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1부 53
널찍한 복도를 되돌아서(마침 점심 시간이었으므로 감방 문은 열려 있었다) 연한 황색 겉옷에 짧고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농민화를 신은 죄수들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사이를 걸어 나오면서, 네흘류도프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억류한 사람들에 대한 공포와 의혹을 느꼈으며, 또 이런 것을 태연히 보고 다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느 복도에서 죄수 하나가 신발을 철떡이며 감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거기서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나와서 네흘류도프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누구신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리, 제발 우리 사건이 하루속히 끝나게 해주십시오."
"나는 관리가 아니라 아무것도 모릅니다."
"누구라도 좋으니 높은 사람에게 말씀만 해주십시오"하고 누군가가 성난 소리로 말했다. "아무 죄도 없는데 벌써 두 달째나 고생하고 있단 말입니다."
"아니, 왜요?"하고 네흘류도프는 물었다.
"그저 이렇게 감옥에 갇혀 있는 겁니다. 벌써 두 달째가 됩니다만, 왜 그런지 저희도 모릅니다."
"사실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하고 부소장이 말했다. "이 사람들은 통행증이 없어서 붙들렸는데, 자기네 현으로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만 그곳 감옥이 타버려서 현청에서 보내지 말아달라는 통지가 이;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현 사람들은 모두 보냈습니다만 이 사람들만은 그대로 구류하고 있는 겁니다."
"단지 그런 이유로?" 하고 문에서 걸음을 멈추고 네흘류도프는 물었다. 죄수복을 입은 약 40명의 무리가 네흘류도프와 부소장을 둘러쌌다. 몇 사람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지껄여 대기 시작했다.
부소장은 그들을 제지했다.
"누구 한 사람만 말해요."
그러자 그중에서 한 쉰 살쯤 되어 보이는 키 크고 풍채가 좋은 노인이 나섰다. 그들은 돈벌이를 하러 나왔으나 단지 통행증이 없다는 이유로 수감되어 있다는 것을 네흘류도프에게 설명했다. 그것도 통행증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기한이 2주일 정도 지났을 뿐이었다고 했다. 통행증 기한 초과는 해마다 있는 일로서 그 때문에 문제가 된 적은 없었는데, 올해만 이렇게 두 달씩이나 죄인처럼 붙들려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 석공이고 같은 조합원들입니다. 현의 감옥이 타버렸다는 말은 들었습니만, 우리하곤 아무 관계도 없는 일입니다. 제발 저희들을 좀 도와주십시오."
네흘류도프는 그 말을 듣고 있었으나 이 풍채 좋은 노인이 하는 이야기는 알아듣지는 못했다. 발이 많이 달린 커다란 암회색 이가 이 풍채 좋은 석공의 볼수염 사이를 기어 다니고 있는 데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럴 수가? 단지 그런 이유로?" 네흘류도프는 부소장을 향해서 말했다.
"네, 당국에서도 실수가 있긴 하죠. 하루속히 송환해서 자기네 고장에 정착시키고 싶습니다만"하고 부소장은 말했다.
부소장이 말을 마치자 무리에서 같은 죄수복을 입은 키 작은 사람이 튀어나오더니, 이상하게 입을 일그러뜨리면서 아무 이유도 없이 여기서 고생하고 있다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개보다 못한....."하고 그는 말했다.
"이봐, 쓸데없는 말은 그만두고 잠자코 있어. 그렇지 않으면 재미없어."
"아니, 뭐가 재미없단 말이오"하고 조그만 사내는 악을 쓰고 덤벼들었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잘못이 있소?"
"닥쳐!"하고 부소장이 소리치자 조그만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네흘류도프는 문에서 내다보기도 하고, 도중에서 만나기도 하는 수많은 죄수들의 눈에 쫓기다시피 감옥에서 빠져나오면서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저렇게 감금해두어도 괜찮습니까?" 그들이 복도에서 나왔을 때 네흘류도프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씀인가요? 그자들은 거짓말로 유명하거든요. 그 사람들 말만 들으면 모두가 무죄랍니다."하고 부소장은 말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아무 죄도 없지 않습니까?"
"그자들은 그렇다고 합시다. 그러나 하층민은 질이 매우 안 좋아서 엄격히 다루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불한당들이니까요. 어제만 해도 하는 수 없이 두 명이나 처벌했죠."
"어떻게 처벌합니까?" 하고 네흘류도프는 물었다.
"명령에 따라 몽둥이로 때렸죠....."
"그러나 체형은 금지되어 있을 텐데요?"
"그건 권력을 박탈당하지 않은 사람들 말씀이지, 이런 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네흘류도프는 어제 현관에서 기다릴 때 목격한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기다릴 무렵에 처벌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러자 호기심과 우수와 의혹과, 거의 육체적인 것으로까지 변해가는 정신적 구토감에 뒤섞인 이상한 감정이 말할 수 없이 강한 힘으로 솟구쳐 올랐다. 전에도 종종 있긴 했으나 이토록 강하게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부소장의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한눈도 팔지 않으면서 급히 복도로 나와 사무실로 갔다. 소장은 복도에 있었으나 다른 일에 바빠서 보고두호프스카야를 부르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네흘류도프가 사무실로 들어서자 비로소 그녀를 부르기로 약속한 일이 생각났다.
"곧 부르러 보내겠습니다. 좀 앉아 계십시오"하고 그는 말했다.
