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김옥자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지리산을 통하여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
겉치레 다 내려놓은 오직 지리산만을 보러 오시라
맨 살갗에 몸 부비고도 아무렇지 않을
빈 마음으로 반야봉에 올라 보시라
구름에 산 갇히고 날카로운 바람에 다 쓸려간
아무 볼 것 없는 지리산을 보러 오시라
이리저리 부대끼다가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오시라
푹신한 인정, 기름진 언어에 길들여질 때쯤
산채나물밥 같은 담백함으로 오시라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들떠있던 겨울 보리밭 같은 마음 차분히 눌러 앉히고
쓰러진 나무 아래를 지나 듯
땅으로 부터 납작하게 오시라
구불구불 창자 같은 산길을 끓어오를 땐
먹는 일에 너무 치켜뜨고 살지 않았나
끝도 없이 더 가지려 밟고 살지 않았나
반성하러 오시라
반성하러 오시라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무엇이 그리도 소중했던지
밀물과 썰물같은 통장의 숫자에 구속되어 쉬는 날도 없이 달리지 않았던지
일상을 도망치듯 간당간당 다 포기하러 오지마시고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고
옆 사람의 숨소리마저도 귀하게 느껴질 때
한 걸음 한 걸음 산 속으로 스며들어 보시라
아무것도 없는 지리산에서 뜻밖에 첫눈을 만나게 되거든
첫아기 대하듯 포대기에 쌓인 아가처럼 받으시라
귀한 손님처럼 맞으시라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눈을 이고도 겨울바람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저 나무들에게서 꽃을 종용 할 수 있을 런지 생각해 보시라
봄, 여름, 가을 다 좋겠지만
굳이 겨울 지리산에 와 보시려거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공연이 끝난 무대 같은 텅 빈 가슴으로 오시라.
그냥 산을 보러 왔다가,
산만을 보러 왔다가
내가 산이 되고, 달이 되고, 별이 되고,
내가 꽃봉오리 되고
아름다운 단풍을 이고 돌아갈 것이라
※지리산 10경
(천황봉,피아골,노고단운해,반야봉낙조,벽소령 보름달,세석평전 철쭉,불일폭포,연하선경,칠선계곡,섬진청류)을 노래한 이원규 시인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리려거든>을 읽고 제목만 따서 한번 모방하여 따라 적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