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0년 주기로 5월에도 눈이 내린다는 모스크바의 9일은 잔뜩 흐렸다. 간간이 눈발이 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제 2차세계대전 전승 기념일인 이날,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는 승전을 축하하는 장엄한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 사진출처:크렘린.ru RT 브콘닥테(vk) 계정 영상 캡처
로시스카야 가제타(RGru)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이날 기념식은 예년과 다름없이 크렘린의 타종에 이은 승전 군사퍼레이드 개회 선언과 함께 러시아 국기와 승전기가 전통적인 승전 가요인 '신성한 전쟁'(Священная война) 반주에 맞춰 붉은 광장에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쇼이구 국방장관의 군사퍼레이드 개막 선언과 함께 등장하는 러시아 국기와 승전기. 뒤로는 잔설이 남아 있는 동상이 눈에 띈다
쇼이구 장군의 열병식
푸틴대통령에게 열병식 보고를 하는 쇼이구 장관
푸틴 대통령의 기념 연설
기념사 중간에 1분간 묵념. 단상에 앉은 장군들이 묵념하기 위해 일어서는 모습이 보인다
이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행사 주최자인 올레그 살류코프 지상군 사령관(육군 참모총장 격)이 러시아 초고급 승용차 '아우루스'를 타고 도열한 행사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열병식을 거행했다.
푸틴 대통령은 쇼이구 장관으로부터 열병식 보고를 받은 뒤 비교적 짧은 전승절 기념사를 읽었는데, "러시아 전체가 특수 군사작전의 영웅들과 함께 한다"는 대목에서는 1분간 묵념을 제안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서방 강대국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독일 나치 정권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잊고 전 세계를 분쟁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우리를 어떤 위협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늘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 기념사가 끝난 뒤 전승 기념일을 축하하는 축포가 터지고(위), 이를 지켜보는 대통령
기수단을 앞세워 분열식을 거행하는 러시아 여군(위)와 장병들
이후 시작된 군사퍼레이드에 동원된 군사장비 70대, 병력은 9,000명이었다.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의 이전 행사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규모다.
기수단을 앞세워 각 사관학교 생도와 여군, 특수 군사작전 참전 용사, 카자크 등 30개 부대들이 참가한 도보 퍼레이드(우리식으로는 분열식·分列式)가 끝난 뒤, 전자(탱크)와 장갑차, 탄도 미사일 등 군사 장비가 붉은 광장으로 진입했다.
무기 행진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주력 전차였던 T-34-85가 이끌었다. 그 뒤에는 현대식 장갑차 '타이거-M'(Тигр-М)과 'VPK-우랄'(ВПК-Урал), '부메랑'(Бумеранг)이, 또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과 대공방어시스템 'S-400 트리움프'(С-400 "Триумф"), 대륙간탄도미사일 '야르스'(Ярс) 등이 따랐다. 또 장갑 구급 차량 '린자'(Линза)와 첨단 장갑차량 '피닉스'(Феникс)는 이날 처음으로 군사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군사장비 퍼레이드를 이끈 소련제 전차 T-34
군사장비들이 붉은광장을 가로지르는 장면들
이날 행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붉은 광장을 상공에 나타난 '항공 퍼레이드'로 끝났다. 수호이(Su)-30S와 미그(MiG)-29 항공기 9대가 먼저 붉은광장 상공을 비행한 뒤 Su-25 전투기 6대가 러시아 국기를 상징하는 3색 연기(백색 청색 적색)를 하늘에 뿌렸다. 전승 기념식에 항공기가 등장한 것은 2021년 이후 3년 만이다.
붉은 광장 상공에 백청적 3색 연기를 뿌리며 지나가는 항공기들
전통적으로 붉은 광장에서 열리는 러시아 전승 기념 군사퍼레이드는 약 1시간 30분~2시간 진행되지만 이날은 50여분 만에 모든 행사가 끝났다.
하늘에서 본 전승 기념일 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