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세상의 빛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2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3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4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5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6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7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
8 이웃 사람들이, 그리고 그가 전에 거지였던 것을 보아 온 이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이가 아닌가?”
9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이오.”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니오. 그와 닮은 사람이오.” 하였다.
그 사람은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0 그들이 “그러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묻자,
11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내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12 그들이 “그 사람이 어디 있소?” 하고 물으니,
그가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들은 전에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날은 안식일이었다.
15 그래서 바리사이들도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다시 물었다.
그는 “그분이 제 눈에 진흙을 붙여 주신 다음,
제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 하여,
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17 그리하여 그들이 눈이 멀었던 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18 유다인들은 그가 눈이 멀었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 그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
20 그의 부모가 대답하였다.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라는 것과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것은 우리가 압니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나이를 먹었으니 제 일은 스스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22 그의 부모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다인들이 이미 합의하였기 때문이다.
23 그래서 그의 부모가 “나이를 먹었으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하고 말한 것이다.
24 그리하여 바리사이들은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다시 불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시오.
우리는 그자가 죄인임을 알고 있소.” 하고 말하였다.
25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
26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소?
그가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소?” 하고 그들이 물으니,
27 그가 대답하였다. “제가 이미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은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째서 다시 들으려고 하십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28 그러자 그들은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말하였다.
“당신은 그자의 제자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요.
29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아오.
그러나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오.”
30 그 사람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제 눈을 뜨게 해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모르신다니, 그것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31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 주십니다.
32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누가 뜨게 해 주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33 그분이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으셨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34 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 하며, 그를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35 그가 밖으로 내쫓겼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만나시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 그 사람이 “선생님,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제가 그분을 믿을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자,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38 그는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경배하였다.
39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40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4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요한 9,1-41
2026년 3월 15일 사순 제4주일
사순 시기가 깊어 가는 사순 제4주일을 '장미 주일'로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요즈음은 보기 드물지만 이날 사제가 자색이 아닌 장미색 제의를 입고 전례를 거행한 데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희생과 단식, 보속 등을 엄격히 지키는 이 사순 시기에 부활의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며 위로하는 '장밋빛 주일'을 보내는 것은 낯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고 느끼는 것의 중요성을 알기에 오늘의 이 거룩한 전례가 더욱더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지닌 사람의 특징을 올바르고 합당한 일에서 기쁨을 느낄 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순 시기가 신앙인으로서 필요한 덕을 키우고 수양하는 때라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쁨을 느끼는지 잘 살펴볼 일입니다. 기쁨이 그저 걱정거리가 없어진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체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사순 시기의 전례를 통하여 조금씩 깨달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삶에서 '변화의 표징'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 느끼는 기쁨이야말로 사순 시기를 뜻있게 보내는 이들의 특권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발견하는 것은, 이러한 기쁨을 얻고자 노력하지만 이 기쁨은 자기 자신이 완성하고 누리는 기쁨이 아니라, 주님의 성령으로 완성되도록 '내어놓는' 기쁨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미완성의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참기쁨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전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처드 세넷이라는 사회학자는 『장인』이라는 책에서, 훌륭한 장인은 역설적으로 '완벽 주의'를 피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완벽 주의와 씨름하다 보면 나 자신을 의심하는 일을 해 보이려는 꼴이 되고 만다. 이 지경에 이르면 제작자의 정신 상태는 지금 만드는 물건이 해야 할 일보다도 제작자 본인의 역량을 보여 주겠다는 쪽으로 더 쏠리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빛 속의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러한 삶에는 장애와 오류와 박해가 생기지만 마침내 빛을 따르고 빛에 개방된 삶입니다. 그 빛이 온전히 자신을 비추고 채운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느껴야 하고 또한 느낄 수 있는 기쁨의 본질일 것입니다.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
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좋은 쪽으로 닮기.」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다가 영국 리버풀 대학에서의 한 실험의 흥미로운 결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선 남녀 각 11명에게 부부 160쌍의 사진을 뒤섞은 뒤 인상이 닮은 남녀들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닮았다고 지목된 남녀를 보니 대부분이 실제 부부더라는 것입니다.
