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신앙관에서 가장 중요한것 중의 하나는 친교이다 친교는 그리이스어로 코이노니아 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친교란 약간의 여흥이 동반되어서 과연 코이노니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애매할때가 있으나 신약성경 본다면. 그 의미를 짐작할수 있는데 초대교회모습을 주로 묘사하는 사도행전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사도행전 2,42)
우리는 예수님이 승천한후에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마르코다락방에 모여 스승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가져온 빵을 함께 나누었다고 한다
예루살렘원로회의에서 뽑은 이들을 각지역에 선교사로 파견하였으니 우리는 이들을 사도라고 불렀다 점차 도시가 커짐으로 한지역에 하나의 교회를 수용하기 어렵기에 주교인 사도들의 일을 대신할 인물을 새로 선임했으니 본당과 본당신부의 출현이고
이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도록 전례가 조금씩 틀을 갖추어 나간다
본당출현이후 교인들의 수가 늘어나자 전례는 체계적으로 적립되어 공동체중심에서 건물중심으로 변해나가게된다
특히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교회는 초기에. 그리이스어로 되어있는 성서를 로마의 지방언어인 라틴어로 번역했다 예로니모성인에 의한 불가타성서이고 전례문과 미사때 사용하는 미사곡가사는 라틴어가 사용되었다
서방교회전역에 가톨릭교회가 전파되었는데 지방언어인 라틴어를 잘 알지못한채 일부사제나 아니면 뜻도 모르는 복사에 의해 암송되었다고 한다 아마 이런형태는 유럽에서 루터교회가 갈라지고 난후에 열린 트리엔트공의회에 의해 전례가 확고해지고 이는 20세기 중반 제2차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이 반포될때까지 이루어진다
우리나라는 조선 김대건신부가 1년간 짧은 사목끝에 순교하고 몇년이 흘러 조선인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신부가 탄생된다 여전히 박해시절이다 전국의 대부분은 교우촌으로 공소였다
프랑스와 통상조약으로 19세기에 들어 조선땅에서도 신앙의 자유가 생겨나고 프랑스의 외교권을 등에 업고 조선유생이 많이 사는 마을에서 천주교인과 토착민과 많은 다툼이 있었다 우리는 이를 교란이라고 불렀다 대표적인 교란이 제주도에서 일어난 이재수의 난이었다
조선교구는 일제말기에 일본인이 교구장이 되고 천주교회지도자중 에는 일제에 협럭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1984년 조선선교200주년과 1989년세계성체대회로 서울로 교황이 방문하는등 교세가 폭발적으로 커져나갔다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하였기에 대도시를 중심으로 대형교회가 출몰되고 상대적으로 지방공소는 대폭감소하고 이런현상은 지금도 진행중이라는 것입니다.
1990년 아시아주교회의에서 채택된. 소공동체운동은 각지역의 풀뿌리신앙을 반영하기 보다는. 본당사제를 도와주는 역할로 인식되었고. 구역.반조직의 역할이. 다양화해지는 것을 기존 사목협의회와 평협등 기존체제와 공존하는 바람에 교회는 현상유지하기가 급급하였다
천주교회는. 박정희대통령이후 군사독재와 유신속에서 이를 저항하여 일어난 사제들의 모임인 정의구현사제단을 정식단체로 인준해주지 않고 세상문제인 평화와 환경문제에 등을 돌리곤했다
아이들이 사교육에 몰려도 청년들이 취업이 어려워지고 만성실직자가 늘어나고 의사 법조계. 공무원등 관료에 몰리고 공기업에 안주하고. 이공계등 기술직을 낮게. 평가되고 저임금으로 동남아시아사람들이 밀려와서 고통받는 젊은이들의 소리에도 천주교회는 귀를 닫고 있으니. 그들이 교회를 빠져나갈 뿐이다
저는 우리가 본당이나 교구등지에서 아주 획기적으로 헌신적으로 해서 나간 청장년층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본당에서 머물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돌아온 청장년층은 저절로 신앙적으로 성장한다는 말인가요 지금 본당이나 교구에서 청장년층을 담을 그릇이 아무데도 없다는 것입니다
청장년층들이 교회로 돌아오기 이전에 교회는 이를 맞이하여 머물곳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의 환경은 급속도로로 변해가고 있고요 세상에서의 청장년층의 역할이 바꾸고있는데 천주교회 본당은 여전히 옛날의 방식대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당에는 천장에 양쪽에 빔프로젝트가 놓여있고요 그리고 본당이야기를 해주는 이런 까페도 있지만 이를 담을수 있는 능력이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도무지 찾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이미 세상의 기술인 멀티미디어를 신앙에 접목하라는 말이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본당은 본당사제를 정점으로 하는 사목체제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획기적인 변화가 본당에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마도 본당교우의 수가 대폭늘어나도 제단체의 회원수가 급증해도 구역.