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복음은?(갈1:1-12)
갈등
1.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 말 번역은 갈라디아서인데, 헬라어 원문이나 영어 성경에서는 복수로 표기를 했어요.(Galatians) 2절,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수신자를 표시해주었어요. 각 교회에 보내는 사도들의 서신(편지)들이 다 그래요. 초기 교회는 오늘날과 같이 교회 건물이 있고, 규모 있게 모인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 가정 교회들로 구성되었어요. 성경의 서신서들의 인사말을 보면, 당시 편지를 쓰던 형식이 발견됩니다.
인사말에는 처음 글을 시작하는 만큼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관심이나 신뢰를 표현함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편지의 인사말-서론에는 주고받는 사이에 공감될만한 내용을 대개 언급하였어요.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는 인사말로 시작해서, 그 교회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그 교회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별도로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갈라디아서 서론을 읽어보면, 당시 편지 양식과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2.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다는 인사는 있습니다. 2-3절,“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전혀 없고,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감사의 인사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사말은 간단하고 시작부터 매우 거친 말로 편지가 이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편지를 썼던 상황이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갈등 심화
2.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들에 편지하며, 간단한 인사말을 마치고 본론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봅니다. 6절,“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바울의 다급한 심정이 보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은 바울이 직접 현장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어느 교회보다도 바울이 애착을 가졌던 교회들이었어요. 바울과 갈라디아 교회의 관계는 매우 돈독했습니다. 바울이 육체의 약함(질병)으로, 교회가 시험에 들 수도 있었지만(가장 심각한 질병은 간질-귀신을 쫓아내고 각종 질병을 고쳤던 바울에게) 그들은 바울을 천사와 같이 주님과 같이 영접해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교우들이 눈이라도 빼어 자기에게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4:13-15) 바울은 순회 선교사였기에, 어느 정도 교회가 세워지면 일군을 세워서 교회를 맡기고 다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를 떠난 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미혹하였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보내는 교회에, 인사말 형식도 외면하고 본론 시작을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었음을 전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잘못된 복음을 따르는 자들은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4.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가 너무 쉽게-속히 따르는 것을 보고 당황하였습니다. 바울의 감정이 매우 고조되었어요. 8-9절,“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라디아 교회에 다른 복음을 전한 자들은 누구였을까요?
그들이 전한 다른 복음의 내용이 궁금해집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이 상하며, 이런 자들은 저주를 받으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모습을 보면 상황이 매우 심각해 보입니다. 바울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라고 선언했어요. 바울의 자세는 매우 배타적인 모습이기도 해요. 바울이 전한 복음이 무엇이기에 바울이 이렇게 확고하고 배타적인 자세를 나타냈을까요?
실마리
5.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를 쓰게 하셨습니다. 각 교회에 말씀하신 주님의 모습이 각기 다릅니다.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은,“오른 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들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서머나 교회에 말씀하신 주님은,“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버가모 교회에 말씀하신 주님은,“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 두아디라 교회에 말씀하신 주님은,“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네 교회에 말씀하시는 분만 소개해보았어요. 편지는 이렇습니다. 각 교회의 상황에 맞게 예수님의 모습이 각기 다르게 임하셨어요.
서머나 교회나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칭찬받는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격려하시는 주님)과 책망을 받는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심판자의 모습)이 다릅니다. 주님만이 아니라 사도 바울도 각 교회에 맞게 인사와 권면이 이어졌어요. 바울이 쓴 편지는 로마서부터 빌레몬서까지 13개입니다.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13권이 바울의 저작입니다. 일곱 개 교회와 세 명의 개인에게 바울이 편지를 보냈어요. 각 편지마다 서론과 본론이 다릅니다. 13개의 편지 가운데 가장 거칠고 숨가쁜 말들이 나오는 것이 갈라디아서입니다. 그만큼 갈라디아 교회들의 상황이 바울이 보기에는 좋지 않고 위기였습니다.
