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5월 14일 월요일 맑음
“여보, 나 오늘 학교 안 가고 당신 따라 정산 가고 싶다”
눈이 번쩍 떠지는 말이다. “그럼. 당신 마음대로 해” 그 다음 말은 못하네.
“여보 이 년이 돼 가는데 아직 적응이 안 돼” ‘이 게 무슨 소린가 ?’
“뭐가 적응이 안 되는데 ?” “우리 주말부부 하는 거” 가슴이 쿵쾅 거리더라.
“그 건 나도 마찬가지야. 발 길이 안 떨어져” 한 마디 더 붙였지.
안사람 출근시키고 나도 정산으로 떠나려는 길이다. 이 때가 가장 가슴이 아리다. 안사람이 내려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애써 외면하고 엑셀을 밟는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야 마음이 가라앉는다. 앞만 보고 달리는 거지.
다행히 무릎이 나아간다. 벌침의 효과가 나는 거다. 큰 걱정을 했는데....
한 주일 일 할 계획을 돌이켜 보고, 수정하면서 달리다 보면 어느새 정산이다.
“어이구 큰고모님 오셨어요 ?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 처 큰고모님은 대전에 사신다. “응 내가 이렇게라도 와야 서로 얼굴을 보지.” 도시에서 험한 일을 안 하시는 큰 고모님은 얼굴이 훤하시더라. 그 옆에 우리 장모님의 까무잡잡하고 깡마른 얼굴과 대조가 된다. “ 어머님은 식사 잘 하셨어요 ? 전화기가 고장이라 전화도 못 드렸어요” “응 그냥 먹었지. 그런디 감기가 읭 안 나가”
그래도 전보다는 생기가 있으신 것 같아 다행이었다.
오늘은 안산밑 제초제를 하는 날이다. 정산으로 나가 농기계수리센터를 들렸다. “지난 주에 맡긴 충전식 분무기 찾으러 왔어요. 어디가 고장이 났어요 ?”
“고장이 난 게 아니라 충전이 안 됐어요” “예, 그럼 돌아가요 ?” ‘허 참 충전이 안 된 걸 고쳐달라고 했으니....’ 민망한 일이지.
“얼마 드려야 되지요 ?” “그냥 가세요” “고맙습니다”
다음은 주유소다. 일주일에 한 통씩은 비운다. 휘발유 통을 내려놓으니 주인 아주머니께서 반갑게 맞으신다. “이젠 일이 시작 됐네요. 힘드셔서 어떻게 해요 ?” “뭐 그냥 하는 거죠. 사장님도 밭일까지 하시는 데요” “전 이제 안 해요. 무릎이 아파서....”
하긴 농촌 분들 중에 안 아프신 분이 없더라.
“무릎 아픈 사람에게 특효약이 있는데요” “예, 뭔데요 ?” 눈을 번쩍 뜨신다.
“벌침요. 저도 무릎 아프면 벌을 잡아서 대지요. 한 번 맞아 보실래요 ?”
“아이구 무서워서 안 돼요. 하긴 벌침도 약이 된다고 하던데....”
“무릎 고치시려면 언제고 오세요” 농약사로 갔다.
“매실나무가 죽는 게 나와요. 하나가 죽고 나면 그 둘레에 있는 나무들이 차츰 죽어가는데 그 원인이 뭐지요 ?” “글세 안 봐서 모르겠지만 땅 속에 있는 벌레나 균들이 뿌리를 상하게 해서 죽는 수가 있어요” “그럼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지요 ?” 땅에 뿌리는 살충제하고 살균제를 뿌려보세요“
“살충제 두 봉지와 살균제 두 봉지를 샀다. 별별 균과 충이 많구나.
‘전가분무기도 고쳤겠다. 마음 놓고 뿌려 보자. 징그러운 풀들아 기다려라’
물 일곱 통과 분무기. 제초제를 싣고 안산밑으로 출발했다.
아직은 이럴 때가 아닌데 올 봄 잦은 비로 풀들만 신이 났다. 어느새 쭉쭉 뻗어 있었다. 제초제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매년 되풀이 되는 풀과의 전쟁 벗어날 수는 없나 ? 농약으로 풀을 죽이는 일도 즐거운 일은 아니다.
‘풀들과 협상을 해서 인간은 풀들에게 마음껏 자랄 공간을 제공해 주고, 풀들이 인간의 영역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할 방법은 없나’ 괜히 엉뚱한 생각까지 떠오른다. 어쨌든 잘라내도, 농약을 뿌려도, 캐내도 막을 방법이 없으니....
제초제 일곱 통을 뿌리고 나니 어느새 저녁이다.
안산밑에 두 통 정도 뿌릴 곳을 남겨둬야 했다.
내일은 마저 끝내고 서당골로 가야 한다. 그래도 비 두어 번 맞으면 원상복귀가 된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