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와 가족 이데올로기
[기고] 화려한 싱글? 2006년 11월에 멈춘 어떤 고독
부산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50대 남성 시신이 발견됐다. 그런데 숨진 지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이미 백골상태였다. 시신을 조사한 결과 이 남성은 6개월도 아닌 6년 전에 숨진 상태였다. 숨진 김아무개씨는 건물 외벽과 연결된 보일러실에서 발견되었다. 시신이 부패하면 악취가 많이 나기 마련인데 보일러실 한쪽이 건물 밖으로 트여 있어 악취가 생기더라도 건물 밖으로 바로 빠져나갔기 때문에 이웃 주민들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김씨의 죽음을 알린 것은 가족도 이웃도 아닌 한파였다. 추위에 얼어 터진 수도관을 고치기 위해 다세대 주택 2층 보일러실 문을 연 집주인은 그제야 백골이 된 김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숨진 김씨의 현관문 앞에는 각종 고지서와 독촉장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안방문에 걸려 있는 달력은 2006년 11월에 머물러 있었다. 보일러실에서 6년 넘게 누워있던 시신, 그럼에도 이사가 잦은 동네라 이웃에 관심을 두는 주민들도 없었다. 지난 2002년 함께 살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형제들과도 연락을 끊은 채 막노동을 하며 혼자 생활을 해오며 가족과도 그리고 이웃과도 단절된 채 쓸쓸한 삶을 살아온 김씨. 어지럽게 방치한 살림살이 가운데 그가 유일하게 관리한 건 어머니 제사에 쓸 제기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제사상은 네 번째에 멈추고 말았다.
가족이 없거나 혹은 멀어져 홀로 쓸쓸한 삶을 살다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조차 혼자인 외로운 죽음, 고독사(孤獨死)가 늘고 있다. 한해 천여 명이 고독사하는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통계조차 잡히고 있지 않다. 문제는 고독사의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향후 고독사가 더욱 늘어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고독사에 주목했다. 지난 2010년 1월에는 NHK에서 ‘무연사회: 무연사 3만 2,000명의 충격’이라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송하기도 했다. 전국 지자체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신원미상의 자살이나 행려사망자 등 무연고 사망자가 연간 3만 2,000명에 이른다는 내용이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없는 사회’, ‘인연이 없는 사회’라는 뜻의 ‘무연사회(無緣社會)’에 대한 방송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고령화와 저출산, 개인주의로 인한 사회 안전망 해체가 원인으로 지목됐고 3,40대 젊은층까지 “나도 혹시 무연사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나타냈다.
한국사회도 다르지 않아 고독사가 늘어날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2012년 4월 통계청이 내놓은 <장래가구 추계>를 보면, 가구원 수별 가구 구성비에서 1인 가구(25.3%)가 가장 많았다. 네 가구 중 한 가구는 혼자 사는 집인 셈이다. 1인 가구 비율은 계속해서 증가해 2035년에는 34.3%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연령별 1인 가구 구성비를 보면 청장년층의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0년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1인 가구 중 40~50대가 29.9%, 20~30대가 2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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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4월 통계청. <장래가구 추계> |
혼자 살면서 혼자 죽어가는 외로운 죽음이 더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고독사가 어느새 우리 삶 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외롭게 죽어간 사람들, 뒤늦게나마 소식이 알려지면 그들의 외로움은 덜어지는 것일까? 고독사의 문제는 그들이 죽을 때 외로웠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살아 있는 내내 외로웠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고독사 그 자체가 아니라 고독하게 삶을 지탱하고 있는 쓸쓸한 삶 즉, ‘고독생’이 더욱 삶을 외롭게 한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은 절대 고독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조차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존재다. 그래서 독백은 인간에게 가능하지 않은 대화법이다. 독백은 오로지 자존하고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신에게만 가능하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나 세상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단절되었다는 것은 인간에게 존립 조건 자체가 파괴되었다는 뜻이 된다. 고립, 이것은 인간에게 절망이다.
급속도로 늘어나는 1인 가구,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한국사회, 이제 고독사와 고독생을 혼자만이 감내해야 할 삶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또한 혈연에 근거한 가족이라는 표상이 앞으로 더 이상 유일한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오히려 고독사와 고독생을 방치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대안가족모델 즉 혈연적 관계가 아닌 비혈연적 관계를 기본으로 한 공동체 가족 등 다양한 사회적 공감과 이해가 조성되어야 한다. 또한 공동체 대안적 커뮤니티 △사람과의 교류가 가벼운 마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공동체마을 만들기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거점만들기(민중의 집 등) △적당히 간섭이 가능한 인간관계 만들기 등 인간의 고립을 넘어서기 위한 ‘사회적 소통’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고독사와 고독생을 끊임없이 구조화시키는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발본적인 저항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고독사는 우리 주변에 늘 있어왔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내일,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외롭게 죽어갈 것이다. 고독사의 충격과 공포는 어쩌면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