부부가 오래 살다보면 외모까지도 서로 닮아간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마 미세한 얼굴 표정이나 감정 표현, 대화상의 어투 같은 것을 자기도 모르게 서로 배우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살아가면서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가치관을 맞추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닮는 것이 외모만이 아니라 가치관이나 성격까지도 닮게 됩니다.
이렇게 닮아가는 것은 좋지만 문제는 어떤 쪽으로 닮아 가느냐는 것이지요. 좋은 쪽으로 닮아 가야 하는데, 나쁜 쪽으로도 닮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흥부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놀부와 놀부 마누라의 심보를 보십시오. 나쁜 쪽에서 똑같습니다. 처음부터 과연 그랬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누가 먼저 나빴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쪽이 나쁜 쪽을 닮아가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야기일 뿐이라고 간단하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그런 부부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반대로 결혼 전에는 봉사나 나눔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는데, 결혼 후 부부가 함께 사회봉사를 하고 기부를 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닮아가는 것을 매스컴을 통해서 종종 보게 됩니다. 이는 좋은 쪽으로 닮아 가는 모습입니다.
닮아가는 것은 부부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통해서 닮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쁜 쪽을 닮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좋은 쪽을 닮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그 나쁜 점을 크게 만들지 말고, 대신 좋은 점을 크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점을 가지고 있는 이웃을 스승으로 삼고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이래야 서로 좋은 쪽으로 닮아갈 수가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세상 같습니다. 즉, 먹고 산다는 이유를 들어 옳고 그름에 대한 잣대를 없애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에 많은 악들이 판을 치고, 점점 더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좋은 쪽으로 닮아가는 우리가 될 때 이 세상을 더욱 더 살기 좋고 사랑 가득한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이 바로 ‘나’한테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필요 없는 물건들을 살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사는 이상한 인종들, 나는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에밀리 헨리 고브로)>
2026년 3월 15일 사순 제4주일
”내가 세상의 빛이다.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왔다.
(요한 9,1-41)
「わたしは、世にいる間、世の光である。」
「『シロアムに行って洗いなさい』と言われました。そこで、行って洗ったら、見え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ヨハネ9・1-41)
”I am the light of the world.
Go wash in the Pool of Siloam"
So he went and washed, and came back able to see.
(John 9:1-41)
四旬節第4主日
”내가 세상의 빛이다.
"ネガ セサンエ ビッチダ。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シロアム ヨンモッスロ ガソ シッソラ。"ハゴ マルスム ハショッタ。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왔다.
(요한 9,1-41)
「わたしは、世にいる間、世の光である。」
와타시와 요니 이루 아이다 요노 히카리데 아루
「『シロアムに行って洗いなさい』と言われました。
시로 아무니 잇테 아라이나사이 토 이와레마시타
そこで、行って洗ったら、見え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소코데 잇테 아랏타라 미에루요오니 낫타노데스
(ヨハネ9・1-41)
”I am the light of the world.
Go wash in the Pool of Siloam"
So he went and washed, and came back able to see.
(John 9:1-41)
Fourth Sunday of Lent
John 9:1-41
As Jesus passed by he saw a man blind from birth.
His disciples asked him,
“Rabbi, who sinned, this man or his parents,
that he was born blind?”
Jesus answered,
“Neither he nor his parents sinned;
it is so that the works of God might be made visible through him.
We have to do the works of the one who sent me while it is day.
Night is coming when no one can work.
While I am in the worl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When he had said this, he spat on the ground
and made clay with the saliva,
and smeared the clay on his eyes,
and said to him,
“Go wash in the Pool of Siloam” —which means Sent—.
