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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 허순길 잠들다
허창수 목사(고인의 조카)
허순길 목사는 2017년 1월 10일(화) 새벽 6시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천국으로 가셨고 시신은 12일에 김해 가족 묘지에 안장하였다. 허순길은 교수로서 개혁주의를 신학교에서 가르쳤고 자신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자신의 장례까지도 개혁교회식으로 치렀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아시고 자녀들에게와 조카인 저에게도 자신의 장례식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장례는 예배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 예배는 오로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 죽은 자를 앞에서 예배는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다. 그리고 사진을 보고 묵념이나 헌화는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죽은 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말것이며 조위금도 받지 말라고 하셨다.
고인의 뜻을 따라 장례를 치렀다. 조문으로 오신 분들이 지금까지 어느 장례식장에서도 볼 수 없었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장례식장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허순길 목사는 생전에 개혁주의 신학을 가르쳤고 또 글로서 남겼다. 만약 자신의 장례식을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했다면 그의 가름침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장례식을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계속 할 것인가를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장례식에 총회 산하의 네 곳의 기관장 이름으로 보내온 화환과 신학동기 제5X회 동기생 일동 이름으로 배달된 화환을 접수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금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그래서 교계 지도자들은 교회가 개혁해야 한다고 하며 많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줄 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장례문화가 성경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고치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을 하고 있다. ‘개혁’을 외치면서 장례문화를 개혁을 하지 않는 다면 한국교회는 더 이상 성경적이지 못할 것이다. ‘개혁’은 성경 말씀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개혁해야 할 것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장례문화부터 개혁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죽은 자를 위해 많은 것을 하고 있다. 죽은 자의 사진을 중심으로 국화꽃으로 제단을 장식한다. 제단 양 옆에는 고인이 다니던 교회의 화환과 속했던 기관의 화환이 있다. 그리고 조문객은 고인의 사진을 보고 묵념을 하고 헌화를 하였다. 수의도 비싸고 좋은 것을 입히고 리무진 영구차로 운구를 한다. 그리고 무덤에도 죽은 자의 이력이나 지위를 새긴 비석을 세운다. 무엇보다도 장례식에는 예배가 많다. 임종예배,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예배 그리고 고인이 다녔던 교회의 교인들이 수시로 장례식장에서 예배를 드린다. 이러한 것들을 하지 않으면 죽은 자에게 무성의하다고 한다.
허순길 목사는 이러한 것들을 성경적이지 못하다고 하셨다. 자신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하고 사진 대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라는 예수님의 성경 구절을 써 붙이라고 하셨다. 수위도 평소에 설교하실 때 입었던 차림으로 했다. 한 송이의 꽃도 없었다. 무덤도 일찍 가족묘지를 준비하여 조상들이 이장되어 있는 한쪽에 자리하였고 표지석도 가족들의 이름과 본인의 출생일과 사망일만 기록했다. 개혁주의를 외치던 허순길 목사는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며 고이 잠들었다.
<속보>허순길 박사, 영원한 나라로 떠나
10일(화) 새벽 3시에 허순길 박사님께서 향년 85세로 복음병원에서 소천받으셨다. 입관 및 장례는 평소 고인의 말씀대로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를 예정이어서 입관예배 등은 없고 가족들이 조용히 입관할 예정이고 장례식은 12일(목) 오전 10시라고 한다. 고인은 조용히 가족장으로 하라고 하였지만 조문은 받는다. 장례식장은 복음병원 장례식장 301호이며, 조화와 조의금은 사절한다.
고려신학대학원 교정과 원내는 허순길 박사
지난 해 10월 고려신학대학원 개교 70주년 학술대회에서 산소 호흡기를 달고 유언하듯 신대원의 독립을 주장하신 허박사는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어 그 후 70여일 만에 하나님의 나라로 떠나신 것이다.
"현실적으로나 법적으로 독립된 '신학대학원 대학교' 설립목적 달성이 어렵다 하여 뒤로 물러서거나 목적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며, 이것이 한국에 주님의 참된 교회 건설을 위해 필요하면 교회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느 때에 반드시 허락해 주실 줄 믿는다."고 하신 말씀은 고신교단을 향해 남기신 유언이 되었다.
1988년 고려신학대학원 제 14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4년간 재직한 뒤 1997년에 다시 제16대 원장으로 취임하여 2년간 재직한 후 은퇴하신 허박사는 남달리 신학교를 사랑하신 분이었다. 학교의 일이라면 자신의 생명을 던져서라도 발 벗고 나선 분이었다. 진실로 학교를 사랑하신 분이었다.
가족으로는 부인 황영희 사모, 아들 허벤자민(성진)씨, 딸 허성미 씨 등과 자부 사위 손자 손녀들이 있다. 장지는 김해선영이다.
