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3월23일(목)흐림
븟반에서 아미화와 채미와 점심 공양하다. 진달래 꽃소식 들으러 다솔사 가다. 차문화의 시원지인 다솔사 도량이 썰렁하다. 불사를 잘못하여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아담한 도량이 훼손되었다. 白虎백호 嶝등이 훼손되면서 풍수의 조화가 깨어졌고 급조된 건물이 들어서면서 품격이 떨어졌다. 아쉬운 일이다. 돈에 물든 욕심이 명산과 고찰을 버려놓았다. 돌아오는 길에 들러 초록보살 만나 삼천포 실안 낙조를 감상하며 저녁 공양하다. 봄나들이하기 좋은 하루였다.
2017년3월24일(금)맑음
점심 때 명고스님 죽향다원에서 만나다. 죽향의 주인장 내외가 점심공양을 손수 준비해서 함께 공양하다. 봄맛이 나는 요리를 해서 잘 먹다. 다솔사로 달려가서 불이암 동초스님을 뵈다. 차를 마시며 환담하고 내려오는 길에 秋田선생 寓居우거를 방문하다. 진주선원으로 돌아와 쉬다. 저녁에 CST 실습이 있다. 금성보살의 지도 아래 하심보살, 아미화보살이 훈련하다. 강습이 끝나고, 밤늦게 까지 명고스님과 환담하다.
2017년3월25일(토)흐림
하루 종일 봄비 오다. 일광, 명고스님과 같이 저녁 공양 함께 하다. 돌아와 선원에서 차를 마시며 환담 나누다. 스님은 이 시대에 태어난 부처님의 대리인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대화가 전개되다. 그렇다! 불법승이 모두 나, 스님에게 달려있다. 내가 잘해야 부처님도 빛나고, 부처님의 가르침도 빛나고, 승가도 빛나게 된다. 현전승가의 명예가 실추된 것은 나의 책임이다. 부처님 법이 쇠퇴한 것은 나의 책임이다. 불교가 욕먹는 것은 나의 책임이다. 이렇게 반성해야 한다. 스님인 나는 이렇게 책임을 통감하고 땅을 치고 통곡하고 울어야한다. 그러지 않고 하루하루를 아무 일 없는 듯이 살고 있는 나를 보면 얼마나 厚顔無恥후안무치한가!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최소한 나는 부처님께 부끄럽다. 부처님, 이 말세 제자 小僧 원담을 잘못 만나서 임을 욕되게 함이 끝 업사오니 부디 용서하소서! 부처님, 부끄럽습니다.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부처님의 제자인 제가 임을 영광스럽게 해드려야 마땅한데 그러질 못하옵니다.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럴만한 정성이 부족합니다. 용서하옵소서. 부처님.
그런데 누구에게 보이려고 이런 이야기를 주절거리고 있는 걸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일기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 현 시대를 사는 불제자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그로 인한 고뇌를 표현하는 거다. 누가 알아주길 원해서가 아니다. 내가 나에게 말하는 독백인데, 독백이 방백이 되기도 하는 것이 세상사이니 남의 눈에 띈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윤동주의 맑은 눈을 사랑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017년3월26일(일)흐림
아침 먹고 청소하다. 쓰레기 분리 수거해서 버리다. 하늘이 맑지 못한 봄 하루 지나가다.
2017년3월27일(월)흐림
아침 강변도로를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점심거리를 장만하다.
인생이 너무 길지도 않고 너무 짧지도 않은 여행이라면 우리는 자기 인생을 사는 여행자이다. 그런데 여행자의 한계는 분명하다. 아둥바둥하는 현실에서 물러나 약간 관조적인 기분으로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식당과 카페 몇 곳을 들렀다가 사람 좋게 보이는 현지인 몇 분을 사귀면 그것으로 그 장소를 알았다고 여기며 이내 그 곳을 떠난다. 그 짧은 체류로 그 장소에 깃들인 삶을 어찌 알겠는가? 그곳에 터 잡고 사는 사람도 그곳의 삶을 다 알지 못하는데. 우리는 기껏해야 몇 가지 기억만 가지고 갈뿐, 우리가 지나온 곳을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이 생에서 가져갈만한 기억은 몇 가지나 될까?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장소와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를 기억하는 그 사람도 결국 나에게서 잊힐 것이요, 나조차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게 될 터인데. 윤회하는 삶에서 상속되는 것은 무엇인가? ‘지속되는 그 무엇’이 전생과 후생을 이어주는 일종의 확률적 동일성을 담아낼 것이지만, 이조차도 ‘동일한 것’을 찾아내서 위안을 얻고자하는 범부의 기대에서 나온 개념이다. 인과율에 대한 것은 신념인 동시에 견해이다. 세계관이 다른 사람은 인과에 대한 생각도 다를 것이다. 因도 무한하고 緣도 무한하다. 우리는 인과의 바다에 일엽편주를 띄우고 한 방향으로 항해한다. 그 배는 자가용일 수도 있고 대중용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 누구와 함께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
저녁 강의하다.