부활 1부 54
사무실은 두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첫 번째 방에는 칠이 벗겨지고 불룩 튀어나온 커다란 난로와, 더러운 창문 두 개가 있었다. 한구석에는 죄수의 키를 재는 시꺼먼 기계가 있고, 다른 한구석에는 고통을 주는 장소에는 언제나 붙어 다니기 마련인 커다란 성상이 걸려 있었다. 이 방에는 간수들 네댓 명이 서 있었다. 다른 방에는 한 무리가 되기도 하고 두 사람씩 짝이 되기도 하면서 스무 명쯤 되는 남자와 여자들이 벽가에 앉아서 나직한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장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으나, 서 있는 네흘류도프를 보자 그에게도 걸상을 권했다. 네흘류도프는 앉아서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우선 눈에 띈 것은 짧지만 재킷을 입고 명랑한 얼굴을 한 사내였다. 그는 그리 젊지 않은 검은 눈썹의 한 여자 앞에 서서 무엇인지 열심히 손짓을 해가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파란 안경을 쓴 노인이 죄수복을 입은 젊은 여자의 손을 잡은 채 꼼짝도 않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실업학교 소년 하나가 놀란 얼굴로 눈도 떼지 않고 노인을 보고 있었다. 그들한테서 그리 멀지 않은 한쪽 구석에는 서로 사랑하는 남녀 한 쌍이 앉아 있었다. 여자는 짧은 아마 빛 머리에 유행하는 옷을 입고 무척 앳돼 보이는 정열적인 얼굴의 귀여운 처녀였고, 사내는 점잖ㅇ느 얼굴과 물결치는 머리에 고무 재킷을 입은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그들은 한구석에 앉아서 사랑에 취한 듯 소곤거리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탁자에 제일 가깝게 앉아 있는 사람은 검은 옷을 입은, 어머니인 듯싶은 백발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역시 같은 재킷을 입고 있는 폐병쟁이처럼 보이는 젊은 사내의 얼굴을 뚫어질 듯이 바라보면서, 뭐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표정이었으나 눈물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말을 꺼내다가는 멈추고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청년은 손에 종잇조각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성난 얼굴로 종이를 접기도 하고 꾸기기도 했다. 그 옆에는 통통하고 혈색이 좋은, 눈이 툭 튀어나온 처녀가 회색 옷에 숄을 두르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울고 있는 어머니 곁에 나란히 앉아서 상냥하게 어머니의 등을 어루만졌다. 그 처녀는 크고 하얀 손이며, 물결치는 단발머리며, 오뚝한 코며, 입술이며, 모든 것이 다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것은 양처럼 순하고 성실해 보이는 밤색 두 눈이었다. 그 아름다운 눈은 네흘류도프가 들어오는 순간 어머니의 얼굴에서 떨어져 그의 눈과 마주쳤으나, 그녀는 곧 눈길을 돌리고 무엇인가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서로 사랑하는 한 쌍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흐트러진 검은 머리에 얼굴이 침울해 보이는 한 남자가 앉아서, 거세파 교도 비슷한 수염 없는 남자에게 화가 난 듯이 얘기하고 있었다. 네흘류도프는 소장과 나란히 앉아서 몹시 호기심에 찬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머리를 빡빡 깎은 사내아이가 그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가느다란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씬 누굴 기다리시죠?"
네흘류도프는 어린아이의 질문에 깜짝 놀랐으나, 조심성 있고 생기가 감도는 눈을 가진 성실하고 영리한 소년의 얼굴을 보자 그도 정색을 하면서 아는 여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럼 그 사람, 아저씨의 누이?" 하고 소년은 물었다.
"아니, 누이가 아니란다." 네흘류도프는 놀라면서 말했다. "그런데 넌 누구하고 왔지?" 하고 그는 소년에게 물었다.
"엄마하고 왔어요. 엄마는 정치범이에요"하고 소년은 자랑하듯 말했다.
"마리야 파블로브나, 콜랴를 데리고 가요." 네흘류도프가 소년과 이야기하는 것이 위법이라고 생각했는지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네흘류도프의 주의를 끈 바 있는, 그 양처럼 순한 눈의 아름다운 처녀 마리야 파블로브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내처럼 힘찬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네흘류도프와 어린애 곁으로 다가왔다.
"이 애가 뭐라고 물었어요, 누구시냐고 묻지 않았어요?" 그녀는 살며시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 믿음에 찬 순진한 눈길은 그녀가 지금까지 누구에게나 소박하고 상냥하게 형제처럼 대해왔다는 것, 그리고 현재도 그렇거니와 앞으로도 반드시 그러리라는 것을 확신시켜주고 있었다. "이 애는 뭐든지 알고 싶어 한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어린애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활짝 웃어 보였는데, 그 웃음이 어찌나 선량하고 정다웠던지 어린애와 네흘류도프도 무심결에 덩달아 따라 웃었을 정도였다.
"누구를 만나러 왔느냐고 묻더군요."
"마리야 파블로브나, 외부 사람하고 이야기해서는 안 돼요. 잘 알잖아"하고 소장이 말했다.
"네, 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크고 하얀 손으로 자기한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콜랴의 조그마한 손을 잡고는 폐병쟁이 청년의 어머니한테로 돌아갔다.
"저 애는 누구의 아들입니까?"
네흘류도프는 소장에게 물어보았다.
"어느 여자 정치범의 아인데, 감옥에서 낳았답니다." 소장은 자기네 감옥 안의 진기한 일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이 으스대는 어조로 말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번에 어머니를 따라 시베리아로 갈 겁니다."
"그럼 저 처녀는 누구죠?"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소장은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보고두호프스카야가 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