So he went and washed, and came back able to see.
His neighbors and those who had seen him earlier as a beggar said,
“Isn’t this the one who used to sit and beg?”
Some said, “It is, “
but others said, “No, he just looks like him.”
He said, “I am.”
So they said to him, “How were your eyes opened?”
He replied,
“The man called Jesus made clay and anointed my eyes
and told me, ‘Go to Siloam and wash.’
So I went there and washed and was able to see.”
And they said to him, “Where is he?”
He said, “I don’t know.”
They brought the one who was once blind to the Pharisees.
Now Jesus had made clay and opened his eyes on a sabbath.
So then the Pharisees also asked him how he was able to see.
He said to them,
“He put clay on my eyes, and I washed, and now I can see.”
So some of the Pharisees said,
“This man is not from God,
because he does not keep the sabbath.”
But others said,
“How can a sinful man do such signs?”
And there was a division among them.
So they said to the blind man again,
“What do you have to say about him,
since he opened your eyes?”
He said, “He is a prophet.”
Now the Jews did not believe
that he had been blind and gained his sight
until they summoned the parents of the one who had gained his sight.
They asked them,
“Is this your son, who you say was born blind?
How does he now see?”
His parents answered and said,
“We know that this is our son and that he was born blind.
We do not know how he sees now,
nor do we know who opened his eyes.
Ask him, he is of age;
he can speak for himself.”
His parents said this because they were afraid
of the Jews, for the Jews had already agreed
that if anyone acknowledged him as the Christ,
he would be expelled from the synagogue.
For this reason his parents said,
“He is of age; question him.”
So a second time they called the man who had been blind
and said to him, “Give God the praise!
We know that this man is a sinner.”
He replied,
“If he is a sinner, I do not know.
One thing I do know is that I was blind and now I see.”
So they said to him,
“What did he do to you?
How did he open your eyes?”
He answered them,
“I told you already and you did not listen.
Why do you want to hear it again?
Do you want to become his disciples, too?”
They ridiculed him and said,
“You are that man’s disciple;
we are disciples of Moses!
We know that God spoke to Moses,
but we do not know where this one is from.”
The man answered and said to them,
“This is what is so amazing,
that you do not know where he is from, yet he opened my eyes.
We know that God does not listen to sinners,
but if one is devout and does his will, he listens to him.
It is unheard of that anyone ever opened the eyes of a person born blind.
If this man were not from God,
he would not be able to do anything.”
They answered and said to him,
“You were born totally in sin,
and are you trying to teach us?”
Then they threw him out.
When Jesus heard that they had thrown him out,
he found him and said, Do you believe in the Son of Man?”
He answered and said,
“Who is he, sir, that I may believe in him?”
Jesus said to him,
“You have seen him,
the one speaking with you is he.”
He said,
“I do believe, Lord,” and he worshiped him.
Then Jesus said,
“I came into this world for judgment,
so that those who do not see might see,
and those who do see might become blind.”
Some of the Pharisees who were with him heard this
and said to him, “Surely we are not also blind, are we?”
Jesus said to them,
“If you were blind, you would have no sin;
but now you are saying, ‘We see,’ so your sin remains.