6.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서론의 형식이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바울은 오직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속히 깨닫고 돌이키기를 원했어요. 우선순위와 다급함이 나타납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다른 복음을 전한 자들은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이었어요. 유대교로부터 개종을 했지만, 유대교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었어요. 그들이 전한 다른 복음은,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아니라 유대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 또 율법을 따라 행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유대교와 혼합주의, 율법주의 그리스도인들) 이런 상황은 다른 누구보다 바울이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른 누구보다 이런 상황을 용납하지 못한 이유는, 그 자신이 유대교에 충실했던 자였기 때문입니다. 바울보다 유대교적 가르침과 율법에 관한 전문가가 없었어요. 지식에서만 아니라, 유대교 실천에서도 바울처럼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힘을 다한 사람이 없었어요.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유대교에 대한 자기 자랑을 말했습니다.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요, 율법으로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4-6)
7.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자기 자랑을 한 것은,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교 그리스도인들을 경계하라는 메시지 가운데 전한 것입니다. 바울이 함부로 교만하게 자기 자랑을 한 것이 아니고요.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육체를 자랑하고 신뢰했지만, 주님을 만난 후에는 변화되었어요.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다. 유대교와 혼합주의는 바울이 조금도 타협할 여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는 타협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타협할 수 없는 것이 있어요. 타협할 수 없는 것은 진리입니다. 나머지는 타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진리(성경 말씀-신론과 구원론, 하나님에 대해서-삼위일체, 구원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아요. 진리는 타협하고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 진리만 지켜지면 나머지는 타협할 수 있어요. 세상일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할수 있는대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양보하며 살아야 해요.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항상 손해보고 살아갑니다. 진리는 그렇지 않아요. 바울의 모습이 배타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8. 금요일 저녁 출애굽기 말씀을 나누며,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하지 말라-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 그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는 말씀을 나누었어요. 하나님께서 속이 좁고 기독교가 배타적이라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모두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속이 좁고 배타적인 자세가 아니었어요. 다른 복음을 따르면 그리스도의 구속(4절,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심)이 의미가 없어집니다. 구원도 멀어집니다. 그러면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전했던 복음은 무엇이었을까요?
복음 제시
9.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저주하고, 자신이 전한 복음이 어떤 것인지 전합니다. 11-12절,“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의 기원을 분명히 밝혔어요.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배운 것도 아니다. 복음의 출처가 사람들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고 밝혔어요. 그가 전한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계시로 발견한 복음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본래 성경학자였어요. 유대교 어느 지도자보다도 성경을 잘 알았어요.
사도 바울에게서 성경 읽기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후에 완전히 달랐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바울이 성경(구약성경)을 다시 읽을 때 복음이 발견되기 시작했어요. 전에는 무시하고 지나갔던 구절들 속에 보화와 같은 복음이 발견되기 시작했어요. 참 놀라운 일입니다. 똑같은 성경을 읽는데 왜 과거와 지금이 달라졌나요? 그리스도의 빛으로 성경을 읽으니(계시-눈을 열어주고 깨닫게 하는), 전에는 감추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유대교인들에게 메시야의 고난을 예언한 이사야 53장은 눈으로 보고 읽으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죽이고 마는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10. 사도 바울이 발견한 복음은 그의 13개 서신에 골고루 잘 기록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을 인용하면서요. 대표적인 것이 합2:4을 인용하며,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롬1:17)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3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창15:6을 인용) 전에도 구약의 이 말씀들을 바울이 읽고 지나갔으나, 깨닫지 못했어요. 이제는 확실히 깨닫고 2:16,“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사도 바울은 롬3:10 이하에, 시14편을 인용하면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하나도 없음을 선언했습니다. 바울이 발견한 의는 사람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하나님께서 인치시는(인정하시는) 의였어요.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을 경험한 바울은 롬8:1-2,“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자유 대선언을 했습니다.(신앙의 마그나 카르타, 자유 대헌장) 복음의 정수가 이렇게 철철 넘쳤습니다. 이 진리를 영적인 맹인들인-유대교 그리스도인들이 외면하고 다른 복음을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전할 때, 바울이 참지 못하고 분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대
11. 오늘 우리가 믿고 누리는 복음은 이 진리와 동일합니까? 아니면 다릅니까? 이것과 다르면 다른 복음입니다. 우리는 진리에 대해서는 바울과 같이 타협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영적인 전쟁은 쉬지 않고 이어집니다. 다른 복음과의 전쟁입니다. 선교지에서도 이단과 사이비와의 전쟁이 이어져요. 한국의 이단들이 아시아로 아프리카로 진출했어요. 인도네시아 현지인 전도사가 제게 질문을 했어요. 박옥수 집단(구원파)에 대해서 답변해달라고요. 그들 모임에 가보았는데, 그곳도 교회이고 그 사람들도 그리스도인들이더라고 하면서요. 지금은 구원파와 관계를 끊었다고 해요.
제가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상세한 것은 자료를 전해주기로 했습니다. 신천지 교회가 아프리카 선교지에서 대놓고 전한답니다. 작년에 제가 방문했던 탄자니아 므완자 지역에서(두 번째 큰 도시) 선교사님이 소식을 전해주었어요. 모양만 보면 안 됩니다. 내용이 중요합니다. 다른 복음을 따르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요. 우리는 내 생명 내가 지키고, 다른 생명을 돌보아야 해요.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서 찬양하며 내가 믿는 복음을 제대로 알고 누리며 살도록, 이 땅에서 갈라디아 교회들과 같이 다른 복음에 속아서 헤매는 영혼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합니다.(오늘 찬양: 세상 흔들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