반모임에서 사람들이 넘쳐나도 건강한 주님의 제자를 찾는일은 더 어려워질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은 이미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당이 어려울때에 9일기도를 드리기보다는 이를 흥보하여서 알리고 설득하려는 것입니다 그런일도 대부분 본당안에서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사람들이 사는 거주지안에 있기 떄문에 여러가지 어려운점이 많습니다. 예전처럼 아파트단지내에서 간이천막을 치고 선교하는것을 주민들이 못마땅하게 합니다 길거리에서나 공원같은데에서 마찬가지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자유롭게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신천지입니다. 그들은 공원등지에 나와서 천막을 치고 길거리에 지나가는 이들에게 음료수와 커피를 대접합니다 10여년전에는 주택가근처 산자락에서 야외미사를 한적이 있었는데 그 동네사람들이 와서 방해를 하고 있었지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곳주민들은 대체적으로 개신교 교회사람들이었지요
우리는 지금 박해시절은 아니지만 길거리나 어디서나 선교하는데 방해받는요소들이 많습니다 어느 교회는 시골 5일장을 찾아다니면서 선교를 합니다 그곳사람은 '당신이나 열심히 믿으세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저희는 '예 더 열심히 믿겠습니다'라고 웃으면서 지나갑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게된 과정을 보면 자신을 선교하러 온사람들에게 '왜 이제 오셨나요 저는 미리 기다리고 있었어요'라고 하는 이는 아주 드물것입니다 아마도 자신도 선교사를 많이 헛걸음을 치게 한후에 교회에 들어온것일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안오는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들중에는 세상사람들은 교회다니는 사람들은 이기주의 집단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어려움에 빠져있어도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신천지와 같은 이상한교단이나 하나님나라나 여호와증언과 같은 교단사람들이 개신교나 천주교신자들보다 더 친절하고 길거리전교를 하면서 여러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받으면서 즐겁게 전교합니까? 왜 이런일은 우리는 그들의 저항이 두려워서 감히 나서지 못하느냐입니다 초기교회나 박해시절에는 '하느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면 잡혀가는사람도 풀려갈수가 있었는데 그들은 즐거운마음으로 칼을 받아서 순교하는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알아듣는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아가는일도 다소 어려운일이 됩니다 더 어려운일은 이를 이웃에게 전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순교자들은 이를 이웃에게 알리려고 하다가 죽은자들입니다 아멘
참고로 몇년전 2020년에 15살에 급성 백혈병으로 생을 마감한 이탈리아 소년 카를로 아쿠티스가 복자품에 올랐습니다. 가톨릭교회 역사상 첫 밀레니얼 세대 복자인데요. 그는 그 어려운 기적심사에 2차례나 통과했다고 합니다 1991년 영국 런던에서 이탈리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환영하고 배려했으며, 저축한 돈으로 노숙자·이민자 등을 도왔다. 생전 웹디자이너였던 그는 전 세계에서 일어난 성체 기적과 마리아 발현을 정리해 웹사이트에 게시하며 가톨릭교회를 알렸다. .
그는 2024년 10월1일 시성이 되었고 시성식은 2025년에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청장년층에게 용기를 붇돋워줘야 합니다 그들이 바로 교회로 돌아오든지간에 그들에게 희망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들이 가진 재능뿐만 아니라 그들의 환경이나 고난등을 주님께서 필요하신다면 들어쓰실것입니다. 저는 요번 15세에 백혈병으로 죽은 MZ세대의 사람이 시성되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놀라운 기적이라 여겨집니다 우리나라도 우리모두다가 한국에서 이런일이 일어나도록 모두들 노력해봅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