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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역린> 포스터 |
정조는
성리학의 대가로서 총 184권에 이르는 <홍재전서>를 집필할 만큼 대단한 학문적 열정의 소유자였다. 왕권을 강화하여 그 힘으로 조정의
기강을 바로잡고 정사를 펼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면, <중용> 23장을 살펴보고 오늘에 주는 교훈을 음미해보기로
한다.
其次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爲能化.
그 다음은 치곡(致曲)이니, 작은 일에도 극진하게 임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 다음이라고 하는 것은 “정성을 쏟으면 밝아지고, 밝으면 정성스럽게 된다”(誠則明矣, 明則誠矣)는 내용의 21장에서부터 논하고
있는 정성스러움(誠)에 관한 주제의 연속을 의미한다. 성(誠)이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성스럽게 움직이는 천지, 즉 우주의 법칙을
의미한다. 성론은 자연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이어서 22장의 내용이다. 오직 천하가 품고 있는 지극한 성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사람은 자기의 타고난 성품을 남김없이 발현할 수 있으며(唯天下至誠, 爲能盡其性), 그럼으로써 결국 천지와 더불어 혼연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23장으로 넘어가 그 다음은 작은 일이나 세세한 덕목에 이르기까지 극진하게 정성을 다하면 성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성이 있게 되면 태도가 형성되고, 태도가 형성되면 나타나 널리 알려지게 되고, 알려지면 밝아진다. 밝아지면 실천하고, 실천하면 변(變)하고, 변하면 바뀐다(化). 그리고 22장의 화두로 돌아간다. 오로지 천하가 품고 있는 지극한 성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바뀔(化)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변(變)한다는 것은 외형적으로 형태나 모습이 변한다는 것이고, 화(화)한다는 것은 내용적 질적으로 한 물질이 전혀 다른 물질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린>이 준 메시지는 변화였다. 우리 사회에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변화란 무엇인가? 외형뿐 아니라 내용에까지 완전히 다른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이 아니라 화다. 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변이 화에 이르러야 진정한 변화인 것이다.
한국사회를 보자. 개혁을 얘기한다. 개혁은 변화를 의미하는가? 아닌 것 같다. 제도와 시스템 등 외형적 변(變)을 도모하는 것이 개혁이다. 화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언론개혁도 그렇고, 교육개혁도 그렇고, 무릇 개혁이라는 화두가 던진 목적이 변에 머물러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재난처란 것을 예로 들어보자.
세월호 사태를 겪으면서 박근혜는 해경을 해체하고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를 수술하여 국가재난처를 만든다고 한다. 이것이 큰 변화라도 되는 것처럼 언론은 호들갑을 떤다. 변이 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성의 없이 외형적으로 뜯어고치는 급조된 조직이 아니라 작은 부분도 정성스럽게 살펴서 모든 국민들이 마음으로부터 동의할 수 있는 완전히 다른 조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변화다.
그러나 박근혜는 그렇게 했는가? 도무지 지극한 정성은 고사하고 작은 정성도 기울이지 않아 유족과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으면서도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무성의하게 급조한 국가재난처란 괴물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극한 정성만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럴 마음과 의지가 없다면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