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 엄마(제19회 생활문예대상 대상)
이름작성 일시
좋은생각 편집부 |
2024년 08월 12일 16시 59분 |
장주영 님
연극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대부분 모녀지간인 듯했다. 연극을 보는 내내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청소부 엄마였다.
청소부 엄마와의 첫 만남은 영화관에서였다. 부모님의 이혼 후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중 하나가 영화관이었다. 관객들이 상영관 안에 버리고 간 팝콘과 음료수 컵을 한가득 안고 나가면, 청소부 아줌마들은 자기 몸만 한 쓰레기통에 분리수거를 했다. 시름을 맡기듯 쓰레기를 한 움큼 맡긴 채 나는 다시 로비로 돌아갔다.
하루는 혼자 청소를 하는데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다음 영화 상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내가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자 청소부 아줌마는 상영관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아이고, 혼자 하느라 힘들었겠구먼.” 하며 도와주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청소를 끝내자 아줌마는 “어여 가 봐. 학생은 카운터도 봐야 하고 바쁘잖아.”라고 말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나는 로비로 뛰어갔다.
다음 날, 아줌마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어디 안 좋으세요?” “몸살에 걸렸는지 열이 나고 어지럽네.” “그럼 얼른 병원 가셔야죠!” “퇴근이 두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아깝잖아.” 머리를 짚은 채 컵을 치우는 아줌마를 보니 속이 상했다. 나는 유니폼도 갈아입지 않고 약국으로 뛰어갔다.
어디가 아픈 건지 몰라 종류별로 약을 사 들고 와 아줌마를 찾았다. “아주머니! 이 약 드시고 퇴근하면 꼭 병원 가 보세요.” 아줌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고마워서 어떡해….” 그러고는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아 한껏 작아진 아줌마의 등을 토닥였다.
남편과 일찍이 사별한 아줌마는 일하며 번 돈으로 두 아들을 장가 보냈다. 그런데 아들들은 도통 찾아오질 않고, 이렇게 아픈 날 알아 주는 이 하나 없어 서러웠는데 약을 들고 돌아온 내 모습에 눈물이 터졌단다.
우리는 그 뒤로 서로를 엄마와 딸이라고 불렀다. 있는 돈 다 빼앗아 가 인연을 끊은 친엄마 이야기를 하자 아줌마는 내게 엄마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돈을 뺏기고 갈 곳이 없어 길바닥에 나앉아 종일 굶은 이야기를 할 땐 같이 눈물 흘리며 화도 내 줬다.
연극이 끝난 후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을 닦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연극이 많이 슬픈가 봐요?” 돌아보니 화장실 청소부 아줌마가 서 있었다.
“여기서 몇 년을 청소하면서도 한 번도 연극을 본 적이 없어요. 너무 비싸서…. 열심히 일해서 나중에 딸이랑 꼭 보고 싶어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해요. 내가 주책없이 말이 많았죠?” “아니에요. 꼭 따님이랑 같이 보러 오세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리고 버스 차창에 기대 여러 다짐을 했다. 청소부 엄마에게 좋은 딸이 되어야겠다고. 엄마가 아플 때 외롭지 않게 약 한 봉지 사다 주는 딸이 되겠다고. 이젠 내가 엄마의 모든 시름을 청소할 테니 편히 쉬라 말해 줄 수 있는 딸이 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