허순길 박사의 약력: 칼빈학원 및 고려신학교 졸업(1960), 계명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화란 캄펜 신학대학원 졸업(신학석사1969, 박사1972), 서문로교회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호주 자우개혁교회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및 원장(1988-1999)
저서: Ptesbyter in Rechten, Kampen 1972, The church preserved through fires, INHERITANCE PUBLICATIONS CANADA U.S.A 2006, 봉사신학개론, 교회정기 설교,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개혁해 가는 교회, 개혁주의 설교, 개혁주의 목회와 생활, 구속사적 신약설교, 구속사적 구약설교, 잘 다스리는 장로, 한국장로교회사, 큰 사건 큰 인물을 따라 교회사 산책, 개혁주의 진리와 생활,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 해설 설교집, 교리문답해설 설교
끝까지 가르치다 가신 교회의 교사, 우리 곁을 떠나다
지난 2017년 1월 10일(화) 별세한 고(故) 허순길 교수의 장례절차가 12일(목) 모두 마쳤다. 허순길 교수는 하나님 품에 안겼으나 그의 가르침은 저서를 비롯한 여러 글을 통해 여전히 남아 있고, 특히 교회의 교사로서 평생을 살았던 허 교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르치다 갔으니 장례조차도 많은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조문을 위해 방문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것이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영정사진, 꽃 장식, 부조금이 없었다. 상주는 상복을 입지 않았고, 사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묵념 혹은 기도하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장례를 위한 예배도 없었다. 단지 유족들이 방문객들을 맞으며 정중히 인사하는 것이 전부였다. 입관 및 하관도 오직 가족들만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발인식 인도를 맡은 손아래 동서인 이한석 목사(전 고신총회장, 부산수영교회 원로목사)조차도 자신의 80 평생에 이런 장례식은 처음이라고 하였다. 허순길 교수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장례는 교회의 일이 아니라 가정의 일이다”는 개혁교회의 전통을 지속적으로 소개했는데, 본인이 그대로 실천하였다. 허 교수는 자신의 장례에 관하여 상세한 유언을 남겼는데, 이에 따라 진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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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식장의 모습, 많은 이들에게 낯선 모습이었다.
발인식은 조용하고 조촐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조카인 허창수 목사의 유족 대표 인사, 이한석 목사의 발인예식 인도, 신학대학원장 변종길 목사의 기도로 진행되었으며, 이력을 소개하는 일도 없었고, 교단 인사들의 조사도 없었다.
허 교수는 끝까지 가르치면서 우리 곁을 떠났다. 고령화로 인해 장례가 교회행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된 현 시점에 더더욱 한국교회에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갔다. 결혼식은 한 번의 예식을 치루지만 장례식은 최소 세 번의 예식을 치룬다. 이로 인해 목사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장례에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앞으로 더욱 그렇게 될지 모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허 교수는 다음과 같은 개혁주의 정신을 남기고 떠났다. “교회는 죽은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산 자를 위해서 존재한다.”
▲ 조문객들에게 나눠준 글
허순길 교수가 조문객 방문 시 나눠드리도록 유언한 글이다.
도르트 교회질서 제64조 장례
장례는 교회적인 일이 아니고 가족적인 일이므로 이에 맞게 행해져야 한다.
해설
1. 장례는 교회적인 일이 아님
로마교회는 교회적인 장례예배를 가진다. 사제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한다. 교회의 종을 울리는 것도 장례 의식 중에 속한다. 이는 악신을 추방하고 교우들이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개혁교회는 교회적인 장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공식적인 교회 장례는 불필요하다. 교회는 장례 때에 이행할 아무런 기능을 갖지 않는다. 교회는 산 자와 더불어 말하고, 산 자를 위해 일한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에 산 자를 위한 분명한 책무를 주었지, 죽은 자를 위해서는 전혀 책무를 주지 않았다. 먼저 사람의 죽음은 그의 영원한 상태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교회에 의한 어떤 일도 이상 더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연옥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 주 밖에서 죽은 자들은 영원히 잃은바 되고, 교회가 미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 둘째로 교회는 죽은 자의 장례에 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책무도 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죽은 자들의 친족과 형제들이 책임지고 돌볼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개혁교회는 교회 장례 시에 하는 설교나 추모사 등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배치되는 내용이 종종 나타남으로 교회에 유익보다는 손해를 초래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교회적인 장례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아왔다. 한국장로교회에는 교회적인 장례를 치루는 일이 많다. 총회장, 노회장, 교회장이란 이름으로 교회적인 장례를 집행하고 있다. 이때에 종종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죽은 자의 공로를 내세우는 일이 많다. 뿐만 아니라 성경적인 교훈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추모사 내용을 듣게도 된다.
2. 장례 예배가 아닌 장례
우리가 일반적으로 죽은 자의 장례에 관해 준수하는 근엄한 행사는 전문적인 말로 교회장례가 아니다. 당회가 이 장례의 책임을 지고 있지 않고, 친족들이 책임을 지고 있다. 우리 집이 충분히 넓거나 장례회사가 여유 있는 홀을 가지고 있으면 장례를 위해 교회당을 사용할 필요가 전혀 없다. 목사는 이 때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교회 회중에게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 목사는 단지 슬퍼하는 가족과 그들의 친구들에게 합당한 말을 하는 것이다.