2026-03-15「わたしが洗うと、見え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四旬節第4主日です。
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と神の母の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ヨハネによる福音
<わたしが洗うと、見え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
そのとき、9・1イエスは通りすがりに、生まれつき目の見えない人を見かけられた。2弟子たちがイエスに尋ねた。「ラビ、この人が生まれつき目が見えないのは、だれが罪を犯したからですか。本人ですか。それとも、両親ですか。」3イエスはお答えになった。「本人が罪を犯したからでも、両親が罪を犯したからでもない。神の業がこの人に現れるためである。4わたしたちは、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の業を、まだ日のあるうちに行わねばならない。だれも働くことのできない夜が来る。5わたしは、世にいる間、世の光である。」6こう言ってから、イエスは地面に唾をし、唾で土をこねてその人の目にお塗りになった。7そして、「シロアム[『遣わされた者』という意味]の池に行って洗いなさい」と言われた。そこで、彼は行って洗い、目が見えるようになって、帰って来た。8近所の人々や、彼が物乞いであったのを前に見ていた人々が、「これは、座って物乞いをしていた人ではないか」と言った。9「その人だ」と言う者もいれば、「いや違う。似ているだけだ」と言う者もいた。本人は、「わたしがそうなのです」と言った。10そこで人々が、「では、お前の目はどのようにして開いたのか」と言うと、11彼は答えた。「イエスという方が、土をこねてわたしの目に塗り、『シロアムに行って洗いなさい』と言われました。そこで、行って洗ったら、見え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12人々が「その人はどこにいるのか」と言うと、彼は「知りません」と言った。
13人々は、前に盲人であった人を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ところへ連れて行った。14イエスが土をこねてその目を開けられたのは、安息日のことであった。15そこで、ファリサイ派の人々も、どうして見えるようになったのかと尋ねた。彼は言った。「あの方が、わたしの目にこねた土を塗りました。そして、わたしが洗うと、見え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16ファリサイ派の人々の中には、「その人は、安息日を守らないから、神のもとから来た者ではない」と言う者もいれば、「どうして罪のある人間が、こんなしるしを行う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と言う者もいた。こうして、彼らの間で意見が分かれた。17そこで、人々は盲人であった人に再び言った。「目を開けてくれたということだが、いったい、お前はあの人をどう思うのか。」彼は「あの方は預言者です」と言った。
18それでも、ユダヤ人たちはこの人について、盲人であったのに目が見え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ことを信じなかった。ついに、目が見えるようになった人の両親を呼び出して、19尋ねた。「この者はあなたたちの息子で、生まれつき目が見えなかったと言うのか。それが、どうして今は目が見えるのか。」20両親は答えて言った。「これがわたしどもの息子で、生まれつき目が見えなかったことは知っています。21しかし、どうして今、目が見えるようになったかは、分かりません。だれが目を開けてくれたのかも、わたしどもは分かりません。本人にお聞きください。もう大人ですから、自分のことは自分で話すでしょう。」22両親がこう言ったのは、ユダヤ人たちを恐れていたからである。ユダヤ人たちは既に、イエスをメシアであると公に言い表す者がいれば、会堂から追放すると決めていたのである。23両親が、「もう大人ですから、本人にお聞きください」と言ったのは、そのためである。
