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으로 선수 꿈 접었던 국가대표 출신 이우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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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영 일본 게이오대 축구부 감독이 지난달 14일 도쿄 요요기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일본의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 |
186cm의 큰 키에 발군의 슈팅 능력으로 그는 최용수·우성용과 함께 ‘비쇼베츠(당시 감독) 사단’의 ‘공포의 삼각편대’를 이뤘다. 특히 결정적인 고비 때마다 득점과 어시스트를 일궈내는 그의 골 감각은 천부적이라 불렸다. 94년부터 3년간 국가대표를 지낸 그는 연세대 졸업 뒤 일본의 오이타 트리니티 구단에 진출, 한 시즌 반을 뛰면서 10골 8도움(20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98년 귀국해 안양LG에 신인 자격으로 입단할 때는 가장 유력한 신인왕 후보였다. 하지만 발목 부상으로 시즌 동안 단 두 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그리고 이듬해 26살의 젊은 나이에 조용히 선수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동기생인 이운재(현 국가대표 골키퍼)가 아직까지 활약 중인 것을 감안하면 너무도 빠른 은퇴였다.
방황도 하고 제 2의 인생을 살아 보고자 동대문시장에서 옷장사도 했다. 그러나 축구를 향한 그의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2001년 7월 일본 센다이의 한 시골 고등학교 축구부 코치로 간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모두 말렸다. 하지만, 그는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짐을 쌌다.
절치부심하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2003년 3월. 명문 사학 게이오 대학이 그를 전임 코치로 임명했다. 4년 뒤 게이오대학은 그에게 감독직을 제안했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뛰어난 리더십은 누구나 인정했지만, 1927년 게이오대 축구부 창단 이래 80년 동안 외국인이 감독을 맡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재도 게이오대가 속한 관동지역 140개 대학 축구팀 중 외국인 감독은 그가 유일하다. 게다가 게이오대는 팀 운영과 재정적 지원이 철저히 ‘축구부 OB회’를 통해 이뤄지는 철저한 순혈주의였다. 그래서 반대도 많았다. 연세대나 고려대 축구부 감독에 게이오대나 와세다대 출신의 일본인이 취임하는 것과 같은 ‘파격’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감독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성적’으로 보여줬다. 게이오대 축구부는 여느 대학과 달리 축구 특기생 출신이 단 한 명도 없다. 모두 시험을 쳐 명문 사학에 입학한 수재들이다. 오랜 기간 2부 리그 중하위권에서 헤맨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휘봉을 잡은 이 감독은 부임 2년 만에 기적을 일으켜냈다. 게이오대학을 2부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1부 리그로 승격시켰다. 올해는 1부 리그 내에서도 상위권으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특기생 출신으로 구성된 와세다대와의 정기전에서 절대 열세라는 예상을 뒤집고 3대0의 대승을 거뒀을 때는 ‘게이오의 영웅’이란 칭송까지 들었다.
이 감독은 바쁜 일과 중에도 5년 동안 꾸준히 학업에도 매진해 왔다. 그 결실이 이달 10일 맺어진다. 그는 니혼타이쿠(日本體育) 대학에서 ‘축구선수의 인지적 트레이닝의 유효성에 관한 연구’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국가대표 축구선수 출신으로 해외박사를 딴 사례는 최철순 광운대 교수, 이용수 세종대 교수가 있었지만 현장 지도자로는 이 감독이 유일하다.
이 감독은 “다수의 현장 분석과 지도자 및 선수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국 축구 지도자들이 자질이나 지도능력은 뛰어난 반면 선수들의 동기유발 면에서는 일본 축구 지도자들이 우월하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가 양국 선수들을 비교해 봤더니 한국 선수들이 상황판단력과 작전능력이 앞서지만 집중력이나 심리적인 면에서는 일본 선수가 뛰어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엘리트 축구’에 집중하는 한국의 풍토와 ‘저변 확대’에 중점을 두는 일본의 접근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이 감독의 분석이다.
‘비운의 스타’에서 좌절과 역경을 딛고 ‘재팬 드림’을 일궈낸 이우영 감독. 그의 다음 목표는 현장 지도자로서 ‘막강 한국 축구’를 일궈내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현장 경험과 전공을 살려 한국 축구의 질적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한다. 선수들의 ‘학습 능력’을 높이는 선진적 지도방식을 적용해 성과를 거두는 것이 그의 꿈이다.
도쿄=글·사진 김현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