강의 키워드: Entropy increase: closed system, nature
Entropy decrease: open system, living beings
Order out of disorder 무질서에서 창발하는 질서
Edge of Chaos 혼돈의 가장자리
Emergence 創發
2017년3월28일(화)맑음
초하루 독경법회 가지다. 아미화, 반야성, 무인, 향인 보살 참석하다. 함께 점심 공양하고 문희정 카페에 들러 차 마시다. 죽향에서 저녁 강의하다. 리화보살이 신입회원을 모셔오다. 두 사람의 신입회원을 모셔온 공덕을 칭찬하기 위해 호박 단주를 선물하니 다른 학생들이 부러워하다.
2017년3월29일(수)흐림
이상스레 잠을 일찍 깨어서 새벽정진을 하다. 과일과 쑥떡을 아침 삼아 먹고 쉬다. 음울한 날씨. 궂은비 살짝 내리더니 하늘이 우중충. 길 가의 벚꽃이 봉우리를 내민다. 며칠 내 화개만발 할 것 같다. 저녁 강의하다. 부부관계는 범행도반으로 나아가야한다고 이야기하다.
2017년3월30일(목)맑음
일어나자 목 아프고 눈이 뻑뻑하며 열 난다. 온 몸이 살살 아프다. 카톡에 올렸더니 학생들에게서 소식이 온다. 미세먼지 탓이니 죽염수로 목과 눈을 씻으라고. 초암에게서 병원에 다녀가라는 메시지. 고려병원에 가서 링거 주사 맞고 돌아오니 하심보살이 점심 공양하자고 데리러 왔다. 범연, 향원과 함께 점심 공양 하다. 약 먹고, 빨래하고 종일 누워 쉬다. <테라가타>를 읽다. 저녁에 문아보살이 생강차 가지고 오다.
2017년3월31일(금)흐림
초록과 점심공양하고 오는 길에 다시 고려병원에서 주사 맞다. 가래가 나오고 기침이 간혹 난다.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 때문에 대기가 오염된 까닭인지 감기환자들이 많다. 길가에 벚꽃이 활짝 폈다. 꽃은 천천히 피었으면 좋으련만 삽시간에 피었다가 서서히 시들어가니 花開卽時 花落이다. 꽃은 곧 조락이며, 무상이며, 슬픔이며, 비장한 아름다움이다.
早春寄呈伯父조춘기정백부-牧隱목은 李穡이색(1328~1396)
이른 봄에 백부께 부쳐 올리다
草色靑靑柳色黃, 초색청청류색황 풀빛은 푸르고 버들 빛은 누런데
尋春日日祗顚狂; 심춘일일지전광 봄 구경에 연일 마음이 미칠듯하네
丁寧莫遣花開盡, 정녕막견화개진 제발이지 꽃을 활짝 다 피우진 말기를
花欲開時興最長. 화욕개시흥최장 꽃이 피려 할 그 때가 가장 흥이 나거니
溪堂雨後 계당우후/白光勳백광훈(1537~1582)
비온 뒤 시냇물 불어
昨夜山中雨, 작야산중우 어젯밤 산 속에 비가 내렸으니
前溪水政肥; 전계수정비 앞 시냇물 지금 불어났으리,
竹堂幽夢罷, 죽당유몽파 대 숲 집 그윽한 봄꿈 깨어나니
春色滿柴扉. 춘색만시비 봄빛이 사립문에 가득하구나.
내일 밤 서울 조계사 맞은편에서 열리는 직선제를 위한 촛불집회에 참석하기로 했는데 몸이 아파서 가지 못하게 되었다. 밤에 여러 번 깨다.
2017년4월1일(토)흐림
약 먹고 쉰다. 아미화보살 와서 점심 지어 같이 먹다. 종일 흐리다.
빗방울이 모여서 흐름을 만들고, 흐르는 물은 그랜드캐년을 조각한다. 우리에게는 빗방울 같은 기회와 시간이 있다. 너에게 허락된 시간이 어찌 지나가는지 알고 있느냐?
2017년4월2일(일)맑음
아침에 갑자기 한기가 들어 몸을 감싸 체온을 보존하다. 온 몸의 뼈가 결리듯 아프다. 꽃이 피어 지천이다. 꽃 속에도 고통이 있겠지.
梅泉매천 黃玹황현(1855~1910)은 ‘봄 강의 수면은 실비와 같다. 春江一面如絲雨’라고 표현했다. 잔잔한 수면에 엷은 이내가 끼고 강가엔 연록의 버들이 축 늘어져 강물에 비쳤을 테니 그야말로 ‘푸른 실(絲)처럼 드리운 봄 비(雨)’가 아닌가? Silky rain이라 영역할까? Rain like green thread라 영역할까? 너무나 아름다운 은유이다.
비 온 뒤 정원엔 이끼 소복 돋았는데 雨餘庭院蔟莓苔, 우여정원주매태
인기척 없는 사립문 대낮에도 닫혀 있네, 人靜雙扉晝不開; 인정쌍비주불개
푸른 섬돌 떨어진 꽃 한 치나 쌓였는데 碧砌落花深一寸, 벽체낙화심일촌
봄바람이 불어왔다가 또 불어가네 東風吹去又吹來. 동풍취거우취래
正祖정조(1752~1800, 재위 1777~1800)의 시이다. 종일 최봉수 교수의 동영상 강의를 듣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