원하시려 하지 않으시고,오직 사람들이 백성을 이루어 진리 안에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거룩히 섬기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구원 역사에서 주님께서는 한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우리가 그 한 백성에 속하지 않고서는 결코 완전하게 우리 자신이 되지 못합니다.바로 이러한 연유로 아무도 동떨어진 개인으로서 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인간 공동체에 존재하는 복잡한 대인 관계의 맥락을 고려하시어 우리를 당신께 이끄십니다.하느님께서는 한 백성의 삶과 역사 안으로 들어오시고자 하셨습니다.
7. 인내하는 하느님 백성 안에서 드러나는 성덕이 보기 좋습니다. 무한한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가정을 부양하고자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남녀,병자들,한시도 미소를 잃지 않는 老수도자가 있습니다.날마다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에게서,저는 투쟁 교회의 성덕을 봅니다.이는 우리 옆집 이웃 안에서 발견되는 성덕이기도 합니다.이들은 우리 한가운데에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반영합니다.그래서 우리는 그들을“성덕의 중산층”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8.우리는 주님께서 하느님 백성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구성원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성덕의 표징들로 감도되어야 합니다.“하느님 백성은 또한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에도 참여합니다.특히 믿음과 사랑의 생활로 그리스도에 대한 생생한 증거를 널리 전합니다.”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 성녀가 제시한 대로,그러한 수많은 이들을 통하여 참역사 이룩된다는 사실을 고려하여야 합니다.“칠흑같이 가장 어두운 밤에 가장 위대한 예언자들과 성인들이 나옵니다.그러나 신비적 삶의 생생한 흐름은 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분명히 세계 역사의 결정적 사건들은 본디,어떠한 역사책에도 언급된 적이 없는 영혼들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그런데,가려져 있던 모든 것이 드러나는 그날에야 우리는 개인 생활에서 결정적 은혜를 입은 그 영혼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9. 성덕은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입니다.그러나 가톨릭 교회 밖에서도 또한 여러 다른 상황에서도 성령께서는‘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돕는 당신 현존의 표징들을’불러일으켜 주십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상기시켜 주셨습니다.‘피를 흘리면서까지 보여 준 그리스도 증거는 가톨릭,정교회,성공회와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의 공동 유산이 되어 왔습니다.”2000년 대희년에 콜로세움에서 열린 감동적인 교회 일치 기념 미사에서,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순교자들은“분열의 그 어떠한 원인들이 말하는 것보다 더욱 힘 있게 증언하는 유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한국천주교주교회의)
“戰後體制의 最大 受惠國은 日本이었다. 새프란시스코體制의 惠澤으로 戰犯國家의 義務는 免除받았고,키신저 시스템의 構築으로 經濟復興은 加速되었다.독일처럼 철저한 過去淸算은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戰後 處理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일어난 韓國戰爭으로 莫大한 經濟的 利益을 얻어 世界的인 經濟 大國으로 跳躍했다.샌프란시스코體制下에서 得勢한 日本의 保守政權은 冷戰體制를 活用하여 長期執權의 길을 열었다. 中國과 修交를 하여 키신저 시스템의 惠澤도 얻어 G7에 오르기도 했다.그런 점에서 아베가 戰後體制의 守護者가 되려는 것은 當然한 論理的 歸結이었다.韓國도 戰後體制下에서 被害만 본 것은 아니었다. 美國의 保護하에 自立經濟를 達成하고,키신저 시스템에 便乘하여 世界經濟에 編入해 高度成長을 이루었다.
그러나 戰後體制는 地震地帶의 斷層처럼 언젠가 龜裂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矛盾的 關係의 두 軸으로 構成된 二重體制였다.新植民主義的인 샌프란시스코체제와 自由主義的인 키신저 시스템은 결국 相互衝突이 不可避한 矛盾的 性格을 지녔다.샌프란시스코平和條約이 가지는 敵對的 同盟體制와 키신저 시스템이 志向하는 單一 市場 志向 性向 때문에 아시아 國家들이 택한‘政治는 美國,經濟는 中國’이라는 政策은 언젠가 相互衝突이 不可避한 것이었다.”(52~53쪽 拔萃)
“짱개주의는 美中 衝突 時期 韓國의 安保的 保守主義가 中國을 바라보는 獨特한 視覺을 말한다.新植民主義와 유사人種主義가 結合된 韓國의 特殊한 中國認識體系이다. 완전히 淸算하지 못한 日帝下의 植民主義는 戰後體制 속에서 살아남아 戰後體制 危機 時期에 짱개주의로 誕生하여 不平等한 國家體制를 持續시키는 이데올로기로 作動하고 있다.여기서 짱개주의는 槪念 自體가 論爭이 될 수 있다.”(7쪽 拔萃)
(짱개주의의 誕生/김희교/보리)
어제 걷던 거리를
오늘 다시 걷더라도
어제 만난 사람을
오늘 다시 만나더라도
어제 겪은 슬픔이
오늘 다시 찾아오더라도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식은 커피를 마시거나
딱딱하게 굳은 찬밥을 먹을 때
살아온 일이 초라하거나
살아갈 일이 쓸쓸하게 느껴질 때
진부한 사랑에 빠졌거나
그보다 더 진부한 이별이 찾아왔을 때
가슴 더욱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아침에 눈 떠
밤에 눈 감을 때까지
바람에 꽃이 피어
바람에 낙엽 질 때까지
미지막 눈발 흩날릴 때까지
마지막 숨결 멈출 때까지
살아 있어 살아 있을 때까지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살아있다면
가슴 뭉클하게
살아있다면
가슴 터지게 살아야 한다
(나는 왜 수평으로 떨어지는가 중에서/양광모)
늘~
행복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