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반 부산 서면 일대 시가지 전경. 오른쪽 나무가 들어선 곳이 현 롯데백화점(옛 부산상고)이고, 가운데대로처럼 보이는 곳이 부전천이다. 상당부분 복개돼 있으나 폭이 꽤 넓은 모습이다. 부산진구 제공
- 1930년대만 해도 선박 드나들어 - 갈수록 자갈·흙 쌓여 출입 못해 - 1949년 商議 등 주축 시민조직 - 정부에 특별시 승격 청원하며 - 하천 준설 운하기능 복원 요구 - 6·25 전쟁 발발하면서 흐지부지 - 구상대로 운하건설 이뤄졌다면 - 벌써 생태도시 자리매김 했을 것
올해는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된 지 만 50년이다.
1961년 5·16 후 [국가재건 최고회의] 조시형 내무위원장이 제안한
'부산직할시 승격안'을 근거로 1963년 직할시가 출범했고
이제 반세기를 지나는 중이다.
그러나 부산이 경남도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시민 여론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광복 이듬해 1946년부터 꾸준히 일었다.
애초 [부산이 바랐던 건] 직할시가 아니라 특별시였다.
특별시가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 구상 가운데 하나가
동천을 이용한 운하 건설이었다.
[부산 특별시 말이 나온 계기]는 서울의 특별시 승격이었다.
경기도에 예속됐던 서울이
[1946년 8월 16일 정치수도를 명분으로 내세워] 특별시가 되자
부산에선 [해양수도를 내세워] 특별시 여론이 조성되었다.
여론 조성의 중심에는 1946년 7월 10일 출범한 부산상공회의소가 있었고 부산상의 [초대와 2, 3대 회장]을 지낸 김지태(1908∼1982)가 있었다.
■ '大부산' 건설 10대 구상
[김지태]는 한 시대 부산을 대표하는 명사였다.
부산상고(14회)를 졸업하고 삼화고무와 조선견직, 부산일보와
MBC 사장, 2, 3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김지태는 한 시대를 풍미한
기업인이자 언론인이자 정치인이었다.
1946년 10월 부산상의 초대 회두(회장)로 임명된 그는
총회를 열어 '부산특별시 승격안'을 제안해 만장일치 가결한다.
[부산직할시 승격의 발판]은 사실상 이때 놓아졌다고 봐야 한다.
승격 여론 조성의 다른 축은 '부산특별시 승격 기성회'다.
1949년 6월 14일 부산상의와 동회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기성회]는 관과 유지가 총망라된 범시민적 조직이었다.
회장 김지태, 부회장 김용준, 이사 김낙제 김달범 신덕균 권인수 등이 선임돼 거시적 승격운동 조직을 갖추었다.
기성회는 그 해 6월 25일 대통령과 국회의장에게
부산을 정부 직할의 특별시로 승격시켜 줄 것을 청원한다.
기성회 청원서에는 [부산 미래 청사진]인 '大부산' 건설 10대 구상이
담겼다.
부산역을 서면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를 해안상가로 개발하자는 등... 지금 곱씹어도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내용들이다.
동천 운하 건설도 구상 중의 하나로 말 그대로 부산의 미래를 제시한다. 직할시 승격 50주년을 맞는 이즈음에도 몇몇 구상은 유효하다.
10대 구상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부산역을 서면으로 이전하고 동시에 조차장을 가야 방면으로 옮긴다. ▷부산항을 근대적 항만시설로 갖추고 특히 적기 방면을 개발하여
또 하나의 외항을 만든다.
▷부산 중앙역(서면)과 연결하는 임항(臨港)철도(서면∼적기, 산 밑을 통과)를 부설하여 별도계획의 운하와 더불어 육해수송 능력을 강화한다. ▷범일동에 있는 동천 부지를 이용, 운하(서면∼대선양조장 간)를
개설하고 낙동강 물을 끌어들여 공업용수를 해결한다.(당시 대선양조장은 문현동에 있었음)
▷현재의 부산역(초량으로 이전하기 전의 본역) 및 조차장을 철거하는 데서 생기는 넓은 땅을 국내 유일의 해안상가로 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