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달이 시작 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데 벌써 초순이 지나고 있었다. “세월이 참 빠르네요.” 하고 인사말을 건넸더니 “시간은 제자리에 그냥 서 있는데 사람이 달려가는 것 같아요.” 하는 선답(禪答)을 들었다.
사실 어제도 그제도 오늘과 날씨만 다르지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는 시간은 일정하다. 그러고 보면 십 년 전이나 이 십 년 전이나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늙은 것 아닌가. 그동안 문명이 발달했는데 어찌 지금과 같으냐는 물음이 나오겠지만 세월에 맞춰 입은 옷이 달라졌을 뿐 낮과 밤이 찾아오는 것은 그대로인 것이다.
한 참 전에 미국 시카고에 정착한 임광억이를 만나 옛 이야기를 나누며 밤늦도록 정겨운 시간을 가졌다. 친구는 벌써 40 여 년 전에 고국을 떠났는데 아직도 그 당시의 추억 속에 머물러 있었다. 예전의 시내, 거리 그리고 옛 풍속들조차 그동안 엄청나게 변화했으나 친구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심정인 것 같았다. 학창 시절에 어울리던 양순열 , 이동진 등 친구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 하면서도 마치 며칠 전에 만났던 것처럼 회상하면서 지금도 옛날 그대로 일거라고 믿고 있었다. 친구는 꿀꿀이죽부터 추억거리들을 하나씩 꺼내면서 자기가 고국에 돌아가면 언제나 떠나올 때의 그 모습으로 시간이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 같았다. 하기야 누구나 자기 자신은 변하지 않은 줄 착각하고 사는 것 아닌가. 예전의 아름답고 혈기 넘치는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인 줄 아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그 모습이 이리 변했나 하고 생각하지만 또 다시 세월이 정지되어 있는 옛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옛날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유혹하던 물방개 놀이도 그대로 있느냐고 묻는다. 물방개 놀이란 물을 채운 둥그런 원통 둘레에 칸칸이 칸을 막은 다음 그 위에 학용품, 껌, 캐러멜, 심지어는 낙타 담배까지 올려 놓는다. 중앙에 다시 조그맣고 밑이 뚫린 원통을 세워 그 속으로 물방개를 집어넣으면 물방개가 저 가고 싶은 칸으로 들어가서 그위에 있는 상품을 타는 게임이다.
주위를 둘러싸고 구경하던 아이들은 물방개가 좋은 상품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마치 자기가 당첨된 것처럼 환호성을 지르고 꽝인 칸으로 들어가면 아쉬움에 탄식을 한다. 이 게임은 끝까지 가야만 결과를 알 수 있는 사다리 타기 게임으로 변했다고 했더니 흥미로워 했다. 또 둥그런 원판에 줄을 그어 칸마다 상품을 적어 넣고 돌리며 핀으로 내려찍기 하던 뺑뺑이 놀이를 기억하기에 숫자 추첨기계로 자동화 되었다고 했더니 웃었다.
남대문 시장 같은 곳에서 사먹을 수 있었던 꿀꿀이죽이 아직도 있느냐고 해서 요즘에는 부대찌개로 변했다고 했더니 신기하게 생각 했다. 친구는 그리운 옛 추억들이 한 장면 한 장면 마치 사진이나 그림으로 남겨져 있는 것처럼 기억 속에 정지되어 있었다.
이렇게 육신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세월 따라 무심히 적응해가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마음만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고향처럼 시간이 머물러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는 사뭇 다르다. 고향 역시 주변 여건과 상황에 따라 멈추어 있지 못하고 많은 변화가 일어나있다. 돌과 나무 그리고 풀 한 포기에도 알알이 추억이 묻어 있던 원시 모습의 고향은 개발에 의해 파괴되고 도시화로 변모해 버렸으며 낯설고 삭막해져 버렸다. 그래서 고향을 떠난지 오래된 사람일수록 그렇게 가고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속에 정지되어 있는 아름다운 환상이 깨질까봐 가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변화하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얼마나 변했을까 하는 흥미로운 기대와는 달리 제발 그 곳만은 그대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원하는 욕구와 원치 않는 마음이 공존하는 모순으로 갈등을 겪고 있어도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현재의 모습은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의 한 단계이자 과정이며 고정되거나 완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연관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지하고 싶은 세월에 대한 추억은 내 모습도 그 시절로 멈추어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은 것일 뿐 사진을 들여다보며 회상하는 여유를 가지라는 것이다.
꿀꿀이죽을 먹을 당시 사회 상황은 배고픈 시대라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끓여 먹을 때였고 차차 사회 여건이 안정이 되고나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영양가 없는 것은 버리고 소시지와 햄 같은 건더기만 건져내어 부대찌개 요리로 변천한 것이다. 물방개 놀이나 뺑뺑이 찍기도 당시에는 요즘과 같이 다양한 게임이나 놀이기구가 없었으므로 그 놀이들에 흠뻑 빠졌었으나 놀이 문화가 발전해 가자 일일이 물방개를 구하러 다니기도 힘들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사다리 타기 게임으로 변한 것이다. 뺑뺑이 찍기도 로또 복권 추첨기계처럼 사회가 발전해감에 따라 손으로 하는 것보다 아예 자동화 되어 버린 것이다. 인간만 다른 사람과 긴밀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이 주위 여건과 상황에 따라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것이다.
다만 그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는 사람이므로 결국은 마음먹기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다양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시간이 멈추어 있기만 고집할게 아니라 정지되어 있는 아름다운 추억도 슬슬 움직이는 모습을 즐길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정지되어있는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단절하지 말고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주고 현재는 미래에 영향을 주는 것이므로 지금의 안목으로 추억을 더듬어 보면 색다른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추억과 현실의 조화를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다.
언젠가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 전시회가 있었다.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작품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파이프 그림이었는데 그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글이 적혀 있는 것이다.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현실이 신비롭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제시라고 했다. 그 옆에 유명한 살바도르 달리의 ‘ 기억속의 지속’ 이라는 작품도 있었다. 나뭇가지에 걸린 시계가 늘어진 그림이었다. 마음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시계가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으로 표현 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이상 주위 상황이 변하기를 원치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변화하는 것도 근력이 따라야 되기 때문이다. 변화를 기피하고 싶은 마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아 둘 수도 없는 일이므로 나약한 마음일랑 접고 주도적으로 변화에 적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정지되어 있는 추억들을 혼자 몰래 꺼내 보는 재미도 쏠쏠하겠지만 이제는 변화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딛고 새롭게 발전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광억이는 그후 여러번 고국을 방문하더니 머리가 좋은 만큼 금방 변화에 적응 하는 것 같았다.
첫댓글 백우 선생의 경험에 나도 크게 공감합니다. 우리 동기들 중 20~30대에 이민갔던 친구들을 현지에서 접촉해보면 거의 광억이의 물방개 추억과 동일했어요~
'日新 又日新' 이 말만은 우리에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주고 있는 교훈인 것 같습니다.
지금 하류로 흘러가고 있는 한강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방금 전에 내가 보았던 한강 물은 벌써 흘러가 버렸고, 그 자리에 새로 채워진 한강물만 보게 되겠지요^^
無心 無慾 無情의 말씀 새겨듣네