24さて、ユダヤ人たちは、盲人であった人をもう一度呼び出して言った。「神の前で正直に答えなさい。わたしたちは、あの者が罪ある人間だと知っているのだ。」25彼は答えた。「あの方が罪人かどうか、わたしには分かりません。ただ一つ知っているのは、目の見えなかったわたしが、今は見えるということです。」26すると、彼らは言った。「あの者はお前にどんなことをしたのか。お前の目をどうやって開けたのか。」27彼は答えた。「もうお話ししたのに、聞いてくださいませんでした。なぜまた、聞こうとなさるのですか。あなたがたもあの方の弟子になりたいのですか。」28そこで、彼らはののしって言った。「お前はあの者の弟子だが、我々はモーセの弟子だ。29我々は、神がモーセに語られたことは知っているが、あの者がどこから来たのかは知らない。」30彼は答えて言った。「あの方がどこから来られたか、あなたがたがご存じないとは、実に不思議です。あの方は、わたしの目を開けてくださったのに。31神は罪人の言うことはお聞きにならないと、わたしたちは承知しています。しかし、神をあがめ、その御心を行う人の言うことは、お聞きになります。32生まれつき目が見えなかった者の目を開けた人がいるということなど、これまで一度も聞いたことがありません。33あの方が神のもとから来られたのでなければ、何もおできにならなかったはずです。」34彼らは、「お前は全く罪の中に生まれたのに、我々に教えようというのか」と言い返し、彼を外に追い出した。
35イエスは彼が外に追い出されたことをお聞きになった。そして彼に出会うと、「あなたは人の子を信じるか」と言われた。36彼は答えて言った。「主よ、その方はどんな人ですか。その方を信じたいのですが。」37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は、もうその人を見ている。あなたと話しているのが、その人だ。」38彼が、「主よ、信じます」と言って、ひざまずいた。39イエスは言われた。「わたしがこの世に来たのは、裁くためである。こうして、見えない者は見えるようになり、見える者は見えないようになる。」
40イエスと一緒に居合わせた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これらのことを聞いて、「我々も見えないということか」と言った。41イエスは言われた。「見えなかったのであれば、罪はなかったであろう。しかし、今、『見える』とあなたたちは言っている。だから、あなたたちの罪は残る。」(ヨハネ9・1-41)
**********
毎日のミサ・「今日の黙想」です。
四旬節が深まっていく第4主日は、「バラの主日」とも呼ばれてきました。今日、司祭が紫ではなくバラ色の祭服を着て典礼を行ったことに由来します。犠牲と断食、償いを厳しく守るこの四旬節の中で、復活の喜びを前もって味わい、慰めを受けるこの「バラ色の主日」は、どこか不思議にも感じられます。
しかし、わたしたちキリスト者にとっての真の喜びが何であるかを知り、それを味わうことの大切さを思うとき、今日の聖なる典礼にいっそう深い感謝を覚えます。
古代ギリシアの哲学者アリストテレスは、徳ある人の特徴は「正しく、ふさわしいことの中に喜びを見いだすことができる人」であると言いました。四旬節が、信仰者として必要な徳を養い、自己を整える時であるならば、わたしたちキリスト者は、どこに、どのような仕方で喜びを感じているのかをよく省みる必要があります。
喜びとは、単に心配事がなくなった状態ではありません。むしろ、それは新しい生を始めるときに体験するものです。四旬節の典礼を通して、わたしたちはそのことを少しずつ悟ることができます。さらに、自分の人生の中に「変化のしるし」が具体的に現れるときにこそ感じる喜びこそ、四旬節を実り豊かに生きる人々に与えられる特権であると言えるでしょう。
しかし、ここで気づかされるのは、このような喜びを求めて努力しても、その喜びは自分自身が完成させて味わう喜び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それは、主の聖霊によって完成されるように、自分を「ゆだねる」喜びなのです。ですから、自分が未完成な存在であることを認めることこそ、信仰の真の喜びを味わうための大切な前提条件と言えるでしょう。
社会学者リチャード・セネットは、その著書『クラフトマン(職人)』の中で、優れた職人は逆説的に「完璧主義」を避け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ならないと指摘し、こう述べています。
「完璧主義と格闘しているうちに、人は自分自身の力量を証明しようとする姿勢に陥ってしまう。そうなると、作り手の精神は、作品が果たすべき目的よりも、自分の能力を示すことへと傾いてしまう。」
今日の福音(ヨハネ9章)で、イエス様はわたしたちを光の中の生へと招いておられます。その生には、障害も誤解も迫害も伴います。しかし最終的には、光に従い、光に開かれた生です。
生まれつき目の見えなかった人は、「わたしが洗うと、見えるようになったのです」と証ししました(ヨハネ9・11)。そして最後には、「主よ、信じます」と言ってひざまずきました(9・38)。
その光が、わたしたちを完全に照らし、満たしてくださるという事実こそ、わたしたちが感じるべき、そして実際に感じることのできる喜びの本質なのです。
********
毎日の福音を読み、主イエス様の光に心を開き、見えなかったものが見えるようになる恵みの中で歩む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
そして、「主よ、信じます」と告白する信仰を日々新たにできますように。
聖霊、来てくださ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