우리교회가 공식적으로 장례예배를 가지지 않으나 교회건물이 장례를 위해 가끔 사용되는데, 이 때 당회는 이를 위해 어떤 조건을 제시할 권리를 가진다. 장례를 위해 교회당 사용을 요구할 때, 당회는 일정한 조건 하에 그 요구를 허락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장례에서 어떤 세속적인 노래를 부르거나 큰 화환을 가져다 진열하는 일은 허락되지 않아야 한다.
3. 화장 혹은 매장
성경이 죽은 몸을 태우는 것을 금하지는 않으나, 신구약시대에 매장이 원칙이었다. 족장들이 매장되었다. 하나님이 친히 모세를 묻으셨다(창 34:5-6). 나사로가 무덤에 있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무덤에 장사되었고, 화장되지 않았다. 고대교회에서 매장이 일반적 관습이었다. 이와는 달리 많은 이방인들은 그들 가운데 죽은 자들의 몸을 불로 살랐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사르게 명하신 예는 큰 죄인들의 경우에서다(레 20:14; 21:9; 수 7:15). 오늘날 많은 분들이 물질중심의 불신적 고려로 화장을 선호한다. 기독교적 장례는 부활의 소망과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씨가 뿌려짐 같이 몸은 썩을 것으로 심겨지나, 그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고전 15:35-49).
3무(三無) 장례식장의 교훈
사람은 있을 때보다 떠날 때 진정한 인생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사람의 귀중함도 떠나보면 깨닫는다고 하지 않는가? 살아 있는 동안 온갖 구설수가 있을 수 있고 실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났을 때 평가하는 평가는 진정한 것이다.
우리가 허순길 하면 작은 영웅이며 영원한 교수로 기억한다. 6개월 전 산소호흡기를 달고 유언하듯 당신이 평생을 몸 바친 고려신학대학원 강당에서 후학들에게 유언적으로 학교의 장래를 걱정하며 논문을 발표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허박사님은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마무리 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의 장례식장은 이제 이 세상을 향해 말씀을 못하시는 상태가 되었지만 여전히 말씀하고 계셨다. 참으로 특이한 장례식장이었기에 조문 온 모든 사람들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그것은 3무(三無)였다.
우선 영정이 없다. 무슨 뜻일까?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 있을 것이다. 사진으로 보여진 그 사람 허순길을 그리 애틋하게 기억하거나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는 뜻일 수 있다. 이제는 천국 사람이 되었으니 그리 슬퍼할 일도 아니니 잊어버리고 당신들의 삶이나 열심히 살라는 교훈일 수 있다. 아니 사진으로 보여진 그 허순길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도 담겨졌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부의금이 없다. 천국 가는 길에 노자돈이 필요 없다는 뜻일까? 그런 미신적 생각 보다는 이제는 아무 돈도 필요 없는 세상으로 가셨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유족들에게 돈으로 위로하려 하지 말고 본인도 그런 식으로 위로 받지 말라는 뜻일 수도 있다.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오히려 위로가 될 것이라는 마음도 담고 있다고 보여 진다.
조화 역시 설치하지 않았으며 또한 사양한다고 했다. 흔히 영정을 국화꽃으로 단장하고 단상은 온통 꽃으로 꾸며서 망자를 미화하려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이고 상술로 이를 적극 권하는 것이 장사꾼들의 술책이다. 장례 한건에 얼마의 수입은 저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대체로 이름 있는 분들의 장례식은 그보다 더 엄청난 계산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헌화하는 것도 없애버렸으니 허박사님은 그런 장사꾼들을 낙심하게 만들었다. 죽었으면서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 이용 당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모든 장례 절차는 오직 고인의 유언에 따라 그대로 진행한다고 유족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유족들에게 당부하기를 입관예배니 장례예배니 하는 것은 불필요하니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교회적인 장례예배는 로마교 적이라는 인식을 가지신 것이다. 교회는 산자와 더불어 일하고 산자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다. 죽은 자에 대해서는 교회의 책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례는 교회적인 일이 아니라 가족적인 일이기에 이에 맞게 행해져야 한다고 유언을 남기신 것이다. 허박사님의 장례식장은 장례식장이 아니라 특강의 강의실이었다.
만약 목회자들이 이를 교훈으로 받고 실천에 옮긴다면 점차 이런 운동은 전체 교회로 확산 될 수 있을 것이다. 성도들의 가정은 장례비용의 절감 혜택을 단단히 누릴 것이며 목회자들은 잦은 장례식으로 오는 목회적 피로를 한층 덜 수 있게 될 것이다.
故 허순길 박사, 그는 가르치기 위해 세상에 오셨고 가르치는 삶으로 후배들의 모범이 되셨으며,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서도 한층 높은 무료특강을 하시고 천국에 가신 제1호 천국박사가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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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분과 귀한 가족들입니다.
감사합니다.
고인의 뜻 잘 간직하오며
유가족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고귀한 말씀 남기고 가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